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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마 24: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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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마 24:45~47)

어떤 공동체든지 회기가 끝나거나 결정적인 시기가 되면 쌓은 실적에 대하여 평가를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신앙과 봉사를 마치 집을 짓는 건축자로 비유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쌓은 공력을 평가 받을 때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이 되어 불로서 심판해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실적을 나타내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3:10-15). 본문말씀 45절에는 주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올해도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우리의 행한  일이 주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될 시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에 세 가지 비유를 통하여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사례를 소개하였습니다.

1. 슬기로운 다섯 처녀(마25:1-13)

마태복음 25:1-2에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열 명의 처녀가 똑같이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나갔으나 미련한 다섯은 신랑을 만나지 못하고 슬기 있는 다섯 처녀만 신랑을 만나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

성경은 예수님을 우리의 이상적인 신랑으로 묘사하였고, 경건한 성도들은 예수님의 신부로 비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1:2). 에베소서 5:32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사랑으로 연합되는 것처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도 사랑의 관계입니다(엡 5:25). 신랑은 신부에게 소망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되는 분입니다. 계시록 21:2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신부의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을 사모하며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됩니다.

2) 기름을 준비한 등불

마태복음 25:3-4에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름 없이 등만 들고 나간 사람을 미련한 처녀라 하였고, 기름을 준비한 사람은 슬기로운 처녀라고 하였습니다. 등불은 밤의 어두움을 밝히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될 장비입니다. 성경은 죄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을 어두움 또는 흑암으로 비유하였습니다(엡 6:12).
한편 성도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로서 빛의 아들(살전 5:5)이며 동시에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사명을 가진 자입니다(마 5:14). 등에 기름이 없으면 빛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기름으로 비유하였습니다(눅 4:18, 행 10:38). 밤중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빛이 사명을 수행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한 삶을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3) 깨어 있는 자입니다.

5-6절에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신랑이 오는 것은 확실 했지만 오는 시간은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답답하게 여겨 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다리다 지쳐서 다 졸며 자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도 이와 같을 것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오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방심하고 잠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다리기는 하면서도 지쳐서 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슬기로운 처녀처럼 깨어서 기다리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13절에는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신앙의 경각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2. 착하고 충성된 종(마 25:14-30)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는 착하고 충성된 종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가면서 종들을 불러놓고 재능대로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면서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남기라고 하였습니다. 그중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를 하여 배를 남겼는데 유독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받은 달란트로 최대한 활용하여 100% 이익을 남긴 사람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1) 은사(恩賜)에 맞는 분깃을 받았습니다.

사람마다 제 각기 타고난 은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분량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고전 12:4-11). 본문말씀 15절에는 재능(ability)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분깃(talent)을 줄 때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분량만큼 맡겼습니다. 곧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 이상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사람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런 인물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마저도 활용하지 못하고 땅속에 사장(死藏)시켜 버렸습니다. 주인은 종들이 가진 그릇의 크기와 그것을 활용 할 수 있는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알맞게 맡겼던 것입니다.

2) 주인의 뜻을 간파 하였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이익을 남겨 오라는 주인의 요구를 무시해 버리고 그것을 땅속에 묻어 놓은 채 주인이 올 때까지 전혀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 앞에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주인을 매우 나쁜 사람으로 오해 하였고 그 스스로 자기의 소임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착하고 충성된 종은 제게 분깃을 주는 주인의 뜻을 정확히 읽었고 또 그대로 행동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전자는 자기중심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요 후자는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잠 9:10).

3) 최선을 다하고 이익을 남겼습니다.

21절에 보면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그 행한 실적을 인정받았습니다. 다섯 달란트로 열 달란트를 만든 사람이나, 두 달란트로 네 달란트를 만든 사람은 다 같이 최선의 노력을 하여 100%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이는 오늘날 생산적인 교회의 특징을 나타내 주는 교훈이 됩니다. 주인은 그런 사람을 적은 일에 충성한 자라고 하면서 오히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겨 준다고 하였습니다. 곧 적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낸 사람이라면 많은 일을 맡아도 충분히 잘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에 동참하게 되는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3.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마 25:31-46)

세 번째 비유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심판 하실 때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1) 섬기는 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35-36절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그들의 행적을 낱낱이 열거 하면서 칭찬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그것도 모두 다 병들거나 힘없는 자 또는 헐벗고 굶주리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일을 하려고 하거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보상을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마 6:1-2).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딱한 처지의 사람들은 외면하곤 합니다. 예수님의 강도 만난 자의 비유 가운데 제사장이나 레위사람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경우는 평소의 삶이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로 길들여져 있었습니다(눅 10:30-37).

2) 예수님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주님에게 칭찬을 받은 종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에게 행한 일이 곧 주님께 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말씀 40절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평소 예수님의 삶을 닮아 가는 사람은 아무에게라도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섬기기를 잘 합니다. 히브리서 13:1-2에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최상의 축복을 받는 자입니다. 

34절에 보면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은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게 됩니다. 46절에도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27).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그의 비망록에 낱낱이 기록하셨다가 결정적인 때 이를 공개하시고 거기에 따르는 보상을 하십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의인과 악인을 식별하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한눈에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말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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