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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께 데려 오기만하면 됩니다! (마 15: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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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예수님께 데려 오기만하면 됩니다!
본  문: 마태복음 15:19~31절 (신P.26)

여러분들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오시기 전에 팔레스틴 서쪽에 있는 시돈과 두로지역에 잠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시자마자 한 여인, 가나안 여인 한 명이 예수님께 달려옵니다. 이 여인은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서 지금 완전히 인간성을 상실한채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달려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나이다”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인의 간청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데도 주님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답답해서 “주님, 뭔가 말씀하셔서 저 여자를 돌아가게 해주세요”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그 여자가 듣는데 나는 저런 여자를 위해서는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여자의 마음은 얼마나 상처가 되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 예수님께 달려와서 예수님앞에 절하면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앞에서 절하면서까지 도와달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모욕을 주는 말인지 모릅니다. 그 여인을 개취급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쓰러기를 먹나이다”

얼마나 겸손하고 간절하게 부쓰러기라도 괞찮다고,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쓰러기를 먹는데 그것이라도 좋다고 합니다. 왜 이 여인이 이런 멸시와 모독을 받으면서까지 주님께 매달렸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 여인은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귀신들린 내 딸을 온전하게 고쳐줄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주님을 떠날수가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주님께 매달릴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내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입니다. 내게 희망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믿음을 가졌을 때 어떤 방해도 어떤 멸시도 불문하고 주님께 매달리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되로 되리라”고 합니다. 그 시로부터 이 여인의 딸이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습니다.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온전하게 되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흉악한 귀신에 들려서 아무런 희망없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 딸과 그 딸로 인해서 너무나 너무나 가슴아픈 눈물의 하루하루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이 모녀에게 예수님께서는 희망을 주시고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희망입니다. 절망에 있던 사람이 예수님께로 나오니까 희망이 생깁니다. 누구든지 어떤 어려움에 빠져있던지, 어떤 고통과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여러분 앞에 있더라도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오면 주님은 당신을 찾는 모든 자들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희망을 선물로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초대학장을 지냈던 알렉산더라는 교수께서 40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1851년 10월 20일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죽기 얼마전에 아주 귀한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목이 탈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잔의 물이지 결코 넓은 바다의 물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온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한분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으로 귀중한 분이고 필요한 분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분, 가장 귀중한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깨달을 때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둔 여인처럼 목숨을 걸고 주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왜그렇게 예수님이 필요하고 왜 오직예수입니까? 우리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그 속에 참된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희망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희망을 찾으세요. 그래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뭡니까? 우리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절망의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위해서입니다. 희망, 희망, 희망입니다.
예수 없는 세계는 수천억을 가져도 희망이 없습니다. 참된 자유와 참된 기쁨과 영생의 소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로와 시돈 지나서 다시 남쪽 내려와 갈릴리 호숫가로 갔습니다. 그리고 산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중에 혼자 오지 않고 함께 온 사람들, 많은 장애인들, 저는 사람들, 보지 못하는 사람들, 듣지 못하는 사람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별별 장애인들과 함께 주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 발앞에 놓았습니다. “주님 고쳐주옵소서.”

데려온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참 귀한 분들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데 나혼자 가지 않고, 예수님이 필요한 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니까, 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가면 예수님이 고쳐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주실터인데 저분들이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힘들어도 저들을 예수님께로 데려가야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장애인을 돕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목욕을 시키는데 그냥 장애인들이 아니지요. 뇌성마비,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목욕탕에서 목욕을 시키면 얼마나 힘드는지요? 건강한 사람들 목욕시키는 것은 별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 몸을 가눌 수 있는 사람...

여러분들 믿음의 사람이 할 일은 뭐냐? 예수님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의 도움이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지만 자기 힘으로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참 믿음이요, 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 데려온 그 사람들 예수님이 다 고쳐주십니다. 몸이 상한 사람들 언제나 회복시켜주십니다. 다 성한 몸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절망속에서 살던 사람이 예수님께로 데려오면 예수님을 통해서 희망을 가지고 이제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주셨다는 겁니다.

장애만 고치면 되는겁니까? 아니지요. 몸이 성하면서도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육체의 장애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 영적 장애를 가진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와 마음의 장애, 육체의 장애를 치유받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성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 꼬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앞에 나오면 가장 아름다운 해결책을 얻고, 올바른 해답을 얻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주님께 인도해주는 분이 없습니다. 병든자, 사업에 실패한자, 낙심한자, 범죄한자, 어둠속에 빠져있는자, 이혼을 결심하고 있는 사람, 심지어 자살을 결심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절실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께 나오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누군지 몰라서,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형편이없어서, 데려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사망의 골짜기에 떨어져서 괴로워하는 인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들을 너희들이 데려오라” 눅14:15-24보면 왕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사람들이 거절했습니다. “빨리 시내와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들과 몸이 성치못한 자들을 데려와서 잔치집을 채우라”

