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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면교사(反面敎師) (신 9:7-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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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反面敎師) (신 9:7-8, 22~24)

1. 반면교사

성도 여러분,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을 아시지요? ‘남의 산에 있는 돌도 나의 구슬을 다듬는 데 쓰이듯, 남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나의 지덕(知德)을 닦는 데 도움이 된다’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고사성어와 비슷한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고사성어(故事成語)는 아니고, 1960년대에 만들어진 현대사성어(現代事成語)로서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이 했던 말입니다. 모택동은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처음으로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 잘못된 것을 보고 바른 가르침을 얻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의 제목을 “반면교사”라고 한 것은 오늘 본문이 의도하는 바가 이 말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 본문은 원 설교자인 모세가 제목을 정해도 “반면교사”라고 할 말씀이라는 것이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부모 세대와 그들 자신이 과거 실패한 것, 즉 하나님께 크게 죄를 범한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과거의 실패를 오늘과 내일의 거울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처럼 굳이 실패를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바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이 거울로 삼아야 할 그들의 실패는 무엇입니까?

2.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

1) 첫 번째 실패-금송아지 우상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본문의 이스라엘과 오늘 여러분이 거울로 삼아야할 첫 번째 실패는 그들이 출애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호렙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출32).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간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올라가면서 ‘지금부터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여호와를 뵙고 오겠다’고 약속하고 올라간 것도 아닌데다가, 주변상황이 열악하고 불안한 광야라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모세를 기다리다 못한 그들은 대제사장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소리 질렀습니다. “우리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산에 올라가서 죽기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자기 혼자 어디로 내뺐습니까? 그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면, 불안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안심시킬 수 있는 신을 만들어 우리 가운데 세워주시오.” 그들이 너무나도 끈질기게 강청을 하자, 아론은 그들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럼 너희의 아내와 아이들의 금 귀걸이 등 금붙이를 가지고 오너라” 고 말했고, 사람들이 금붙이를 가지고 오자, 아론은 그것을 녹여서 금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것이 좋다면서 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만들고서는 그 앞에 제물을 바쳤고, 그러고 나서 먹고 마시고 춤추면서 광란의 제사를 벌였습니다.

산 아래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산 정상에서 이스라엘 재건 사업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법을 제정하고 계시던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너 지금 내려가야겠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령된 짓을 하고 있구나. 그들이 제 마음대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자신들의 하나님이라면서 제사하고 있구나. 내가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참을 수 없으니 이제 그들을 없애 버리고 너와 네 자손을 새로이 택하여 내 백성으로 삼아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모세는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크신 힘과 강한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하나님, 지금 이 사람들을 광야에서 없애 버리시려는 것입니까?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다시 기억해 주십시오.” 이러한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인이 떨어지자 모세는 즉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직접 제작해 주신 돌판 두 개는 잘 챙겨서 내려왔지요. 그리고는 백성들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달했고, 거기서 그는 백성들이 하는 짓을 보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때까지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고 떠들면서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내셨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여 들이려 하시며, 지금 자신들이 하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자리가 여호와의 면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그들을 보는 순간, 모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손에 들고 있던 돌 판을 산 아래로 내던져버렸습니다.

모세가 백성들과 이 일을 주도한 아론을 엄히 나무랐지만, 3천 명 가량이 이 일로 인하여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용서하셨으나, 이스라엘이 이 일을 쉽게 생각하지 않도록, 이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교훈으로 삼도록, 무서운 징벌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 후 모세는 다시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일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둘러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 다시 40일을 금식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2) 두 번째 실패-다베라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본문의 이스라엘과 오늘 여러분이 거울로 삼아야할 두 번째 실패의 현장은 다베라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낮에는 구름을 그들 위에 머무르게 하시어 무더위를 막아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환하게 밝히시고 추위를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불모지에서 아침마다 만나를 내리셔서 먹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수기 11장에 보면, 갑자기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왜 원망을 했으며, 어떤 불평을 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짐작하기는 광야길이 너무나 힘든 여행길이라 조금씩 쌓였던 불만이 터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 섞여 사는 무리에게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따라서 나왔거나, 자유를 찾아 휩쓸려서 함께 왔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의 고용인이나 종들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그들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도리어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악한 말로 원망하자 이스라엘도 따라서 원망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은 악한 말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했고, 하나님은 이 불평과 원망에 대해 징계하셨습니다. 그 징계는 백성들이 거하는 진 중에 불이 붙은 일이었습니다. 자연적인 화재, 아니 하나님에 의해 불이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엄청난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 일로 얼마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는지, 얼마의 재산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일은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한 것에 징벌로서 일어났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말씀합니다. 불평하기보다는 감사로, 원망하기보다는 찬양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없이 생각으로 말로 원망과 불평만 일삼았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가 있었던 곳이 다베라입니다.

