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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 (행 8: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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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 (행 8:14-24) 
   
    성경에 나오는 물건을 경매에 붙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물건을 사고자 하시겠습니까? 어떤 물건이 경매에 나올 수 있겠습니까?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물맷돌, 또 기드온의 항아리, 이런 모든 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collector's item, 귀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물건을 기념으로 간직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징표로 반지를 주고 약혼의 징표로 반지를 교환합니다. 사람이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떤 애정이라든가 소속이라든가 또 지위라든가 권세라든가 또 과거의 추억을 담은 그런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떤 마술적인 힘을 가진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미신을 믿지 않지만 우리에게도 약간의 미신적인 면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들도 미신적인 면이 있어서 자기의 넘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넘버에 행운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사업하는 사람들, 주식을 투자한다든가 이런 사람들도 미신적인 그런 면이 있어서 ‘내가 이 펜으로 사인한 것은 잘 되더라.’ 이런 것이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있습니다.

저도 설교준비를 할 때 종이쪽지에 설교 준비를 하면 잘 되는 것 같고 그냥 백지, 넓은 백지를 갖다 주면 생각이 잘 안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면지라든가 껌 종이라든가 이런 데에 설교준비를 하려고 할 때가 많아요. 마치 모차르트가 식당에서 냅킨에 오선지를 그리고 거기에 작곡을 했다고 하는 것처럼. 제가 모차르트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백지, 깨끗한 종이를 펴 놓으면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데 이면지 구석에 긁적긁적하면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은 다 근거 없는 미신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 몸에 보관하고 또 지갑에 보관하고 금고 안에 넣어 놓고 자동차에 걸어놓고 그러면 그것이 액운을 예방해 주고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람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고 눈에 띄고 만질 수 있고 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그런 것을 의지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성경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은 히브리 백성에게는 그런 것이 일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신앙을 주변 모든 국가와 모든 민족으로부터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은 그들의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계명으로 금지했습니다. ‘너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아래 있는 것이나 어느 것도 형상을 만들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어떤 물건으로, 형상으로 표시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런 데에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인 신앙에 매우 독자적인 면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거의 없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시집올 때 드라빔을 가져왔다고 했지요. 우상을 치마폭에 숨겨가지고 온 일은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그만큼 리브가가 이방 신앙의 전통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고 시집 식구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그것을 당장 내버렸을 것입니다.

