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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문 열어라 오신다 (렘 23:5-8, 히 10:23-25, 눅 1:6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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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어라 오신다 (렘 23:5-8, 히 10:23-25, 눅 1:67-79)

지난 11월 초라고 기억이 됩니다만 인터넷 보도에 아름다운 그림 몇 장을 제가 검색해서 봤습니다. 미국인 부부가 열일곱 번째 난 아기를 안고서 기뻐하는 모습이었는데요. 그 주변에 열여섯 언니, 오빠들이 죽 늘어서고 아버지 어머니가 행복한 얼굴로 열일곱 번째 난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러 장 사진을 봤는데 너무 아름답고 즐겁고 화사하게 보였습니다. 제일 큰 딸이 열아홉 살이니까 연 년생으로 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말이 더 재밌었습니다. 더 낳고 싶습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아이 하나하나가 너무 좋고 하나님의 선물 아닙니까? 그런 엄마를 제가 보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시골에 저와 동년배인 여학생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아들이 귀했는데 그 아이가 어릴 땐 몰랐는데 학교 다닐 때 보니까 이름이 딸그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딸이었는데 그 다음에 아들을 낳았는지 잘 기억은 없습니다만. 우리가 자식을 가지면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자식이 하나님이 주신 아주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미국의 어느 엄마처럼 아이가 좋고 하나하나가 하나님 선물이고 그래서 오늘과 같은 저희 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무대를 이 천년 뒤로 좀 옮겨 보겠습니다.

아버지 이름은 사가리아. 제사장입니다. 엄마 이름은 엘리자벳. 두 사람이 아들 하나를 낳게 됩니다. 아들 나으면 유대 전통에 따라서 8일 만에 할례를 행합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한 다음에 바로 이름이 주어집니다. 모든 유대 땅에 있는 아이들은 할례 예식가운데서 이름을 받습니다. 당연히 가족의 전통에 따라서 아들 이름은 아버지 이름을 따서 사가리아.

그리고 직업은 아마 제사장이 될 겁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서에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할례 받으러 갔습니다. 갔는데 아버지는 벙어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아서 이름을 부여해야겠는데 엄마가 당연히 사람들 앞에서 우리 아들 이름은 사가리아 입니다, 하고 얘기를 해야 되는데 전혀 그렇게 얘기를 안 하고 우리 아들 이름은 요한이라고 하겠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가계의 전통도 무시하고 그 이름을 주는 예식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사가리아 이름이 빠지고 요한이라고 합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버지 사가리아에게 가서 아버지가 이름을 다시 확인해라 그랬더니 아버지가 말을 못하므로 내가 쓸 종이 하나를 다오. 종이 하나를 주었더니 종이 위에다가 요한이라고 이름을 씁니다.

오늘 누가복음서의 얘기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때 입이 열려서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장 67절에서 80절까지 이야기. 이 이야기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아들 이름을 사가리아로 하지 않고 요한이라고 붙인 성령으로 가득 찬 한 아버지의 하나님 찬양 고백이 오늘 나오는 누가복음서 이야기입니다. 이 누가복음서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가리아의 얘기가 시작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아이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놓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찬양 받으실 분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소서. 이것이 사가리아가 예언한 전부의 제목입니다. 하나님 찬양 받으옵소서. 이 말을 요약해서 하나님 찬양 받으옵소서. 베네딕투스. 그렇게 말합니다.

이 전체 얘기가 곡으로 쓰여 지고 시로 쓰여 지고 고백으로 쓰여 져서 오늘날도 베네딕투스라고 하면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해서 예배 때마다 불렀던 찬송. 하나님은 찬양 받으옵소서.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레미아를 통해서 예언한 이야기 다윗 가문을 통해서 메시아가 올 것이다.

그 메시아는 옛날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켜서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모세가 아니고 이미 정착한 이스라엘 땅에서 새 땅과 새 하늘을 만드실 분. 그 분이 오늘 이스라엘 땅에 오신다 하는 예레미아서 말씀을 성취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사가리아의 예언은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 찬양 받으옵소서. 베네딕투스. 하나님 당신은 우리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도록 하셨지 않습니까. 제 이름 사가리아는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주신 이름입니다.

