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축복은 이루어 진다 (창 49:1-12)

  • 잡초 잡초
  • 585
  • 0

첨부 1


축복은 이루어 진다 (창 49:1-12)

I. 축복의 가문을 만들어라

아들이 못 보던 노트북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디서 났니?" "학교에서 친구 건데 그냥 집어 왔어요." "임마, 너 그건 도둑이야. 정말 필요하다면 아빠한테 말해야지." "아빠한테 얘기해도 안 사 줄 거잖아요. 정말 필요하면 아빠가 회사에서 집어다 주지." 그 아들에 그 아버지 아닙니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가장 무책임한 말이 부전자전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내 아버지가 이랬으니 나도 이렇게 살고, 내 자식에게도 이런 모습을 전해 줘야 한다면 이건 비극 가운데 비극이지요.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합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물려진 모든 저주들을 단절하고 축복의 가문을 이어갈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최고 경영자 예수」라는 책을 써 유명해진 로리베스 죤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 가운데 「억만금의 재산보다 한 줄의 예언을 물려 주라」는 책이 있습니다. 부모는 예언을 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평생 그들에게 힘이 되는, 용기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믿음 장으로 알려진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전당에 올라있는 여러 가문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서 축복의 가문이 어떻게 대를 이어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에 대한 히브리서의 평가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들은 그 자손들을 동일한 약속을 받은자로 인정하고 존중했습니다.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브리서 11장 9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비전을 받고 약속을 받았지만 내 자손들도 동일한 비전과 약속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받은 비전은 곧 내 자식들의 비전이다. 내가 받은 축복과 약속은 동일하게 내 자손들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이것을 내 자손들에게 나누어야 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억하십시요.
그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은 세상으로부터도 인정받으며 살 수 없습니다. 내 부모로부터 존중받으며 살지 못하는 자녀들이 역사로부터 존중받는 인물로 성장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II. 부모의 손 끝에 축복권이 있다.

성경에 보면 복은 계승됩니다. 자손대대로 이어집니다.
복된 가문의 세대 계승 원리가 무엇입니까? 축복하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11:20-21절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자기가 받은 비전과 복을 가지고 자손들을 축복하는 방법을 통해서 축복된 가문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이삭이나 야곱의 일생은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습니다. 이삭은 소년시절 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이끌려 모리아산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모리아산 언덕에 오른 아브라함은 장작을 쌓아놓고 아들 이삭을 묶습니다. 아들아 네가 바로 하나님께서 준비한 어린양이니라. 이삭은 반항하지 아니하고 항거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 아버지에게 순복합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제가 아마 히브리서 기자였다고 한다면 이 장면이 이삭의 생애 가운데 절정 클라이막스 생애였다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장면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더욱 파란만장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보는 재미로 살았던 아버지, 그 아들이 짐승에 찢겨 죽은 줄 알고 피묻은 채색옷을 끌어안고 평생 가슴을 졸이며 살아왔습니다. 청년시절엔 눈 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 먼길로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속고 속이는 처절한 피흘림의 투쟁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한판 씨름을 하게 되지요. 환도뼈가 부러진 다음에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어 집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그들의 이런 파란 만장했던 일대기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일생 가운데 가장 빛나고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멋있었던 장면이 무엇인가? 그 수많은 인생의 여정 가운데 핀셋으로 찝은 듯이 단 한토막을 찝어서 자손들을 축복하는 이 장면이 야곱의 인생의 클라이막스였다고 말합니다.

