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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물로 뿌림이 있어야, 거두는 기쁨이 있습니다 (시 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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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뿌림이 있어야, 거두는 기쁨이 있습니다 (시 126:5-6) 
 
벌써 12월에 들어섰습니다. 올 한해가 우리 앞을 스쳐가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보이기도 합니다. 한 해가 지나간다는 것은 왠지 저희들에게 얼마간의 감회를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룬 일도 있고, 이루지 못한 일도 있고, 이제까지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며 남은 한 달간의 시간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어떻게 보내야 될까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사도 있지만 이루어지지 못해서 안타까운 일, 많은 회한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베푸실 고통속의 위로와 해결, 그리고 소망 속에서 우리의 아픔과 어려움을 해결할 힘을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특별히 한해가 가는 마지막달에 서서 우리의 시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또한 2008년도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시간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오늘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가지고자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 삶에는 아픔의 때가 있고 눈물의 때가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아픔과 쓰라림뿐 아니라 삶의 진정한 기쁨과 은혜를 이루고자 하는 은총의 때가 됨을 믿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와 같이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 특별히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이 된 이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먼저 멸망당하고 이제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런데 B.C.537년에 유다백성이 바벨론에서 1차 포로생활에서 귀환하게 됩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을 때 이 바벨론사람들이 유다 사람을 포로로 잡아가서 무려 몇 년이 지났냐하면 70년이 지났습니다.

그 70년이 지나면 세대가 바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70년이 지난 후에 이 바벨론에서 유다백성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도록 섭리하십니다. 그런데 1차 포로에서 귀환할 때에 바벨론에서 유대사람이 전부 돌아오지 못하고 일부만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제2차 귀환, 3차 귀환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B.C.537년에 유다백성이 바벨론에서 1차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이후에 2차와 3차 포로교환사이에 쓰여진 시점이 바로 오늘 시편이 쓰여진 시점입니다.
무려 70년 만에 포로에서 귀환한 이들에게 본국의 귀환이라는 것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1절 이후에서 이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의 포로들을 돌리실 때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그들의 혀에는 찬양이 가득했다고 말합니다. 열방들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아직까지도 소원이 있으니 다 돌아오지 못한 나머지 자들이 돌아오기를 소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네게브지역의 강들은 건조기에는 메말라있지만 강우기에는 많은 비가 내려 물이 흘러 시내가 회복되듯이 이스라엘에 아직까지 귀환되지 못한 즉, 유다백성 중에 바벨론에서부터 아직 귀환되지 못한 포로들마저도 본국으로 돌아와 물이 넘쳐흘러 젖어짐같이 하나님의 흥건한 은혜 속에 젖어지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건조한 건조기에 내가 말라 아무런 역할을 못하지만 강우기에 물이 흘러넘쳐 그 내가 다시 기능을 찾고 흘러흘러 넘쳐 곳곳을 적시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그들이 본국으로 귀환되어 새로운 은혜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제까지 간구했고 아직도 간구하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소원과 또 이루어질 일들, 앞으로 기대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소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은 본국으로 귀환되는 것, 그리고 이들의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 주를 위해서 심는 마음의 기대와 각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소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을 생각해 보면서 오늘의 말씀을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첫 번째로 우리 삶에는 누구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때가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때라는 것은 고통의 때요, 아픔을 때요, 눈물의 때요, 가슴이 쓰리는 때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러한 때에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누구나 기쁨의 때가 있지만 누구나 슬픔의 때가 있습니다. 아픔의 때가 있고 나음의 때가 있습니다.

굳이 전도서 말씀을 들지 않아도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굴곡이 있는 것을 늘 생각 합니다. 오를 때가 있고, 내릴 때가 있고, 정상에 설 때가 있고, 저 아래 계곡에 있을 때가 있음을 봅니다. 씨를 뿌리는 시간은 언제나 힘들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어둠의 공간에서 헤어 나오게 됩니다.
씨 뿌리는 농부의 수고를 극복하고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어둠속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찡한 감정을 많이 느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히 요즘 수험철이 되다 보니까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아주 애절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보니까 본인이 본인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훨씬 더 애절한 것 같습니다. 이제 수학능력고사 치르기 전에 한 달 전부터 수험생 자녀 및 일반자녀를 위한 기도회를 하는데 거의 다 수험생부모님들이 오셔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너무너무 뜨거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능고사 보기 전에 한 3일전, 2일전해서 아이들을 한명씩 안수해서 매년 기도해 주잖아요. 그러면 아이들 머리에 손을 대고 이렇게 기도하면 그 뒤에 부모들이 간절히 기도합니다.

