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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사 4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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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 설교본문 : 이사야 41:14-16

성경에서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하여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양의 비유입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므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신자가 목자와 같은 하나님을 따르면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양이 목자를 떠나면 이리의 밥이 되는 것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불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에 대해서 가르치는 내용 가운데 가장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비유가 있다면 지렁이라는 표현입니다. 본문에서는 믿음의 조상인 야곱을 버러지 같다고 했는데 버러지라는 말은 ‘톨라이트’라는 말로서 지렁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이삭의 아들 야곱의 이름인데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는 것이며, 신약적인 표현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버러지(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14절)

지렁이는 환형동물에 속하며 크기는 약 3mm 정도 되는 작은 것부터 호주에 있는 지렁이는 약4m나 되는 것도 있습니다. 몸은 길쭉하고 머리와 꼬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동작은 느리며 햇빛을 싫어하고 습한 곳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의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약 세 가지 의미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하찮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에 반발심이 생길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찮은 존재라는 말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본래 인간은 존귀하게 만들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첫날부터 다섯째 날 까지는 만드신 것을 보시며 좋았더라고 하셨는데 인간을 만드신 날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창조시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1등급 한우고기 한 근이 있습니다. 다른 고기보다 더 값비싼 고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에 똥이 묻었다면 어떨까요? 아무리 육질이 좋은 고기라도 버려지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 졌는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버려질 만큼 하찮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있을 때 가치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때부터 하찮은 존재가 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신앙생활은 사람의 존귀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창조상태의 존귀함을 되찾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무능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41장 전체의 내용은 아마 세상의 정복자 고레스 왕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이라고 봐야 합니다. 고레스의 출현은 모든 나라에게 두려움 거리였으며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로 두려움 거리였습니다. 고레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렁이 같이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고레스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돌봄을 통하여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돌봄이 있어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만약 돌봄이 없다면 그 아기는 곧 죽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정말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에 대한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서 신앙생활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뭔가가 잘 된다고 해서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한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어도 자신의 강함을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지렁이처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의 자세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악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렁이는 햇빛이 있는 밝은 곳은 싫어하고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합니다. 마치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거하는 동네보다 시체들이 있는 공동묘지를 좋아했습니다. 귀신의 집이 되어 사는 것은 불편하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니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지렁이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빛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싫어하며 나무 뒤에 숨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자꾸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빛이 비춰지는 곳에 나가면 괴롭고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그늘지고 습한 곳을 찾으면 물 만난 고기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곳,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은 싫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이 펴한고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이 자연스럽습니다.
지렁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하찮은 모습, 무능한 모습 그리고 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2.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15절)

하나님의 능력은 놀랍습니다. 지렁이 같은 연약한 존재인 이스라엘을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로 삼으신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지렁이가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가 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요2장에 보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런 본질적인 변화가 신앙생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 5:17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포기한 후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을 빠져 나왔습니다. 베트남을 빠져 나오는 배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같은 항구에 있지만 배를 탄 사람과 배를 타지 못한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선을 탄 사람과 타지 못한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천국과 지옥의 차이며 영생과 영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입니다. 신앙생활은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본질적인 변화는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게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에 지렁이 같은 야곱이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속하셨기 때문에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이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구약에 보면 제사장을 세울 때 피를 바르고 기름을 붓는 과정을 거칩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짐승의 피를 바르고 기름을 부어서 제사장을 세우면 보통 사람에서 하나님의 구별된 제사장이 됩니다. 제사장의 성격이 변하거나 습관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전과 동일한 그 사람이지만 피를 바르고 기름을 붓는 과정에서 새로운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믿는 사람, 성령께서 중심에 와 계신 사람은 자연인에서 거듭난 크리스챤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갑자기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전과 동일 한 사람이지만 그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1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래 구속자는 히브리어로 '가알'이라는 말인데 형제나 근친의 채무를 갚아주므로 그들을 보호해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자가 되신다는 말은 지렁이 같은 야곱 즉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죄악의 값을 하나님께서 치루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지렁이 같이 약해졌다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게처럼 된 사람이 있습니다. 국민일보에 영동농장 김영복 회장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는 전남 강진의 70만 평 간척지에서 선진 공법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교회 집사님인 그는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난 때문에 중학교 2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출발하여 야간대학도 나오고 결혼도 했습니다. 월남전 때 외국인 회사에 지원해서 5년간 번 돈으로 강남에 땅을 샀는데 땅값이 올라 일시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 돈으로 수출 포장 회사를 차려서 승승장구하다가 직원 3명이 사고로 죽는 바람에 보상비로 회사를 다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고향에 내려가서 양식 사업을 했다가 망해버렸습니다. 그 다음 이 후로는 완전히 좌절하고 절망해서 술에 젖어 미친 사람처럼 방황하다가 전도를 받고 은혜를 받아서 순종과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분은 그 때부터 인간적인 오기나 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 것을 깨달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 안에 중동 사막지대에 노무자들이 먹는 김치용 배추를 사막에서 재배해 보자는 꿈이 생겼습니다. 모래땅과 섭씨 50도의 뜨거운 햇빛에서 채소를 가꾼다는 것은 모두 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땅을 찾아 빌리고 농부들을 데려다 배추를 심고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는 나의 백성이니 너의 일은 모두 나에게 맡겨라’ 라는 응답을 붙잡고 하루 2-3시간밖에 자지 않고 일하며 채소를 가꾸었습니다.

