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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것들 (창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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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것들
+ 설교본문 : 창세기 2장 1-14절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좋은 아버지는 언제나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로서 우리들에게 언제나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2장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안식을 주셨습니다(1-3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일보다 안식이 우선입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6일째 되는 날, 땅의 모든 짐승, 가축, 땅에 기는 것들과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순서상으로 볼 때 오후 늦게 창조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창조되자마자 바로 일한 것이 아니라 안식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루가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순서가 아닙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순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면 하루가 지난 것으로 생각하는데 유대인들은 해가지고 저녁이 되면 이 때부터 새날입니다. 저녁부터 다음 날 해지기 전까지가 하루입니다. 그러니 금요일 오후에 창조된 사람은 바로 안식일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안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안식과 일의 패턴이 있습니다. 창조 직후에는 일보다 안식이 먼저였습니다. 사람은 창조 되자마자 안식했고 그 다음 6일 동안 일했습니다. 그런데 타락하고 난 후에는 일이 먼저고 그 다음 안식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일요일부터 일하고 토요일에 안식했던 것입니다. 달력을 보면 먼저 일요일이 오고 마지막에 토요일이 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안식일 개념이 주일 개념으로 바뀌게 됩니다.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 대신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다시 안식하고 일하는 패턴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나 짐승을 6일 일하고 하루는 쉬는 체질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난 후 혁명 주체들이 사람들의 노동량을 조정하였습니다. 7일에 하루 쉬는 것을 10일 중에 하루를 쉬도록 하였습니다. 1일부터 일을 해서 9일까지 일하고 10일에 쉬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게 힘써 일해서 낙후된 국가산업을 발전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10일 휴무제를 실시한 후 전 국가적으로 40%의 결손을 보고 말았습니다. 7일 휴무보다 더 많은 결손을 본 후에 그들은 다시 7일 휴무제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왕실 아카데미에서는 짐승은 어떨까 하여 연구하였습니다. 1주일에 하루를 쉬게 하는 나귀는 짐을 지고서 하루에 30마일 이상을 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1주일 중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나귀는 하루에 겨우 15마일 밖에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일하는 나귀는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나귀보다 병들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중에 하루를 쉬면서 일하는 나귀는 매일같이 일하는 나귀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도 생김새가 아주 말쑥해 보였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육체적인 안식과 경제적인 효율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하나님께서 10계명에서까지 안식일을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7일간 매일 같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연약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일을 하다보면 하나님을 잊고 지내기 쉽기 때문에 주일 하루라도 구별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LA에서 목회를 하실 때 사거리에서 장사하시던 집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집사님이 가게 앞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사들한테 구걸하는 거지를 가리키면서 “목사님! 저기 동냥하는 거지 있잖아요? 저 사람은 참 멋있게 삽니다.”라고 하더니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이 집사님은 날마다 그 사람이 동냥한 동전을 지폐로 바꿔주다 보니까 그 사람의 수입이 얼마인지 잘 안단 말입니다.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의 수입 정도는 넉넉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활철학이 너무 멋있다는 겁니다. 첫째로 절대 오버타임(Over time)은 안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일을 적당히 해야 된다고 하면서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면 꼭 퇴근하고, 12시부터 1시까지는 아무리 바빠도 점심시간으로 콜라 사먹고, 햄버거 사먹고 잘 쉬다가, 다른 데로 옮겨갈 때는 동료들에게 자릿세 받고 팔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거기 주인인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약 20일 동안 그 거지가 보이지를 않아서 이 집사님 생각에 ‘죽었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 20일 후에 다시 나타났대요. 그래서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랬더니 하와이로 휴가 갔다 왔다는 겁니다. 기가 막히죠. 그래서 이 가게 주인인 우리 집사님은 ‘아니, 저 영감은 나보다 훨씬 멋있게 살아간다. 나는 하와이가 어디 붙었는지 미국 와서 15년 동안 살아도 한번도 못 갔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하와이도 갔다 오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거지가 눈치를 채고 “내가 쉬운 일 하는 것 같지만,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빼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까? 스트레스가 많이 받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자기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 쉬면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못산다는 겁니다.

여러분! 거지의 직업을 가진 사람도 쉬면서 일하는데, 육체는 주일은 지키므로 쉬고, 영혼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안식하기를 바랍니다.


2. 육체를 주셨습니다(7절).