생전 주일 외에는 절대 교회에 안 나왔던 분들도 그날은 나와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더라고요. 아버지들이 별로 교회에 나와서 기도 안하던 아버지들도 그날은 자식 뒤에 붙어 앉아서 그냥 기도하는데... (평상시에 그렇게 기도했으면 다 성자됐을 것 같습니다.) 정말 기도를 아주 애절히 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꼭 그 기도를 들어 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수능고사 보는 날 부모님들이 나와서 기도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고 정말 너무너무 애절한 것 같아요. 애절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기도하다 생각이 딴 데로 흐르면 애들이 집중하다가 집중력이 흩어져서 문제라도 못 풀 것 같을까봐 그냥 그 집중력 흐트러지지 않고 기도하느라고 정말 부모들이 그렇게 애를 쓰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런데 또 한 편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부모의 열심을 보셔서 자녀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부모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자식들이 알까?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런데 제 답은 자식은 모를 것 같습니다. 본인이 부모가 돼 봐야 부모의 마음이 어떤가를 조금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식 때에는 절대 부모의 그와 같은 애절한 마음을 모르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마음에 ‘차라리 내가 공부해서 내가 시험 보면 더 좋을 걸’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위해서 애타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자식들은 부모가 아무리 기도해도 자식들이 해야 될 부분들이 또 있는 겁니다. 부모가 해 줄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아픔, 자신의 눈물, 자신의 고통의 시간들 중에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지만 그들을 위해서 대신 그 일을 감당해 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는 누가 나를 도와줘도, 누가 내게 힘이 돼도 결국은 내가 딛고 일어서야 될 내 삶의 부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반드시 그 이후에는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일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순간도 눈물 흐르는 기간이지만 그 눈물을 부여잡고 눈물 흐르는 것을 우리는 훔치면서 씨를 뿌려야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눈물 흘릴 때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물 흘리는 때도 나아가 씨를 뿌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보아야만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감사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삶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가슴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눈물과 아픔을 그 마음속에 동조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어려움을 겪어보고 눈물가운데 씨를 뿌려 보아야만 우리는 소출을 거둘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대부분 실패의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징은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와 하나님의 거듭된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온전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는 초라한 사람에 불과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수많은 연단의 과정을 거쳐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작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즘 성도님들을 만날 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살아오면서 자신의 위치나 모든 것들이 그래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서슴없이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스러웠던 때, 자신의 쓰라린 때를 쉽게 얘기를 합니다.
“내가 이런 때가 있었는데......, 내가 이런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내가 그것을 극복하고 지금 내가 이나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다.”라는 것을 그래도 쉽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좀 마음에 흡족함과 자신감을 못 가진 분들은 과거에 자신이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얘기를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더 누추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 하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과거에 그런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은 내가 그래도 좀 낫다고 생각하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은혜가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내가 이 자리에 있었으니 과거의 어려움들이 흉과 허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내게 있어서 자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기쁨의 간증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누추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과거에 있었던 것들이 더 나를 누추하게 생각할까봐 그런 얘기들을 잘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똑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다른 해석과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하는 것들을 또한 생각을 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에게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잖아요. 자랄 때 상처받지 않고 자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랄 때 눈물 흘리지 않고, 누구에게 말 못할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극복하고 치료하고 마음속의 상심을 회복하고 그래서 그것을 약으로 삼았기에 우리의 삶 가운데는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이 정상적인 튼튼한 믿음의 성도들로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어려운 때는 있는 겁니다. 눈물 흘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그 때를 씨를 뿌리는 과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단 말입니다. 정말 가슴이 쓰라려 견딜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래도 우리는 부적거리고 일어나서 아침에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한단 말입니다.
내 슬픔과 아픔이 나로 하여금 낙담하고 그것으로 나를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어려운 시간에 하나님 앞에 씨를 뿌리러 나아가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라는 뜻인가로 생각을 하고 그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사랑하는 귀한 성도님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가슴 아파 눈물 흘리며 쓰라린 마음, 후벼 파는 마음 가지고 씨 뿌리러 나가야 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무엇인가를 채워 넣지 않고 넘어간 사람은 반드시 그것은 채워 넣어야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뛰어 건너간 것은 나중에 그것의 열배, 백배의 수고를 나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려울 때, 슬플 때, 눈물 날 때, 가슴 아플 때, 그 때가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그 때 하나님의 은혜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감격이 어디서 옵니까? 감격이라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토벤이 한 말이 있습니다.
괴로움을 뚫고 기쁨으로.
우리의 기쁨이라는 것은 괴로움을 뚫고 올라온 것이지요? 괴로움을 극복하고 올라온 것이지요.
눈물의 때. 슬픔의 때.
우리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눈물의 때. 슬픔과 고통의 때.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은혜의 터전을 향하여 슬픔가운데서도 우리의 모든 채비를 차려 나아가야 한단 말입니다.


