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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예수 그리스도 (마 1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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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마 16:13~17)

예수님의 이름 시리즈

오늘이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라는 절기는 강림절(降臨節, Advent) 혹은 대강절(待降節)이라고도 부르며 부활절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40일 간을 '사순절'(四旬節)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성탄절 전 네 주 동안 지키는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절기입니다. 대림절 첫 주일에 강단에 초 하나를 켜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둘째 주일에는 오늘처럼 두 개의 초를 켜고, 셋째 주일에는 세 개, 넷째 주일에는 네 개를 켠 후에 마지막 성탄절이 되면 가장 큰 초를 켜고 성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초만 켜고 크리스마스 장식만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절기로 지켜야 합니다. 즉 성탄절의 참된 주인공은 성탄절만 되면 주고받는 성탄카드나 선물도 아니고, 산타클로즈도 아니고, 성탄세일을 하는 백화점도 아니고, 구세군 냄비도 아니고, 심지어는 교회도 아니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인 것입니다.

요즘 성탄절에서 예수님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백화점에서 성탄절에 산타클로스는 주인공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심지어 구세군 교회에서 내건 냄비에도 불우이웃은 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청교도 정신으로 시작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정부가 '크리스마스'(Christ+Mass=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말을 특정 종교의 용어라고 해서 공식용어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형백화점 중에는 최대 고객인 유대인들이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싫어해서 'Merry Christmas' 대신 'Happy Holiday'(행복한 휴일)라는 인사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즉 1년 중 최대의 휴일은 남겨두고, 백화점이 연 매출 중 최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세일 기간은 남겨두되 크리스마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쏙 빼버리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며 세상은 그렇다고 치고 오늘날 어쩌면 교회에서조차 성탄절에 예수님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듭니다. 성탄절이 되어 교회마다 성가대 칸타타를 하고, 교회학교는 성탄축하발표회를 하지만 정작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며,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즉 행사를 위한 성탄절, 연말분위기와 뒤섞여 마치 요란한 축제를 한판 하는 듯한 그런 성탄절만 남고 정작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저 구석으로 밀리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드는 것입니다.

오늘 대림절 둘째 주일부터, 셋째 주일, 넷째 주일, 그리고 성탄절에 걸쳐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성탄절의 진정한, 그리고 유일한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무엇보다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지 생각해 볼 것입니다. 저는 세례입교교육을 할 때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두 가지만은 꼭 세례와 입교를 받을 사람들 한 분 한 분에게 묻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 없이 세례나 입교를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두 번째는 이런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까?" 남들이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어떤 분이라고 믿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남이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고백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네 주 동안 예수님의 이름들을 살펴보면서 그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분인지 함께 살피고 고백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들이 예수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백하고 또한 만나는 귀한 시간 되기 바랍니다.

일반적인 인식

자,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살펴볼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지요? 이 이름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생긴 이름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서 '사람들이'라고 하신 것은 당시 일반적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들은 바를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제자들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이런 저런 평판을 들었을 것 아닙니까?