7절에 보니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이목구비 사지백체 오장육부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묵상을 해보니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것이 참 감사하더군요. 지체 하나 하나를 생각하면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눈을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눈이 없다면 이 아름다운 세상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멋진 모습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눈의 위치도 감사합니다. 눈을 얼굴에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발바닥 밑에 눈이 달렸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멀리 보려면 물구나무를 서든지 발차기를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입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입이 있으니 말을 하잖아요. 저는 입이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제가 설교자인데 입이 없으면 어떻게 설교합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입이 있으니 음식을 먹지 않습니까? 입이 없으면 음식을 어디로 먹겠어요. 코로 먹습니까 귀로 먹습니까? 발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발이 없으면 오늘 예배시간이 얼마나 썰렁하겠어요. 거의 다 집에 계실 것입니다. 손을 주셔서 감사하잖아요. 손이 없으면 밥은 무엇으로 먹고 글씨는 무엇으로 쓸까요.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못난 코지만 코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콧등이 있어서 감사하지요. 콧등이 없다면 얼굴에 동굴 두개가 얼마나 보기 흉하겠습니까? 그 곳에 있는 코털도 코딱지도 다 보이잖아요. 코의 방향도 감사하자요. 콧구멍이 아래로 향하고 위에 콧등이 있어서 감사하잖아요. 거꾸로 되었으면 비가 오면 빗물이 다 들어가잖아요. 입 속에 이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 혀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의 외모 때문에 너무 열등감 갖지 마세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감사하세요. 쌍꺼풀 없는 눈은 없어도 되니 없는 것이고 있는 눈은 있어야 하니 주신 것입니다.

이태리에는 유럽 성악 계에 아침의 태양처럼 떠오르는 한국 여성이 한 명 있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인공역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단번에 나비부인의 주역을 맡았는데 어느 정도로 호평을 받는가 하면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공연이 있으면 신문에서 평을 하기를 "이제야 비로소 나비부인을 찾았다."라고 쓸 정도로 호평을 합니다. 그분이 공연을 하는데 사람들이 오페라를 공연으로 보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극 속에서 미국 남자가 일본에 잠시 가서 근무하는 동안 일본 여인을 데리고 놀다 버리는 내용입니다. 연극이 끝나면 관객들이 분장실을 찾아가서 미국인 역을 맡은 가수를 붙잡고 "너 그러면 안 돼." 라고 말합니다. 그 정도로 감동을 주는 오페라가수가 탄생했습니다. 지금 이태리에는 성악을 공부하고 할 일이 없는 한국 사람만 3000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한 극장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분이 이태리로 유학을 가서 수 년 동안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그것은 내 눈 때문이다.' 결론을 내렸습니다. 쌍꺼풀 수술을 하기로 결심하고 서울의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제일 좋은 병원에 예약을 했습니다. 보통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으려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특별한 줄을 대서 빠른 날짜를 받았습니다. 수술 날짜를 받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 주일에 로마 한인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설교 내용이 유별났습니다. “왜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않느냐? 왜 여자들이 쌍꺼풀 수술하냐, 쌍꺼풀 수술하고 나중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너 누구냐? 나는 너한테 쌍꺼풀 안 줬는데 너 누구냐?’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그 자매님은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지금 내 문제를 말씀하시는구나! 나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구나!’하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적용했습니다. 곧바로 서울로 전화를 해서 "엄마 수술 취소해 주세요. 쌍꺼풀 수술 안 받고 이대로 살겠어요." 했습니다. 어머니는 "얘 얼마나 어렵게 애를 써서 받은 날짜인데 취소하면 어떻게 하니 수술을 받아라"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도 확신을 갖고 수술을 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술하기로 예약된 날짜에 열린 콩쿠루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독일의 유명한 극장의 극장 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여인을 나비부인으로 발탁했습니다. 조연도 안 해 본 사람이 주연을 하려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니 너무 많이 틀리고 미안하여 극장 장에게 "왜 나처럼 조연도 한 번 안 해 본 서툰 사람을 주연으로 뽑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극장장의 대답이 "네 눈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본래 나비부인은 일본 여인인데 일본 사람들의 가창력은 한국 사람에 비해 떨어진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인정을 못 받는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여자는 100%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여자를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유럽관객이 보기에 일본 여자 같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 같은 가창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쌍꺼풀 없는 동양 여자를 처음 봤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그 여인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대에서도 하나님을 느끼며 노래합니다. 사람들이 엄청난 감동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내 모습에 감사하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열등감 갖지 마십시오. 언제 하나님이 쌍꺼풀 있는 눈이 예쁘다고 하셨습니까? 큰 키가 멋있다고 하셨습니까? 허리는 24인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셨습니까? 허리가 34인치가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까?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니 주님 재림하실 때 공중으로 들림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현재의 내 모습에 감사하세요.

3. 영혼을 주셨습니다(7절).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드신 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놓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영혼’, ‘호흡’, ‘기운’이라는 뜻으로 번역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인간 속에 영혼을 넣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육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육체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육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이 있기 전에는 육체가 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뭡니까? 사람의 몸에서 영이 빠져나가면 죽는 것입니다.

