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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로 환경을 이기라 : 십자가에서 남긴 셋째 기도 (눅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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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환경을 이기라 : 십자가에서 남긴 셋째 기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中)”

I. 본문 배경

이제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장면에 도착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기도이신 동시에 십자가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하는 아주 간단한 기도였습니다. 그 직전에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후에 “예수께서 운명하시다”는 성경구절로 미루어 볼 때 마지막 남기신 여섯 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과 여기에 기록되어있는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라는 기도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당신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시는 동안 마지막 남기실 수 있는 말을 기도로 마치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당신의 생애 마지막 순간을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시는 것으로 마감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예수님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말씀을 가지고 우리 함께 은혜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II.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말씀 ; 마지막 기도

우선 첫째는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말씀이 기도였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도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가장 먼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은 아주 명백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말씀이 기도였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당신 자신의 생애를 기도로 마무리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성도의 삶에 비춰볼 때에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애의 마지막에, 만약 단 5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 죽음으로 갈라지는 작별의 설움을 달래기에 5분은 너무 부족할 것입니다. 지각이 있는 모든 성도들은 자신에게 마지막 5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 앞에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하신 말씀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남겨둔 영혼들에 대한 부탁도, 심지어는 당신 자신의 혈육을 향한 작별의 말씀도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기도의 생애였기 때문에 기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의 생애를 마무리하실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어떤 가문, 어떤 혈통을 받아 태어났는가보다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삶의 여정입니다. 즉, 그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실제로 이 세상에 있을 때 어떻게 살았는가 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산 것만큼 중요한 것은 죽을 때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악한 왕들을 지칭할 때 아끼는 자 없이 죽었다는 구절이 역대기에 몇 차례 나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에서 임종을 맞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생애의 마지막을 기도로 장식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사시는 동안 기도 속에서 사셨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도 기도로 생애를 마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마지막 짧은 순간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가 실제 그렇게 기도로 생을 마무리 할 수 있느냐는 평소에 그것을 소원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살아온 영적 생활의 여정과 관련된 것입니다.

평상시 히브리어로 시편을 낭송하며 은혜를 경험하던 어느 신학교 교수가 큰 병에 걸려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는데,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시편 1편을 히브리어로 낭송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구한 세월 동안 그 습관 속에서 말씀의 감화를 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자기의 의식의 세계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지배했던 것입니다. 챨스 스펄전 목사가 너무 일이 많아 설교준비를 못하고 안타깝게 잠이 들었는데, 잠꼬대로 시편을 설교하는 것을 그 아내가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의식의 세계 속에서 늘 풍부하게 경험한 것이 무의식에 흘러 들어가서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뭔가에 몰두해서 그 속에서 일평생을 살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라면 십자가에서 혼절하여 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넘나들면서 죽어갈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하게 죽어 가는 극심한 고통과 마지막에는 그 힘이 모두 진하여 죽게 되는 절명 직전의 상황에서 육신의 모든 힘을 다 쏟아내듯 큰 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시며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그분이 기도의 생애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다음 경우 중 어떤 것을 선택하시고 싶으십니까? 첫 번째는 인생에서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며 놀랍게 쓰임 받지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거의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인생을 마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살아있는 날 동안에 실수도 많고 실패도 많았지만 인생의 마지막 때라도 주님을 깊이 만나서 더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의 깊은 축복과 사랑 속으로 미끄러지듯이 주님의 품으로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젊은 시절에 주님을 만나 계속 주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마지막까지 주님과 친밀함 가운데 생을 마감하는 것일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이 일생을 공들여 사는 것은 생의 마지막에 주님의 품에 안기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도 가운데 교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마지막 한 순간도 기도로서 당신 자신의 죽음을 마무리하시기까지, 그런 하나님과의 평화와 친교를 누리셨습니다. 죽음의 위협과 사망의 고통조차 그 친교를 방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도의 세계를 유지하시기까지 예수님이 사셨던 그 험난한 기도의 생애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생애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방해와 고난에 시달리는 생애였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예수님에 대한 유혹과 도전들, 핍박들은 훨씬 더 강렬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안락한 수도사적인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항상 문제가 없는 숲 속에 홀로 피신하신 것이 아니라 문제가 많은 사람들 속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힘을 다 소진하시며 섬기셨고, 분투하며 고생하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세상의 환경과 여러 가지 여건들이 예수님을 도와주지 않았어도 부단히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기도의 헌신에 드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견고한 헌신, 그 연단 된 기도에 자신을 드리는 기도의 헌신을 이 세상에 있는 환경들이 감당할 수 없었고, 생의 마지막에 찾아온 사망의 고통조차도 그분으로 하여금 기도를 멈추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그분의 생애 전체가 기도의 생애였기 때문에 인생의 이 마지막에서도 그분은 기도하시며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어줍지 않은 성경지식, 그리고 쓰레기 같은 자기 의를 붙들고 거들먹거리며 신앙생활을 한다면, 마지막에 ‘나의 영혼을 받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대신 이를 갈고 슬피 울며 죽음으로 끌려갈지도 모릅니다. 두려움으로 벌벌 떨면서, 죽음 넘어 기다리시는 주님을 만나기 두려워하며 슬피 울면서 죽음 가운데로 끌려갈지 모릅니다. 그렇게 죽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이 기도는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과 가지셨던 그 관계의 친밀함이 어느 정도인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평소에 주님께서 누리면서 사셨던 친교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의 이러한 본을 살펴보면서,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영광 가운데 마무리하기 위해 기도로 분투하며 사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를 본받아 우리 또한 기도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제목 ; 하나님과의 연합