그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더러는(즉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아마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던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 보다 생각한 모양입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이 부분적으로는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이 선포하는 말씀과 비슷하다고 여겨서 선지자라고 부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까지 살리시는 모습을 보고 선지자 중에 가장 권능으로 기적을 많이 일으킨 엘리야 선지자를 떠올린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싫어해서 '죄인의 친구'니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느니" 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보다야 훨씬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확한 평가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당시 사람들이 선지자나 세례 요한으로 본 것은 부분적으로는 맞는 평가입니다. 예수님도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반드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신성(神性)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나 세례 요한 같은 위대한 사람으로는 보았을지언정 예수님의 신성,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빠졌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구원자라는 사실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데 사람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선지자니 세례 요한이니 하고 좋게 평가해 준다 해도 "예수님은 구세주입니다"라는 말이 빠지면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방금 전 제가 세례입교교육 할 때 꼭 이런 질문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한다고 했지요? "예수님은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까?"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는데 맞습니까? 물론 맞는 대답입니다. 또 어떤 분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입니다" 하고 대답하는데 맞습니까? 당연히 맞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절대 빠지면 안 되는 대답이 빠진 것입니다. 아무리 이런 저런 맞는 대답을 해도 이 말이 빠지면 정확한 대답이 아닙니다. 뭘까요? 바로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십니다"라는 대답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대답을 꼭 들어야 세례도 주고 입교도 줍니다. 이 고백이 없이는 예수님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선지자니 세례 요한이니 하고 생각했는데 맞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답인 '구세주'가 빠졌기에 맞는 대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대답에 절대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물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즉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믿고 고백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남들은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혹시나 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니 당연히 예수님 마음에 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제자들을 향해 물어보신 것이지요. 적어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좀 다른 대답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남들이 뭐라 하든지,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자신의 신앙고백이 중요합니다. "남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목사님이 이렇게 가르쳐주더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고백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이 '나만의' 고백이 없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세례입교교육 때처럼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각자가 마음속으로 꼭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 각자가 꼭 마음속으로 주님께 대답하기 바랍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그랬더니 이 질문에 대해 시몬 베드로가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은 정말 만점짜리 고백이었습니다. 아마 이 고백을 듣고 예수님조차 깜짝 놀라셨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 베드로가 성질만 급하고 어리버리한 줄 알았더니 이런 고백을 다 하네." 하고 말입니다. 그만큼 이 베드로의 고백은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토록 흡족해 하시며 베드로에게 큰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베드로의 고백이 그토록 완벽하다고 하는가? 이 고백에는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이름이 나옵니다. '주'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세 가지가 다 중요하고 완벽한 대답입니다만 이 중에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앞서 설명한 대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인정한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고, 나아가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사실이 정말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교회 나왔을 때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듣고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아, 예수는 성이고 그리스도는 이름인가보다." 그런데 아주 나중에서야 이것이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라는 신앙고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듯이 초대교회에서는 제일 처음에 아주 간단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라는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먼저, '예수님'이라는 이름에 대해 알아봅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말 '여호수아' 혹은 '예수아'를 헬라어로 발음한 것입니다. 히브리말로 '여호수아' 혹은 '예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예수라는 이름에 그리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너무도 흔한 남자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영수'나 '철수'라는 이름을 가진 분들이 꽤 많지요? 지금은 이런 이름을 잘 안 짓지만 옛날에는 국어 교과서에도 남자아이 이름은 꼭 '철수'나 '영수'라고 나오고, 강아지 이름은 '바둑이'라고 나올 정도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니 시내 한 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철수야' 혹은 '영수야' 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 이 '예수'라는 이름은 너무도 흔한 남자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하면 어떤 예수인지 알 수가 없어 '나사렛 예수' 즉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목수 하는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해야 알아들을 정도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주님이 가지고 있던 평범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라고 하면 그저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목수 노릇을 하던 사람 예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한 사람 예수 말입니다. 제가 이하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처럼 그냥 흔한 사람의 이름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사람 이름 '예수' 뒤에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 같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붙으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집니다. 아주 특별한 뜻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부를 때 그냥 '이하준' 하고 부르지 않고 꼭 '이하준 목사'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이하준'이란 저희 부모님이 붙여주신 사람 이름입니다.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전화번호부 찾아보면 그래도 몇 사람 나오는 평범한 사람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이름인 '이하준' 뒤에 '목사'가 붙을 때 목사란 저의 직분을 뜻하게 됩니다. 즉 "이하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사에 많은데 그 중에도 이 이하준이라는 사람은 어떤 이하준이냐? 목사 노릇을 하는 이하준이다."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때 여기서 '예수'란 당시 흔하디흔한 사람 이름이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뒤에 나오는 '그리스도'는 그의 직분, 그가 어떤 분인지 설명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뜻이 됩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분, 즉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노릇을 하다가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같이 다니며 수많은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다가 3년 만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분,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였다."는 뜻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의 의미도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란 '크리스토스'라는 헬라어로 희브리어로는 '메시야'입니다. 메시야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지요.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는 직책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세 부류입니다. 이들은 임직을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분이 오셔서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또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것이다. 그분은 진정 우리의 왕이며 제사장이며 선지자며 또한 구세주다." 이분이 바로 메시야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구세주'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오랫동안 메시야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 온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 바로 그 메시야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구세주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리스도다, 예수님은 구세주다." 이런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그냥 가벼이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때 그 말 속에는 이미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입니다" 하는 신앙고백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는 반드시 나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가 생각하고 부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마다 별다른 느낌 없이 습관적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진정 나를 구원하신 그 분께 대한 감사와 감격이 넘쳐서 불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7절에 보면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베드로가 이런 놀라운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메시야라고, 구세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혈육, 즉 인간적인 능력이나 이성이나 지식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인도하심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지식적으로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라고 가르쳐도 이것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주고 시킨다고 해서, 아니면 매일 매일 쇠뇌를 시킨다고 해도 안 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아무나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가능한 고백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사람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고백이라니 이 얼마나 귀합니까?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가 이 귀한 대림절을 맞아 예수님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면서 그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인가 생각해 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탄절의 유일한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또한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시라고 다시 한 번 분명히 고백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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