두 번째, 눈물로 씨를 뿌린 사람은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이든 심은 대로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너무나 두려운 말이잖아요. 내가 자신 있게 ‘나는 심은 만큼 거둘 수 있다.’ 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는 심은 것에 비해서 거두고 싶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 삶이고, 거두고 싶은 것에 대해서 미처 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안타까운 것이 우리의 마음 아닙니까?

그러나 그와 같은 삶의 과정과 경험을 했다면 우리는 이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터득하고 이제 그 일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귀한 기회로 여기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기를 소원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기쁨을 체험하게 되고 많은 사람을 위로하며 주의 영광을 선포하게 될 믿음의 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눈물로 심었다는 것은 뭘 얘기할까요? 진지함을 얘기합니다. 성실을 의미합니다. 인내를 의미합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심을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대하며 심었다면 하나님을 바라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를 그냥 두시지 않겠지요? 그를 사모하는 자에게 기쁨과 은혜로 귀한 은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외면치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고 하지만 예수 믿은 것이 어려움이 없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 믿었다는 것은 어려움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의 고통이 다가오지요. 문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심든지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둘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 주어질 삶의 유업 속에 주의 나라와 영광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실 때가 있다면 그 순간을 헤어 나온 백성에게는 반드시 기쁨의 웃음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혼내줄 때 두 가지를 늘 준비하라고 하지요?
한 손에는 회초리면 한 손에는 사과를 가지고 준비해야 된다고 하지요?
한 손으로는 야단을 쳐도 그 아이가 야단친 것에 대해서 왜곡된 감정을 가지지 않게 사과를 줘서 위로하라는 뜻이겠지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언제나 징계만 주시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해도 진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어떤 것이든 균형이 있습니다.
참 쉬운데 좋다. 아주 편안한데 유익하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참 어려운데 유익이 크다. 참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기쁨이 커. 이와 같이 모든 게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도 애들이 중학생이라도 되고 나니까 저보고 놀이공원에 가자는 애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가자고 해도 안가고 친구들하고 가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에는 놀이공원에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에버랜드도 가보고 서울 대공원도 가보고 했는데요, 거기에 있는 기구를 다 타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 몇 가지 타고 와야 되는데 여러분 놀이공원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무엇인지 아세요?

사람들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지요? 거기 써있는 안내서 안 봐도 압니다. 그냥 들어가자마자 대번에 압니다. (참 신기하네. 그걸 모르다니.) 제일 줄이 긴 것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사람이 제일 줄을 길게 서 있는 것이 제일 재미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제일 많이 서 있겠지요. 보면 줄 안서도 금방 들어가는 것 있습니다. 편한 것 같지만 그것은 별로 재미가 없단 말입니다. 사람들도 줄도 안섭니다.
어떤 것 보면 이 줄에 서면 30분, 여기 서면 20분, 10분 그런 것 있지요? (가봤어야 아시죠?) 설교 들으려면 거기도 한 번 가 보세요.
이 줄에 이쯤 서면 내가 30분 걸린다. 여기 서면 20분 걸린다, 이쯤 서면 10분 걸린다, 하는 것 뻔히 알면서도 그 줄에 가서 꾸역꾸역 선다고요. 저기 사람도 없는 데 가서 그것 타면 괜찮을 텐데 거기 안가고 사람 긴 데만 서 있어요. 왜 그럴까요? 재미있으니까요.

