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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앞서가는 안디옥 교회 (행 11: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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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안디옥 교회 (행 11:19-30)

옛날 미국 영화 가운데 "한 발은 천국에"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 즉 어느 처녀와 약혼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의학과 법학을 전공해서 의사 면허도 변호사 자격증도 갖고 있는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처가에서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 기대와는 달리 이 청년이 의사도 하지 않고 변호사직도 버리고 목사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실망한 처가 쪽에서는 극구 만류했지만 자기는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았다고 하면서 신학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선교사로 지원을 하여 멀리 중국으로 가소 선교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는 현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박해를 심하게 받았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집단폭행을 당하여 옷을 다 찢기고 개 끌리듯 끌리기도 하고 손에든 성경책을 빼앗아다가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한 번은 교회 안에서 설교하다가 폭도들이 던진 돌에 이마를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실신하는 등 수 없이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국가로부터 자기들에게 맞지 않는 종교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추방을 당해서 마침내는 자기나라로 쫓겨오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시골 조그만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였는데 교회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너무 굶어서 아내는 임신 중에 영양실조로 몇 번씩이나 유산을 하고 자기는 너무 허기지고 오래 배가 고팠다가 먹을 것을 만나면 너무 급하게 많이 먹기 때문에 위가 상해서 위장병 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너무 고통을 당하다 보니까 인간인지라 때로는 변호가 개업을 한다든가 의사로써 환자를 받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 하나님께 헌신한 몸인데 사명을 버리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혀를 깨물면서 이겨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가 너무 낡아서 비가 새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가 없으므로 그 가난한 신자들을 설득해서 교회를 건축하기로 결심하고 건축을 하는데 자기가 작업장 제일선에 서서 일을 하다가 망치질을 잘못하여 손가락을 때렸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가 으스러져서 절단하는 사고까지 겪었습니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건축을 완료하고 종 탑 높이 음악 종까지 설치하였습니다. 헌당식 날 자기가 손수 음악 종을 틀어 온 마을에 울러 처지게  했더니 그 소리를 듣고 그 곳 주민들이 격려해 주려고 모두 몰려와서 교회가 초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 목사는 그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기가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이마의 흉터와 불구가 된 손을 보이며 위장병도 걸려 있노라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곳의 주민들이 크게 감동을 받아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기로 결심했고 점차 복음화가 되어 그 지역이 100% 다 믿는 크리스천 타운이 되었다고 하는 영화 줄거리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생 끝에는 성공이 온다는 얘기 같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깊은 뜻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주인공인 그 청년이 의사 면허와 변호사 자격증을 가졌으면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으로 크게 대접받고 상류층 생활하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을 다 포기하고 목사가 되어 모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느라고 굶주리고 헐벗는 고난의 길을 택한 한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 영화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바울을 그린 것같이도 하고 모세를 그린 것 같기도 하다) 

바울은 당시의 최고의 학력과 종교적으로 산헤드린 회원과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부귀영화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주님의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분토 같이 버리고 십자가의 고난 길을 택해 걸어간 사람이었습니다. (고후11:22-28) (빌3:4-8)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세워진 교회 중에 가장 기억할 만한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최초의 교회요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세워진 교회이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를 세운 자들의 정신은 숭고 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정신 위에 복음만을 전하고자 하는 일념에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I. 복음 전파하는 교회입니다.(20-21)

"주 예수를 전파하니....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박해를 받아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모여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꾸준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안디옥 교회가 탄생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복음전파, 이것은 예수의  지상명령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도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라" 고 신앙 고백한 사람들의 집합체입니다. 이 신앙 집합체인 교회의 사명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지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대리로 하는 것이며 주님의 지상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그 명령을 준행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전파에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눅4:43-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내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이처럼 주님 살아 계실 때에 친히 복음을 전파사시고 또 승천하시며 친히 명령하신 것이 이 복음 전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무디는 매일 한 사람에게 예수를 말하지 않고는 자지 안 했습니다.
어떤 때는 자다가 일어나 한 밤중에 거리에  나가 전도를 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은 어떻게 전도할까 생각하다가 우산 속으로 들어가서 "당신 예수 믿고 구원받으시오" 그랬습니다.
그때 상대방이 "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여보시오! 그렇게 할 일 없으면 집에가 아기나 보시오."
그때 무디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 여보시오! 이것이 내일이오--"
여러분! 복음 전하는 것이 내일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리교 대 전도자 셈 존즈 목사는 예수 믿기 전에 지독한 술 주정꾼으로 이름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거리를 지나가다가 친구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두 사람이 술을 잔뜩 마시고 이리 비척 저리 비척 비틀거리며 고래고래 고함소리를 지르는 주정꾼을 보았습니다.
셈 존즈목사는 그 친구를 향해 "여보게 저기 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던 내가 가고 있네 하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나와 여러분은 지금 무엇이 되었겠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었을까요?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과거 나와 같은 자들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도할 줄 모른다' 하는 자가 있습니까? 그 마음에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에 대한 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격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렘20:8-9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시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핍박이 와도 고통이 와도 순교하면서도 복음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복음 전파하는 자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되기를 축원합니다.


II. 배우는 교회입니다.(26)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일면동안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배워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후일 선교사 파송을 담당하여 이방선교의 사령부가 된 것은 온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잘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의 취약점은 성경을 너무 등한히 하는 경향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책 들고 나와 예배드리는 자 많습니다.
여러분! 그런 성경 수준가지고 어떻게 예수를 증거하며 어떻게 이단을 이길 수 있습니까? 성경을 배워야 내 속에서 능력이 나갑니다. 그러므로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가르침을 받아 훌륭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12제자는 예수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므로 훌륭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저 예수 믿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오래 믿었다고 들은 풍월만 가지고는 완전한 신자가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성경 말씀을 얼마나 배웠느냐에 있습니다.
오늘날 조금 배우고 너무 아는 체하는 지식적인 교만한자가 많습니다. 오늘날 오래 믿고 들어 많이 아는 체 하는 교만한자가 많습니다.