영혼이 육체보다 중요한데도 사람들은 육체의 필요 때문에 영혼을 내팽개쳐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 106:15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106편은 ‘할렐루야’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라는 단어로 끝납니다. 처음도 찬양이요, 끝도 찬양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과 찬양 사이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허물과 실패에 대한 기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106편은 개인적인 허물을 고백하는 개인적인 시가 아니고,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허물을 고백하는 국가적인 고백의 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시편 106편 13-15절까지의 말씀은 민수기 11장에 대한 간결한 요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아침에 이슬과 함께 내린 만나를 먹었습니다. 만나의 맛은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만나를 먹은 지 1년이 채 되지도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점잖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막 울고 떼를 쓰면서 불평과 원망을 섞어서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바다로부터 동풍이 강하게 불어서 메추라기 떼를 몰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1개월 동안 고기를 실컷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는 실컷 먹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파리해 갔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그 구절을 이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주께서 그들의 청을 들어주시었으나 속이 뒤틀리는 아픔을 함께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것은 매우 사소한 것입니다. 얻은 것은 한 달 동안 실컷 고기를 먹은 것뿐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잃은 것은 대단히 큽니다. 영혼의 부요함을 잃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민수기 11장의 문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소탐대실(小貪大失)’입니다.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은 것입니다.
영혼의 수고는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사 53:11에 보면 주님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데 거기서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체를 이한 투자도 중요하지만 영혼에 대한 투자를 놓치고 육체만을 돌본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지만 영혼은 쇠약하게 파리하게 될 것입니다. 공동번역의 말씀대로 속이 뒤틀리는 아픔이 있게 될 것입니다.

4. 사명을 주셨습니다(15절).

자신이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 때문에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어떤 대부호가 딸을 위하여 큰 파티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갑부는 수만 에이커에 이르는 땅과 수없이 많은 가축들과, 수백개에 이르는 유전과, 방이 29개나 되고 풀장이 딸린 대저택 등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젊고 유능한 청년들을 파티에 초청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딸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파티가 한참 진행된 후 그는 젊은이들을 모두 야외에 있는 풀장 곁으로 불러 모아 일렬로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풀장에는 온갖 뱀과 악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소. 누구든지 이 물속에 뛰어들어 반대편 끝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100만 달러나 1,000에이커의 땅이나 나의 딸 아이와 결혼할 수 있는 행운 중에 원하는 것 하나를 주겠소." 그러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첨벙!’하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쏜살같이 물을 가르며 헤엄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한 젊은이가 물 밖으로 올라왔는데 그가 얼마나 정신없이 헤엄을 쳤는지, 반대편 끝에 이른 시간은 거의 올림픽 기록에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부자가 그 젊은이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100만 달러를 갖기 원하시오?"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부자는 "그러면 당신은 1,000에이커의 땅을 원하시오?"라고 묻자, 청년은 역시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게로구먼."라고 말하자, 청년은 여전히 "그것도 원치 않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해진 부자가 "그러면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라고 묻자,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도대체 누가 나를 물속으로 밀어 빠뜨렸는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에게 용기가 있어 그가 물 속에 뛰어 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밀었기 때문에 그가 물 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밀려서 살면 안 됩니다. 누군가가 나를 밀어 넣었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을 한다든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서 자신의 사명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8절과 15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에 두신 이유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의 동산을 관리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학교에 가보면 각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무실 직원들은 행정을 봐야 합니다. 선생님은 가르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학생은 공부가 자기의 일입니다. 군대에 가면 모든 사람들에게 보직이 주어집니다. 각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가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이 없다면 직원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통해서 사명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사명에 달린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먼저 자신의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단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대로 살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우리 성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명을 알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명을 알지만 사명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나친 욕심 때문에 자신의 사명이 아닌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를 위한 열심이나 큰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사명의 길이 더 좋은 것입니다.

5. 계명을 주셨습니다(16,17절).

16,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최초의 계명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금하셨을까요? 아마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단 하나 선악과의 열매를 금하시므로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알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습니다. 그 결과 영적인 죽음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자비의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죽음에 이르게 되자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율법을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신 10:13).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율법도 범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신 법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해서 영생이 주어집니다. 이 생명은 그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단지 믿는 다는 이유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을 따라가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무능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금하신 계명을 어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을 쓴] 워치만 니의 꿈을 통해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번은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한가운데 이를 즈음 큰 바위가 걸려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 배가 지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이 바위를 옮겨 버릴까. 그렇지 않으면 물이 불어 네가 지날 수 있게 해주련?”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물이 점점 불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위가 안보일 만큼 물이 불어 올랐고 그는 그 위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의 원리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바위를 덮어버리고 그 위로 지나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주신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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