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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기쁘다 구주 오셨네(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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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에 나오신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에는 구주가 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한밤중에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구주가 탄생한 사실을 전해주므로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께 가서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헤롯왕을 비롯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경건하게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을 비롯하여 많은 시민이 있었지만 구주가 나신 사실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2 이하를 보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제야 헤롯왕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헤롯왕일 것입니다. 자신이 왕인데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헤롯이 큰 충격을 받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에게서 소동이 일어났지만, 어느 누구도 박사들을 따라 간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놀랐고, 그냥 소동이 일어났을 뿐입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무관심했고, 또 아무도 동방박사들을 따라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구세주, 메시야의 탄생을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도시 번화가에 가면 굉장히 화려할 것입니다. 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들뜬 마음으로 돌아다닐 것입니다. 신앙생활하지 않는 누군가 제게 그렇게 말합니다. 요즘 굉장히 바쁘시죠? 예,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런데 좀 이상한 건 예수 믿는 사람들보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성탄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더라구요. 전라도 어느 절에는 승려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크리스마스 츄리를 만들어놨다는 뉴스를 봤다고.

뭐 그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성탄절을 좋아합니다. 굉장히 소동합니다. 그러나 소동할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마치 2000년 전 첫 번 크리스마스 때에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한 것처럼 그렇게 온 세계에 소동이 있지만 그 소동 가운데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감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의 나심을 축하합시다. 그리고 감사하며 찬송합시다.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의 평화로다.” 아멘.
우리는 또한 지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소동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나심을 전합시다. 천사들이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나심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전합시다. 아멘.

1. 천사들은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고 전했습니다(10, 11절).
여기에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복음을 말합니다. 즉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마1:21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먹고 살기 위한 문제가 아닙니다. 병 고침의 문제도 아닙니다.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죄 때문에 우리가 저주를 받게 되었고 고통과 죽음과 모든 불행이 왔으며, 지옥의 멸망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죄 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얻게 하실 수 있습니다.

2.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누가복음 2:12을 보면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영광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7~8을 보면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극히 영광스러운 보좌를 내려놓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가장 낮고 미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저주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때문에, 나 때문에, 내가 받은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평생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건만 예수님은 두벌 옷도, 땅 한 평도, 방 한 칸도 없이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 이유를 고린도후서 8:9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가난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만물을 우리를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땀을 흘려 농사짓지 않아도 먹고사는 걱정이 없이 부요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하여 저주를 받아서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가난에 허덕이며 사는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아 가난하게 사신 것입니다.

이사야 53:5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이유가 하나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의 값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3. 성탄절은 분명 온 인류에게 가장 기쁜 날입니다. 가장 큰 복을 받게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구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고, 모든 저주 가운데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기뻐하며 감사합시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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