열심히 채웠지만 그래도 빈자리가 남았습니다. 주인이 다시 말씀합니다. “길과 산울가로 다녀가 강권하여 데려다 내 집을 채우라” 억지로라도 데려오라 하십니다. 자기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을 강권해서 주님께 데려오라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게로 데려오면 내가 저들을 쉬게하고 고쳐주고 희망을 주겠노라 말씀하십니다.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기 스스로 주님께 나올 수 없는 사람을 주님께 데려온 사람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만나 건강을 되찾고 희망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막2:1절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을때 어느 집에 가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들이 운집한 그곳에 귀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었습니다. 중풍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4명의 좋은 친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을에 오셨는데, 이번 기회에 중풍병에 걸린 우리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가자, 그래서 들것에 실어서 주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 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한 친구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 줄을 달아 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었지만, 꼭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주님앞으로 내려 주님께서는 이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들어올때는 침상에 누워 들어왔지만, 나갈때는 자기 침상을 들고 걸어 나갔습니다.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나 때문에 나의 전도를 통하여, 수고를 통하여 예수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런 수고가 여러분 삶에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길에 레위인이 지나갑니다. 깜짝놀라 피하여 도망갔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사람인데 자기가 더럽혀질까 두려워 피하여 도망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갑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으로부터 개취급받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거기다 비즈니스를 하는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던 길을 멈추고 타고가던 짐승에서 내려, 환부에 포도주를 부어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자기 짐승에 태워 자기는 걸어서 주막으로 데려갑니다.

주막은 교회를 상징하고, 주막주인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주막주인에게 “이 환자를 살려주십시오. 돈 생각하지마시고 돈이 더들면 제가 부담할테니 꼭 살려주십시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이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우리 주변에 영혼의 강도만난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너희가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라. 우리가 할 일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것 없이 일생동안 나혼자 교회만 다닌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신앙생활이라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지금도 상하고 찢긴자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나오는 겁니다. 주님께로 데리고 나오기만하면 주님께서 고쳐주실줄로 믿습니다.

이번에도 영성훈련가서 며칠동안 있는 가운데 임영수 목사님이 얘기중에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오래전 영락교회 한 권사님이 폐암으로 입원을 했습니다. 심방을 가니까 자녀들이 사십오도 각도로 세워서 앉아 계시는데 천사같더래요. 죽음을 앞둔 분인데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요. 그래서 그 권사님께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믿는 사람은 죽음의 병이 들었을 때 살려달라고만 해서는 안됩니니다. 주님 남은 시간도 주님이 원하는 뜻대로 가장 아름답게 살다가 주님께 가게 하옵소서. 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이 마음이 있었어요. 의사는 한달정도만 산다고 합니다. 이분이 그로부터 삼일밖에 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삼일동안 뭘했느냐? 자기에게 걸리는 사람들에 편지를 썼습니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자기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에게 다 편지를 썼습니다. 다 쓰고는 마음의 짐을 다 벗은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소망의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순간에 무엇이 소망이겠습니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잘못되고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인도될 때 주님께서 고쳐주시고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번에 이 귀한 시간에 목숨을 바쳐서 꼭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세요. 그걸 소원하세요. 여러분 백낙준 박사 아시죠? 우리나라 초대 참의장을 하신 분이세요.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하시고, 우리나라에 제일 처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너무나 귀중한 위인이신데 이 분의 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었고, 점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을 많이 속이고 살아왔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도 관상을 보려갔다거나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는 분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여기 내가 보니깐 없지 않은 것 같아요. 한 번 더러운 영이 씌면 그 사람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이 백낙중씨 아버지 백사경씨가 시각장애인으로써 살았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습니다. 너무 너무 많이 벌었습니다. 눈먼 돈이 얼마나 많은지 시각장애인에게 물으러 갔으니 얼마나 그 사람들이 깜깜한 영혼의 상태입니까? 그러니깐 돈을 막 끌어들였습니다.

어떤 전도자가 가슴이 불이 타서 이 백낙중씨 아버지에게 전도를 했어요. 하니깐 받아들입니까? “빽” 고함을 질러고 앞도 보지 못하는데 전도를 주고, 예수님을 믿어야 당신의 인생이 새로워지고 당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셨어요. 백사경씨가 얼마 후에 병이 들었습니다. 몸에 병이 들고 보니깐 그 전도자의 말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해 주었던 전도지를 찾아가지고 다른 사람보고, 자신이 읽지 못하니깐 전도지를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전도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지의 읽어주는 내용을 듣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줄 믿습니다. 그리고 자기 발로 교회로 찾아왔습니다. 사비를 틀어서 교회를 짓고, 얼마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이 얼마나 복을 주셨는지 그 아들 가운데 백낙중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학비를 주어서 유학을 보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걸출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분을 전도한 분이 얼마나 귀합니까? 예수님께로 인도했다. 이런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 다음 주 12월 9일 이런 전도행사를 감사하십시오. 그냥 두지 않고, 이런 일 주어서라도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이 한 주간 마지막까지 생명 쏟아서 이 주간에는 정말 꼭 약속의 약속을 거듭해 다음 주일에는 꼭 주님 앞에 데려올 수 있도록 승리하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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