두 번째,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 제목입니다. 예수님이 앞에서 남기신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보다는 공적인 기도였습니다. 주기도문만 살펴보아도 모두 개인적인 기도라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만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당신의 기도의 생애를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사실 이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이 기도하셔야 할 제목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한을 제외하고는 도망간 당신의 제자들, 그들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의 계획, 남겨둔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던 수많은 백성들, 그리고 남겨진 구원의 위대한 계획들, 모두 주님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순간,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합니다.”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신 시점이 바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직후였다는 사실을 미루어보면, 결국 예수님이 당신 자신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신 후에 남기신 기도가 개인을 위한 기도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이 지상에서 하실 일이 없으셨습니다. 일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사시고 영혼을 위해 사시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대속물로 주셔서 아버지와 사랑하는 백성들 사이에 구속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징표로써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며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그곳을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도움이 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보혈을 힘입어 살아계신 거룩한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예수님의 이 지상생애의 모든 사명은 완수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남겨진 기도 제목은 당신 자신의 영혼의 문제였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는 이 기도는 혹시 지옥을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 경험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경험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과 만나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충격이었고, 비록 하나님이시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혼과 육체가 연합되어서 참인간으로 일평생을 사시다가, 이제 다시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경험해야했습니다. 이것 또한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도성인신(道成人身)의 사건만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육체가 영혼으로부터 분리되는 바로 그 순간, 그분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와의 전적인 친교를 원했습니다. 이제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이루기 원하신 일들을 다 완성하고, 이 일들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취하게 하셨던 육신의 껍데기를 벗으신 후, 이 세상에 내려올 때의 영혼 그대로 하나님께 돌아가오니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는 이 영혼을 긍휼히 여기셔서 특별한 친교와 사랑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되게 해달라고 하는 특별한 영적인 연합을 위한 간구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분 생애의 마지막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생명 있는 날 동안에 우리는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많은 인연을 맺고, 다양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일생을 살면서 해놓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어떤 때는 가슴에 찬바람이 부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이렇게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인간의 출생보다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세월이 되어 가는데, 한 것이 뭐가 있는가...’ 그런데 이것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죽으면 누가 우리를 기억하겠습니까? 그저 몇 년은 기억하겠지만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집착하고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서 그것에 연연해하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이 순간 죽음이 방문하면 그 인연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리되어야 할 인연입니다. 죽음이 갈라놓을 수 없는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 작별하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노심초사하고, 상처가 많은 가정이라면 그 상처가 치료되기를 위해 많은 눈물로 기도하며 마음 아려하지만 결국 죽으면 그 가족들과도 결별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뒤따라 올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연, 모든 집착, 모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한시적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만 의미가 있는 것이고 우리들이 이 세상에 숨 쉬고 있는 동안에만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까지 계속되어질 영원한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또 다른 영적인 인연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 두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사업이나 직장 생활을 위해서 노심초사하지만 죽음이 앞에 오면 그것도 작별입니다. 취미 생활이 너무 좋아서 주일도 잊고 낚시하러 가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지만 그것도 다 살았을 때 하는 일입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설 때 마지막 남은 것은 영혼입니다. 마지막 죽음을 앞에 놓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 영혼은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죽음이 너무 두렵습니다’라거나 ‘내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합니다’라고 기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셨기에 ‘오늘 아버

