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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하나님이 구원하러 오신다 (사 3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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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구원하러 오신다 (사 35:1-10)

  우리나라는 12월 19일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모든 후보마다 장밋빛 공약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어떤 군소후보를 보니, 가히 깰만한 공약을 보았습니다.  먹지 못하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사라고 보여 집니다.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어린 아이만 나면 3천만 원을 주고, 젊은이가 결혼하기만 하면 1억을 무상으로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6.25와 월남전 참전 용사에게는 3억 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공약이란 국민에게 반드시 실행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하는 그런 약속은 헛된 약속이요, 빈말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허무맹랑한 공약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찍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판단하시고, 투표에 포기하지 마시고,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후보들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한 5년 동안 국가를 경영해보라고 한번 맡겨보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꼭 투표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에 봉독하는 구약성경 중의 대표적인 말씀이 이사야35장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대림절 예배 시간에 즐겨 낭송하고, 교독하는 말씀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오늘 본문 이사야35:7을 가지고 “사막의 샘터”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신 적이 있습니다.  먼저 7절 말씀을 읽어드립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새번역성경을 보면 실감이 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구원하러 오신다. ”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 읽으신 이사야35장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내어다보시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리고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루어질 아름답고, 사람 살만한 영광스러운 사회를 그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2-4절 말씀은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보라 우리의 하나님이 오시며, 그가 오셔서 보복해주시고, 갚아주시며, 하나님이 오사 우리를 구하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복수하시러 오시고, 보복하러 오시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억울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보라, 하나님이 오시면 우리를 잡아 죽이고, 포로로 끌어가고 괴롭힌 바벨론을 향하여 복수하시고, 보복해주시는데, 우리는 구원하여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l 포로 생활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모든 희망을 접고, 절망 속에서 암울하게 지내던 그 날을 세상의 무엇으로 설명할 것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그 날들은 광야였으며, 메마른 땅이요, 사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광야는 뜨겁게 타오르던 땅이었으며, 물을 찾을 수 없는 메마른 땅이요, 태양만 작열하는 땅, 그 땅은 열기로 인하여 숨이 막혀 살아갈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의 이미지는 극심한 고통을 표현한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는 우리의 죄악 세상, 악한 사탄의 지배하에 살던 때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 중심으로 살던 시절이 마치 광야와 같았고, 메마른 땅이요, 모래 바람만 불어오는 사막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천리금수강산이요,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은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참 좋습니다.  “아 대한민국”이란 노랫말에는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삼천리금수강산이란 말이 맞습니다.  우리 한반도는 은혜로운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사해에서 남쪽으로 가면 시내반도가 나오는데, 여리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라바 광야가 시작됩니다.  남쪽으로 홍해의 관문인 항구도시 엘랏으로 가는 길에는 허허벌판 광야가 펼쳐집니다.  가도 가도 허허벌판, 보이는 것은 벌거숭이 민둥산이요, 모래바람만 불어옵니다.  광야는 연강수량이 70mm도 되지 않아, 잠시의 우기에 나무나 풀이 자라나도 오래 살 수 없는 땅입니다.  사막이라고 하면 연강수량이 30mm도 되지 않아 식물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광야와 사막은 물이 없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낮에는 숨이 막히고, 낮과 밤의 일교차 극심한데 낮에는 40도가 넘어가고, 밤에는 영하에 가깝게 떨어집니다.  낮이 되는 것도 불안하며 밤이 되어도  불안해집니다.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은 죽음의 공포가 밀려드는 곳입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그의 설교에서 사막을 횡단해야 하는 한 여행자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글거리는 태양열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행적이 없는 사막의 모래밭을 지나가는 한 여행자를 상상해보라고 합니다.  목이 마릅니다.  목이 타들어갑니다.  가지고 온 물은 다 마셨습니다.  갑자기 그의 눈에는 많은 물이 넘실대는 오아시스가 보입니다.  얼마나 반갑습니까?  이제는 살았습니다.  사막에도 몇 군데는 야자수가 숲을 이루고 생수가 솟아나는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그는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는 흥분해서 자신에게 말합니다.  “저곳에 닿기만 하면 물을 얻을 수 있다.  오아시스에 가서 실컷 물을 마시고, 충분하게 쉰 다음에 여행을 계속해야지”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곳에 도착해보니 그곳에는 뜨거운 열기만 뿜어내는 모래뿐입니다.  그는 신기루를 본 것입니다. 

  신기루란 사막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자연현상입니다.  햇볕이 사막 위에 내려쬘 때는 멀리 있는 물체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을 신기루라고 합니다.  온도가 상승하고 습도가 차이가 나고, 대기의 밀도가 차이를 보이면서 광선은 굴절됩니다.  그래서 먼 곳에 있는 사물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실망한 여행자는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사막을 걸어갑니다.  얼마를 걸어갔는데,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입니다. 하지만 가보면 모래벌판뿐입니다.

  우리 인생이란 신기루와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보면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지만, 막상 그곳에는 질병과 실패와 따돌림과 실망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년 실망과 또 실망으로 속고 살아옵니다.

