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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자 앞에 서도록 너희 머리를 들라 (눅 21: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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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앞에 서도록 너희 머리를 들라 (눅 21:25-36)

  찰리 브라운이라는 소년과 스누피라는 유명한 개가 등장하는 '피너츠 퍼레이드'(Peanuts Parade)라는 만화 시리즈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 찰리 브라운의 동네 친구 중에 라이너스라는 꼬마와 그 애의 누나인 왈가닥 소녀 루시가 함께 집 창가에 기대어 서서 비가 억수 같이 내리고 있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루시는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 "이러다가 홍수가 나서 우리 집이 떠내려가게 되면 어떡하지?"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러자 평소에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던 동생 라이너스가 "괜찮아. 창세기에 보면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보여 주시면서 다시는 세상이 홍수로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셨어."라고 말해 주자 루시는 "휴, 그렇다면 안심이야."라고 합니다.
  그때 라이너스는 그렇게 마음을 놓는 누나를 보면서 "다 건전한 신학(sound theology) 덕분이지."라고 마치 어른처럼 혼잣말을 하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자연 현상만을 보고 겁을 내고 있던 루시가 성경을 잘 알고 있던 동생 라이너스 덕분에 그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는, 재미있고도 뜻 깊은 에피소드였습니다.
  비록 만화의 한 토막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건전한 신학을 배우고 믿는 것이 그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신학에도 여러 가지 분야가 있지만, 이처럼 세상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논하는 신학 분야를 가리켜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자가 건전하고도 정확한 종말론을 소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는 해도 그 종말론 신앙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저 '용두사미'의 신앙생활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바른 종말론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것 역시 그 누구보다도 우리 예수님께서 가장 잘 아시는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화육강생의 초림을 통하여 구속을 성취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재림하셔서 역사의 종말 또한 친히 이루실 당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바로 그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확실한 종말론이 과연 어떻게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것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종말론은 인류가 우주나 자연의 대재앙 때문에 망하게 되지는 않을 것을 보장해 줍니다.

  본문 25절로 28절에 기록하기를 "25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고 기록했습니다.

  불신자들의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종말론이 바로 천재지변이나 우주의 대재앙으로 인한 지구 멸망설입니다.
  이런 헛된 종말론은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도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키고 "무서워" 떨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연적인 재앙은 어디까지나 종말의 "징조"일 뿐이지 '종말 그 자체'는 결코 아니라고 우리를 안심시켜 주십니다.

  "일월성신의 징조"는 해와 달과 별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불안한 변화나 현상들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천체 망원경을 만들어 이 궁창의 세계를 더 멀리 내다보게 되었을 때부터, 바로 그 기술과 지식으로 말미암아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게 되었습니다.
  태양이란 것은 영원히 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핵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연료가 다 소모되면 그 빛과 열이 꺼지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비단 태양뿐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이처럼 점점 더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열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현상을 두고 물리학에서 소위 '열역학 제2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의 경과를 두고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우주가 거시적으로 볼 때 '멸망해 가는 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과학이 스스로 만들어낸 최대의 비관적 종말론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혜성 충돌 따위와 같이 좀 더 단시일 내에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현실적 '일월성신의 징조'도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오래 전 옛날 이 지구상에 큰 운석 내지는 혜성이 충돌하여 공룡 멸종 따위의 대변혁을 일으켰을 가능성과 증거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존하는 혜성들 중에서 그 궤도로 볼 때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몇 십만 혹은 몇 만 분의 일 쯤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주선을 발사하고 핵폭탄 등을 사용하여 그 충돌 궤도를 빗나가게 할 수 있는 방법 따위를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혜성 충돌로 지구가 대재난을 겪게 되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도 얼마 전에 나왔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추측해 내는 지구 멸망설은 이처럼 어떤 우주적인 천재지변들뿐 아니라, 바로 "땅에서" 일어날 재앙들도 수두룩합니다.
  인구 폭발에 따른 식량 부족, 가속적인 폐기물들의 증가, 열대우림의 무분별한 파괴로 인한 산소 부족, 그리고 새로운 빙하시대설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구 자체의 멸망설들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존층 파괴와 그에 따른 지구 온난화 현상은 이미 우리 피부로 느끼게 된 일인데, 이런 식으로 계속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결국 남북극에 있는 얼음들이 녹아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해수면이 높아져서 해변에 있는 대도시들이 다 물속에 잠겨 버리게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야말로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하는" 재앙이 현실적으로 눈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저 영원불변할 것 같았던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게" 되고 또한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던 말씀은 이미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천재지변이나 대재난들은 결코 가설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며, 실제로 그와 같은 일들은 앞으로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일들을 당할 때의 반응자세입니다.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런 자연적 재앙 앞에서 '혼란하며 곤고해 하며 무서워하고 기절까지' 하겠지만, 바른 종말론을 믿고 있는 신자들은 전혀 딴판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독신자들은 이런 일들이 무슨 '이상 현상'이 아니라 '반드시 속히 될 일'이며 인류가 '재수가 없어서 당하는 재앙'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재림이 더 가까이 왔음을 확인시켜 주는 징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런 우주적 대재앙이 이 세상 종말의 최종 장면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오직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종말의 멋진 진짜 클라이맥스가 될 것을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와 그렇지 못한 불신자들은 '일월성신의 징조'가 일어날 때 그 반응이 완전 딴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연 재해들이 심해져 가면 갈수록 불신자들은 더욱 공포에 사로잡히고 집 뒤뜰을 파서 지하 대피소를 만드니, 몇 개월 치 식량을 사재기하느니 하면서 난리들을 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재림하실 순간만을 더욱 가슴 졸이는 흥분 속에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우주의 이변과 지상의 재난들은 이 시공세계를 스스로 멸망시키고 사라져 버리게 할 원인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질 날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해 주는 징조인 줄로 깨닫고 끝까지 심령의 평안을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종말론은 역사의 미래가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향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증해 줍니다.