사가리아 하나님을 기억하라. 저는 기억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에게 저희 자손에게 준 위대한 언약이 있었습니다. 축복 주시겠다고 제 아내 이름 엘리자벳의 뜻은 하나님의 약속. 이름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저 사가리아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제 아내 엘리자벳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을 기억하며 삽니다. 저희들에게 주신 귀한 아들 저희들이 이름 지을 수 없는 전혀 다른 이름의 아들 요한이 오늘 하나님의 은총으로 저희들에게 낫습니다. 약속의 실현이요 저 기억 속에 최고봉입니다. 그 아들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뭐냐 하면 베네딕투스. 우리 하나님 찬양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모였습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싶습니까. 여기 모이신 남성 신도는 오늘 사가리아라고 한번 생각합시다. 여신도 여러분은 나는 엘리자벳이다 하고 생각해보십시오. 무슨 찬양 하고 싶습니까?

주님이 주신 약속. 저는 주님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62년 전에 교회를 세우고 오늘까지 왔는데 저는 저 하나님의 딸은 주님께서 62년 전에 약속하셨던 하나님은 찬양받으소서. 저는 성심을 다해서 이 땅에서 이 교회에서 살겠습니다. 하는 약속을 오늘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엘리자벳. 62년 전 이야기를 기억하고 앞으로 있을 또 62년 아니 어느 세월까지 하나님의 역사 속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은혜로 우릴 통치하신다고 은혜로 우리를 다스리신다고 기억하고 결단하시겠습니까? 그러시면 여러분은 사가리아. 약속을 받았다면 오늘 우리가 드린 예배가 베네딕투스. 베네딕투스 무슨 성가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 얘기입니다.

신앙고백이며 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에게 귀한 아들이 낫는데 이름은 요한이라고 했는데 요한이 누구냐 하면 요한이란 말의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하나님은 은총의 주님이시다. 그래서 우리한테 그런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셨던 아들과 딸들, 우리의 후손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 모두 자식들을 요한이라고 불러보십시다. 사실 교회란 공동체는 이스라엘이란 백성은 세 사람의 상호 교환 역사입니다. 엘리자벳과 사가리아와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저는 오늘 기억하고 지키겠다고 확신하고 그럼 저희들에게 하나님은 항상 은혜로운 분으로 우리한테 오십니다.

오늘 사가리아가 한 베네딕투스 하나님 성가 하나님 찬양 얘기 중에 이렇게 돼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들으십시오. 제가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요한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제 아들 요한은 이제부터 예언자라고 부름을 받습니다. 예언자의 사명은 들판에 나가서 예수가 오신다. 예수를 맞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라. 회개하면 반듯이 구원을 받는다. 두 가지 얘기입니다.

예언이란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첫 번째 예언의 소리이고 두 번째는 회개하면 구원 받는다. 저희 교회가 62년 전 출발할 때. 오늘 출발할 때 우리 교회를 어떻게 여러분이 만드셨냐 하면 우리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와 행실을 구체화 시키겠습니다. 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공동체로 출발했습니다. 사실 우리교회 출발은 야고보와 같은 행실 있는 신앙으로 출발했는데 사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교회 출발의 베네딕투스는 우리는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가겠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치겠습니다. 죄는 심판 받는다고 외치겠습니다.

불의는 비판하겠습니다. 좌절도 비판하겠습니다. 사회 모든 소유 현상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비판하겠습니다. 예언자적 회개를 외치겠습니다. 그렇게 저희 교회가 살아왔습니다. 기억하시지요. 어두웠던 시절 그렇게 해왔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함께 외쳤어야 했고 또 함께 외처 왔습니다. 흔히 예언자 그러면 우리는 비판하고 쪼개고 자르고 하는 것만 기억을 합니다.

