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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의 골짜기에서도 (행 9: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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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골짜기에서도 (행 9:36-43)

부모를 따라 8살의 어린 나이로 미국에 이민 가서도 조국 대한민국을 잊지 못하고 태국마크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여 체조선수가 되어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결심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꿈은 거의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은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나이 15살에 올림픽 유망주를 기르는 국립 체조훈련센터에 미국 중학교 대표 선수중 한 명으로 뽑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해 공중회전 연습을 하다가 목을 쭉 늘인 상태로 턱을 땅에 받고 떨어져 사지가 마비되어 평생을 휄체어를 타야하는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체조를 할 수 없다는 운동선수로서는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가 이 선언을 받는 그 날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병원에서 식탁 쟁반을 집어던지며 한바탕 소동을 벌립니다. 모든 꿈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재활훈련을 받으며 운명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눈물 골짜기였습니다.

긴 이야기를 줄이자면 그런데 하나님은 이 소년을 다시 눈물의 골짜기에서 건져내시고 그를 우리 시대의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드십니다. 그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공중 보건학 석사학위를 하고, 명문 다트머스 의대를 거쳐 하바드 의대 인턴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마침내 세계 최고의 병원인 존스 홉킨스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가 됩니다.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이제 세상 모든 재활 환자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이 기적의 주인공이 얼마 전 KBS 인간 극장에도 방영된 이승복씨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는 새로운 베스트셀러가 되어 우리 시대 절망의 골짜기에 던져진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이 말씀 속에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 있다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갔더니 거기에 믿는 무리가 많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이들은 여기저기 다니다가 욥바에 가까운 룻다에서 애니아를 만납니다. 욥바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지금도 해변에 있는 마을입니다. 애니아는 중풍병으로 침상에 누운 지가 8년이 되었습니다. 8년 간 누워지냈으니 그 삶이 얼마나 처참하고 절망적이었겠습니까!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중풍으로, 또는 삶의 어느 부분이 마비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분도 계시고 또 가족 중에도 있다면 지켜보는 가족도 얼마나 고통이겠습니까? 멀쩡하던 자가 하루아침에 거동도 못하고 평생을 누워지낸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지켜보는 가족도 가족이지만, 본인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 아픔과 상실감은 이루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중풍으로 비참하게 침상에만 누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한 인생에게 베드로가 다가 선 것입니다. 34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할렐루야! 8년을 누워있었는데 베드로가 가서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그랬더니 애니아가 곧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36절에 보면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도르가라는 여 제자인데 그는 질병을 극복하지 못한 채 병들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애니아에 대해서는 그의 관련된 개인적인 아무런 정보를 이야기해 주지 않는데 여기 도르가에 대해서는 36절에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여기 도르가란 이름은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도르가는 아름답고 착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표현 할 만큼 도르가는 그의 아름다운 외모와 착한 인격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모두 투자했습니다.

성경은 그녀를 가리켜 뭐라고 지칭합니까? 여 제자!(마쎄트리아) 이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나옵니다. 이 단어를 통해 도르가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풀러 신학교의 교장을 역임한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인 옥켄가 목사는 도르가를 가리켜 "자비의 천사"라고 부르면서 "도르가는 분명히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이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죽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슬픔이었습니다. 자신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늘 함께 할 줄 알았는데 병들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음식이 있지 않습니까? 오래 묵힐수록 맛이 깊어지는 음식이 있습니다. 묵은지나 장독에 묻어둔 장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음식들은 오래 될수록 썩어서 먹을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인격이 숙성되어 푸근함이 묻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나이 들수록 인격이 천박해 지고 악취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도르가는 정말 소중한 존재인데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들에게 충격이었겠습니까?

