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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삼하 1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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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삼하 16:5-14)

명견과 잡종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먹이를 먹거나 찾는 것은 명견이나 잡종견이나 똑같습니다. 개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 명견과 잡종견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톱’(Stop)의 능력입니다. 주인이 먹지 말라고 하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명견입니다. 반대로 배가 고프면 그냥 먹는 것이 잡종견입니다. 멈추는 것이 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위대함에 대해 말합니다. 그의 공적을 기립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무엇 무엇을 많이 한 업적보다 더 큰 업적이 있습니다. 바로 성전 건축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었습니다. 비록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다고는 하나 건축에 필요한 물자를 준비한 것은 다윗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그 일을 제지하시자 거기에서 멈추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스톱’(Stop) 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22:8)

  믿음 없는 보통사람 같으면, ‘피야 닦으면 되지, 누가 뭐래도 나는 한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내가 한다’라는 식으로 성전 건축을 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멈추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부흥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그 일을 중단하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실 때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역에 한참 불이 붙었는데, 하나님은 ‘난데없이’ 사막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8:26)

  이에 빌립은 중단하고 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저는 일찍 일어나서 교회로 갑니다. 그런데 새벽 일찍 움직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꼭 예수 믿는 사람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배달, 우유 배달하는 사람, 등산 가는 사람, 심지어 스님들도 보입니다. 예수 믿으면 더 성실하고 더 부지런해진다는 식의 설명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결정적으로 언제입니까? ‘고’(Go) 할 때가 아니라, ‘스톱’(Stop) 할 때입니다. 믿는 자들은 주일에 쉽니다. 안식할 줄 압니다. 하던 일을 중단합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주일에 장사를 중단하는 일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중단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광야를 통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 전날에는 만나를 두 배로 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고 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빠져 있는데 그 고난을 비웃으며 비방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반응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분노 내지는 저주를 하였을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불행하게도 다윗은 반역자에게 쫓기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반역자의 우두머리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데 서글픔을 더욱 느꼈을 것입니다. 진정 다윗은 몸도 마음도 이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설상가상으로, 화불단행으로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다윗이 당하고 있는 상황을 비웃으며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을 던지며 비방하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참으로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이 보여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침착하고도 신앙적인 태도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반역자 압살롬이 있고 저주하는 시므이가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와 지혜와 능력이 여러분 삶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9-10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시므이가 다윗과 그 신복들을 저주하며 돌을 던진 까닭은 다윗이 사울가의 피를 흘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므이의 비방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가의 어느 누구도 살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마치 자기 아들처럼 예우하며 아껴주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시므이의 이같은 행위는 그릇된 자기 선입견과 혈통주의자의 편협한 사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오늘날 가문, 혈통, 지연 등 소아에 사로잡혀 대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표상으로 이 시므이를 들 수 있습니다. 시므이가 감정적이고 무지로 인하여 근거 없이 다윗을 저주하였을 때 다윗은 똑같이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저주하면 똑같은 저주의 사람이 됩니다. 시므이는 자신의 저주로 저주받아 결국은 살해되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저주하지 않음으로 축복의 삶을 누렸습니다.

  헬렌 켈러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다는 것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았다고 하나 진정으로 살 수 없는 조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조건으로 생을 살라고 하면,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고 해도 비난하거나 말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나를 왜 이 따위로 만들어놓았습니까? 이렇게 만들어놓고 세상을 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당신은 너무 잔인한 분 아닙니까?”

