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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에서 구원할 자 (마 1:18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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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구원할 자 (마 1:18 ~ 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태복음 1:18-25

이제 4일 후면 다음 5년을 이끌어갈 한 분의 대통령이 결정됩니다. 한국의 수많은 훌륭한 분들이 정치경제의 부흥, 공정한 사회건설, 교육문제 해결 등을 위하여 각자 가진 비전을 펼치고 노력을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지난 5년 동안 그분들이 수고하신 그 결과를 놓고 판단을 하려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더 좋아졌는가? 젊은이들에게 더 희망이 생겼나? 그런데 85%가 좀 새로운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15%가 그 동안 수고한 이 팀이 계속 정권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결과입니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대선후보들은 1년 전에는 좋은 관계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선거 때문에 조금 서로 불만들을 내 놓는 것이지, 선거가 끝나면 다시 좋은 관계로 일하게 될 줄로 생각됩니다. 대통령이 되려고 서로 비판하고 허물을 찾아내고 공격하는 것은 인간의 정치에서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그 죄를 들춰내어 형벌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들의 중심에 인간의 죄가 들어있습니다. 개인적 문제, 가정 문제, 교회 문제, 심지어 사회 문제 등 온갖 종류의 문제들이 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미 정죄 받은 인간을 용서해 주시고, 해방시켜 주시고, 새로운 생명과 방향과 역사를 일으켜 희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요3:17). 우리끼리는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을 정죄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합니다. “이미 정죄 받은 자를 구원하려 하심이라”(요3:17). 인간은 자기의 죄성 때문에, 죄 때문에, 습관 때문에, 자신의 문제 때문에 이미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이미 정죄는 나타난 것입니다. 그 이상 더 정죄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사람들이 한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8:4-5). 예수님은 아무 말씀 없이 땅 바닥에 무언가 적기 시작하셨습니다. 거짓, 음란, 욕심, 증오, 막 써내려가셨어요. 그것을 본 사람들은 한 글자씩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뜨끔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가운데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하셨습니다. 먼저 돌을 들고 치려고 하다가 ‘내가 죄가 없나?’ 하며 한 사람 두 사람 떠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 떠나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8:10). 사람이 사람을 쳐다볼 때는 서로 정죄를 하는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니까 그 이상 더 정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를 정죄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내가 너를 정죄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정죄 받은 여자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8:11). 그리고 죄에서 풀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여자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끄집어내지 않고 덮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성탄절에 오신 이유는,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은혜와 보혈로 완전히 단번에 덮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1). 예수가 무슨 뜻입니까? 히브리말로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구원하는 분이요, 구해주는 분이요, 진흙탕에 집어넣는 분이 아니고, 돌로 치는 분이 아니고, 야단치는 분이 아니고, 야단맞을 사람을 살려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죄에서 영원히 구해주실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밖에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 때문에 고생하는 존재입니다.

첫째로, 죄성 때문에 고생합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부모님의 죄성을 물려받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하고, 잘못 느끼고, 많은 문제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잘못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죄의식이 나타났습니다. 죄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 죄성을 내 스스로가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하시기를 “표범이 자기 몸의 반점을 바꿀 수 있느냐?”(렘13:23). 무슨 뜻입니까? 표범이 자기의 점을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이 자기의 죄를 없앨 수 없다는 겁니다. 인간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물론 인간은 자기의 노력으로 이 죄성을 없애 보려고 무척 고생을 합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자기의 죄성을 극복해 보려고 평생 일하지 않고 허름하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방황하며 다닙니다. 남미의 가톨릭교도들은 채찍을 만들어 피가 나도록 자신을 때립니다. 아프리카의 14살 소년은 동네사람들에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피를 흘리며 십자가 꼭대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죄성이 없어집니까? 손만 아프고 피만 날 뿐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죄성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성자라고 하는 사도바울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9-20).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에 인간은 고통 받고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경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라고 하였습니다. 이 죄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방법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쪽에서 예수님을 이 땅에 먼저 보내주셔서 십자가 위에서 대신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의 죄를 완전히 단번에 덮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죄성이 없어진 건 아닙니다. 아직도 남아있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류의 죄를 덮어 주셨고 우리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를 고통과 죄의식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죄성에서 우리를 건져주셔서 계속 깨끗하게 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하나씩 하나씩 묶어주시고,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십니다. 미움이 변하여 사랑과 용서가 되고, 좌절감이 변하여 기쁨, 소망, 용기가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게 됩니다. 죄성 때문에, 죄 때문에, 죄의식 때문에 인간은 방황하고 힘들어 합니다.