욥바에 사는 사람들은 일단 그녀의 시신을 씻어 다락이 뉘였습니다. 장례 준비를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38절에 보면 때마침 인근의 룻다라는 도시에 있는 베드로를 급히 불러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명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많은 기적을 행한 사도일 뿐 아니라, 특히 룻다에서 애니아라는 중풍병자를 치유한 사건에 대해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대감을 가지고 그를 오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전갈을 받고 급히 옵니다. 그때 성도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39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여기 모든 과부가 이 절망의 현장에 서서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이 울음은 절망의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가장 먼저 주목하셨던 사람들이 누군 줄을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슬픔을 당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 세상에서 버림받고 실패한 자들입니다. 병든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고통을 안고 씨름하는 자에 민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 아픔을 그대로 느끼셨습니다.

보세요. 지금 죽음 앞에 모두가 무력한 모습들 아닙니까? 이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제자인 베드로를 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런 기적을 일으키셨을까요? 이 이야기에는 근본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의 사슬에 매여 있는 애니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 한 가난한 마을에 주님의 향기를 발하며 산 한 여인의 죽음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죽음 앞에 모두가 절망하는 이 현장에서 주님만이 죽음을 이기시고 산자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자 베드로를 축복의 전령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보세요. 죽음의 사자인 사탄은 믿음으로 살았던 여인의 죽음 앞에 모두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의기양양했을 것입니다. 죽은 시체 앞에 도르가의 은혜를 입었던 과부들의 통곡을 보고 사탄은 자신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군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40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지금 주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하며 베드로가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선포하셨을 때 사탄은 아무 손도 쓸 수 없었습니다. 도르가를 붙들 수도, 죽음에 그대로 묶어 둘 수도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이 명령 앞에 시신으로 누워 있던 도르가는 죽음을 이기고 일어났습니다. 사탄은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놀라운 생명의 주이심을 선포하는 것이 애니아를 고치시고 죽은 다비다를 살리신 사건의 목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사건을 통해 무엇을 볼 수가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고난 속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종들을 보내서라도 세상에서 버림받고 모두가 포기한 인생, 심지어 죽음의 자리에 선 자들까지도 포기하지 않는 분이심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이 사건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성품 두 가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 첫 번째는 예수님은 절망의 골짜기에 있는 인생들을 주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통과 상처로 인해 좌절 속에 있는 우리도 눈여겨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은 이런 재미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녀를 두신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죄 없는 자녀를 두신 일은 한 번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런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동안 몇 번을 우셨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인생은 고통과 슬픔의 파도가 몰아치는 먼 항해 길과 같습니다. 어찌 눈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을 봅시다.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참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아무리 평안하다 해도, 어려움이 없다 해도, 형통한 인생을 산다고 할지라도 눈을 돌려 고통 당하는 내 주변, 내 이웃들, 그리고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생각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 우셨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눈물 없이 살기란 참 어렵습니다.