  헬렌 켈러의 상황은 이렇게 분노하기에 충분할 만큼 암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감사하고 감격하는 인생을 살았고, 오히려 자신을 통해서 가치를 흘러가게 만드는 존재였습니다. 헬렌 켈러는 20세에 하버드 대학의 래드클리프 칼리지(Radcliffe College)에 입학했습니다. 헬렌 켈러가 대학을 다니던 20세기 초반에는 신흥 재벌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부(富)를 소유하게 되자 이들은 덜컥 겁을 먹게 되었습니다. 큰 부자는 오히려 도덕적입니다.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부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두려움과 함께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네기 같은 사람도 많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헬렌 켈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주는 사람에게도 상당한 기쁨과 보람이 됩니다. 그래서 카네기도 헬렌 켈러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20세이던 헬렌 켈러에게는 원고를 쓰고 받는 일정한 액수의 수입이 있었다고 합니다. 헬렌 켈러는 카네기의 장학금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그 장학금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십시오. 저는 충분한 수입이 있습니다.”

  이런 인생을 키우고 싶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돈이 있는데도 장학금을 타려고 합니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는 것보다 장학금을 주는 인생이 더 훌륭하지 않을까요? 형편이 된다면 굳이 장학금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좀 더 어려운 사람에게 양보해도 좋은 일이 아닙니까? 헬렌 켈러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를 통해서 가치가 흘러가게 만드는 위대한 영혼이었습니다. 삼중고의 헬렌 켈러도 자기 인생을 사는데, 그 누가 자기를 부인하고 남으로 살아가려고 합니까? 남이 아닌 자기로 사는 인생에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으로서 영광이 임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비난하거나 좌절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성공이며 승리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와 복을 베푸십니다. 여러분에게 ‘시므이’가 있습니까? 불쌍히 여깁시다. 똑같이 저주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처분하십니다. 어떠한 가운데서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축복함으로 축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본문 11절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시므이의 악독한 저주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는 다윗의 성숙한 모습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보복하거나 불평하기 보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근신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도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하물며 다른 지파 출신의 시므이가 자신에게 저주 한 마디 한 것쯤이야 하나님의 징계치고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지 않겠느냐는 반응입니다. 오히려 분개하는 군대장관 ‘아비새’를 만류하였습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듣고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비방의 타당성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비방을 들어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 오히려 그 비방을 당할 때 먼저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태도를 성찰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살고 승리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도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금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계 줄이 낡았습니다. 아내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빗이 없었습니다.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해 빗을 샀습니다. 아내는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을 위해 시계 줄을 샀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어리석게도 두 사람 다 쓸모없는 물건을 샀다는 것입니까? 시계 없이 시계 줄만 가지고 무엇 하겠습니까? 머리카락 없이 빗은 가져다 무엇 하겠습니까? 이 이야기의 주제는 가난한 부부는 쓸모없게 된 시계 줄, 쓸모없게 된 빗을 선물 받았지만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런 사랑의 감격을 맛보기 원합니다. 교회는 이런 감동과 감격이 물결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다가 아닙니다. 상대를 향해 움직이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물질이나 말보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한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겸손과 회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축복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2-13절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다윗은 여러 가지 수욕을 묵묵히 감수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가해진 과다한 저주를 기억하셔서 자기를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현재 자기의 억울한 형편을 정확히 살펴보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위기 가운데서 구해 주시며 긍휼과 축복을 베푸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이 필요합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용서와 축복이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성도가 간절히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사랑을 반드시 베푸십니다. 거절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품으시고 감동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크십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겸손이며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반드시 구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사탄은 이 믿음을 흔들고 깨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이 막아 주십니다.

  18세기 초의 하나님을 잘 섬겼던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아내 사라를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의 후손들에게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창대케 하셨고 크게 높여주셨습니다. 가문에 복을 주셨습니다.

  대학총장 13명, 대학교수 65명, 법과대학 학장을 포함한 법률가 100명, 판사 30명, 의과대학 학장을 포함한 의사 66명, 미국 상원의원 3명, 대도시 시장 3명, 주지사 3명, 미국 부통령, 미국 재무부 감사관을 포함한 공직자 80명.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후손들에게 이런 복을 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선으로 갚아주십니다. 다윗과 후손들에게 놀라운 복을 베푸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우리는 지금 대강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주하시 맙시다. 자신을 돌아봅시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과 후손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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