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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마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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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태복음 13장 44절)

‘감추인’ 보화

어떤 농부가 밭을 갈다가 땅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땅에서 보화를 발견할 수 있냐고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땅에다 보화를 많이 묻었습니다. 은행제도가 발전하지 못하고 전쟁과 위험이 빈번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땅에 파묻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화를 묻어두었지만 그 주인이 전쟁이나 질병으로 죽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보화는 주인 없이 그 누구도 모른 채 감추인 보화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어떤 농부가 우연히 밭을 갈다가 그 보화를 발견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밭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너른 땅이 있는데 그 곳 어디엔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어지는 값진 진주의 비유에서도 하나님 나라는 상인이 애써 구하여야 할 정도로 발견하기 쉽지 않은 곳에 값진 진주가 숨겨져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결국 예수님 또한 보화처럼, 값진 진주처럼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보화입니다. 그러나 땅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2-3). 왜 비밀입니까? 쉽게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엄청난 보화가 담겨 있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다 안다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발견한 예수님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밭에 나가서 힘들게 쟁기질을 하는 농부처럼 부지런히 찾고 그분을 간절히 바라는 수고를 할 때 그 보물은 우리에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대림절 주간을 맞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2천 년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매년 아니 매일 새롭게 만나야 될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파면 팔수록 늘 새롭고 풍성한 보화들이 발견이 됩니다. 우리는 그 보화의 언저리에 만족하거나 보화의 표면만 긁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팔레스틴 땅의 베들레헴이라는 곳의 허름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 마굿간에 태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겠습니까? 이 하나님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동전을 찾듯이 등불을 밝히고 빗자루로 샅샅이 뒤지는 것과 같은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동방박사는 메시야의 별을 찾아 수년을 헤맨 끝에 아기 예수를 보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앉은 자리에서 성경이나 뒤적거리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의 목자가 나오리라”고 알아 맞혔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헤롯의 무리는 메시야를 경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수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없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내 안에 풍성한 생명이 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를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기 부인과 수고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7-9, 12)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얻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달려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너무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려합니다. 가까운 이슬람을 한 번 보세요. 그들은 라마단이라 하여 한 달 내내 금식을 합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헌신은 이들에 비하면 턱 없이 작으면서도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생길 때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밭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땅을 파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 안에 예수라는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부지런히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고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수고한 만큼 내 안에서 예수가 발견되고, 예수님을 아는 만큼 우리는 행복합니다.

왜 이런 수고가 필요할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일부러 자신을 감추어 놓으신 것인가요? 아닙니다. 내 안에 세상의 욕심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감추어진 보화가 된 이유는 우리 마음이 욕심의 밭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흙덩이를 치우는 수고를 하여야 예수라는 보화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우린 안에서 욕심이 물러가고 예수님이 대신한 자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스스로를 감추신 곳은 다름 아닌 평범한 밭입니다. 누구도 접근할 수 있고 누구도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금빛 찬란한 왕좌 위에 계셨다면 비천한 사람들은 감히 접근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유한 자의 재물 가운데 계셨다면 가난한 자들은 그 가까이 가기를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똑똑하고 지식이 넘치는 현인들의 책장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지한 자들은 그분을 발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가까이 계십니다. 다름 아닌 우리 인생이라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발자취에 밟히고 채인 평범한 인생 밭에 계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베들레헴 낮고 더러운 마굿간에 태어나신 이유입니다. 그분 앞에는 동방 박사도, 양치는 목동도, 제사장도 가난한 과부도 그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등장하는 농부를 생각해보십시오. 농부는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이 밭은 자기 밭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입니다. 이 농부는 먹고 살기 위해서 그 땅을 임대 내었을지도 모릅니다. 뜨거운 태양 밑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땅은 별로 기름지지 않고 돌맹이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쟁기날이 돌멩이에 튀길 때마다 이 농부는 “에이 망할 놈의 돌멩이들” 하며 짜증을 내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항아리 깨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파보니 보화가 묻혀 있는 항아리였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 삶에 부딪지는 운명의 단단한 덩어리나 장애물들 앞에 한숨 쉬거나 화를 낸 적이 없습니까? 혼자 울고 싶었던 적이 없었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바로 그곳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고단한 쟁기질을 하던 그곳은 바로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물을 우리 인생 한 가운데 숨겨놓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우리 삶을 급습하는 고통 가운데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과 결혼의 실패,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이별이라는 곤경 속에 하나님은 수많은 진주와 보화들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보물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 인생이라는 밭입니다.