벌써 금년 한해의 마지막 달 첫 주가 되었습니다. 이 달 들어 우리는 저무는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는 분수령에 서서 각자가 느끼는 것도 다양할 것이고, 또 생각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특별히 여러분 각자가 처한 형편이 어떤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집니다. 건강하고 형통한 사람은 밝은 눈으로 새해를 기다리고 묵은해를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병들고 실패하고 좌절감에 빠져 있는 분들은 세월이 흐르는 것이 더없이 처량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또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서 많은 걱정들이 쏟아져 들어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시 이승복씨의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가 체조 선수로서 모든 꿈을 포기한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꿈을 꿀 수가 있었겠습니까?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간호 조무사가 던져준 책 한 권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그 책은 재활의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하워드 러스크 박사가 쓴 '돌봐야 할 세상'이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은 소감을 그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강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꿈을 잃어버리고 텅 비어버렸던 내 가슴에 새로운 설렘이 찾아왔다. 나는 가슴이 콩닥 콩닥 뛰는 소리를 들었다. 닥터 승복 리, 닥터 리, 장애인 의사 닥터 리'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보다 더 중요한 책이 그가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것은 성경이었습니다. 그가 휠체어를 몰고 대학 캠퍼스를 지나가던 어느 날 같은 또래의 ‘래리 실버‘라는 이름의 친구로부터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옛사람에 메여 절망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지난날의 삶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말씀들을 암송하기 시작하면서 한 견고한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위해 계획을 갖고 계시다. 그냥 계획이 아니라 완벽한 계획이다. 나를 어디에 쓰시려는 걸까? 무엇이든, 나는 그의 뜻에 따를 생각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이 아닙니까? 눈물 골짜기를 지나십니까? 인생의 꿈이 사라지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책, 성경을 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비전을 간직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고난과 절망의 자리에 던져질 때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위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위로 자가 되어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우리를 외면하고 아니 오히려 고난 중인 우리에게 더욱 절망스러운 말로 상처를 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갈대가 상해서 꺾이면 사람들은 아무도 그 갈대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무심코 꺾인 갈대를 밟고 지나갑니다. 우리는 40대에든 50대에든 아니면 30대에라도 상한 갈대처럼 꺾일 수 있습니다. 아마 그 순간에 세상이 얼마나 야박한 곳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꺾여 버린 자에게 쌀쌀맞게 등을 돌립니다. 비정하게 그를 밟고 지나갑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까? 이 승복씨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지가 마비되어 누워있는 그를 찾은 부모의 제일성은 "네가 엄마 아빠 말 안 들어서 벌받은 거야, 체조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였습니다. 그가 처음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가 주변에서 들은 말은 모두가 절망적인 만류뿐이었다고 합니다. “메디칼 스쿨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야. 의사가 아무나 되는 줄 아니. 미안한 이야기지만 자네는 주사기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요. 매스도 들 수 없구요. 해부학 실습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등등'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그의 위로 자였던 것입니다. '나는 가장 좋은 것을 너를 위해 예비해 주었다'고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와 같은 우리를, 다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은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 주십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위로 자가 등장합니다. 콜럼비아 공중 보건대학원의 원장이었던 앨런 로젠필드 학장이 뜻밖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승복, 자네는 정상인보다 더 훌륭해. 자네는 반드시 해 낼 수 있을거야. 흰 가운을 입은 승복이 멋지겠는데--자네가 원하면 내가 기꺼이 추천서를 써주겠네' 그는 믿음으로 의과대학에 지원서를 보내고 1993년 4월 30일 아침 성경을 열었습니다. 시편 126편 5-6절 말씀이 그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는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의대에 합격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녕 그의 위로자 였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누구에게 위로를 구하십니까?

여러분! 아파하는 이들에게 동일하게 역사 하시는 주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통 당하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두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긍휼이 많으신 주님은 나와 나의 필요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 때문에, 정확한 때에 도와주시기 위해 늘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 간구하면, 때를 따라서 채우시며 위로해 주시는 손길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절망하고 있는 여러분을 주목하시고, 여러분의 아픔을 소중히 여기시며 '낙심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시고, 정확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눈의 눈물을 씻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굉장히 큰 그림을 말합니다. 이 그림은 우리가 금방 알아볼 수 없습니다.(이중섭화백)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정신을 차릴 수 없고 해답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인생을 큰 그림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이 큰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우리 당대에서 보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아름답고 선한 뜻과 큰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 아침! 여러분!
똑같이 끓는 물에 넣어도 당근은 흐물흐물해지는 반면 계란은 단단해 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고난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고난에 짓눌려 주저앉지만 무너지지만, 어떤 사람은 더욱 견고히 세워집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신앙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갑자기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고생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든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큰 계획 속에 한 부분이 되게 하시든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절망의 골짜기에서 헤매는 인생으로 끝나지 않게 하십니다. 인생이 비록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질지라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주님을 의지하고 인생을 영위하는 자를 반드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지금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이가 있다면, 아들을 내어주기 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 주님께 집중하십시오. 하나님 안에는 실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최후 승리가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내일이 있을 뿐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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