결국 시행착오 끝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우디 현지 농장에서 무와 배추가 생산되자 엄청난 주문이 밀려들었고 엄청난 재산을 모았습니다. 사우디 대지주들이 수십만 평의 땅을 개발해 달라는 주문을 하여 농장 네 개를 더 개발해 주자 사우디 정부에서는 녹색혁명 기수란 칭호를 주었고, 개인 외화 송금액 1위로 한국에서 산업 훈장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던 지렁이 같던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자 하나님의 기적으로 사막 농사에서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엄청난 성공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1백20명의 학생을 지원해 주고 주님 만난 가치 있는 감사 생활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고백하는 그는 전남 강진에 돌아와서 큰 농장에서 많은 쌀 생산을 하고 성공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던 그를 구속하시고 도우셔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3.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다(15절).

지렁이 같은 야곱을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셔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만드십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산은 고레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좀 더 확대 해석하면 신자가 만나는 인생의 산 같은 문제들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생각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아도 인생의 산 같은 문제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는 것이 산 같은 문제였습니다. 요셉은 옥살이 종살이까지 했으니 산 같은 문제가 보통 많았던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된 후에는 항상 싸워야 할 적들이 있었고 계속되는 백성들의 원망이 있었고 넘어야 할 환경적인 문제가 많았습니다. 정말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자 앞에 있는 산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넘지 못할 산이 없습니다. 넘지 못하면 돌아가면 되는 것이고 돌아갈 수 없으면 터널을 뚫어서라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부스러기를 만들어 버린다고 말씀합니다. 바람으로 날려버리고 회오리바람으로 흩어버린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산 같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문제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산을 정복하는 비결을 가르쳐주십니다. 잘 들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산을 부스러기로 만들든지 들어서 바다에 던지던지 산을 평지로 만들든지 하십시오.

  첫째,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능동적으로 산을 부스러기로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너로'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서 '내가 너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나갔을 때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었던 산 같은 문제가 홍해 바다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힘이나 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일어서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어떻게 되었습니까? 갑자기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했습니다. 그리고 큰 산과 같은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홍해 사건 이후에 발생한 모든 사건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이스라엘 가운데 부어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과 같은 문제들을 정복해나갔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대한 기대를 갖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놀라운 능력과 은혜로 인도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십니다.

  둘째, 성령으로 충만하면 가능합니다
슥 4:7에 보면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 평지가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삼고 성전을 건축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방해 공작은 스룹바벨에게는 큰 산과 같은 문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룹바벨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 앞에서는 그 큰 산도 평지가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자이시며 전능하신 분입니다. 신자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신자 속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신자를 통해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롬 8:26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믿는 자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돕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갈 5:16, 18 말씀처럼 성령을 좇아 행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큰 산을 평지로 만드는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인격을 가지신 성령님입니다. 우리 편에서 인정해드리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성경을 깨달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며, 심지어 환경을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들리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종하면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큰 산이 평지가 되는 놀라운 경험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자주 반복적으로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언어의 권세를 사용하십시오.
막 11:23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창조력과 파괴력이 말이 가진 능력입니다. 선한 말을 하면 선한 일이 일어나고 악한 말을 하면 악한 일이 일어납니다. 시19:14에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과 입의 모든 말이 기도가 되어 하나님 앞에 상달된다고 가르칩니다. 민14:28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산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에 눌려 죽기를 원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산 같은 문제의 파괴력으로 망하기 원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그러나 산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승리하기 원한다면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고백하시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긍정적 고백을 하십시오.

  넷째, 충만한 믿음을 유지하십시오.
막 11:23에서는 언어의 권세를 말하면서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으로 믿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24절에서는 기도의 권세에 대해서 말하면서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라는 말씀으로 믿음을 강조합니다.
마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 소경을 고치신 사건이 있습니다. 29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말씀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내 믿음을 크게 만드는 말씀은 암송하십시오. 나도 모르게 믿음이 충만하여 믿음의 말이 나오고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큰 산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내 속에 있는 충만한 믿음이 그 산을 바다에 던져버릴 것입니다.
신자들이 가진 많은 장점들이 무의미한 경우를 봅니다. 열심, 지식, 은사 등 좋은 것들을 가지고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믿음의 부족 때문입니다. 능력이나 지식이 부족해도 충만한 믿음을 가지면 충만한 체험이 가능합니다.

  다섯째, 기도의 권세를 사용하십시오.
막 11:24에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저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기도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가 응답하겠고". 저는 이 말씀도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힘써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지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따나롱설이라는 동네에다 한국 선교사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동네는 회교도가 많은 동네라 원주민들은 돌을 던져 교회당 유리창을 깨뜨렸습니다. 그 교회당은 계곡 가운데 세워졌는데 교회당 옆에는 큰 나무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비가 많이 와서 큰 나무 밑의 흙을 다 쓸어갔습니다. 나무는 교회당을 향해서 기울어졌고, 만약에 나무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교회당은 박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안팎으로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큰 산 같은 문제를 만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비가 몹시 오는 날 번개가 큰 천둥소리와 함께 한번 번쩍하더니 교회를 향해 기울어져 있던 나무를 내리쳤습니다. 그 큰 나무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교회당 쪽으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넘어졌습니다. 반대쪽에는 판자 집이 하나 있었는데 큰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박살이 났습니다. 그 바람에 집주인이 죽었는데, 그 사람은 교회를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 중에서도 주동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다시는 교회를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선교사가 믿고 전하는 하나님이 참 신이라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지금 따나롱설 교회는 1000명의 성도가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도 기도가 이루어낸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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