우리 인생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하니까 그것이 행여 로또 복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갑 속에도 로또 복권이 한 장씩 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로또 복권은 요행수입니다. 그 확률은 8백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이 확률은 자기 평생 벼락을 16번 맞거나, 빙하시대부터 매주 복권을 살 경우 한 번 당첨될 확률과도 같다고 합니다.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보다 더 확실히 돈을 버는 사람들은 그 로또를 파는 사람들입니다. 국민은행이나 판매상들은 앉아서 확실히 돈을 벌지만 사는 사람들이 부자 될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노다지를 찾아서 떠났던 서부 개척 시대에 금광을 발견해서 돈을 벌었던 사람은 극히 희박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돈을 벌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금광을 파는 곡괭이와 도구를 팔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요행수를 바라는 인생이 아니라 확실한 것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숨겨놓은 보화가 있습니다. 그 보물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여러분 인생 한 가운데 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인더스 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알리 하페드’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당한 규모의 농장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에게 한 동방의 현자가 찾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다이아몬드라는 가르침을 주고 떠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알리 하페드는 그때부터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여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은 소원에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 유럽까지 헤맸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어느 곳에서도 다이아몬드를 찾지 못하고 알리 하페드는 타지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고 맙니다.

알리 하페드가 죽은 후에 이 농장을 다른 사람이 샀습니다. 어느 날 그 주인이 개울가에 갔다가 하얀 모래 땅에서 신비하게 반짝이고 있는 검은 돌을 보았습니다. 바로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알리 하페드가 그토록 찾고 있던 다이아몬드는 실상 자기 농장 안에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가 사는 곳에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찾았더라면 그는 원하던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러셀 콘웰이 쓴 『내 인생의 다이아몬드』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러셀 콘웰이 쓴 이 책은 자기개발서의 고전에 속하는 책입니다. 실제 보화는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보화를 보지 못하고 먼 데서만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려 합니다.

보화는 평범한 것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누리는 행복, 건강한 몸, 아침에 출근할 수 있는 직장, 한 끼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보화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이것들을 잃고 나서야 그것들이 보화였음을 압니다. 이별의 고통을 맛본 후에야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밥 먹던 때가 행복이었음을 압니다. 교도소에 갇혀서야 자기 발로 마음대로 걷던 것이 행복이었음을 압니다. 건강을 잃고서야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불평하고 짜증나던 직장이었지만 그것을 잃고 나서야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는 후회를 합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감사하게 받으면 그것들이 바로 보화로 바뀝니다.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지루하고도 평범한 일상들 또한 가볍게 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서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동양 고전 『장자』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포정이라는 백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혜군이란 왕이 그 백정이 소를 잡는 모습을 보며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 잡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합니다. 소를 잡고 각을 뜨는데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빠르고 정확합니다. 감탄한 문혜군이 “참으로 휼륭하다 기술이 어떻게 이런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포정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소를 마음으로 잡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입니다. 천리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 넣고 빈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소의 몸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훌륭한 백정은 1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베기 때문이며 보통의 포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에 칼을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의 칼은 19년 동안 사용하였고 잡은 소가 수천마리에 이릅니다만 칼날이 날카롭기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저 뼈에는 틈이 있고, 이 칼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으로 틈이 있는데다 넣으므로 넓고 넓어 칼날을 휘둘러도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19년이나 사용했지만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무슨 도인 이야기 같지만 진리를 발견하고 그 경지에 이르는 것은 특별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자기 삶이며 직업입니다. 포정이란 사람은 자기 일에 충실하다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그 일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고 생각하며 임하는 사람은 그 결국이 다릅니다. 우린 인생에서 내가 힘들어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하나님은 이 일속에 보물을 숨겨놓으셨습니다. 그 일에 대가가 되었을 때 그것이 보화가 되어 우리를 부요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만남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만남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그 안에 하나님은 보화를 숨겨놓으셨습니다. 우리 삶에서 아프고 철저히 실패한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고난의 쟁기 끝에는 보화가 걸려 있습니다. 헨리 나우엔이 쓴 책 중에 『상처받은 치유자』가 있습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이것입니다. 치유자는 먼저 상처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상처를 받았기에 치유자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치유자는 동일한 상처를 앓고 있기에 그를 도울 수가 있습니다. 내 상처를 싸매고 있는 붕대로 그의 아픔을 감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몸에는 여전히 손에 못자국과 허리에 굵은 창자국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동일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를 위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완전히 코너에 몰리고 나서야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상처가 자기 보화가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동일한 상처를 앓고 있는 다른 자들을 위로하는 치유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이 밭을 갈던 농부는 우연히 보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뜻하지 않은 만남이었습니다. 사실 보화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무심코 친구 따라 왔다가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왔다가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은 이처럼 우연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다음에는 좋은 진주를 구한 상인 비유가 나옵니다. 13장 45, 46절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이 상인은 일부러 좋은 진주를 찾아 나선 사람입니다. 그러다 값진 진주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진지한 구도자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죽음과 허무를 알고 영원한 것을 찾아 나선 구도자입니다. 이런저런 고생 끝에 그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은 우연이든, 노력 끝에 이룬 필연이든 이처럼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값진 보물을 발견한 연후에 취해야 할 행동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보물을 사는 것입니다. 34절에 농부는 보물을 발견한 후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말씀합니다. 36절에서 상인은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에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다”고 말씀합니다.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놓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라는 보화에 담긴 가치를 제대로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 소유를 파는 곧 올인(all in)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자 청년을 향하여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막10:21)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릴 것”(막10:29)을 요청하십니다. 부자 청년은 전 소유를 파는 결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런 결단을 했다면 그의 이름은 성경책에 기록되었을 것이며 수천 년을 내려오며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결단을 하지 못해 이름 없이 썩어질 물질을 끌어안고 덧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실상 우리 마음 가운데 불안함이 있고 신앙이 주는 기쁨과 능력이 없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가 미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서 다른 것들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다 잡으려고 하니 힘든 것입니다. 자신의 야망과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 삶의 일부분만 주님께 양보하는 척하려 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마치 농부가 지금 현재 자기 소유도 놓고 싶지 않고 보물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할 것 입니다. 그래서는 보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상인이 이거다 싶으면 모든 것을 팔아 투자하여야 하는데 조금만 내어 놓기 때문에 얻는 것이 적다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폭적으로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때서야 주님께서 우리 인생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되시길 원하십니다.

