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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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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눅 13:6-9)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이 누가복음 13장을 흔히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6절에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면, 열매가 있어야 할 이 무화과나무에 아무런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내 인생에도 반드시 있어야 할 열매가 없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 역시 결산의 시간 과연 어떤 열매를 맺고 한 해를 보내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 대답을 찾기 위해서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열매 없었던 무화과나무,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1. 그 첫째 이유는 자신의 책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화과나무는 높이 자라야 3m 정도입니다. 그리고 곧게 자라지도 않고 옆으로 퍼져 자랍니다. 그래서 목재로도 쓸 수 없고, 보기 좋은 관상용 나무도 되지 못합니다. 꽃도 피지 않습니다. 그래서 꽃이 없는 뜻으로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의 존재가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열매입니다. 열매는 많이 열립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지나다가 그 열매를 먹고 시장기를 면하기도 합니다. 만일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면 쓸모 없는 나무가 됩니다. 무화과나무의 존재가치는 오직 결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왜 존재할까요? 저는 무화과나무의 존재이유와 인생의 존재이유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열매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이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라오게 하신 이유, 그들을 품으시고 가르치시고 3년 동안 삶을 같이하신 이유가 있다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열매를 위해서였습니다. 요13장부터 18장까지는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교훈을 가르치신 소위 다락방 강화라고 불리워지는 한 토막입니다. 그 중에 요한복음 15장은 우리가 흔히 포도나무 비유의 장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기 때문에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맺을 수 없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 보면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이 땅에서 살고있는 생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많은 열매를 맺으라'고 까지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먼저 인격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인내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입니다. 우리는 주변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는 사랑, 정의, 평화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동서독이 분단되어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동베를린 사람들이 트럭에 쓰레기 더미를 싣고 와서 서베를린 진영으로 쏟아 부었습니다. 서베를린 사람들은 그 쓰레기를 실어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트럭에 통조림과 식량을 가득 실어 동베를린 쪽으로 보냈습니다. 트럭에 표지판 하나를 세워놓았는데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준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주며 삽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면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다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 같은 값진 열매를 다른 이들에게 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의 새 사람, 성령 충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의 열매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은 존재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사역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봉사해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우신 목적은 바로 사명의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포도 원의 무화과나무를 보십시오. 비옥한 땅에서 좋은 자양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땅만 허비하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화과나무의 잘못입니다. 받은 것도 많은데 주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사랑을 줄줄 모릅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은혜를 베풀 줄 모릅니다. 도대체 내가 누군인데 나를 통해 이런 귀한 축복을 주셨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포도밭에 쓸모 없는 나를 옮겨 심으신 것은 이것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특권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보세요. 좋은 땅을 선택하여 거기에 포도나무를 심고 또 거기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면 거기서 제대로 된 열매를 좀 맺어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 이건 어마 어마한 특권인데, 놀라운 특권인데 그렇다면 이 특권에 합당하는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 말이에요. 열매를 맺는 이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어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신의 책임을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세대는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누구하나 책임을 지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장가는 들어놓고, 시집은 가놓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나서도 그 가정을 책임질줄 모르는 아버지들 어머니들,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도, 아내를 향한, 남편을 향한,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있는 이세대의 무책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공동체 생활할 때도 교회생활 할 때도 뭐 제직이 되어 놓고도 아무런 책임도 감당하지 않아요.


