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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 (요 12: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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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 (요 12:36~43)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제가 80년대 교회 대학부를 지도할 때. 소위 운동권 학생들을 상담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의 간절한 부탁이 많았습니다. 어렵게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고 좋아했는데, 매일 데모만 하고 경찰서만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북한이 살기 좋은 정말 이상적인 나라라고 믿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말도 그 생각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깝기 전에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거짓 진리로 굳어져버린 사람은 진리가 더 이상 그 사람 속에  반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복음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돌같이 굳어 복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은 정명석이 교주인 JMS라는 이단에 빠졌던 한 대학생 자매를 상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복음을 설명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면, 정명석이 바로 그 분이라는 것입니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이단에 의하여 양육을 받았기에 그녀 안에 악한 영이 자리잡고서 그녀의 들을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36절에 예수님께서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고 했는데, 예수님 말씀을 듣고도 그 많은 표적을 보고도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 않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37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영적으로 마음이 길가같이 굳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감사할 일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말씀과 찬양을 통해서 내 마음에 감동이 되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사람들 못지 않게 안타까운 사람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를 믿지만 드러내지 않고 믿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42절 43절에 말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42절에 ‘관리 중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서 관리들이란 당시 유대인의 최고 종교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을 가리키는데 요즘 우리나라로 말하면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를 다 통괄하는 기구와도 같습니다. 그 당시 최고 권력층입니다. 고위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지도자급 원로들로서 71인으로 구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부와 권세가 막강한 사람들입니다. 그 관원들 중에 마음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믿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심정이 이해되십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고 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믿는다고 고백하면 산헤드린 공회의에서 출회를 당하고 그 동안 누렸던 특권을 빼앗길 것이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공회의원으로 누리는 권력이 막강했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두려워해서 예수님을 드러내서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43절에서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안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그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이해가 안되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이해가 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니 괴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괴롭지만 하나님께서는 통탄할 일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는 것을 시인을 해서 설혹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라고 하는 막강한 권력과 특혜를 다 포기하게 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땅한 일이지. 나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거야.’ 그렇게 해야 되는데 우리 마음 속에는 ‘ 충분히 이해가 되네. 예수님을 그들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서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라고 하는 엄청난 권력 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거야. 진짜 갈등이 많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관리들은 지금 얼마나 통탄하고 괴롭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믿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고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때는 세상 권세, 사람의 영광을 포기하는 것은 죽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크신지 이제는 보고 사람의 영광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지금은 보았을 그들은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가슴을 칠 것입니다. ‘내가 왜 그 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영광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을 놓졌을까? 왜 나는 그 때 그렇게 바보같았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지금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순간에 사람의 영광이 훨씬 커보였습니다. 그가 공직자로서 누리는 권력과 특혜와 사람들로부터 받는 모든 존경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죽는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후회가 되고 원통하겠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찌 사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이 저울질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비교가 되는데 안타깝습니다. 관리들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드러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숨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사업하고 장사하다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감추고 거짓의 영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까?
성공하려다 보니 예수님 믿는 것을 감추고 미움의 영, 분열의 영을 따라 살지는 않았습니까?
세상 재미 쾌락을 좇다가 음란의 영을 따라가지는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 보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꼭 입으로 부인해야 부인하는 것입니까? 입으로는 시인하면서 삶으로 부인하는 것이 더 마음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싶은 유혹이 예수님 당시 관리들만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실제로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사람의 영광만 알지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사람의 영광과 세상 영광에 대한 미련이 너무 강한 것입니다. 이것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그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얻고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일에 대해서 아직 눈이 뜨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심심찮게 입시 실패로 자살한 학생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자살을 할 만큼 심각했을 것입니다. 도무지 더 살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유는 사람의 영광, 세상 영광 밖에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대학 들어가지 못하고 또 대학에 가지 못한다면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평생 그 손가락질 받고 어떻게 사느냐?’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영광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세상 영광과 비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누구에게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만 시험 잘못 보면 죽을 생각부터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계신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셨습니까?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여러분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 사이에서 망설여집니까? 이제는 망설여지지 않아야 합니다. 찬송하며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생명과 멸망의 갈림길인데. 망설여지면 큰 일이지요! 그러나 길이 좁으면 마음이 힘든 것이 사실이니 어떻게 합니까? 넓은 길, 모두가 가는 길이면 유혹이 되니 어떻게 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영광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나면 망설여지지 않습니다. 갈등이 없어지게 됩니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안타깝지 좁은 길로 가는 자신이 안타깝지 않습니다.
그런지 안 그런지는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 보면 압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마음이 길 가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테니까요. 그러나 마음이 돌밭이나 가사떨기인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진단해 보면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볼 것이다.
솔직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 때 당하게 될 고난이 두렵습니다. 마음이 돌밭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과 염려가 가득합니다. ‘어떻게 먹고 살까? 애들은 어떻게 공부시킬까? 집은 어떻게 마련할까? ’ 세상 재리로 마음에 걱정과 염려가 많은 사람은 가시덤불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지금 현재는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 같아도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곧 길가와 같은 마음이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상태에서 그냥 머물러있으면 큰 일납니다. 사람의 영광 세상 영광에 그만 마음이 흔들려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는 일에 대해서 결단하지 못하는 관리들과 똑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야기가 기록이 된 것입니다.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 영광보다 더 사랑하여 우리 마음 상태가 그렇다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드러내지 않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큰 일 납니다. 결국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영광’을 버리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합니다. 꼭 죽을 것 같습니다. 다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조롱당할 것 같습니다. 진짜 복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오직 사람의 영광 세상의 영광만 전부인줄 알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영광 버려도 절대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영광을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서 진정한 영광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다가 이 부분에서 심한 영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나누는 것은 너무 2분법적인 생각이야!’ ‘사람의 영광을 포기하라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태도야!’ ‘성도들은 이런 메시지를 들으면 다 떠나갈 거야!’ ‘성도들이 세상에서 낙오하게 만드는 것이야!’  ‘세상 영광도 하나님이 주신 복일 수 있잖아?’ 설교할 담대함을 잃어버릴 정도로 휘청거렸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너는 계속 가야 한다. 절대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보아라! 십자가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묵상했습니다.