  우상이든 미신이든 그릇된 생각은 작은 것을 치마폭에 숨겨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시험도 작은 시험이 치마폭에 숨겨져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무엇을 들이는가 하는 것을 주의하셔야 됩니다. 의인의 가정, 예수님을 믿는 가정은 그 집에 사람들이 무엇을 들여놓고 어떤 아이디어가 들어오고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오는가를 늘 주의해야 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말한 것처럼, 또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집의 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것처럼, 그랬더니 멸망케 하는 자가 그 집에 들어오지 못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멸망케 하는 자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악한 세력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어린 자녀들의 앞길을 지키시고 가정을 지켜 주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만 이러한 도움은 어떤 성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에 십자가도 걸어놓고 또 십자가 목걸이도 하고 다니고 성경책을 귀중하게 모셔놓고 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이든 성령의 능력은 이러한 물건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신약 성경에서도 똑같은 패턴을 보는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성물, 토큰(token)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고 성수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침을 뱉어서 병을 고치신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의 침이 성물이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예수님에게 속한 물건 중에 사람의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겉옷이었습니다. 열 두 해 혈루병 걸렸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댔더니 병이 나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예수님이 그 순간에 그 옷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그 옷 자체에 어떤 효험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옷을 갈아입으셨다면 그 겉옷은 더 이상의 효험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성지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거룩한 장소가 있어서 거기에 가면 하나님이 계시고, 거기에 가면 기도가 응답되고, 거기에 가면 기적이 일어나는 그런 성지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신약 성경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골고다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든가 예수님의 빈 무덤가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든가 아니면 갈릴리에서 다시 모이려고 했을 것입니다마는 성경을 보면 그러한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장소라고 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장소라고 해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어떤 더 큰 능력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거기에 가서 소원을 빌었다든가 거기에서 집회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을 흩으셨습니다. 그들은 고향땅을 떠나가야 했습니다. 마치 이북 동포들이 월남할 때 많은 크리스찬들이 고향을 떠나서 실향민이 되고 어디를 가든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흩어지면서 그들의 신앙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가든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에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신약시대의 신앙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사람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가는 곳으로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현재 진행형인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하나님이 일하셨던 곳, 과거에 일하셨던 방법을 사람들이 고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현재 진행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지금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장소를 분별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늘 흐릅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는데 그 불기둥 구름기둥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만 때로는 앞서 가셔서 백성들이 순종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제 영적인 침체에 빠지느냐?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가기를 거부하고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는 이런 전통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교회이고,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과거의 방식과 전통을 주장하게 될 때 교회는 더 이상 현재 진행형인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인도를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전통이 다스리고 관습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가 돼 버리고 마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강물과 같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생수의 강은 고여 있는 연못이 아니고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강물은 계속해서 흐릅니다.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늘 속사람이 새롭고, 그 믿음이 새롭고, 지혜가 새롭고, 매일 매일 그 날에 먹을 만나를 내려주시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날그날의 지혜를 주시고 또 영감을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의지했느냐? 어떤 물건도 아니고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지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고 도와주시고 복 주실 것을 믿었느냐?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마는 함께 하시는 성령을 의지했고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그리고 기도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누가 부적을 주었다, 십자가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이지만 성령,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믿음,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보다도 더 진실하고 그게 본질이고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면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건은 남의 것을 빌릴 수 있습니다. 할머니의 묵주, 어머니의 십자가, 그런 것은 빌려 가질 수가 있지만 그러나 믿음은 내 믿음이 아니면 남의 믿음을 빌릴 수가 없어요. 내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내 믿음을 개발해야 됩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거듭나서 내 안에 성령이 계셔야지, 남의 속에 계신 성령을 내가 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남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는 있지만 내 스스로가 기도할 줄 모르고 내 스스로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 기도의 문이 열린 것,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능력이 되는지 모릅니다. 기도, 기도의 능력을 여러분이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사람에게 주는 능력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사람에게 능력을 갖게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능력이 있고, 또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또 영적인 권세를 세워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입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것을 빌려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누구에게 줄 수는 있습니다. 누구에게 손으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가할 수는 있습니다. 성령을 전가할 수 있습니다. 안수기도를 하는 목적이 그것입니다. 왜 목사 안수 받는 사람들에게 안수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그분들에게 임해서 목사 사역을 감당하게 하라고 안수하는 것입니다. 왜 병자에게 안수합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서 그 병을 고쳐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나의 안수함으로 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 일 듯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안수 기도가 성령을 전가하는 면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와서 그들이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고 했습니다. 안수, 성령은 안수를 통해서 전달되고 믿음도 전달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과 가까이 하면 그 믿음이 옮아옵니다.

반대로 의심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그 의심이 나에게 옮아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 선지자와 가까이 했더니 엘리야 선지자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전달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가까이 했더니 예수님의 믿음을 배운 것처럼 믿음도 옮겨오고 배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혼자 신앙생활하지 않고 성도의 교류, 같이 모이기에 힘쓰고 서로 위하여 기도에 힘써야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도 당연히 전달되지요.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 종을 울려서 내쫓았습니까? 소금을 뿌려서 내쫓았습니까? 큰 소리를 내서 귀신을 내쫓았습니까? 아니에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내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 마음속에 있고 예수님이 그 말씀을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했더니 거기에 사탄을 물리칠 수 있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권세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집에 고이 모셔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책을 옆에 두고 읽고 여러분의 마음에 이 말씀을 간직해야 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누가 들고 다니는 부적이나 이런 것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내 안에 있는 성령, 내 믿음, 여기에는 엄청난 능력과 권세와 효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시고 가셨느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뭔가 선물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나에게 귀중한 것을 주고 떠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물건을 남기지도 않았고 재물을 남기지도 않았고 조직을 남기지도 않았고 건물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남기셨느냐? 성령을 주고 가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보혜사를 보낸다.’ 성령을 보내셨고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주고 가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강을 주노니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귀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몬이라는 사람이 돈을 주고 성령을 내릴 수 있는 권세를 사려고 하는데 이것은 돈을 주고 살수도 없고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가장 귀중한 선물은 영적인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중한 선물은 영적인 선물입니다. 영적인 데에서 모든 것이 시작합니다. 창의력도 지혜도 용기도 또 능력도 사랑도 다 우리의 영혼에서 비롯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선물을 주셔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믿음이 충만하게 하시고 여기에서 창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것을 사모해야 되고 여기에서 우리의 인생이 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돈 몇 푼 잃어버린 것으로 낙심하면 안됩니다. 이런 저런 실망스러운 일이 있다고 낙심하면 안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있다면 잃어버린 재물이든 섭섭한 일이든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까짓 잃어버린 재물을 회복하지 못하겠습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낙심해서 자신의 내면까지 황폐하게 돼 버리면 그때는 도리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무엇을 지키라? ‘네 마음을 지키라’ 마음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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