30분 기다려도 내가 저거 한 5분 타는 건데 그래도 내가 저것 타리라. 왜냐하면 5분,3분 기쁨이 30분의 기다림을 능가하는 즐거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삶에는 반드시 좋은 것은 그만한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기쁨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의 시간을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겁니다. 더 큰 기쁨을 얻으려면 더 오랫동안 인내해야 됩니다. 더 큰 기쁨을 체험하려면 더 오랫동안 우리는 아름다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씨를 뿌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어두컴컴한 들판을 향하여 씨를 뿌리러 나가는 농부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깨어있지 않을 때 아침부터 깨어나 준비하고 그리고 기약 없는, 또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그들은 씨를 뿌리러 갑니다.

여러분 작년에는 홍수가 나서 다 떠내려갔는데, 그 전년도에는 너무 가물어서 하나도 자라지 못하고 다 죽었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가을에 결실을 주실 거야.’ 하고 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풍부해서 전날까지도 다 늦은 시간까지 그들은 먹고 마시며 놀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남이 화려하게 놀고 즐길 때 오히려 더 가슴아파하며 가슴 쓰려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까지 쉬던 사람들이 늦게까지 잘 때 오히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적거리며 도구를 챙겨 씨를 뿌리러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 아파서 끝나면 우리는 영원한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가슴 아파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씨를 심으러 우리는 무엇인가 소망을 가지고 나간다면 그는 반드시 최종적인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먼저 뛰어나간 사람이 우승자가 아니고 결승라인에 먼저 들어 온 사람이 우승자입니다. 중간에 순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내가 모든 것을 이루지만 결과는 하나님이 주심을 생각하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오늘도 씨를 심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은혜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는 비록 현재의 삶이 외롭고 곤고해도 우리가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신 분이며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때로 삶의 외로움과 곤고함이 우리를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아프고 헛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이유가 있으니 하나님은 긍휼하신 분이며 반드시 거두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 능력을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극복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겨내는 겁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은 말씀합니다.
내 생각을 내가 아나니 너희를 향한 내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 는 것이라
이건 뭡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큰 범죄를 해서 그들에게 큰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징계를 당하는구나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얘기하는 겁니다.
너희를 향한 내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재앙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가 지금 재앙처럼 너희에게 큰 고통과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겠지요. 내가 잘못한 것 없는데 혹은 잘못하는 것이 있어서 재앙이 다가와도 하나님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깨우치고 은혜를 주시고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다 옳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 40년의 긴 기간 동안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날아오게 하셔서 그것으로 먹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40년 동안 같은 데를 빙빙 돌았지만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씨 뿌린들 거둘 수가 없습니다. 씨 뿌리고 떠나야 됩니다. 우물을 파도 그 우물이 소용없습니다. 우물을 파도 앞을 향하여 나가야 됩니다. 그들은 우물을 파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새 물을 주시고, 날마다 만나를 주시고, 날마다 메추라기를 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입성했을 때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지요? 다음 날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은혜가 딱 끊겼습니다. 만나가 끊겼습니다. 큰 충격입니다.
내가 이제까지 이렇게 먹고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딱 끊겼단 말입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그런 때 있지요? 내가 이제까지 이렇게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딱 끊겨졌습니다. 난 무엇으로 사나? 어떻게 사나? 큰 충격일 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을 때 만나가 끊겼습니다. 만나가 끊김으로 그들은 굶어죽은 것이 아니라 그 다음부터는 그 땅에 소산물을 먹었단 말입니다. 첫해에는 뿌리지 않은 소산물을 먹었고, 그 다음부터는 뿌려서 거두어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끊었다는 것은 굶어죽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은혜로 먹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이 은혜가 끊겼다면 하나님은 어떤 새로운 은혜를 주실까? 하나님이 나에게 어려움을 주시고 내 모든 소망을 끊으셨다면 나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의 은혜를 주실까를 우리는 기대하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례의 소망이니 나는 어떤 일을 이룰까?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데 사실은 살아가면서 날마다 새로운 큰 은혜를 체험하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큰 은혜가 필요 없는 더 큰 은혜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날마다 기적이 필요하세요?
이제 우리는 이미 훈련받아서 알잖아요. 날마다 기적이 필요한 삶이 얼마나 곤고한 삶이겠어요.
‘하나님, 나는 기적도 필요 없고 날마다 요정도의 은혜를 주십시오.’라고 생각하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주신 은혜도 충만해서 하나님 내게 이정도 은혜만 주셔도 됩니다. 하나님이 더 원하시면 나를 통해서 더 큰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만 할 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의 삶에는 편하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편한데 좋은 것, 쉬운데 내게 유익되는 것, 이런 것은 거의 없단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예배당에 오실 때 보니까 몸도 잘 단장하고 갖추시고 오시느라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아까 제가 1부 성가대를 위해 기도해 드렸는데 보니까 6시에 오신대요. 6시에 오시기 위해서는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오셔서 6시부터 연습해서 7시에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4부 성가대도 굉장히 애매하지요. 점심 먹는 시간에 딱 예배를 드리게 돼서 점심도 잘 못 드시지요? 너무 안 됐어요. 그렇죠? (그래도 다 먹어요?)
그래요. 그래도 불편하단 말입니다. 요새는 편안하게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예배드릴 수도 있잖아요. 또 인터넷을 통해서, 아니면 하다못해 설교 테이프를 통해서도 예배시간에 녹음이 되니까.

