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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사람 되게 하소서, 이런 사람 세우게 하소서! (행 4: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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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사도행전 4장 36,37절
제  목 : 이런 사람 되게 하소서, 이런 사람 세우게 하소서!

1. 교회의 일군

오늘은 우리 교회가 그 동안 기도해 오던 대로 교회의 일군을 세우는 날입니다. 교회의 일군을 세우기 전에, 먼저 본문의 말씀이 말하는 주님의 교회의 일군의 자격 혹은 조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해야 이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을 직분자로 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교회의 일군인가?’ ‘주님의 교회의 일군이 갖추어야 할 자격 가운데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이며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난 다음에 이 말씀으로 우리 교회에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 성경이 말하는 이 조건들에 합당하다면, 여러분은 정말 복된 사람이요 성숙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그만큼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요, 성숙한 교회일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게 하고, 우리 곁에 성숙한 성도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하는 조건들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사람이 주님의 교회의 일군이 될 수 있을까요?


2. 성경이 말하는 일군

1) 남을 위로하는 사람

오늘 본문에 소개되어 우리의 주목을 받는 사람은 바나바라는 분입니다. 미스터 바나바의 가장 우선적인 특징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원래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나바”라고 개명해서 불렀습니다.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고 부른 이유는 오늘 본문에 보니까 그가 다른 사람을 “권위하는 자”, 즉 ‘위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위, 또는 위로’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거나 사랑의 권면을 하고, 때로는 그를 위하여 다른 누군가에게 간청하여 그를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다른 사람을 위로 격려 칭찬하고, 때로는 그들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거나 요청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주님의 교회와 사도들에게 알려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려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의 이름이 될 정도였다고 오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오순절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그 안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로까지 널리 펴져있던 유대인들, 소위 “경건한 헬라인”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또 다른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수많은 과부들과 고아들이 있었고, 해외로부터 예루살렘과 그 주변으로 모여든 나그네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수가 얼마나 많았든지 헬라인으로서 예수님을 믿은 교인들 가운데 “헬라파 과부들”을 구제하는 문제로 교회 안에 갈등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정말 위로가 필요한 교회였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조직과 기구를 만들어 이 일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필요하기는 한데 누군가 직접 나서서 말이나 행동이나 자신의 물질로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역을 감당한 사람이 바나바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바나바는 그의 이름인 “요셉”보다는 “바나바”라는 별명으로 불려졌고, 후에는 이름은 잊혀지고 바나바가 본명처럼 되어졌던 것입니다.

위로자로서의 바나바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사도행전 9장과 11장 25절 이하에 나오는데, 그 혜택을 입은 사람은 바울과 마가입니다. 성도들을 핍박하고 괴롭히던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으나 아무도 그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믿어 주지 않을 때, 바나바가 나서서 바울을 편들어 주고 사도들 앞에서 그를 변호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바나바가 새로 설립된 안디옥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 바울은 고향 다소로 내려가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이 사실을 알고 다소로 가서 바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에 대한 바나바의 위로자로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마가의 경우, 그는 최초 선교단의 일행으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것이 힘들어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바울은 이런 마가에 대해서 아주 엄격했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처럼, 주님의 나라와 복음 사역에 헌신했다가 힘들다고 도망쳐버린 그는 자격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비록 마가가 자신의 조카이지만, 주님의 교회와 복음의 일군으로서 마가의 가능성을 보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결국 바나바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후에 마가는 사도들의 뒤를 잇는 위대한 일군이 되었으며, 노년의 바울의 곁을 지켜주었고, 마가복음을 기록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바나바와 같은 위로의 사역을 잘 하고 계십니까? 또 우리 교회 가운데 이런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요? 비록 시대와 형편은 초대교회와 다를지라도 우리 곁에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고 외롭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주님의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면서 그들을 위로하여 따뜻한 말이나 작은 정성 혹은 섬김으로 돕는 사람, 바로 그가 교회의 일군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와 같은 위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회 안에 이런 위로의 은사를 가진 분들을 찾으셔서 그를 일군으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2) 시간과 물질의 헌신자