2. 자신의 상태를 망각하며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지방의 땅은 토질이 얕고 박토입니다. 그 중 포도원은 비교적 좋은 땅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무화과는 보통나무들보다 더 나은 조건, 더 나은 기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던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 '고착상태'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의 유치한 습관이나 부정적인 습관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착상태에 빠진 사람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무조건 변화는 싫어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변화되지 않은 낡은 것에 매여서 거기서 안정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정지상태란 없는 겁니다. 계속 변화하고 있는 속에 나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 안에 예수가 들어가면 더 이상 생명이신 '고착상태'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 은혜 앞에 세상 속에 영향력을 끼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현대보다는 훨씬 적은 숫자였지만 그러나 그 영향력은 무서웠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가리켜서 부쳐진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그 별명 중에 하나가 '염병'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염병, 여러분, 생각나십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옘병이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염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전염병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요? 그것은 한 사람이 예수 믿으면 그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이 예수 믿고, 또 다른 사람이 변하는 이 무서운 영향력의 확산 때문에 "저들은 염병이다! 저들은 염병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쳐진 또 하나의 별명가운데 이런 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에 바울의 일행이 들어갔을 때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 "천하를 어지럽힌다"는 이 말을 원문의 뜻을 보면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끼쳤던 놀라운 영향력을 상징하는 그런 표현입니다.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까? 혹시 나는 땅만 버리는 사람은 아닐까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다른 나무에게 필요한 수분을 빼앗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종교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정확하게 표현하신 경고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도 천국에 못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의도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한 크리스챤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95프로는 '벤치워머'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벤치워머가 무엇인 줄 아세요? 벤치워머란 '의자를 따뜻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교회에 와서 한시간 예배 드리면서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만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나가는 것이 이 교회에 유일한 기여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던 삶을 이제는 중단하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분명히 요청합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삶은 중단하십시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많은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현재가 여러분이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3.자신의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가리켜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라고 말씀하는데, 저는 이 본문이 눅13장에 그 앞서 기록하고 있는 어떤 사건 때문에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직접적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1절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갈릴리 사람들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4절 한번 읽어보세요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절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갈릴리에서도 사고가 났고 또 실로암 망대가 무너졌어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당시 있었든 어떤 사고에 관한 얘기를 예수님이 하신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사고가 일어나면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주변에서 내 이웃사람이 뭐 교통사고가 났다, 뭐 좀 안됐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겠죠. 그러나 혹시 어떤 사람은 '글쎄 그 사람 죄 때문에, 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들을 지적하면서 "그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그렇게 죽은 줄 아느냐? 아니야, 너도 그렇게 될 수가 있다." 이웃 사람들의 비극에서 '경고'를 받아야 된다 말이죠. "그래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야. 너도 이렇게 될 수가 있어!" 우리는 이웃들의 어떤 아픔이나 고통이나 사고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경고로 보면 됩니다. 지금도 내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보면서 그것을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나를 향한 경고, 그것이 바로 나를 향한 경고다. 어쩌면 내 인생도 한순간 이렇게 정리될 수가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나를 쪼여 들어오는, 내게 다가오고 있는, 어떤 위험을 나에게 알리기 위한 하나님의 싸인이다" 말이죠. 만약 회개치 않는다면 '너도 이와 같이 망할 수가 있다 그걸 아느냐' 이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 도 좀 진지해지고 좀 달라져야 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 버리라'는 주인의 명령에 과원지기가 무엇이라 이야기합니까? 8절을 다시 보십시요.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이 말은, "금년 한번만 봐주세요.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내가 두루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셔도 저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다시 기름을 주고 가꾸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시금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열매가 없다고 바로 찍어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시 돌보고 힘을 주고 격려하여서 좋은 열매 맺기를 기다리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동차가 교통사고가 나서 찌그러져도, 폐차시킬 것은 고치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있는 것만 고칩니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서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십 년 전에 육천 만원에서 팔천 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일억 오천 만원정도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옷부터 시작해서 화장품, 마사지까지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 어떤 사람을 선발합니까? 원판이 괜찮은 사람을 뽑습니다. 원판이 별로인 사람은 투자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능성이 없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투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조금만 만지면 나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하나님의 판단을 내렸기에, 사막 한가운데 비옥한 땅을 개간하여 포도원을 만든 곳에 무화과나무인 우리를 옮겨 심으셨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나를 향한 기대를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내가 너를 고치는데 얼마큼의 비용이 들어가든지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앉아 계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자기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살리지 않으셨습니까? 자기 아들까지 주시면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당신이라고 말해줄 만한 사람이 우리 중에 누가 있을까요? 때문에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까지 투자해 주셨으니까요. 그분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내 생명을 살리시고 투자해 주셨다면, 오늘 우리 인생은 살만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왜 내가 나를 포기합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은데, 왜 마음대로 내가 나를 버리고 희망이 없는 사람처럼, 사랑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까?

이제 우리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하지 않으십니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일화입니다. 그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성공을 희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모습의 이면에 이런 숨겨진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21세였던 1997년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그는 자신의 경기를 녹화한 비디오 테입을 보면서 스윙 폼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코치에게 어떻게 고치면 되겠냐고 묻습니다.

그때 코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의 스윙 폼을 고치는 데는 3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익숙해서 최고의 경기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2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2년 동안은 우승할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그 말은 들은 타이거 우즈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립니다. 정말 2년 동안 우승은커녕 형편없는 성적으로 패배를 거듭합니다. 그는 괴로웠지만 미래를 소망하면서 고군분투합니다. 마침내 2년 후인 1999년 14번의 골프 대회에 참가해서 그 중 10번에 걸쳐 우승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 후에도 그는 연습광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끊임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세계 최고의 선수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 결과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 아직도 삶의 기회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삶으로 바꾸세요.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열매를 향한 내 인생의 노력을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아니라면 주님의 엄숙한 이 명령 앞에 어느 날 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호되게 닦아세울 것입니다. "너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말씀 앞에 여러분의 대답은 오늘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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