「이삭은 그 자식들을 축복했다. 야곱은 그 자식들을 축복했다.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으며 하나님 앞에 받았던 축복과 약속과 비전을 남기고 죽었다. 이것이 그들의 인생이었다.」 하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믿음 중의 최고의 믿음은 축복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절정은 축복하는 순간입니다. 이 땅에서도 영원히 대를 이어가고 영원히 남는 믿음은 축복하는 믿음입니다. 신앙의 총결산은 마지막날 내가 남기는 축복에 의해 판가름납니다. 성도가 가진 가장 위대한 재산은 축복권입니다. 특별히 부모는 자식을 향한 축복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 「그 부모의 손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손끝으로 내 자식을 저주하면 그 자식이 저주를 받습니다. 이 손끝으로 내 자식을 축복하면 내 자식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훗날 많은 기자들에게 둘러 쌓여 있을 때에 젊은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을 오늘의 링컨으로 만든 힘이 무엇입니까?" "내가 잠자리에 들 때나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이 얹혀져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기도는 나를 격려하는 축복으로 넘쳐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던 오두막 통나무집에는 언제나 구석구석 어머니의 축복의 기도 소리가 가득히 스며 퍼져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내게 주셨던 축복의 말씀은 내가 들에서 일을 할 때에도 선거에서 여러번 낙방할 때에도 내가 상원의원으로 혹 대통령으로 직무를 감당할 때에도 그 어머니의 축복의 소리는 언제나 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머니의 손 축복하는 기도의 소리였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훌륭하게 만든 것입니까? 어머니의 축복, 어머니의 축복의 손길이었습니다.


III. 끓는 물 지파 르우벤

창세기 49장 오늘 본문은 야곱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야곱은 자식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축복을 하는데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엔 책망과 경고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야곱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축복합니다. 그 내용은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대단히 예언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들이 미래에 겪게 될 일이니 하나님만이 아시는 내용이었지요.

자녀들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자손들을 어떻게 축복할 것인지 자손들에게 뭘 남기고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49장 중에서도 오늘의 본문 1절-12절은 야곱이 레아에게서 처음 낳은 네 아들에 관한 축복입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3절 4절은 맏아들 르우벤에 관한 예언입니다.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큰 기대를 받고 태어납니다. 어린시절 르우벤은 참 총명하고 똑똑했던 모양입니다.

3절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문제는 "탁월하였도다"하고 끝이 나야 하는데 꼬리가 달라집니다. "탁월하다마는" 아버지의 기대는 무너지고 총명함은 깨지고 인생은 역전패 당하는 불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어떻게 됩니까?
4절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 지파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끓는 물 지파"입니다. 르우벤은 부뚜막에 앉혀 놓은 애기처럼 늘 안정성이 없고 불안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한때는 탁월한 신앙생활, 탁월한 충성을 하다가 끓는 물처럼 쏟아져 빈그릇이 되어 있다면 그가 바로 르우벤 지파, 끓는 물 인생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제사장의 옷에 달린 12지파를 상징하는 12보석이 나옵니다. 그 중 석류석 즉 에메랄드가 르우벤 지파의 보석입니다. 이는 파도치는 초록 바다 색깔을 띤 보석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에메랄드는 정욕의 파도가 넘실대는 풍파 많은 인생을 상징했습니다. 르우벤은 태어날 때 그 어미가 "보라 아들이로다 내가 먼저 아들을 낳았다"고 외쳐 르우벤 - 즉 보라! 감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흔들거리는 삶과 신앙 때문에 장자의 특권을 모두 상실하고 그 어머니에게 가슴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맙니다. 옛말에 변덕이 심한 사람은 귀신도 안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 말이지요.

4절을 계속 보세요. 결국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그렇습니다. 르우벤 지파에서는 그 아버지의 예언대로 왕은 물론 제대로 된 사사나 선지자 한 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4절 후반절입니다.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세상에 이런 망나니가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의 첩, 서모 빌하와 통간을 했다는 겁니다.

성경이 이 부끄러운 얘기를 빼지 않고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환경속에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 당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깨어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르우벤이 매장되지 않은 것, 맞아 죽지 않은 것만도 감사한 일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이런 르우벤도 제사장의 가슴에 그 이름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당당히 한 지파를 형성하여 출애굽의 대열에 동참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교회, 광야교회, 출애굽교회에 동참한 르우벤을 신명기 33:6에서 이렇게 축복합니다.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맞아 죽어야 할 놈을 번성으로 축복합니다.