  29절부터 33절에서 "29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2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33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우선 예수님께서는 종말이 가까울 때 여러 징조들이 나타나는 것은 마치 나무에 "싹"이 나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땅에서 돋는 싹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뭇가지에 그 같은 싹이 돋아나면 사람들은 이제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즉 종말의 징조란 것은 무슨 비밀 코드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깨닫는 신자의 눈에 너무나 확연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독신자는 "이런 일이 나는 것" 즉 자기 시대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종말적인 현상들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신자들의 '구속이 완성되는' 천국입니다.
  정말 놀라운 약속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은 '종말' 하면 그저 '망하고 죽는 것'만 생각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기독신자들에게 있어서 '종말'이라는 것은 바로 '영생'이라는 구원이 시작되는 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철석같이 약속해 주시고 또한 보증해 주셨습니다.
  바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대'라는 단어의 뜻을 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 단어는 '어떤 시간'을 가리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총칭하는 의미입니다.
  즉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는 말씀은, '지금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애가 끝나기 전에'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의 생애를 통하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종말 사건은 모든 성도의 생애에 꼭 같이 적용되는 것이며 반드시 성취되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역사적 시간대 위에서 어느 시점이 되든지 간에 관계없이, 각 성도는 '자기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종말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며' 바로 그런 성도들에게는 최후의 종말도 결국은 모두에게 꼭 같이 임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어떤 시대에 어떤 장소에서 살았든지 간에 바로 이처럼 종말을 준비하고 살았던 성도들은 다 꼭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철석 같이 약속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기독신자에게 있어서 세상의 종말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종말은 이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으며 신실하신 성자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확증되어 있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말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피할 수 있는' 운명도 아니며 인류의 '지식과 기술로써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는' 미래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을 위해서는 이미 저 '꺼지지 않는 불'의 지옥이 기다리고 있고 오직 하나님의 택자들만 '아버지의 집'이 예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종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해 주시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그저 이 지구를 잘 보존해서 유토피아로 만들어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또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무슨 달이나 화성으로 전 인류를 이주시켜서 이 지구보다 더 좋은 '신세계'를 시작해 보겠다고 꿈꾸는 것은 그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망상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그런 쓸데없는 염려나 공상은 전혀 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독신자들의 종말은 이미 가장 좋은 것으로 확고부동하게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러면서도 사람이 꿈꿀 수 있는 그 어떤 유토피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행복하고도 완벽한 '신세계'로써 벌써부터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저 '천국'으로 이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저 황량한 달나라나 저 냉랭한 화성으로 이주하게 될 것이라는 망상, 설혹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말 당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꿈'과 어디 비길 수나 있는 일이겠습니까?

  역사의 미래는 '점성술'의 복불복이나 '과학기술'의 막연한 대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의 대주재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오직 '구속사의 완성'을 향해서 줄기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우리 예수님께서 해 주신 '천당 약속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으며, 아니 '천지가 없어지게 될 날은 반드시 오지만' 바로 그날이야말로 그 약속이 완성되고 성취되는 날인 것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종말론은 성도로 하여금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끝까지 경건하게 살도록 인도해 줍니다.