  제가 처음 십자가의 실상을 보았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다고 했지만 십자가의 실상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장애인이 될 절박한 처지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이 뜨였습니다. 그 날 저는 나 자신이 철저한 죄인인 것을 비로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알았습니다. 그 때 저는 ‘사람의 영광’의 실체도 보았습니다! 소위 성공이라는 것, 사람들의 평판이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비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도 보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은 주님 앞에 설 때 ‘내 종아! 수고하였다.’ 한 마디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때, 제가 장애인이 되기를 스스로 원했습니다. 장애인이냐 아니냐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말은 들었어도 머리로는 그러리라 생각했어도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상이 좋은 것을 어떻게 합니까? 여전히 사람들 평판이 신경 쓰이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십자가를 알고 나니 그까짓 사람의 영광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겼는지 너무나 원통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사람의 영광, 세상의 영광’ 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여러분, 배설물을 어떻게 버리는지 말을 안 드려도 다 아실 것입니다.
(빌 3:7-9)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다면 결코 세상 영광을 배설물처럼 버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니 다시 한번 사람의 영광, 세상 영광의 실체가 뚜렷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실상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고백했습니다. “주여, 종이 이 진리를 피해가지 않겠습니다. 계속하여 나아가겠습니다!”

십자가는 세상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이 갈라지는 경계선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보면 세상 영광의 실상도 보이고 하나님의 영광 실상도 다 보입니다. 십자가에 서서 그 영광의 실체를 본 사람은 세상의 영광을 버려야 할 때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면 그 양쪽이 다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도 축복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광이 주님 보다 앞설 때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게 할 때,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큰 일 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말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일본에 협력하여 전국 마을 마다 다니면서 시국 강연을 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라고 심지어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이 전쟁에 나가서 죽는 것은 마치 순교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한국 젊은이들을 독려해서 무서운 다시 못 돌아오는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그 자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제 말 민족 반역자들의 명단이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후손들이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결혼도 떳떳하게 못합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이야기입니까? 어째서 그 똑똑한 사람들이 일본에 붙어서 반 민족적인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을까요?

  세상 영광만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영광을 모르는 성도는 시대 분별도 못합니다.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 줄 알았으면 그러고 다녔겠습니까? 당시 형편을 잘 알면 알수록 더욱 일본이 오래 갈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죽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 영광을 버리기 힘들었습니다. 민족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일본에 협력하지 않았을 때 당할 어려움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곽선희목사님 이야기입니다. 해방이 된 후 국민학교 5학년 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옥중 성도였던 전도사님이 강사였답니다. 무명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오셔서 1주일 동안 설교하시는데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그것이 부흥회의 총 주제인데 너무나 큰 은혜가 되었고, 모두가 부러워했고 너무나 영광스럽더랍니다. 한 번은 감옥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데, 장로님들이 "한번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하니 윗 옷을 벗고 배를 보여주는데 가슴과 배가 만국지도 같더랍니다. 인두로 지지지고 고문을 하면서 계속 지져서 데이고 헌 상처가 만국지도 같았답니다. 정말 우러러 보이고 영광스럽게 보였답니다. 그 분이 그냥 강단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영광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흥회가 있은 후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큰 교회에 있는 목사님은 바로 사표를 내고 먼 지방으로 가버렸답니다. 그 분은 부끄럽게도 죽음이 무서워서 신사참배 했는데 목사가 신사 앞에 가서 꾸벅꾸벅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고 나니 해방되니 이게 부끄러워 살 수가 있어야지요. 한국 교회는 얼마 되지 않은 세월에 우리는 분명히 중요한 교훈을 경험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나방처럼 세상 영광 사람의 영광을 찾아서 몰려들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와 같은 때 도대체 믿음이 무엇인지 예수님과 내 주님이 되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도 내동댕이치고 세상 영광 사람의 영광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언젠가는 사람의 영광 세상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결정적으로 붙잡아야 할 때가 옵니다. 그 때를 위한 준비가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이 훈련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문제를 경험을 할 때 마다 명심해야 합니다. 거기서 준비된 사람이어야 결정적인 때 여러분이 성도의 반열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의 반열에 서실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일제 시대와 같은 때가 온다면 여러분은 ‘나는 이미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나는 더 이상 세상 영광 때문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십자가를 분명히 붙잡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두 영광의 실상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삶은 특별한 사명자만 가는 길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복입니다.
절대로 고난의 길도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누릴 축복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세상 이기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이 시간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여러분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십자가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영광의 실상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광의 실상이 무엇인지 오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보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 점에 대해서 분명하시기를 바랍니다.
숨어서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주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십자가에서 주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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