기뻐하며 돌아가서

그러면 여러분 이 교환이 손해입니까?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농부는 자기의 조그만 소유를 팔아서 그보다 더 값진 보화를 얻었습니다. 상인은 자기의 전 소유를 팔아 그보다 훨씬 값이 나가는 값진 진주를 얻었습니다. 손해가 아닙니다. 농부의 표정을 보십시오. “기뻐하여 돌아가서” 기쁨이 있습니다. 마지못해서 한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강조점은 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은 자에게 주님은 100배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고 ......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30)

기쁨이 없는 신앙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기쁨을 잃었다. 유머를 잃었다는 것은 곧 신앙을 잃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비밀을 간직한 자들입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농부의 모습을 보세요. 그 이웃 사람들이 농부의 이 기쁨을 알았을까요?  보기에도 허름한 밭을 자기 전 소유를 팔아 사는 것이 이해가 되었을까요? 절대 이해 못합니다. 그들은 그 안에 보화가 숨겨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래요. 남들이 편히 쉬는 주일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를, 새벽마다 잠을 설치고 주님의 전에 와서 기도하는 이유를, 시간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물질마저 기쁨으로 드리는 이유를 세상 사람들은 몰라요. 계산이 안 되고 바보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골2:2)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기쁨의 근원을 잘 모릅니다. 형편없는 땅을 붙잡고 기뻐하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모습을 어떻습니까? 이 기쁨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정말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소유한 자의 기쁨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물을 그 안에 소유한 자는 가난해도 부끄러워하거나 비굴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자들 또한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내 안에 그보다 수백 수천 배 가치가 있는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생이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농부를 생각해 보세요. 모든 재산을 잃고 허름한 밭을 소유한 그를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그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안에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보화가 든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욕망은 대상이었던 물질, 성공, 명예, 자녀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시시하게 보입니다. 내 안에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전에는 그 사람의 지위가 어느 정도이고, 재산이 얼마이며, 옷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로 평가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봅니다. 겉은 번지르 하지만 속에 진리가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소유한 사람이 진짜 부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 거지입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여전히 사람의 가치를 신분이나 물질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여전히 예수라는 보화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를 담고 있는 인생은 모두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밭에 놀라운 보화를 감추어두고 계십니다. 모두가 이 보화를 발견함으로 행복하고 부요한 인생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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