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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 6:6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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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게로 가오리이까 (요 6:66~71)

아테네(Athens)를 향해서 가던 어떤 사람이 갈 길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들에서 일하던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아테네까지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얼마나 걸리나요?" 농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합니다. 길을 묻던 사람은 농부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냥 걸었습니다. 한참 걸어가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여보슈, 한 시간 걸릴 것 같소". 그 말을 들은 사람이 화가 났습니다. "아니, 아까 물을 땐 가만히 있더니 가는 사람 불러 세워 말하는 이유가 뭐요?". 그러자 농부가 말합니다. "당신의 걸음걸이를 보지 않고 얼마나 걸리겠다고 어떻게 말하겠소? 당신의 발걸음을 보니 한 시간 걸리겠다는 말이요"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들의 발걸음이 시간을 결정짓는다는 교훈입니다. 우리의 태도나 삶의 발걸음이 우리의 삶까지 확정짓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태도로 살아가십니까?

요한복음 6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은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 남았다는 내용으로 배부른 무리에 대한 기록입니다. 두 번째는 생명의 떡에 대한 교훈인데, 육이 배부른 것보다는 영이 배불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세 번째는 육보다 영에 대한 말씀을 가르침으로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모였다가 오히려 불만과 실망으로 예수님 곁을 떠나가는 무리에 대한 기록입니다.

본문은 그 세 번째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예수를 임금으로 삼으려합니다. 정치적인 압박과 지배의 설움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허덕이는 절박함에서 예수님의 기적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희망을 묵살하시고 산으로 가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많은 무리들은 황당하였습니다. 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좇아오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무리들은 육신의 배만 부르면 되는데, 정치적인 압박에서 해방되면 되는데 예수께서 이상한 말씀만 하신다고 수근대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던 무리들은 정치적 구원에 대한 언급은 없이 도리어 고난 받으실 것을 암시하시며,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계속 하시자 무리들이 하나씩 둘씩 예수님을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자기들의 고향이나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무리들이 모두 떠난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이제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들도 나를 등지려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본문 68절입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께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고백입니다. '뉘게로 가오리이까' 라며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함께 하시기에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가 뉴욕의 한 교회에서 신앙간증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간증하였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년에 용돈이라고는 50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땀흘려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 가정은 파산지경이 되었고, 아버지는 47세 나이에 6개월밖에 못산다는 병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리 어렵던 가정이 어머니의 신앙 때문에 다시 일어나게 되었노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어머니는 살림을 맡아 거친 일을 하면서도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라고 늘 찬송하였습니다. 밤에는 자녀들의 잠자리에 다가와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아주신다" 라며 잠이 들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가난했음에도 저녁을 굶고 잠자리에 들어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말합니다. "당시 한 조각의 빵 속에는 어머니가 계셨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믿음으로 아버지는 89세까지 장수하셨고, 카네기 같은 훌륭한 자녀들이 배출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복됩니다.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가정은 복됩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문제를 결정짓습니다. 나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지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우리와 동행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까지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예수님은 바로 내 곁에 계셔서, 우리의 아픔을 같이하시고, 또한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을 떠나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이기게 하시기에

레바논(Lebanon)이 전쟁의 화염에 휩싸여있을 당시 제니 레빈'(Jenny Levine) 이란 특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활동 중에 회교도들에게 붙잡혀 독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독방 속에서 지내던 그는 "이러다 내가 미쳐 죽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어릴 적에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처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혹시 계시다면 저를 도와 주시옵소서." 할 일이 없는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도하다가 살아 있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힘들지 않는 독방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풀려난 다음에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교도들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고통스러운 독방의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 고 분명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향해 함성을 질러 성을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여리고 성 사람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증거합니다. 만약 여리고성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밖으로 나와 전쟁을 하였다면 이스라엘은 승리를 체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원수들을 묶어 주십니다.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을 포기하고 불순종할 때는 세상이 우리를 묶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며 예수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세상에 묶여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나를 떠나려 하느냐?" 아무리 어려워도 믿음을 포기하거나 주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을 버리고 주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묶여 비웃음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주님밖에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언제나 이기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셋째로 버리지 않으시기에

시카고의 뉴올라 대학에서 영성훈련을 가르치는 '존 포엘' (John Powell) 교수의 저서 '무조건적인 사랑'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톰이란 학생이 붉게 물든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영성훈련에 참석하였습니다. 톰은 포엘에게 "아직도 당신은 성경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습니까?" 라며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포엘 교수는 톰을 따로 불러 말합니다. "나는 너보다 인생을 많이 산 사람이다. 그러니 내 말을 듣고 예수를 믿으라". 그러나 톰은 '예수를 만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찾지도 않겠다' 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때 포엘 박사가 유명한 말을 합니다. "네가 예수님을 찾지 않으면 예수님이 너를 찾으실 것이다." 4년이 지난 뒤, 톰은 초췌한 모습으로 졸업생 특별강좌에 참여하였습니다. 히피 머리가 아닌 정장 차림으로 포엘 교수를 찾아와 말합니다. "교수님! 저는 폐암 말기 환자입니다. 수술도 할 수 없어 곧 죽게 됩니다. 교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더 살 수만 있다면 제가 만난 예수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 대신 강의 때마다 학생들이 예수를 만나도록 말해 주십시오." 포엘 교수는 "지금 죽기에 원통하지 않느냐?" 고 물었습니다. 톰은 말합니다. "아닙니다. 폐암에 걸려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죄악에 빠져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행복도 맛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은 생명을 잃는다 해도 구원의 확신과 영생이 저에게 훨씬 더 귀합니다." 포엘 박사는 지금도 특별강좌 때마다 톰의 이야기를 전하며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찾지 않으면, 반드시 예수께서 여러분을 찾으실 것입니다" 라고.

본문을 통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 시간 베드로처럼 고백하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만 사랑하겠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의사라 해도 암이 퍼져 있으면 환부를 열었다가 닫아 버립니다. 포기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길이라고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의학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렸다해도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죄인을 잘 대해 줄 수는 있어도 그의 죄를 용서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용서 해주십니다. 죄를 용서하심으로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떠날 수 없음을 분명히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에서 남쪽으로 가다보면 '쿼바디스 교회' (Quo Vadis Church)가 나옵니다. 베드로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가 극에 달하였을 때, 성도들의 강권에 의해 베드로가 로마를 벗어나 피신할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향해 오시는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Quo Vadis Dominae)". 그때 예수께서 "내 종 베드로가 교회를 버리고 도망친 로마로,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러 가노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회개함으로 로마로 다시 돌아가 그 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무리들처럼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주님을 떠날 것입니까? 아니면 제자들처럼 주님을 따라갈 것입니까? 영생의 말씀이 계신 예수를 떠나지 않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의미가 되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헛된 욕심으로 살던 세속적 삶을 버리고 주님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함께 하시며, 이기게 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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