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삿 16:18 - 31)

  • 잡초 잡초
  • 586
  • 0

첨부 1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삿16:18 - 31)

구약 사사시대에 단지파에 마노아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밭에서 일하다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는데
  급히 달려가 남편 마노아를 불러옵니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묻기를
      [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 하니
      [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 고 합니다.
마노아가 들판에서 만난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님으로
사9:6절에서도 [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 합니다.
기묘-the wonderful - 놀라운 분이십니다.
예수님 만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 만나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 만나면 눈이 뜨여집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The wonderful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마노아가 예수님 만난 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삼손인 것입니다.     

삼손은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인 BC 1100년경
    이스라엘에 사사가 다스리던 사사시대의 12번째 사사로
    역사상에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마무리 하면서
삼손이란 사사의 생애를 돌아보며 우리의 신앙의 삶에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비록 삼손이 3000년 전의 인물이지만
    삼손의 일생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삼손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살펴보면서
    큰 도전의 계기가 되는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에서 삼손이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삼손이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1. 삼손이 비참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18-20절)

본래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나실인이란 구약에 하나님 앞에 드려진 구별된 자로서
  삿13:4절에 [ 포두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을 먹지 말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
이렇게 나실인으로 드려진 삼손이
14:에서는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 찢음같이 찢으며
15:에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꼬리에 횃불을 달아
      불레셋 곡식밭을 다 태우고
  나귀 턱뼈 한 개를 취하여 불레셋 일천명을 쳐 죽이는 괴력을 발합니다.
그 비결은 삼손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하니
      삼손이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한번은 잡화를 실은 일 톤 트럭에 삼손이라고 쓰였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사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믿는 모양이죠?” “아니요”
“ 그런데 왜 삼손입니까?” 하니 픽 웃으면서
“삼손, 손이 세 개라 신속히 배달한다는 말입니다”
아~! 삼손은 손이 세 개라 힘이 세구나 깨닫게 되었지요.
하나님의 신이 감동했다는 말, 바로 하나님의 손이 함께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삼손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삼손이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습니까?
    우리는 삼손의 능력을 거룩한 힘이라고 합니다.
    삼손이 바로 이 거룩한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삼손이 장성한 후에 삼손이 불레셋 가사 땅에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반하여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블레셋사람들은 그 여인에게
삼손의 힘을 근원을 알려주면 은을 일천 일백 개를 준다는 약조를 합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그 힘의 근원을 세 번씩이나 거짓으로 말하여 넘어갔지만
마지막 4번째는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근원인 머리칼을 밀어버리면 힘이 소멸될 것을 고백하자
그 여인은 삼손이 잠든 사이에 머리카락을 밀고
  블레셋사람에게 삼손을 넘겨버립니다.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 - 순간 거룩한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거룩한 힘이 무엇입니까? 삼손의 힘은
첫째;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니 힘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은
      비극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합3:19절에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

둘째; 기도생활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도의 거룩한 힘은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힘이 있을수록 기도생활을 놓치지 말아야 할텐데
    우리 대부분은 힘이 생기면 그 힘으로 세상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영적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바로 삼손이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기도하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힘을 가지고 들릴라를 사랑한 것입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요사이 마이카 시대이지요.

운전자들이 차량을 관리하는데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 수리형으로 운전중에 고장이 나면 수리하는 형입니다.
2) 다른 한가지는 정비형으로 미리 미리 고장 나기 쉬운 부분을
      미리 정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비형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시험이 다가 오기 전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앞에 두시고  미리 준비하신 것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신4:7절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 ]
기도하는 이상 하나님은 늘 우리와 가까이 하십니다.
삼손이 나실인의 상징인 머리털이 잘렸다는 것은
    그의 경건생활 즉 기도생활이 중단된 것을 말합니다.