때로 경고를 받고 책망을 받지만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가족으로 인정받기만 하면 우리는 천국을 얻게 됩니다. 르우벤도 출애굽의 대열, 천국입성의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십니까?


IV. 작두 지파 시므온과 레위

본문 5절-7절은 야곱의 둘째, 셋째 아들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5절에 히브리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곳에 한번 나오는 단어를 들어 이 두 지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잔해하는 기계"라는 말입니다. 5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개역번역에서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라고 했습니다. "잔해하는 기계"란 이 말은 신구약 성경에 꼭 한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여기 나오는 잔해하는 기계는 둘이 의기투합해야, 둘이 힘을 모으고 박자가 맞아야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가위나 작두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하나가 받치고 하나가 자르고 양날이 잘 맞아야 자를 수 있는 기구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작두 지파"입니다.

남편이 삐뚫어진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것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기는 커녕 함께 삐뚫어져 가는 아내가 그 곁에 있다면 이들이 작두 가정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신앙, 자기 축복을 자르는 것입니다.

아비가 참외 도둑질을 하는데 그 자식이 망을 봅니다. 이런 부자를 작두 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죄를 짓는데 만류하기는 커녕 둘이 박자가 척척 맞아 죄짓는 일에 신이나 있다면 이들이 바로 작두 친구입니다. 결국 너는 나를 자르고 나는 너를 자르고 서로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삽니다.

죄짓는 일에는 박자가 잘 안맞는 관계가 좋은 관계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침체되는 일에는 박자나 아구가 잘 안맞는 관계가 좋은 관계입니다. 남을 욕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는 손발이 잘 안맞는 것이 좋습니다. 한 사람이 침체되면 한 사람이 끌어주고 한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면 한 사람이 바로 잡아주는 관계 - 이것이 명콤비입니다. 이것이 천생연분입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는 어릴 때부터 상처받는 일에 짝꿍이 척척 맞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상처와 관계된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분노, 혈기, 노여움, 분기... 다 같은 말들이지요. 이 열등감과 상처를 이기지 못하여 모의를 하고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일에 작두의 받침과 칼날처럼 박자가 척척 맞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남을 죽이려던 그 작두에 자신이 잘려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영향력과 축복이 그 작두에 짤려 나누이고 흩어졌습니다. 12지파 인구를 계산하기 시작한 민수기 1:23에서 시므온 지파의 수는 59,300명입니다. 역사가 흘러 민수기 26:14에 가면 시므온 지파는 22,200명만 남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인구가 늘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번성입니다. 그런데 시므온 지파는 절반이 훨씬 넘는 37,100명이 줄어듭니다.

왜요? 남을 해치고 죽이는 힘은 작아질수록 축복입니다. 그것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파는 하나님이 그 힘을 거두시고 영향력을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레위지파는 아예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12지파 사이에 흩어져 살게됩니다. "내가 그들을 흩으리로다"는 아비의 축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성과 잘못된 성품 - 악의 영향력은 작아질수록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복이 되는 것입니다.

시므온 지파는 그래서 12보석 중에 남보석 - 사파이어를 얻게 됩니다. 고대에서 사파이어는 단단하고 아름답지만 한번 깨지면 여러 갈래로 깨지고 갈라지는 성격으로 이해되어졌습니다. 박살이난 자동차 유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시므온 지파 - 사파이어 지파의 모습입니다. 먼 훗날 모세가 축복할 때는 12지파 중 유일하게 시므온 지파는 그 축복이 빠지고 있습니다. 축복에서 제외된 지파, 모세의 입에서 잊혀진 지파가 시므온 지파입니다. 산산이 부서져 사라진 지파가 시므온 지파입니다.