여러분 그렇게 예배드리면 괜찮습니까?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보니까 이런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그래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좌정해서 드려야지 하고 딱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대서 드립니다. 그 다음에는 점점 드러누워요. 그 다음에는 눈감고 드려요. 그 다음에는 자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던가요?
우리 삶이 참 이상해요. 편안하면 감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면 점점 더 편안한 것을 찾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눈물을 흘리며 아픔을 주는 것도 그 아픔 속에서 깨닫게 하셔서 무엇인가 씨 뿌리는 수고를 향하여 나아가는 기회가 되도록 하심입니다. 오늘 우리 이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내 신앙이 현세 기복적 신앙인가? 아니면 내세구원, 내세까지 바라보는 하나님의 영혼을 믿는 신앙인가? 라는 겁니다. 현세 기복적 신앙이라면 우리는 현재 놓여 진 것이 나의 전부예요. 이건 축복이야. 내게 많은 복을 주셨어. 내게 있는 즉물적인 모든 요소들이 나의 전부란 말입니다. 내게 주셨으면 복이고 안 주셨으면 나에게 복을 안 주신 겁니다. 이것이 현세 기복적 사상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내세까지 믿는, 영혼을 믿는 신앙이라면 좀 평가가 달라집니다. 나는 지금 있는 것만이 아니라 뒤에 있는 내세까지도, 영원한 천국까지도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것도 복이지만 이것 말고 나는 또 다른 복이 있어.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지요?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게 나의 축복의 기준은 아니야. 그럼 우리는 뭐죠?
내가 어떻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았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지?
그것이 우리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 성공, 이루지 못했으면 실패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이 가라는 곳 가고, 오라는 곳 오고, 그리고 주의 뜻을 이룸이 나의 성공과 실패라고 생각합니까?
내 모습이 부끄럽습니까? 아니면 내 모습이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까?
내가 어떤 것을 이루고 이루지 못함이 나의 자랑과 부끄러움의 근원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썼는가? 그것이 우리의 근원이 돼야 하겠지요.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시간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거두는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교회의 새로운 회기를 시작하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보면 오포고개가 보이는데 저는 저기 볼 때마다 늘 그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회가 17년 됐는데 2년 전, 19년 전이 되겠죠?

