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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직선출] 어떤 사람이 좋을까?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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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할렐루야!
2007년 12월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일들 중에 좋았던 것은 기억하시고
나빴던 것은 잊어버리시고
좋은 12월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12월이 좋은 달이 될 줄로 믿습니다.”
“12월에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은 온통 선거이야기입니다.
길거리 잘 보이는 곳마다 잘난 사람들의 이름이 번호와 함께 붙어 있습니다.
신문에 소개된 것을 보니까 … 한결같이 대단한 분들이신 것 같습니다.
색깔이 다르고 방향이 달라서 그렇지 …
모두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결 같이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마음 정하지 못한 분들은 답답하실 겁니다.

그런데 연말이면 교회에서도 사람 뽑는 일 때문에 목회자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집사/권사/장로
- 먼저 된 사람들은 본이 되지 못하고
- 나중 되어 잘해 보겠다던 사람들도 조금 잘 하는 것 같더니만 … 점점 변해 가고
- 새로 뽑으려니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겠고 …
잘 할 것 같은 이들은 부족하다고, 나중에 하겠다고 꼬리를 보이고,
안 될 것 같은 이들은“이번엔 시켜 주겠지”하며 기대합니다.
이럴 때 부르고 싶은 찬송이 하나 있는데 뭘까요?
♬ 어찌해야 좋을지 ~ 나를 가르치소서 ♬

어느새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강림절」이 되었습니다.
강림절은 예수님 나심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간으로 엄숙한 절기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봉사와 헌신, 고난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사순절처럼 강림절도 엄숙하게 지내며
성탄절까지 파티나 결혼식도 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습니다.

제자는 …

지금은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때이지만 …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있었던
초대교회에서의 사람 뽑던 일을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부활의 생명력으로 불타던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공회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나 승리했습니다(행4장).
그 결과 교회의 영적 권위와 사회적 위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물질 문제 … 등을 앞세워 교회에 도전했습니다.(행5:1~41)
그럼에도 교회는 실패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고」(행 5:42) 계속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에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는 ‘배우는 자’를 뜻하는데
예수를 믿고 따르는 모든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제자를 삼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과 함께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성령께서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 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배우는 사람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제자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제자’에 해당되는 희랍어는 배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란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배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현대인의 문제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한 배움 외에는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영어회화 … 삶을 위한 배움에는 많은 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배우라고 하면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피하려 합니다.
바쁘다는 분들이 놀러가는 곳에 가고, 병원에도 갑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뒤따르는 자입니다

제자는 뒤 따르는 자입니다.
본받는 자, 닮으려는 자입니다.
스승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거나 본받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고 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삶과 가는 길을 따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척 부담스런 얘기일지는 모르지만
‘나를 본받으라’고 한 바울처럼 …
예수 믿는 여러분이 … 먼저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된 여러분이
다른 분에게 ‘나를 본받으시오. 나처럼 예수 믿으시오.
집사는 나처럼 하는 거야’, ‘장로는 나처럼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제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 본이되는 자입니다.

제자는 자기가 배운 대로 가르치는 자, 본이 되는 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어 구원과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자마자
‘여문 알곡’이 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여문 알곡’처럼 보이려 하고
‘여문 알곡’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최소한 교회 안에서라도 … 좀더 높은 자리에 매달려 있기 원합니다.
그러나 잘 들으십시오.
돋보이는 자리, 높은 자리에 있는 알곡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알곡은 ‘알곡’상태로 머물러 있을 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여문 알곡’상태로는 단단해서 그 안에 있는 생명이
단단한 껍질을 뚫고 밖으로 나와 싹을 낼 수가 없습니다.

땅에 묻혀 그 껍질이 죽어야만 부드러워지고 썩어져 숨겨 있던
어린 싹이 비집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싹이 나오기까지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결국 껍질은 썩어야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딱딱하고 냉담하고 이기적인‘자아’가
성령에 의해 죽고 부서져서 부드러워져야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교회에서도/선교회도/부서도 …
자기를 죽여 부서지고 썩는 자가 되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입이 살아 동동 뜨고, 얼굴이 살아 드러나고,
목이 살아 힘이 들어가 있고, 이름이 살아 드러나기 시작하면 묻혀 썩기 어려워집니다.