진실 된 예언자는 칼로 잘라내고 물로 씻어내고 불로 태우고 그러면서 회개를 예언하는 것이 예언의 절반이라면 그 후반부는 구원 받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이 땅은 새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것이 예언의 후반부입니다. 저희 교회는 예언자적 사명을 가진 교회라고 자부하면서 살아가는데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합니다.

여전히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날카로운 비판을 해야 합니다. 동시에 목적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새 생명을 얻어야 한다고 얘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메시아로 우리 앞에 오시는 그분을 향해서 세례요한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예언자적 사명을 오늘 다시 한 번 새롭게 되새길 수 있으면 오늘 예배는 리 베네딕투스. 두 번째 대목입니다.

사가리아가 예언하면서 자기 아들 요한은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예언자로 불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지켜야 합니다. 75절에 이렇게 돼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예언자적인 공동체로 태어난 사람은 또 예언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함이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것을 거룩하다 얘기합니다. 주일마다 모일 때 수요 예배 때 모일 때 아침에 모일 때 모든 예배공간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기 위해서 거룩하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 같은 예배를 드립니다. 거룩한 백성, 성도. 우리는 거룩합니다. 거룩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됩니까? 하나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습니까. 이것이 예배하는 공동체의 삶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했고 거룩했습니다. 거룩함을 닮아 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동시에 예언자는 항상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주일에 거룩한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도 거룩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거룩한 것을 공의롭다고 합니다. 교회 들어가서 의롭다고 하는 것을 거룩하다고 합니다. 주일의 거룩함과 주간 동안의 의로움. 그 두 가지는 예언자가 지켜야할 대목입니다. 오늘 사실 예수께서 오시면서 우리한테 이런 부탁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일마다 예배드릴 때 거룩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진실 하십시오. 나가서 사는 동안 의롭게 사십시오.

오늘 예언자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요한처럼 아버지 사가리아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십시오. 요한은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을 통해서 낳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어 낳지만 주님의 길을 예배하러 나왔지만 사실은 요한이 거룩해서 오늘 추앙 받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자들을 택하는 게 아니라 택한 자를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재능 있는 사람만 교회 공동체로 부른 게 아니라 자기가 부른 사람에게 재능을 주십니다. 성실한 사람들만 교회로 부르는 게 아니라 자기가 불러들인 사람을 성실하게 만듭니다. 진실 된 사람을 교회로 부르는 게 아니라 부른 사람을 진실 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도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예언자로 부름 받은 것은 우리가 부름 받아와서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성실하고 진실 되고 아름답고 능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우리가 한번 깨달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님 앞에 오면 우린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화를 받습니다.

우리교회 예언자적 사명은 회개하라고 외침과 구원이 있다고 그러면서 스스로 외치는 것만이 아니라 구원의 공동체로서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일날 거룩한 것도 중요하지만 일주일 동안 의롭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오늘 깨달아봅시다. 그러면 오늘 메시아로 오신 주님이 기쁜 얼굴로 와서 하는 말 너희들이 드리는 베네딕투스가 아름답다. 나도 함께 그 찬양에 동참하고 싶다. 혹시 살아가시면서 누구한테 신세진 일 있습니까? 좋은 의미로요.

그러시면 도움을 준 그분에게 은혜를 갚는 방식으로 살지 마시구요 받은 은혜를 평생 동안 간직하면서 평생 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다. 받은걸 그대로 되갚는 게 아니라 신세진 일, 평생 동안 고마움을 간직하며 봉사하며 사십시다.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확신하십니까? 받은 은혜를 감사함으로 지금 되갚을 생각마시고 살아가는 평생 동안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에게 공동체를 위해서 베풀며 봉사하며 간직하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부름 받은 거룩한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교회 하나님이 사가리아와 엘리자벳을 통해서 주신 세례 요한의 후계로 오늘 우리를 부르고 계시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믿고 가십시다. 믿어라.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이렇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다.

믿어라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을지어다. 그리고 항상 베네딕투스 하여라.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라고 찬양하여라.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고 찬양하여라.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찬양하여라.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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