  우리 인간이란 길을 나선 나그네입니다.  인간은 순례자며, 여행객이요, 성경의 표현대로 나그네입니다.  야곱은 인생을 나그네라고 기술하였습니다.  야곱이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는 아들 요셉의 인도를 받아 애굽의 황제 바로 앞에 섰습니다.  바로는 야곱에게 나이를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얼마냐?” 새번역대로 “어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그 때 야곱이 바로에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묵은 갈증을 한 컵에 날려버릴 생수가 그리워집니다.  우리 주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샘물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영원한 생수가 그리워집니다.

  돈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명예를 헌신짝처럼 여길 수 있고, 이생의 자랑을 분토와 같이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인생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 집어치우고 숨어버리고 싶습니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 무슨 직함, 거창한 명함도 다 찢어버리고 싶습니다.  우리 남자들에게는 동굴심리가 있습니다.  동굴에 칩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야 합니다. 밝은 대낮을 살아가야 승리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 세상에 살던 시절을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을 때에 그들은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에서 살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군인들만 나타나면 또 무슨 트집을 잡아 괴롭힐까 하여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억지를 쓸 것 같아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들의 손은 맥이 풀렸습니다.  무릎은 덜그럭 거리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었고, 귀가 있으나 귀먹은 사람이었고, 다리가 있으나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포로 생활이라는 것이 그러하였습니다.  지나가는 바벨론 군인들만 보아도 오금이 절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더 이상 고통에 두시지 않고, 구원하시러 오십니다.  이사야는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돌아오고, 죄악으로 멸망한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는 감격에 넘쳐서 시온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돌아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1-2)

  1절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누가 여호와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입니까?  본문에는 “그것들”이라고 하였는데,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겠지만, 그것들이라는 말을 70인역 성경에서는 “나의 백성들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에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영광,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고통과 신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습니다.

  이사야는 포로 생활의 고통을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이라고 하였는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으로 바뀔 것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은 황량한 황무지요,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광야는 변하여 레바논 산맥처럼 백향목이 가득한 삼림지대로 바뀌고, 메마른 땅은 갈멜산의 화려한 숲으로 변하고, 사막은 백합과 장미가 만발하는 사론의 아름다움으로 변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에서 한숨과 탄식만이 가득하였는데, 이제는 기뻐 노래하고, 즐거워하며,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본다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황폐한 땅을 회복시켜 아름다운 세상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 심령의 실망과 절망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성호를 마음껏 기뻐 찬양하며, 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즐겁게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죄악 세상에서 구원하러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새 생명을 얻고,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십니다. (3-4)

  3-4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유대 공동체를 향하여 “너희는”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체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오시며, 하나님이 오셔서 너희를 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복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괴롭히고 죽인 자들은 당신이 직접 오셔서 보복하며, 복수하여야 속이 시원할 정도로 결코 눈감아주거나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연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에게 말해야 합니다.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의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나약하게 살아가는 것을 그대로 보실 수가 없습니다.  마음 졸이며, 두려워 떨며, 조바심 속에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습니다.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선언하십시오.  하나님은 황폐한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룩한 길을 가야 합니다. (5-10)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을 그림 언어로 말해줍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우리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요, 영적인 승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변하여, 광야에서 물이 솟아나겠고,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가 눕던 곳은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만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놀라운 사실을 보았습니다.  8절에서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이었던 곳에 대로가 열렸습니다.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성- 시온 향한 대로가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길은 큰 길이요, 대로입니다.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고 했는데, 거룩한 길이란 구별된 길을 말합니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만이 다닐 수 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다닐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은 그 길을 다닐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 길에는 무서운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은 그리도 올라가지 못합니다.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이 그리로 다닐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는 길이요, 노래하며 올라오는데, 우리가 가야할 최종 목적지는 거룩한 산, 시온입니다.  곧 하늘나라입니다.  천국입니다. 이제는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영원한 기쁨과 감격으로 생명을 누립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한숨을 짓거나, 탄식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 전까지는 황폐한 심령이었고 절망 속에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척박한 땅이 변하여 옥토와 같은 낙원이 되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고 질시 반목하던 지옥과 같은 삶이 변하여 사랑하며, 용서하는 천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살 때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허벌판 광야요, 메마른 땅이요, 사막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십니다.  생명을 보장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우리 주님이 진리가 되셔서 우리에게 하늘로 가는 진리가 되어주셨습니다.  이제는 방황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늘로 가는 대로가 열렸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되 지저분하게 살지 않습니다.  깨끗한 사람,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주님과 동행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세상으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고, 주님에게 붙들린 종으로 신실하게 살면서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그네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제 길을 찾고 싶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길이라고 분명하다면 그 길만을 따라 가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인생길에서 큰 길, 대로를 찾았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시고 건져 구원하여 주신 우리 주님이 길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신기루에게 속아서 방황한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유명한 성어거스틴은 이런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가슴은 당신 속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쉼을 얻지 못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변화시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그래야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평안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주십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오, 주님, 당신 안에서/ 내 영혼이 다시 찾아졌습니다./애타게 그리던 평안과 기쁨을/ 여태껏 몰랐던 심령의 축복을 / 오, 주님, 당신 안에서/ 온전히 찾았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오신 주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감격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감격이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고대하면서 우리는 거룩한 길을 가야 합니다. 깨끗한 사람만이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대림절은 무작정 기다리는 기간이 아니라, 깨끗하게 그 길을 걸어가면서 준비하는 날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예비해놓으신 하늘나라를 사모하면서 신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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