제가 이쪽에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2년 전부터 매주 이렇게 오다보니까, 어떻게 차타고 가다보니까 그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다 보여요.
여기 분당이라는 지역이 야산지역이라서 언덕을 파서 구릉을 메워서 평지를 만들어서 거기에 집을 진 데잖아요. 그때 보면 아직까지 평지 작업도 다 안했어요. 시범단지 조금만 되고 길만 먼저 만들어놨어요. 길은 먼저 만들어 놨더라고요. 그리고 거기다 푯말만 꽂아 놨는데 그때쯤부터 제가 오기 시작했는데 매주 월요일마다 와서 교역자들이 월요일 날 시간이 좀 나잖아요. 물론 못 온 주도 있었지만 거의 안 빠졌던 것 같습니다. 매주 와서 한 번 씩 기도하고 갔습니다.
“하나님, 이곳에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생깁니다. 집이 생기고 사람이 살고, 성도들이 있게 될 것이고, 또 제가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이 길을 다니면서 전도도 하게 하시고, 심방도 하게 하시고, 또 우리 성도들이 만나서 주님의 은혜의 교제를 나누게 하소서. 우리 구역예배 드리면 반상회 같은 것 필요 없어도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2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분당에 사는 사람 서른다섯 명중에 한 명이 우리교회 교인입니다.
서른다섯 명중에 한 명이 우리교회 교인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기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겠죠? 그리고 앞으로 또 마지막까지 완결돼서 이루어지겠지요. 그리고 분당에 있는 모든 아파트 한 동마다 평균적으로 우리교회 성도들이 안사는 동이 없습니다. 물론 어떤 동은 여러 명 살고 어떤 동은 안사는 동도 있는데 평균적으로는 다 하나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니까 그냥 뿌려놨던 기도의 씨앗들이 그냥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주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참 감사한 것이 뭐냐 하면 첫 번 예배드리는데 여기 제 오른쪽, 오른쪽에서 두 번째 줄에 한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안 잊어버리죠. 오른쪽에 두 번째 의자에 한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렸는데 참 감사한 것은 뭐냐 하면 그 한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릴 때 제가 20년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단 말입니다. 저는 그게 감사한 것 같습니다. 한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렸는데 20년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 20년 시간표를-여러분 제가 올해는 3기 사역의 몇 년차, 몇 년차다 이런 얘기 자꾸 하는데 그 시간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거의 차질 없이 지내온 것 같습니다. 이제 5년 후면 우리는 21주년이 되어서 제 3기 사역이 완성이 되면 거의 1차적인 사역의 완성이 이루어져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저희가 택해서 그것을 가지고 10년 집중하고 다른 세대로 넘기는 것이 우리 사역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또 때로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잖아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뭐 구체적인 것이 없잖아요. 그러나 기도하다 보면 모든 구체적이지 않은 사항들이 구체화되고, 그 가운데 실천적인 계획들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의 것들이 우리 현실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성되어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정말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냐면 내 현실로 살지 말고 내가 기도한 대로 살아야 됩니다.
내가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내 현실을 볼 때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나하나 살기도 어렵단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기도는 어떻게 해놨지요?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으로 기도해 놨잖아요.

그러면 올해는 한 사람이라도 도와보자. 내가 비록 천명은 못 도와줘도 내가 한 명이라도 돕지.
내 상황을 보면 도울 상황이 안 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한 대로 하면 내 상황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또 한 해 지나면 내가 올해는 작년에는 한 명 도왔으니까 두 명 돕지.
이러다 시간이 가다보면 우리는 점차 우리가 기도한대로 살아지게 되는 겁니다.
내 상황 따라 살면 안 됩니다. 내 여건 따라 살면 안 되고 내가 기도한대로 살다보면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우리는 기도한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지금 내 상황을 보면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 기도대로 살려고 하는 겁니다.
현실대로 살겠습니까? 기도한대로 살겠습니까?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내게 주어진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망과 기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기쁨주실 것을 믿으며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믿음의 백성입니다.
오늘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 가슴 아픈 일이 있을 겁니다. 속상한 일이 있고,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무엇인가 하는 답답한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앗을 뿌리러 나가는 아름다운 은총의 백성이 되셔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주의 귀한 은혜의 열매들을, 추수할 단들을 가지고 오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주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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