예수 믿어 제자 된 우리는 각 가정에, 직장에, 병원에, 교회에 …
뿌려진 한 알의 밀알과 같습니다.
우리가 뿌려진 곳이 그 어디든 딱딱한 우리는 묻히고 죽어
힘 빠지고 부드러워지고 썩어져서
다른 사람이 잘 자라게 해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님께 배운 대로 자기를 묻어
밑거름이 되는 본이 되는 자를 말합니다.

초대교회의 문제

이렇게 제자 된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초대교회에는 많았고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회하는 초대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에 보면
“…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헬라파 유대인’이란 말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에서 출생한 유대인으로
헬라어를 사용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며
‘히브리파 사람’이란 팔래스틴에서 출생한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에서 개종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에 와보니 본토박이들이 있었습니다.
본토박이 유대인과 이주해 온 유대인 가운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들 사이에 일어난 문제는 헬라파에 속하는 혼자 어렵게 사는 여인들이
식량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서 발단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본토박이들이 자기 친한 사람들,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먼저 나눠주고
객지에서 온 사람에게는 안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 화가 났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이런 것이 문제였지만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됐다고 … 친한 사람 많다고 …
교회에 와서 그런 이들과만 어울려서는 안됩니다.

헌금위원, 안내위원들은 잘 들으세요.
여러분이 잘 아는 분들과는 인사할 필요 없습니다.
눈인사 정도면 충분합니다.
낯선 이들, 처음 보는 이들에게 정중하게 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의/교인들의 문제는
자기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가깝게 지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문제가 바로 그런 점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부흥하는 초대 교회에서 일어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일’을 시키기 위하여
교회에 집사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행 6:1~7, 딤전 3:8~13)

집사는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일군을 말합니다.
섬기는 사람, 시중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돌보는 사람, 간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임원을 세우는 이유

집사를 세운(세우는) 이유/교회의 임원을 세우는 이유는?
사도들이 바쁜 것을 돕게 하려고 (행6:3, 롬16:1~2)
초대교회에 임원을 세운 이유는
사도들이 바쁜 것을 돕게 하려고 일할 사람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처럼 생각하고, 사도처럼 말하고, 사도처럼 행동할 사람을 뽑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인 제가 설교하면서
‘주차장에 차는 몇 대나 댔을까? 주차타워는 제대로 작동했을까?
주방에서 밥하는데 잘 하고 있나, 찬양대는 소프라노 몇 명 올지,
무슨 곡을 할지 …’등을 생각한다면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것에 전념하기 위해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집사, 권사, 장로 된 사람 중에
자기 생각을 말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의 임원은 목회자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교회 임원을 세우는 이유는 목회자를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접대를 하게 하려고 세운 것입니다.
구제와 같은 의미가 담긴 접대는
재정출납은 물론이고 교회의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만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일하는 사람, 임원으로 뽑힐 수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행6:3~4절)에 명확하게 제시했습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 한 사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크리스챤의 기본적인,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것은 구원에 이른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는 자는
성령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 있기 때문에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 있는 사람처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집사, 권사, 장로 되었는데
말하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 있지 않은 뜻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구원 받은 사람의 증거입니다.(롬1:17)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본적인 요건입니다.(히11:6)

그리고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지혜는 성령과 믿음 충만에서 오는 모든 영적 지혜를 뜻합니다.
세상적인 지식이나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나오는 이 지혜는 야고보서 3장 17절에 보면
「성결하고(깨끗)/화평하고(화목)/관용하고(용서)/양순하며(착하고)
긍휼(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는」지혜를 말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약3:17)

그리고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이는 대인관계의 덕망을 쌓은 사람을 뜻합니다.
한 마디로 평안한 사람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대신(對神), 대인(對人) 관계가 바른 사람,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찾기가 … 쉽습니까?
집사, 권사, 장로 되신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 충만하고, 믿음 충만하고,
위로부터 난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습니까?
이런 분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교회는 물론이고 세상적으로도
어떤 기준에 의해 사람을 뽑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윤리 문제를 앞세워서 사람을 뽑기가 어렵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분들을 봐도,
도덕성이라는 잣대로 뽑을 사람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흠이 많습니다.
흠 없어 보이는 사람도 들춰보니 별게 다 나오더군요.