여러분, 작두 인생이 되지 말라는 겁니다. 그 작두로 시므온과 레위는 원수를 갚았다고 쾌재를 불렀지만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살펴보니 그 작두에 잘린 것은 자신뿐이었습니다. 자기 축복이 산산이 부셔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이 마지막이 좋아야 좋은 인생입니다.


V. 사자 지파 유다

오늘 본문 8절 - 12절은 유다 지파에 관한 축복의 내용입니다. 절수로는 다섯절, 글자수로는 12아들 축복 중 ¼에 해당하는 긴 축복입니다. 유다를 축복하는 8절 9절에 보면 세 종류의 사자가 등장합니다. 사자 새끼, 여기 사자 새끼는 젊은 사자를 말합니다. 수사자 그리고 암사자입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는 밀림을 정복하고 모든 짐승을 다스리는 사자 지파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이 나타나 나라를 통일하게 될 것이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빼앗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10절에서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임금의 지팡이 "규" 즉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난해귀 하나가 등장합니다. 유다 지파의 왕권이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라"고 합니다. 여기 실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실로는 사무엘서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서기 전까지 성막이 있던 자리, 법궤를 모셨던 자리입니다. 실로라는 히브리 문자적 의미는 "그것을 가진 분, 왕권을 가진 분"이란 뜻입니다. 유다 지파가 가진 지팡이의 참된 주인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의 축복은 이처럼 메시야 약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를 통해 족장시대가 왕권시대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것은 메시야에게로 연결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때로 실수가 있고 때로 고난이 있고 때로 위기가 있겠지만 유다 지파는 실로가 오시기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그때까지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 지파의 비전이요 사명이요 축복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위기가 있을 수 있고 고난과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승리해야 합니다.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실로가 오시면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믿음의 줄을 굳게 잡고 승리해야 합니다.

역사가 흐른 다음 신명기 33:7에서 모세는 12지파 중 유다 지파를 가장 먼저 축복하며 유다의 이 리더십을 인정하고 확인해 줍니다. 제사장의 가슴 속에 있던 아름답고도 붉고 풍성한 홍보석이 유다 지파의 보석입니다. 마치 온 인류를 구원하고도 넘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듯 제사장 가슴엔 유다 지파 홍보석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12절에서는 거리마다 포도나무가 즐비하여 나귀를 포도나무에 맬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포도주와 우유가 얼마나 풍성한지 세탁하고 목욕하고 양치하는 물처럼 쓸만큼 흘러 넘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에겐 이러한 충만과 풍성을 하나님은 주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쓰임받고도 지치지 아니할 만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은혜의 강물에 빨래를 할만큼 부어주십니다. 은혜 충만, 성령 충만, 예수 충만한 모습을 그려줍니다.


VI. 축복은 이루어 진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의 도구로 사용된 야곱의 축복은 이스라엘과 그 열두 지파는 물론 모든 열방 나와 여러분 인생을 좌우하는 축복입니다. 야곱의 12아들에 대한 예언은 갑작스럽게 생각나는 대로 하는 그런 축복이 아닙니다. 12아들의 출생기사, 야곱의 축복 그리고 모세의 축복이 하나처럼 맥이 통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축복이 아니라 성령님이 하신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대를 이어 흘러가는 예언이 되었습니다. 이 축복 예언은 앞으로 12지파가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때 그들의 등불이 되고 힘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이 되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됩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도래합니다.
메시야의 위로는 임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십시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자녀를 축복하십시다.
이 믿음을 가지고 교회를 축복하십시다.
이 믿음을 가지고 민족을 축복하십시다. 축복은 이루어진다.

실로가 오시기까지 내게 주신 축복의 권세를 가지고 그 복을 계승하며 사십시요.
힘들고 어려워도 견디십시요.
실로가 오시면 모두 갚아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식을 축복하세요.
축복은 이루어집니다.
(류영모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