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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많은 과실을 원하십니다 (요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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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많은 과실을 원하십니다 (요 15:1-8)

저의 아버지는 농부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2년이 멀다하고 가뭄이 찾아와서 농사를 망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을 어린 저의 눈으로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수고는 말할 수 없이 많이 했는데 거두는 것이 별로 없을 때 농부의 그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물론 어쩌다가 풍년이 들기도 했습니다.
벌레도 별로 없고, 비도 적절하게 잘 와주고, 햇살도 좋아서 온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해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논둑에 앉아서 알알이 익어 가는 이삭을 어루만지며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농부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자녀가 되기를 소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하는 포도나무는 나무라기보다는 포도넝쿨입니다.
따라서 포도나무는 관상용 나무도 아니고, 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니고, 땔감으로 쓸만한 나무도 아니고, 썩혀 거름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오직 이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위해 존재하는 나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신 이유를 “오직 열매를 맺는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육으로 건강하여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복을 받고 살며, 우리의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우리는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2절을 읽겠습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여기에 보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도 있고, 열매를 맺는 가지도 있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과실나무든 열매를 맺고 싶지 않은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지”하고 욕심부린다고 해서 열매가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좋은 나무가 되면, 좋은 열매는 저절로 맺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씨를 뿌리면 나쁜 열매를 거둡니다.
그리고 좋은 나무가 되면 좋은 열매가 맺혀지고, 나쁜 나무가 되면 나쁜 열매가 맺혀집니다.
이 얼마나 당연한 진리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나쁜 나무로 자라놓고는 좋은 열매를 맺겠다고 하기 때문에 사기꾼이 나오고, 거짓말쟁이가 나오고, 위선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좋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좋은 열매가 맺혀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농부이시고, 예수님은 나무이며, 우리는 그 나무의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예수를 떠나서는 어떤 좋은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사람,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나무의 과실이 무엇입니까?
갈5:22-23을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는 아홉가지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예수님의 인격적인 열매들로서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아홉가지 열매들은 각기 다른 맛을 내지만, 모두 한가지 예수 인격에서 나오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격의 열매 외에 또 다른 예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면, 맺게 되는 사역의 열매로서 예수님을 전하여 맺는 전도의 열매요, 예수님께 나를 드려 맺는 헌신의 열매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어 맺는 선한 열매요,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므로 맺는 예배의 열매요, 주님께 기도하여 맺는 응답의 열매입니다.
이렇게 예수 열매에는 예수님을 닮아서 맺는 성령의 열매가 있고, 예수님의 일을 하므로 맺는 사역의 열매가 있습니다.


2.그런데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과실을 기대하면서도, 우리에게는 한번도 “과실을 맺으라”고 명령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저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저절로 포도열매가 맺혀지듯 우리들 또한 예수에게 붙어있기만 하면 예수 열매는 저절로 맺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격의 열매나 사역의 열매는 발버둥쳐서 맺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열매를 맺지 못해서 늘 가슴을 치며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묶여지고 예수안에 거하기 위해 애쓰는 싸움인 것입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러분, 우리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갈림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 특별히 불교는 “내가 구원을 이루고, 내가 부처가 되고, 내가 도를 닦아 열매를 맺는 자력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철저히 “예수에 의해 구원을 얻는 타력의 종교”입니다.

이 엄청난 진리를 1절에 보면 한마디로 요약하여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도나무를 심으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포도나무 밭에 김을 메고 거름주고 가꾸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열매를 맺도록 가꾸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우리의 신앙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 농부되시는 하나님의 농사기술을 우리가 절대적을 신뢰하고,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의 능력과 성품을 믿고 예수에게 붙어있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기도제목과 예수님을 묶어버리면 응답의 풍성한 열매가 맺혀집니다.
내 자녀와 예수님을 묶어버리면 자녀들에게서 예수 열매가 맺혀집니다.
내 교회를 예수님께 묶어버리면 교회 안에서 예수 열매가 풍성해 집니다.
내 가족의 질병과 예수를 묶어버리면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어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곧 그 고민을 중단하시고,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예수 열매, 용서의 열매, 사랑의 열매가 저절로 맺혀질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가지가 붙어 있는 나무가 예수입니다.
내 인생나무를 가꾸시는 농부가 하나님이십니다.
내 인생에 풍성한 기적의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 가운데 이보다 더 큰 감사, 더 큰 축복,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3.그러므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예수님께 집중합시다.

예수 나무, 예수 열매!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나로부터 나의 소중한 것들이 떠나고, 짤라져 나가는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과수원을 경작하는 농부를 보십시오.
농부는 더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더 극상품의 열매를 얻기 위해, 이른봄에 과실나무 가지를 짤라주는 전지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고난과 고통 그리고 환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헛된 세상에 매이지 말고,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만 잘 붙어 있어 예수 열매를 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고후1:9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에게 환난이 임한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생길이 막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괴로울 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을 다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바울처럼 당신도 놀라운 응답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너무 복잡하십니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십시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일도 많으셨지만, 하지 않은 일이 더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최고층의 빌딩을 짓지도 않으시고, 최고의 조직을 구축하지도 않으셨으며, 최고의 군중을 모으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십자가 지시는 일과 제자양육에 전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인생이 복잡할수록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단순해져야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언젠가 내 인생의 막이 내려지고 하늘로 오라는 종이 울릴 때, 우리는 예수 열매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고 살았느냐?”하는 것은 열매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주님 닮은 그 성품의 열매가 있어야 하고, 내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여 얻은 생명의 열매들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모두가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기대했던 바로 그 열매들을 한아름 안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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