셋째; 사명을 잃었습니다. 
성도의 거룩한 힘은 사명에서 옵니다.
그러나 세상 가까이 지내다가 사명을 잃으니 힘을 잃은 것입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더욱 추구하다가 사사의 사명을 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명을 망각하면 그 것 때문에 불행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결국 삼손이 비참하게 되는 이유는
    경건의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노출되어 무기력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성도만이 간직하는 경건의 비밀이 있습니다.
    경건의 비밀이 바로 성도의 거룩한 힘인 것입니다.
삼손이 힘을 잃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기도와 사명을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기도와 사명을 잃어버리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유혹에 머리카락에 숨긴 비밀을 발설한 후
결국은 머리털이 잘리고 그의 모든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2. 불레셋에게 결박당한 삼손의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21절)

21절에 [ 불렐셋 사람이 그를 잡아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
삼손은 결박되어 눈이 빠지고 짐승이나 노예들이 하던 맷돌을 돌리며
    이방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이 블레셋의 신 다곤에게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는 왜 술을 안 마셔야 하는지,
    왜 부정한 것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
    왜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는지,
    왜 머리를 밀면 안 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럴 때 그에게 있던 모든 능력이 없어지고
      하나님이 그에게서 떠나 버리셨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 비참한 인생이 찾아 왔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힘을 잃어버린 신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은혜 받아 삼손같이 영적으로 엄청난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능력들이 폭발하기만 하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습니다.
영안이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힘의 근원인 영적 머리카락이 밀리고 기도생활이 중단되었습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의 힘겨운 맷돌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이
세상 사람들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비참함에서,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비결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머리털이 자라나야 합니다. 기도를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수로 말미암아 비참의 나락에 떨어질 때
      가만히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3. 성경은 삼손이 다시 회복하게 되는 계기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22절)

22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불레셋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지마는
      하나님은 성도가 세상에서
      결코 조롱거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삼손이 감옥에서 뭘 했겠습니까?
    아 옛날이여 ! 하고 신세타령만 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원망하고 불평했더라면
          삶의 회복, 능력의 회복이 안 되었겠지요?
많은 성경학자들이
“ 삼손은 머리털이 자라는 동안
    감옥에서 다시 거듭나는 철저한 회개를 했을 것이다.
      맷돌을 돌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하자
      그의 힘을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그를 다시 치유하셨고 회복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사로서의 위대한 일을 남기고
        그의 생을 끝내게 만들어주셨습니다.
[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더라 ]
영적으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다시 나실인으로서 기도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찬543장 4절,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 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다시금 기도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부흥회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힘을 얻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 영적 회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불레셋의 노예가 된 무기력한 삼손이 할 수 일이 무엇입니까?


4. 무기력한 삼손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23-27절)

불레셋 사람들이 저들의 신 다곤 신당에서 잔치를 베풀어 놓고
결박당한 삼손을 불러다가 25절에
      우리를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27절에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고 합니다.
거룩한 힘을 잃어버린 삼손이 할 수 있는 일은
    불레셋을 위하여 재주 부리는 일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결박당한 삼손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육신의 생명 부지하기 위해 맷돌 돌리는 일과 
    불레셋을 위하여 재주 부리는 일 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오늘도 유혹을 통해 기도를 못하게 하고 무장해제 시켜
    마귀의 종이 되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우리도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삼손이 이러한 비참한 모습이 된 데는
20절 하반절에 보면
[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따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
하나님이 손 놓아버리면 우리는 비참의 나락에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마귀의 조롱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삼손이 불레셋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할 때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그려보면서 마음에 결심을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5. 삼손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28-31절)