두 번째로 교회의 일군이 될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물질에 헌신된 사람이여야 합니다. 바나바의 형일 것으로 짐작되는 마가의 부친은 상당한 재력가, 즉 부자였습니다. 구브로가 고향인 바나바와 그의 가족들이 예루살렘에 1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을 가진 대저택, 큰 빌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엄청난 부자였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바나바 자신도 자신의 밭을 팔아 주님의 교회에 바치는 것을 보면, 바나바 역시 상당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바나바 집안은 고향 구브로에서 사업에 성공한 후, 그들의 조상적부터의 고향인 예루살렘에 지점이나 혹은 영업본부를 두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마가가 대제사장의 집으로 가려고 했을 때,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상당히 잘 알려진 집안의 젊은이였고, 그가 그렇게 알려진 배경은 바로 재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재력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주님의 교회와 복음을 위하여 헌신했다’는 점입니다. 1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빌딩을 최초 교회의 예배당으로 드린 것이나,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의 토지를 팔아 교회에 바친 바로 그 점이 바나바와 그 집안을 뛰어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바나바는 물질만 헌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 즉 자신의 생애를 바쳐 복음의 일군으로 살았습니다. 초대 이방인 선교의 역사는 베드로나 바울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개별적으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일은 있었지만, 이방을 위한 본격적인 선교사로 헌신한 것은 바나바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전도자로 살았고, 바울의 사역과 더불어 그의 선교사역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바나바는 자신의 시간, 자신의 생애 전부를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께 얼마나 드리고 있습니까? 지난 주간에 한동대학 모 교수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잠시 스치듯 지나는 사람의 어려운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메모해 두었다가, 다음 달 월급을 받으면 그에게 먼저 보내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옷을 산 적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얻거나 재활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청빈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부요했습니다. 시간도 마찬가지겠지요. 자신을 위해서는 엄격하게 사용하면서 남을 위해서는 그리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는 내 시간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사시고, 또 우리 교회 가운데 그런 사람을 일군으로 세울 수 있기 바랍니다.

3) 복음 전도의 사람

세 번째로 주님의 교회의 일군은 복음의 사람입니다. 사실 바나바는 교회의 공식적인 일군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도도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초대 일곱 집사에 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일곱 집사님들이 집사로서의 사역을 다 한 후에 복음 전도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 중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스데반 집사님과 사마리아 등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 빌립 집사님 등이 있었듯이, 바나바도 그들과 똑같이 살았습니다. 그는 최초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파송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 안디옥 교회가 안정이 되자, 또 다른 이방지역을 위하여 공식적인 첫 선교사를 파송할 때 먼저 나서서 그 일에 헌신했습니다.

이것을 조금 넓게 생각하면, 디모데전서 3장 7절에 나오는 일군의 자격 가운데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는 말씀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좋은 일군,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교회 밖,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다하는 사람이며, 그것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도만이 아니라 그의 삶도 인정을 받아야겠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바깥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죽어가는 그들을 살리려는 거룩한 몸부림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삶, 그리고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교회 밖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이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복음 전도를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교회의 일군은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 영혼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시고, 또 오늘 우리 가운데서 이렇게 사는 사람을 일군으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4) 남을 세우는 사람

마지막 네 번째로 주님의 교회의 일군은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연으로 자신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연배우를 찾으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그 첫 수상자로 세우고 싶습니까? 우선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조연배우로 꼽히는 사람은 사울왕의 아들 왕자 요나단입니다. 만약 그가 욕심을 내었다면 다윗을 누르고 왕이 될 수도 있었고, 설사 왕이 못된다고 해도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아버지의 뜻을 어겨 가면서 까지 그를 왕으로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가장 위대한 조연 배우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는 단연코 바나바일 것입니다. 그는 바울보다 복음에서 앞섰습니다. 교회에서 앞섰습니다. 직분에서 앞섰습니다. 선교에서 앞섰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주님의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고 위로하는데도 앞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주장하기보다 더 뛰어나고 헌신된 사역자들을 위하여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었고 최선을 다해 살았으나, 그는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주기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리더가 되고 대표가 되고 장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이 나서기보다 다른 사람을 내세워 그를 더 빛나게 만들었고, 자신이 세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주님의 복음이 더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나바처럼 위대한 조연인생, 아니 어쩌면 그러했기 때문에 더 위대한 삶을 산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사람은 많으나 정작 사람이 없다는 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리더십에 관한 이론과 책들이 많고 또 스스로 리더라고 지도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진정한 지도자는 없다는 시대 아닙니까? 바나바는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넘버 투’나 ‘넘버 쓰리’가 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의 이러한 모습 때문에 그는 주님의 나라에서 높아졌습니다. 낮아짐으로서 높아지는 것, 이것이 우리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섬김으로 높아지고, 낮아짐으로 진정한 지도자가 된 우리 주님과 바나바는 그래서 닮은꼴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가운데서 이처럼 스스로 낮추며 섬기려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일군으로 세울 수 있기 바랍니다.


3. 일군이 되고 일군을 세워야 ․․․

오늘 우리는 바나바를 통해서 주님의 교회의 일군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 둘째로는 시간과 물질에 헌신된 사람, 셋째로는 복음을 위하여 헌신된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스스로 낮추어 섬김으로 다른 사람을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 일군의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기준으로 여러분 자신을 비추어 보니까 어떻습니까?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들이 이런 사람, 이런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요? 오늘 여러분이 하실 일은 바로 이런 사람을 살펴서 그를 일군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곧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것이요, 주님의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이 곧 교회적인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아무튼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시고, 또 이런 사람을 일군으로 세우는 은혜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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