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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사프의 사랑 (삼상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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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프의 사랑 (삼상 3:1~9)

최근에 발간된 '떨림'이라는 책에는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당신을 위한 스물네 편의 사랑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이 메말라버려 껍데기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다시 한 번 그 언젠가의 '가슴 떨림'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글들은 우리에게 한때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시켜주며 잠깐이나마 가슴을 콩당콩당 뛰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이 책은 멀리 가버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옛사랑을 회상하게 할 뿐입니다. 이 추운 겨울, 우리 가슴을 다시 뜨겁게 달구어줄 그런 책, 이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숭고하면서도 가슴 저미는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 찬 책은 없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사무엘이란 어린 소년이 부모를 떠나 성전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주어진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습니다.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희미한 불빛이 성전 안을 비추고 있을 뿐입니다(삼상3:3). 그런데 그때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무엘아!'하는 음성에 소년은 벌떡 일어나 엘리에게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엘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이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된 후에 엘리는 혹시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사무엘에게 어드바이스를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사무엘에게 장차 될 일을 가르쳐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시'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다시'라고 번역된 이 말은 히브리어로 '야사프(yashap)'라는 단어인데, '다시'라는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원문의 뜻을 다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야사프'란 이 단어는 본래 단순한 반복을 넘어 '...한 일을 더하다. 하되 더 열정적으로, 더 간절하게,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쉼 없이 행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두 종류의 야사프가 있는데, 먼저는 엘리의 야사프입니다(삼상3:2). 엘리의 입에서 '다시'란 말이 나옵니다. 이 야사프는 자신도 쿨쿨 자면서 '가서 누워 자라(삼상3:5, 6)'고 하는 야사프입니다. 특히 두 번째 '다시'는 더 강하게, 짜증스럽게 반복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밤이 되어 자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 암흑시대에 깨어있어야 할 지도자인 그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던 그 시대의 영적 상황을 함께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고, 이상도 흔히 보이지 않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삼상3:1).

또 하나의 야사프가 있습니다. 엘리의 야사프를 뚫고 계속하여 들리는 또 하나의 야사프, 즉 하나님의 야사프입니다(삼상3:6, 8, 10, 21). 이 야사프는 자고 있는 사무엘이 누우면 다시 깨우고, 또 깨우시는 야사프입니다. 지금 엘리의 야사프와 하나님의 야사프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야사프는 '가서 누웠다가 너를 부르거든....'하며 세 번 만에 꼬리를 감추고 맙니다. 하나님의 끈질긴 야사프에 압도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끝까지 부르셔서 자기를 나타내셨습니다(삼상3:10,21). 그리고 그에게 장차 될 일들을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나타나셔서 갈수록 더 강하게 끈질기게 '야사프'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야사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주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찾아오셔서 그 음성 들려주시며, 축복을 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의 사랑, 의지, 젊음, 계획 등이 모든 것들은 반복할수록 엘리의 야사프처럼 점점 약해져 가고, 희미해져 갑니다. 한때 사랑의 열병을 앓아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열렬히 사랑에 집착했던 솔로몬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욕도 점점 쇠하여져 간다(전12:5)'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점점 약해지는 '데크레센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야사프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집니다. 하나님의 야사프는 그래서 '크레센도'입니다. 하나님의 '야사프'의 사랑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습니다.(창12:2; 22:17; 24:1). 그리고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창25:11; 26:3, 12; 28:15; 32:29; 35:9).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렇게 '야사프'의 사랑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야사프', 다시, 다시, 다시...... 계속 이어지는 사랑입니다. 찾아오실 때마다 더 강해지고 더 뜨거워지는 끊을 수 없는 사랑이다. 이 '야사프'의 사랑은 시간과 환경과 처지를 초월하여 부어지며, 계속하여 더해지는 사랑입니다. 이 야사프의 사랑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 현장이 베들레헴 말구유입니다. 이 사랑이 처음에는 음성으로, 그 다음에는 육체를 입은 몸으로, 그 다음에는 그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는 더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곁길로 가도 이 '야사프'의 사랑은 끈질기게 이어집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잘못 알아들을 때도 이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계속 영적 깊은 잠에 빠지고, 또 빠질 때도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우리를 깨워주십니다. 그 분은 '야사프'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은 식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분은 사랑의 원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생생함 그 자체입니다. 왜냐하면 한쪽 당사자가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만큼 떨림을 회복시켜 주는 책은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이 사랑의 떨림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회복되는 은혜, 사랑의 원천자이신 이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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