28절에
[ 삼손이 여호와게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야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불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
삼손은 부르짖습니다.
삼손은 블레셋의 힁포와 고충에서 민족을 구원하라고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사실,
블레셋은 당시 철기를 사용하는 강한 족속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부터 블레셋을 진멸하지 않고 피하고
    정면충돌하지 않으려하고 강한 세력으로 키워놓은 것이 화근이 된 것입니다.
삼손은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후에야
이 블레셋이야말로 삶의 원수인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삼손 자신을 실패자로 만든 원수일 뿐 아니라
  거룩한 선민들의 원수임을 알았습니다.
이들은 그냥 두면 안 된다.
삼손은 삶의 싸움의 대상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영적 블레셋이 있습니다.
오늘 싸움의 대상을 잘 모른 채
  싸움의 대상을 일부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원수 마귀입니다.
원수 마귀는 오늘날도 성도의 거룩한 힘을 빼앗으려고
        세상 온갖 궤계로 성도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와 싸우는 무기는 기도 밖에 없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용기같이 우리도 원수 마귀에게 속은 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비참함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
우리 일생에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금번 부흥회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나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든 원수 마귀, 죄 때문에 한을 품고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회복할 수 있는 힘주시고 능력 달라고 부르짖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눅18:7-8절에 보면
[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가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택한 자의 원한이 무엇입니까?
나의 눈을 어둡게 하고 나를 결박하여 맷돌을 돌리게 하는
    원수 마귀에 대한 원한이 우리 가슴에 맺혀 있는 원한입니다.
택한 자의 원한 때문에 부르짖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삼손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30절을 보면
[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
삼손은 자기의 실패한 자리에서 죽기를 각오하였습니다.
자기는 살아남고 사명을 감당하려 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힘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은 실패자에서 성공자가 됩니다.
    목숨을 내어 놓은 사람은 위대하고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희생하는 사람은 위대합니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자는 성공자가 됩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최경숙 동서의원 원장(58)은 유방암을 앓고 난 후
“유방암이 오히려 내 인생에 축복이 됐다”고 간증을 합니다.
1990년대 그는 나름대로 유명한 산부인과 개업의였습니다.
그러다 1999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는 유방을 잘라내고,
    암세포가 전이된 겨드랑이 임파선도 제거했습니다.
    거기에 자궁과 난소까지 떼내는 대수술을 함께 받았습니다.
최 원장은 “생사의 고비에 있을 때 내 몸이 회복되면
      남은 인생을 남을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된 2000년부터 최 원장은
노숙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을 위한
    의료 봉사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그의 진료는 예전과 달랐습니다.
동남아 지역 진물나는 나환자를 끌어안고, 장애 환자를 손수 씻어줍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이라크, 북한에도 찾아가 의료 봉사를 하며
2002년 카자흐스탄 의료 봉사 중에 뇌염에 걸려
또 다시 죽음의 위기를 맞았지만 이후에도 봉사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나의 주업은 의사가 아니라 의료봉사입니다
    암은 내게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암 때문에 나는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삼손은 자기 목숨을 버려 블레셋을 물리치려 하였을 때,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자보다 더욱 많았습니다.
삼손은 실로 지금까지의 공적보다 죽음으로서 이루어 낸 공적이 더 컸으며     
더 많은 전과를 올린 것입니다.
삼손이 붙잡고 있는 두 기둥이 넘어가고
    블레셋 사람이 축제를 하는 웅장한 다곤신이 다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자를 쓰십니다.
실패자라도 다시 기도로 시작하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시금 희생과 죽음을 각오한 헌신 앞에 하나님은 승리의 은혜를 주십니다.

일본이 한국을 착취하고 있을 때,
한국의 젊은이들이 만주에 있던 독립군을 찾아가서 자기도 투신하겠다고 하면
선배들이 물어 본 세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1. 당신은 총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2. 당신은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3. 당신은 추위에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죽을 각오되어 있냐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다시 생긴다면
    우리 앞에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첫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이제는 좀 나이가 드니 까 가는 곳마다 종종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대단히 건강하시네요. 비결이 뭡니까?”
저는 본래 건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병 도매상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두 번째는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해서는 아니 될 일을 즐겨서는 안 됩니다. 해야 할 일을 즐기는 겁니다.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임마누엘 칸트
“ 너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 을 하게 되면 할 수 있게 된다 ” 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마지막 일을 하는 자가 행복합니다.
자기가 이 일을 하다가 죽겠다고 결심한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이 가까웠을 때,
    마지막으로 열 심히 뛰지 않습니까.
그때 그 시간만은 아무 피곤도 없는 것이죠.
결승점을 향해 최선을 다할 다름입니다.

삼손, 어떻게 보면 해야 할 일을 다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자기가 생명 바쳐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기에 생명을 던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간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생명 바쳐도 후회가 없는 일과 사명을 향해
    자신을 바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한 해의 마지막 시점에서
어떻게 보면 해야 할 일 다 못한 지난날 이었지마는
    남은 몇 날 해야 할 일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