배로 강을 건너고 있던 대학교수가 사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철학을 아슈?"
"아니요 들어본 적도 없소"
"그럼 당신은 인생의 4/1을 잃었군요. 그럼 지리학은?"
"아니요 그것도 모릅니다."
"그럼2/1을 잃었군요 그럼 천문학은?"
"그것도 모릅니다. 그럼 4/3을 잃었군요."
그때 강풍이 불어 배가 뒤집혀 두 사람은 강물에 빠졌습니다. 이때 사공이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헤엄 칠 줄 아시오?"
"아니요 모릅니다."
"그럼 당신은 인생 전부를 잃게 되었군요"
진작 알 것 알지 못하고 적은 지식, 세상 것 알아서 설치는 교인도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제자는 없고 전부 스승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승 되기 전에 제자가 됩시다. 해마다 많은 결신자들이 교회생활을 계속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마다 전도는 있는데 교육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여 교회에 데려다 놓았다고 다 교인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철저하게 말씀교육을 시켜야 완전한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배워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단에 미혹 당하지 않습니다. 배움이 없는 사람은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 같아서 뿌리가 없어 말라 죽어버립니다.

행17:11절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말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았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안디옥 교인들이 괜히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줄 압니까? 많이 배워서 배운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냈기에 얻어진 이름입니다.


III.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26)

그 당시 제자들에게는 알려진 이름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을 나사렛 이단 또는 갈릴리 사람으로 불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우리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일찍이 안디옥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주시해 보고 붙여준 이름입니다.

여러분!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압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그리스도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들의 대화다운데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무리를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불려지고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애석하게도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심오한 의미가 담겨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쉽게 얻어진 이름이 아닙니다. 스테판 같은 순교자들의 피 값으로 얻어진 이름입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만 된다면 내 한 몸이야..."
희생으로 얻어진 이름입니다.

롬14: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르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이렇게 얻어진 이름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단어 속에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잘못된 행위는 내가 사랑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답게 살아 주님께 영광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IV. 구제하는 교회입니다.(29절)

29절 "그때"가 나오는데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천하에 크게 흉년이 들 것이라 예언을 했습니다. 그때 안디옥 교회는 기근이 임박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애굽인 들처럼 곡식을 비축하진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구제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도왔습니다.
구제야말로 교회가 해야할 최우선적인 사업입니다.
왜냐하면 구제는 우리 지신의 고통과 결핍에 대한 최선의 준비 책이기 때문입니다.

시41:1절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는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고 보호하사 살게 하리라." 고 약속하셨고

시37:19절 "자비를 베푸는 자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 풍족하리로다."

눅12;33절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곤혹한때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준비는 이 약속을 믿고 선을 행하며 서로 돕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절약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11:2절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인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준비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것을 배워 실천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전들은 흉년의 재난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보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29절 "각각 그 힘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대로 능력만큼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안디옥교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대로 재난 당한 형제들을 도왔습니다.

30절 "이를 실행하여... 보내니라"
그들이 결정한대로 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재난 당한 이웃을 도와 오늘 현대인들은 지식의 소화불량에 걸려있습니다.
많은 지식이 머릿속에 만 담겨져 있을 뿐 실제 생활에 순환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지식의 체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에서 오는 반신불수의 고민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과 생활이 단절된 데서 오는 아픔입니다.
여러분!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나? 말과 행실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2:6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단정했습니다. 현대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일3:18절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즉 사랑이 깃들여야 할 곳은 혀끝이 아니라 손끝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일백 마디 빈말보다 한가지 실천이 상처받은 형제에게 치료제가 되어 재난을 극복하는 일에 활력소가 됩니다.


V. 선교하는 교회입니다.(13:2-3절)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여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교회의 수평적이 기능가운데 제 1차적이 것이 선교입니다. 선교는 사회에 대한 봉사와 참여와 적선 중에 단연 최고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안디옥교회가 하나님의 선교 명령을 순종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세워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여러분! 가장 유능한 전도자를 얻고 훈련시켜 파송 할 수 있는 교회, 가장 성공적인 목회자를 얻고 훈련시켜 파송 할 수 있는 교회, 가장 설득력 있는 선교사를 얻고 훈련시켜 파송 할 수 있는 교회라면 하늘의 저울대로 달아 볼 때에 수천 명의 교인을 가진 교회보다 훨씬 큰 교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아무런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오직 그들 뒤에 있는 교회를 믿고서 그들 위에 머무시는 주님의 손길을 따라 그들 앞에 주님이 영접하시고 상급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앞서가는 교회가 베푼 눈부신 행위였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런 경지에까지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라면 진실로 안디옥교회늬 설립이야말로 피의 산물입니다.
스테반이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아 순교함으로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교회로 꾸준히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빛냈고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대 교회로 성장하자 구제하는 교회로 가난한 교회들을 도왔습니다. 또 한 걸음 더 나가 선교사를 파송 하는 교회로 항상 앞장서 갔습니다.

이렇게 파급된 선교의 열기는 바울을 통해 전 아시아에, 아시아에서 지중해를 거쳐 전 유럽 천지에 편만하게 되었는데 이 운동의 선봉 진에 안디옥교회가 나선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바로 그 바톤을 이어받아 앞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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