그래서 저는 대통령 출마 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도 들추면 끔찍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너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알아도‘입’다무세요. 저 출마 안해요.
제 기억에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잘못했던 일중에>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이 동전 두개 훔친 일이 있었습니다.
1원인지, 1환인지 …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개를 훔쳐서
삼각형 모양의 쥬스 두 개를 사서 친구와 나눠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들켜서 쇠몽둥이로 맞았습니다.
(제 어머니도 대단하셨습니다. 그 어린 걸 … 그렇게 때리셔서
지금까지 기억나게 하시는지 …)
그런 것은 접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도덕이라는 잣대로 들이대고 재면
뽑힐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저런 흉이 있는 것 다 덮고 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나은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고개 들고 나올 수 있습니까.
성경에 비춰봐서 고개 들고 교회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 허물 많지만 … 부끄럽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으니
우리가 당당하게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이 것 저 것 따져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면
우리 중에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 임원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대로 시험해 보고 (딤전3:10) /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세우려 하지만
책망할 것 없는 자가 있어야 지요.

주보 5면에 ‘집사, 권사, 장로 임원 자격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 집사, 권사, 장로이신 분들 … 이 기준에 100% 합격되십니까? 딱 맞습니까?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땅에 묻을 것 같은 사람 …
자기를 죽여 밑거름이 될 것 같은 사람 …
입은 안보이고, 뻣뻣한 목은 안보이고,
다른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자신이 낮아질 것 같은 사람을 찾아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 제도는 집사, 권사, 장로는 … 분명히 계급이 아닙니다.
몇 년 지나면 햇수에 따라 자동으로 주는 것도 아닙니다.
꼭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가 되는 것도
받고 제대로 못할 거면 안 받는 게 낫습니다.
받고 이름만 붙여 놓으면 뭐하겠습니까.

초대교회에서 일군을 세운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도와서
(현대 교회로 말하면 목회자들이 일하게 하기 위하여)
뒤에서 함께 일해 줄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딱딱하고 이기적인 자아를 죽여
열매를 맺으라고 일 맡기는 것이 교회의 임원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너무 비하해도 안 됩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청년 집사를 세우려고 합니다.
물론 그동안도 몇 분 있었는데 이번에는 숫자를 많이 세우려고 합니다.
30이 넘은 청년들을 집사로 세우고
내년에는 좀 더 어린 청년들도 집사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청년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가 늙었는 줄 아느냐”고 하는데
우리 교회 청년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서른 쯤 되면 세상을 짊어지고 갈 꿈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보면 아직도 생각이나 행동이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노는 타령이나 하고 있습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를 보면
세계 선교의 꿈을 품고 선교지를 찾았을 때 나이가 20대 초반입니다.
남들은 20대 초반에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 아직도 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하게 하려고 … 짐 지우게 하려고 … 청년 집사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한 알이 떨어져 죽어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아니면 한 알 그대로 남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얼마나 남겼는지를 판단하는 종말에는
사실은‘얼마나 죽었는가? 얼마나 자신을 죽였는가?’를 확인해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그것보다 더 강하게 얘기했습니다.
“매 순간 순간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열매를 위해 죽어야 할 때와 장소에서 …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
매 순간 순간마다 날마다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자신을 녹이고, 자신을 부드럽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영양을 공급 해주는 밀알 같은 사람 …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동참하는
참된 제자, 참된 성도가 … 다른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그리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밀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백성,
제자로서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평범하게 살다가 끝나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가정에서든, 일터에서든, 교회에서든 기꺼이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동참하는 참된 제자, 참된 성도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세상에 살면서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땀 흘려 애썼습니다. 그리하여 벌었습니다.
벌은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저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저들이 일하면서 힘들게 땀 흘려 살지만 일거리가 없어 안타까운 이들도 있고
일터가 없어 안타까운 이들도 있습니다.
일터를 허락하시고 일거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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