  34절 이하 36절에 기록하기를 "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세상 종말에 대하여 확실하게 가르쳐 주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 조심"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의 종말의 역사를 이미 확정해 놓으시고 그 징조들을 미리 일러 주심으로써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정말 제대로 살면서 그 날을 예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 이런 바른 종말론을 가지지 못하면 사람들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육체의 향락에만 끌려 다니며 사는 것, 인생 괴로울 때 그저 술로 잊어버리고 달래려 하는 것, 혹은 하구한날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염려로만 살다가 그대로 평생을 다 보내는 것 등, 실로 무가치하고 추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각자의 행한 바를 따라 내려지는 심판이 없는 종말, 불신자의 영벌과 구원받은 자의 영생이 없는 종말, 만약 세상 끝이 과연 그렇게 오는 것이라면 도대체 누가 선하게, 정직하게, 의미 있게 살려고 노력하겠습니까?
  학기말 시험이 없고 성적표가 없다면 그 어떤 학생이 책과 씨름하며 도서관에 앉아 있겠습니까?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고 저녁마다 미팅이나 하고 강의 시간에는 다 졸게 될 것이 뻔한 일입니다.
  만약 법이란 것이 없고 재판도 감옥도 없다면, 이 세상 사는 사람 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들이 있어도 이 정도인데 만약 완전히 없다면, 그런 무법천지의 사회와 인생이란 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뻔한 것입니다.
  백보좌 심판이 없고 천당과 지옥이 없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재림주가 없다면, 인생이 사는 모습이란 동물 이하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벌써 지옥이나 다름없는 꼴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의 타락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공의보다는 개인의 욕심만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자연스러운 습관이며 보람된 일을 성취하는 것보다는 말초 신경을 만족시키는 것을 백번 더 좋아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자라면 누구나 다 보유하고 있는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들 모두에게 전해 내려온 원죄의 본성입니다.
  만약 이런 타락이 없었더라면 심판도 종말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짓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살았더라면 그 자체가 바로 영원한 낙원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사람의 본성이 완전 타락하게 된 까닭에 재림주의 심판이 있는 종말은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으면 모든 사람이 다 그 '죄 가운데서 죽는' 길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죄로 인하여 "둔하여진 마음"을 따라 제멋대로 사는 인생들을 위하여 "덫과 같이 임하는" 심판의 날을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가 없이 닥치게 될 종말의 날로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스스로 조심"하며 자기 인생을 경건하고도 충성스럽게 살 의인들이 구별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종들을 불러 놓고 각각 "회계"할 주인과 같이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그 맡겨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스럽게 장사하며 갑절로 불리면서 살았는지, 아니면 그저 친구들과 먹고 마시고 종들을 때리면서 불의한 청지기의 인생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따져 보고 계산하여 상벌을 베푸실 재림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한쪽은 그 예비하신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다른 한쪽은 슬피 울며 이를 갈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종말의 날이 올 것을 확실히 믿는 자만이 자신의 타락한 본성과 싸워 이기면서 그 남은 인생을 보다 경건하고 충성스럽게 살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곧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단의 엉터리 종말론은 거기에 빠진 사람들을 완전히 망쳐 놓습니다.
  가정을 깨뜨리고 집을 나가게 하며 껌팔이나 찹쌀떡 장수를 하면서 교주만을 모시게 만드는 등, 현실을 회피하고 인생을 허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른 종말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세상 끝날에 대한 정확한 말씀을 배우고 믿고 항상 스스로에게 상기하며 사는 것은 우리 각자의 남은 인생을 이처럼 알차고 의미 있게 살도록 변화시켜 줍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방심하며 나태하며 방탕하다가 '덫과 같이 임하는' 그날을 맞이하게 되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며' 또한 '조심하여' 오직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그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피하기" 위하여 이런 일들이 있어야 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주의 진동과 자연의 이변들 앞에서 두려워하며 혼란에 빠지며 기절하고 자살하는 어리석은 일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미 예언해 주신 종말의 여러 징조들을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바라보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독선적인, 정욕적인, 염세적인, 낭비적인 생활에 몸과 마음이 속박되어 자기 인생을 완전히 망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바로 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정확한 종말 신앙을 굳게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결국 "인자 앞에 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종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신자의 '제일 끝'은 '예수 그리스도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게 되는 사건'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는 자의 끝은 '재수 없는 교통사고'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의 참변'도 될 수 없고, 무덤 속에서 '썩어 없어지는 것'이나 지구와 함께 '멸망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바로 꿈에도 그리던 '인자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너무나도 멋진 대단원의 막이 아니겠습니까?
  실로 종말치고는 너무나도 소망스럽고 행복한 종말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일이 시작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는 정말 놀라운 말씀을 선포해 주십니다.
  원래가 '종말'이라는 것은 그 어감 자체부터가 사람을 두렵게 합니다.
  '세상 끝'은 곧 '내 인생 끝'이라는 생각에 절로 머리가 옴츠려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종말을 믿는 사람은 정반대로 '너희 머리를 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불신자들은 지구 멸망설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산들아 바위들아 날 가려다오.'하면서 머리를 땅에 박을 때에도, 우리 신자들은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약속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영광과 능력으로 재림하시는 모습을 보려고 머리를 들고 학수고대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어디 도망칠 데가 없나 하고 굴속으로, 지하 대피소로만 숨으려고 발버둥을 칠 때에도, 우리 신자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장관을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목을 뽑고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종말 직전까지도 그저 '내일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자'하면서 끝까지 짐승 같은 꼴불견을 연출할 것이지만, 우리 기독신자들은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는 약속이 이제 곧 성취될 것을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까닭에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 '일어나 머리를 들고' 저 영원한 본향에서 시작될 영생의 구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종말입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있지만,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 우주 전체가 망하게 되는 그날에 오히려 저 천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과 약속을 따라 그날을 예비하며 기다리는 성도만이 그런 마지막 날, 아니 새로운 시작의 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울수록 더욱 조심하여 '난리와 소란의 소문' 때문에 두려움에 휩쓸리거나 '헛된 미혹'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기도하며 깨어있는 중에 '일어나 머리를 들고' 그날을 기다림으로써 끝내 '인자 앞에 서는' 영광의 자리에서 다 함께 이르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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