3) 세 번째 실패-맛사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본문의 이스라엘과 오늘 여러분이 거울로 삼아야할 세 번째 실패의 현장은 맛사입니다. 출애굽기 17장에는 출애굽한지 1년 2월 말에 있었던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르비딤은 본래 여러 개의 샘과 개울이 있어 물이 넉넉한 곳이었는데, 가뭄 등으로 샘과 개울이 말라 물이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이곳에 장막을 치고 보니 물이 없었고, 그래서 백성들이 불평을 했을 뿐 아니라 모세와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죽이려고 이곳으로 데리고 왔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35도에서 40도를 육박하는 살인적인 날씨 속에서, 길도 제대로 없는 험한 광야길을 쉴틈없이 강행군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도착한 오아시스 지역에 물이 없었으니 원망할 수도 있었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산의 바위 위에 서서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고, 거기서 엄청난 물이 나와서 온 백성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 즉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모세를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이 일을 잊지 않도록 그곳의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다투고 여호와를 시험한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맛사 사건은 한 번이 아닙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광야생활이 끝나갈 때쯤, 이스라엘의 제2세대가 다시 므리바에 도착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때도 므리바에 물이 없자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공박했는데, 이 ‘공박했다’는 말은 모세와 아론에 대해 마치 그들을 치기라도 할 것처럼 ‘공격적으로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물이 없는 사정은 하나님도 아시는 것이고, 하나님께 부드럽게 구하면 얼마든지 해결해 주실 것인데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늘 이러저러한 문제만 생기면 믿음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모습을 내보이는 이스라엘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던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 백성을 모아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는 주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리에서 흥분하여 그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반석에서 물이 나와 백성들이 그 물을 마셨으나, 하나님이 모세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않고 나의 거룩함을 그들 앞에서 나타내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앞서 있었던 실패에도 불구하고 같은 자리에서 두 번이나 죄를 범한 이스라엘과 그런 이스라엘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하나님의 거룩을 훼방한 모세에게 맛사, 므리바는 잊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4) 네 번째 실패-기브롯 핫다아와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본문의 이스라엘과 오늘 여러분이 거울로 삼아야할 네 번째 실패의 현장은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 이곳에서의 사건은 민수기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다베라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천상의 음식인 만나를 먹고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들이 그 만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먹으려는 욕심을 가졌고 그것을 퍼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은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었었는데. 지금은 이 박한 만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도다”라고 불평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어린아이들처럼 울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어떠하셨을까요? 이미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물이 없거나 길이 힘들거나 한 것에 대해 ‘인정한다. 그래 내가 해결해주마’라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 것인데,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맡기 싫을 정도로 듬뿍 주겠다”고 하시고는 일 개월 간 메추라기 고기를 주셨습니다. 진 사방으로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 메추라기가 떨어졌는데, 하루에 떨어진 면적이 서울의 4배, 양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을 내려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일 역시 유야무야 지나가거나 의미 없이 잊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평한 죄에 대해서는 큰 재앙을 통해 심판하셨습니다.

5) 다섯 번째 실패-가데스바네아

이제 마지막 다섯 번째 실패의 교훈을 들을 차례입니다. 다섯 번째 장소는 가데스바네아입니다. 민수기 14장과 신명기 1장에 기록된 이 사건은, 가나안의 입구인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말라. 주저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면서 ‘정탐꾼을 보내어서 가나안 땅을 살펴보고 온 후에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하게 했는데, 그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가나안땅은 정말 비옥한 땅이다. 하지만 그 땅의 거민들은 덩치가 큰 거인들이어서 우리가 들어가 보아야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이러한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아닌 다른 지도자를 세워 당장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생난리를 부렸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서서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들이 거인들이고 우리가 메뚜기 같이 연약한 존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러니 어서 올라가서 그들을 멸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그러나 두 사람의 외침은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10명의 보고를 받아들여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광야로 뒤돌아섰습니다. 그때로부터 이스라엘은 광야를 38년이나 뺑뺑 도는 신세가 되었고, 그때 돌아섰던 사람들은 모조리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상, 모세는 제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러분들에게 그들의 조상들과 그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던 대표적인 다섯 가지 일들을 나열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다시는 그러한 죄와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삶, 어떤 환경이나 일이나 대상을 만나도 겁내지 않기 등을 가르치려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실패와 그로 인한 쓴 결과를 맛보고 난 뒤에 교훈을 얻으시겠습니까? 아니면 고맙게도 미리 실패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교훈을 얻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그것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3. 실패를 거울로 삼으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한 번도 실패해 보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누구나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성공의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을 칭송하고 실패를 경멸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인 정서이지만, 실패 없는 성공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고, 오히려 실패를 성공의 한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실패의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성공에 이른 사례는 한 개인이나, 나라나, 기업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무려 2000번이 넘는 실패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했습니다. 그때 그는 "2000번의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2000번의 과정을 거쳤을 뿐이다"고 말했습니다. 주전 216년, 세계 최강 로마군 8만 7200명이 아프리카의 한니발 장군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수적으로 거의 반인 한니발의 군대에게 로마는 져서 군인들이 거의 전멸해버렸습니다. 로마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였고, 이 전쟁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3분의 2를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의 지도자들은 이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문책을 하지 않고 도리어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다음 전쟁을 준비시켰습니다. 그 결과, 로마군은 아프리카 ‘자마’ 전투에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는 한니발을 누르고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로마의 천년 제국은 시작될 수 있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패는 누구에게나 쓰디쓴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나 그 실패 때문에 정신 차리고 나머지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일본의 기업가인 고야마 노보루 씨는 직원들에게 “일부러 실패와 아픈 기억을 만들어 줌으로써 인재를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사장이 희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부러 실패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실패하지 않고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삶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이 실패하지 않고 가장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도록 이스라엘의 실패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실패를 통하여 여러분이 가슴에 새길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더불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여러분 앞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신뢰하여 붙든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것을 머리와 가슴과 온 몸에 새겨 앞으로 실패 없이 주 안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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