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하시며 죽음의 휘장을 넘어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탁월한 친교 속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평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을 위해서 일하면, 죽음으로 인해 그 일과는 결별하고 그 섬김과는 작별해도 그 섬김의 궁극적인 동기가 되었던 하나님과는 오히려 만나는 것입니다. 일과 작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사람은 섬길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그 죽음의 때에 붙들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 때문에 사귀었던 친구도 떠나고, 가족들과도 죽음을 통해 결별하고, 자기가 좋아했던 일도 이제는 자기를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버림을 받을 상황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 떨지만 예수님처럼 일평생 주님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서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든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지막에 죽을 때 더욱 온전한 생명을 갈망하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기도의 영을 간직한 채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런 탁월한 친교의 핵심은 결국 그 기도의 영을 죽는 순간까지 간직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그 하나님의 품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IV.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

눈에 보이고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이 허위들을 모두 벗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주님 앞에서 주님을 섬기며 살았던 우리의 영혼 하나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더할 나위 없는 친교 속에서 살다가 생의 마지막에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죽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날 동안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4:7~8)라고 하는 확신을 갖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떠도는 구름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생명이 있고 기회가 있는 동안에 썩고 사라져버릴, (죽음의 위협 앞에서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없는) 일시적인 것들을 위해서 살지 말고, 죽음의 위협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죽음의 순간이 우리에게 현실로 닥쳐와도 조금도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있도록 살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이 바

로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지금 그만 오라고 부르신다면 ‘주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가 이러이러한 것들은 주님 앞에 이루어 놓고 죽습니다. 나를 이렇게 사용해 주셔서 내가 아니면 이룰 수 없었던 이러한 일들과 섬김을 다하게 해주셨으니 하나님 제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도 비슷한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훌륭하게 섬겼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기억 못하실 수도 있고,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주님은 기억하실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신기한 것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가 한 선행을 모두 기억하고 있고, 선택받은 사람들은 “언제 우리가 주님을 섬겼습니까?”라고 말하며 자신의 선행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겼던 날들은 여러분들은 잊어버려도 하나님께는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들이 죽음의 휘장을 걷고 영생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주님과의 친밀한 친교를 느끼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여러 방면에서 여러 모양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의의 길을 걸어가고 사업을 하면서도 인자와 공의를 사랑하고 성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유혹을 물리치면서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함께 여러분들이 이러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이 세상에는 유리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는 흔들리고 고통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순종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들, 또 순종할 마음은 있어도 그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여러분 자신이 모두 예외 없이 경험하였습니다.

이제 할 수 있으면 우리들이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이 특별한 사명을 주셔서 선교사나 목회자로, 혹은 특별한 일꾼으로 보내실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서 그 교회가 상처입고 절름발이 된 자들, 고통하고 쓰러져 엎드러진 자들, 앉은뱅이 되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들, 눈 멀고 귀 멀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길을 찾지 못하는 수많은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사람들을 깃들게 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도록,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무엇인가 기여하는 삶을 산다면 저와 여러분들의 생애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네가 무엇을 하다 왔느냐?”고 물으셨을 때, “한 교회를 최선을 다해 섬기다가 왔습니다.” 고 말할 수 있는 생애를 산다면, 하나님 앞에 그 삶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V. 결론과 적용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마지막 기도를 통해서 이처럼 사명을 다 감당하다가 마지막에 기도로 생애를 마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한 영혼이었습니다. 메시아도 아니고, 위대한 기적을 이루셨던 큰 일꾼도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한 아들로서 이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육체는 이 세상에 남겨두어 부활의 날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이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인식하며 하나님께 자기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결국은 마지막에 이렇게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에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영혼으로 이름 지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만을 남길 것입니다.
그 때 주님 앞에 구김이 없이 서기까지 우리들은 전심으로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면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기를 힘쓰고,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힘에 지나도록 이루기 위해 수고하며 삶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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