둘째로, 인간은 죄의식으로 고생합니다. 죄의식이 무엇입니까? 죄를 범했을 때 제일 먼저 내가 나를 처벌하는 겁니다. 마음에 고통이 오고 갈등이 생기고 아픕니다. 모르는 척 덮어 놓으면 그 안에서 곪아 터져나갑니다. 그것이 죄의식입니다. 내가 스스로 죄의식을 없애 버리려고 한다고 없어집니까? 전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던 우리의 죄들과 죄의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에만 예수님께서 씻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고쳐주시고 평화와 용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죄의 세력으로부터 점차적으로 해방을 받아서 여러분과 제가 성화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셋째로, 인간은 죄의 결과로 고생합니다. 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영원한 죽음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합쳐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영생의 선물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인간에게는 지옥의 멸망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의 선포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자비요, 하나님의 긍휼이입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공로로 덮어주시고 주의 자녀 삼아서 천국시민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믿는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이 땅에서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방황을 하고 어려움을 입는 누구나 해방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가정을 심방해서 보니까 난방도 없이 추운 방에서 젊은 엄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살고 있어요. 왜 이렇게 사는가? 아빠가 다른 여자에게로 떠났답니다. 아이들의 먹을 것도 대주지 않는답니다. 가슴이 얼마나 아프던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먹을 것도 대주지 않고 방황하고 다니는 그 남자의 모습! 불쌍하지요. 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죄의 사슬에 억매여 스스로 자기의 욕정을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안 되지요. 오직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야 죄 사함과 죄에서의 해방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식과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힘과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우리는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우리는 죄와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어떤 때는 처절하게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노력에 의존하면 질 수밖에 없어요. 마귀의 악한 세력들에게 정복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분을 앞세워 전쟁하면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우리의 영원한 구주이십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구원자)라 하라.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요3:16), 구원의 역사는 끝났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여러분 모두가 이 성탄계절에 주님이 오신 목적을 이해하고, 그분을 여러분 자신을 죄에서 구원할 분이심을 분명히 믿고, 구원의 확신과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요, 인간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여러분과 저를 죄에서 구원하고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둘째,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마1:23).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죄와 싸우느라 얼마나 외롭습니까? 더욱이 종교적 행위를 통해 산 속에서, 수도원에서, 길거리를 헤매며 방황하면서 구원 받으려고, 죄성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합니까? 그런데도 또 다시 죄에게 지고 패배당하고 실수합니다. 인간은 어렵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얼마나 외롭습니까? 아내와 자식이 있어도 혼자 병상에 누웠을 때 얼마나 외롭습니까? 남편을 잃은 아내, 아내를 잃은 남편, 부모를 잃은 자식들이 얼마나 외롭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계신다!”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내가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수술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셔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혼자 외로운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 임마누엘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크리스마스에 오신 목적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저는 크리스마스 계절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이 나를 무조건 안아주시고 죄를 덮어주시고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시고 하늘의 시민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요, 나의 죄 문제를 영원히 단번에 해결해주신 나의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구원에 대한 영원한 평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또 그분이 여러분 안에 함께 거하시면서 한시도 떠나지 아니하시고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시고, 심지어 여러분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 혼자 어려운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인생입니다. 구원받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 하늘에 가도, 저 바다 끝에 가도, 저 땅 밑에 가도 - 주님과 함께 거닐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주님의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갈 길을 보여 주시고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내 앞에 계시고 뒤에 계시고 나를 둘러싸셨으니 내가 주를 떠나서 어디로 가리리까?” 다윗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평생토록 주님께서, 그리고 저 영원까지 동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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