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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백성과 언약의 계승 (창 25-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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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과 언약의 계승 (창 25-26장) 

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삭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합니다. 이삭에 대한 기록은 다른 조상들에 비해서 대단히 짧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있어서 언약의 계승자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을 언약의 계승과 관련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5장은 먼저 언약의 계승에서 배제된 인물들을 기록합니다. 첫 번째 부류는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얻은 6명의 아들들과 그들의 후손들입니다(1-6). 1절만 보면 “아브라함의 후처 … 그두라”는 사라의 죽음 이후에 얻은 두 번째 부인 같은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6절에 “서자들”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첩’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역대상 1:32절도 그두라를 “아브라함의 첩”으로 소개합니다. 언약의 계승에서 배제된 두 번째 부류는 사라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에게서 낳은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입니다(12-18). 두 부류가 도덕적으로 이삭보다 더 악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출생한 자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서 배제된 두 부류들에 대한 기록 사이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11)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삭이 받은 복은 무엇보다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받은 복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은 26:3-4절에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을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계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24장에서는 아내를 주셨고, 25장에서는 자식을 주셨고, 26장에서는 재물을 주셨습니다. 이삭의 삶의 특징은 헌신과 희생이 아니라 받아서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풍성한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모든 재산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아픔도 없었고, 자식을 재물로 바쳐야 하는 뼈아픈 시험도 없었습니다. 야곱처럼 험악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몇 차례 갈등 상황을 겪긴 했지만, 대체로 일평생 평안 가운데서 풍족한 삶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삶은 그가 노력해서 획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복이었습니다.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받는 것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된다는 사실은 25장 19-26절에서 보다 선명하게 강조됩니다. 이삭은 나이 40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이제 다음 세대의 언약 계승자는 쉽게 태어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잉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삭은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했습니다(21). 이 사건은 이삭과 리브가의 노력으로 언약을 계승시킬 수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언약의 계승자가 마련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셔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쌍둥이를 잉태한 후, 리브가는 이제 아이를 낳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은혜 가운데서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서부터 싸웠습니다. 뭔가 첫출발부터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리브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리브가에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3)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언약의 계승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달렸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있어서 인간이 협력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며,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말은 인간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오직 홀로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기도하지 않아도 쌍둥이를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기까지 침묵하시다가 기도할 때 그 응답으로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기근 자체를 없애실 수도 있는 분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26:2)는 사명의 말씀을 주시므로 말씀을 믿고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기적적으로 단번에 부자가 되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지만, 먼저 이삭으로 농사짓게 하시고 그 소출에 대해 복 주셨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26:12-13)

이삭이 간절하게 기도하고 열심히 농사지었다는 그 행위 자체가 자녀를 가지게 하고 큰 부자가 되게 한 것은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했어도 자녀가 없을 수 있었고, 열심히 농사했어도 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삭이 받은 모든 복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마구잡이로 아무에게나 아무렇게나 베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푸실 자로 하여금 먼저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순종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며 힘든 때에도 사명의 땅을 떠나지 않도록 믿음 주셨습니다. 이러한 준비를 시키신 후에 기도에 대한 응답과 순종에 대한 결실로 은혜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기도하고 순종할 수 있었던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기도하며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언약 계승자에서 배제하시고 야곱을 선택하기로 작정하셨지만,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야곱과 에서의 소원을 억지로 꺾어가면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25:27-34절을 보면, 야곱은 어찌하든지 장자의 명분을 쟁취하고자 소원합니다(31):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반면에 에서는 장자의 명분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32):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또한 에서는 언약을 계승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의식도 없습니다(26:34-35). 여기서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소원이 전혀 상충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야곱이나 에서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협력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의 인간적인 소원을 따라서 행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에서는 자기가 언약의 계승자가 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뜻 때문이라고 탓할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100%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하시면서도 인간은 100% 자기 소원대로 살아가도록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와 경륜입니다.

25장과 26장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의 허물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성경은 위인전이나 영웅담과는 달리 사람을 칭송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마감되는 자리에서도 그의 영웅적 행위나 업적이 칭송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허물이 기록됩니다. 이삭의 경우도 아브라함처럼 아내를 누이로 속였던 일을 기록합니다. 그가 아버지보다 한층 더 거짓되었던 것은, 사라가 실제로 아브라함의 이복동생이었던 반면에 리브가는 그의 당질녀(오촌 질녀)였기 때문입니다. 야곱 역시 형의 약점을 이용해 장자권을 쟁취하려는 교활성이 처음부터 폭로됩니다.

본문은 믿음의 조상들이 남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고 훌륭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은 오직 은혜로 선택받았습니다. 선택받은 후에도 그들은 실수와 허물을 남길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본문에서 부각되는 것은 택하신 자의 허물과 약점과 관계없이 끝까지 보호하시며 그에게 두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그 시대 풍속을 좇기도 하고, 속이거나 속기도 하고, 싸우고 빼앗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과 허물 속에서도 당신님께서 정하신 뜻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고 이루어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보존되고 계승되고 발전해 가는 것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된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합니다. 인간의 어떠한 행위들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차피 완벽할 수 없고 허물을 남기지 않을 수도 없으므로 대충 살면 될까요? 어떻게 살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 테니까 나는 죄된 소원대로 살면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허물을 남겼다고는 하지만 그의 시대는 그만큼 계시가 빈약한 때였습니다. 아마 일부일처가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결혼제도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더라면 아브라함도 그 시대의 풍속을 좇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빈약한 계시의 시대에 살면서도 그가 깨달은 하나님의 뜻만큼은 철저히 순종하려 했습니다. 이삭이 언약의 계승자로 살아가는데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서자들을 멀리 보내버렸습니다. 이삭도 눈이 어둡고 연약한 가운데서도 전수받은 언약을 야곱에게 잘 계승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는 믿음의 조상들보다 훨씬 더 풍성한 계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첩을 두지 않았더라면 더 옳았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취한 첩의 후손들은 모두 아랍 족속들의 시조가 되었고 그들의 후손들은 이삭의 후손들과 직간접적으로 적대 관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고의적이진 않았어도 계시에 대한 빈약한 깨달음은 역사가 흐르면서 큰 문제를 만들어 놓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 언약의 계승자들인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깨달음이 빈약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애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깨달은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보다 철저하게 순종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네 행동이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생각하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언약의 계승자로서 계시를 잘 전수받아 잘 전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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