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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나의 크리스마스 찬양 (눅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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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크리스마스 찬양
본문 : 눅1:25, 41-79

  해 마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찬양을 많이 할까요? 여러분은 어떤 가사가 들어있는 찬양을 많이 하는가? 저는 성탄에 관련된 찬양 중에 제일 좋아하는 찬양이 “오 거룩한 밤이다.”이다.

오 거룩한 별들 반짝일 때, 거룩한 주 탄생한 밤일세. 
오랫동안 죄악에 얽매여서 헤매던 죄인을 놓으시려.
우리를 위해 속죄하시려는 영광의 아침이 동이 터온다.
경배하라 천사의 기쁜 소리
오 거룩한 밤, 주님 탄생하신 밤
그 밤, 주 예수 나신 밤일세.

저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내 안에 감격이 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들어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에 부르는 찬양에는 여러분의 신앙의 고백이 들어있어야 한다. 찬양의 가사가 여러분의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하고 체험이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찬양으로 고백하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은 침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아버지 사가랴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그들의 찬양의 공통점을 찾아보며 은혜받기 원한다.

첫째로, 그들의 찬양의 공통점은 주께서 날 돌보신다(God Looks Upon Me)는 내용이었다.

엘리사벳은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라고 누가복음1장25절을 통해 고백했다.
 
  여러분! 엘리사벳이 가지고 있던 부끄러움은 무엇인가? 불임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여자에게 불임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녀가 없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라고 생각했다.
여러분!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여자의 고통을 아는가? 모든 것이 다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돌잔치..) 그래서 아이를 임신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잖아요? 그동안 엘리사벳이 얼마나 심리적인 고통과 기도를 했겠는가?
이런 엘리사벳을 하나님을 돌아보셨다. 여기에 나오는 “돌아보다”(epeiden)라는 말씀은 “점을 찍어두다, 찜 해두다, 호감을 가지고 바라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부끄럽게 만드는 문제가 무엇인가? 가진 것이 없어서 부끄러운가? 공부를 못해서 부끄러운가? 내세울만한 무엇이 없어서 부끄러운가? 감추고 싶은 과거 때문에 부끄러운가? 사람들은 우리의 부끄러움에 돌을 던지고 흉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사용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시키실 것이다.

성탄은 내 부끄러움을, 내 약점을 내 자랑으로, 내 강점으로 변화시켜 놓은 날이다. 

사자성어에 ‘동병상련(同病相憐)’란 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픈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속을 압니다. 위로를 받아본 자만이 위로의 능력을 압니다. 부끄러워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성탄이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고 내 부끄러움을 없게하시는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주께서 나를 돌아보신 날”이 바로 올 해 나의 크리스마스, 여러분의 성탄이 되어야 한다. 엘리사벳의 찬양이 나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외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이렇게 외쳤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호감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심을 알았으니 어찌 찬양이 나오지 않을 있겠는가!

마틴 부버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황을 가리켜 “하나님의 일식 현상”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의 삶을 혹시 말한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일식’이 무슨 현상인가? 해가 사라지는 현상이 아니다. 달에 해가 잠시 가려진는 현상일뿐이다. 달뒤에 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식 현상의 반대 표현이 무엇일까요?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나를 정말 돌보시고 계시냐?”라고 의문을 던져선 안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삶의 고통을 해석하는 열쇠이다. 병상에 누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실패의 자리에 앉자 있어도, 상처의 자리에 주저 앉자 있어도, 고통의 현장 속에 있어도 잊지 말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크리스마스에 여러분의 가슴에서 불려질 찬양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돌보십니다!”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마리아의 찬양의 내용은 무엇일까요?(눅1:46-48)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여종이라고 소개했다. ‘비천하다’는 것은 신분이 낮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성화에 나오는 것처럼 왕관을 쓰고 반지를 끼고 금으로 수 놓은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이 아니다. 아주 가난한 여인 그리고 순박한 시골 여인이다. 낮이면 들에 나가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빛 앞에서 일해야 먹고사는 사는 여인이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그 시절에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인이다.

이런 여인을 하나님이 돌보셨다. 여기서 ‘돌보셨다’는 것은 호의를 가지고 자세히 돌보아 주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이 비천한 여인을 인류를 구원할 예수님의 어머니로 삼으시는 호의를 베푸셨다.

그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은혜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입술로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으로 찬양하였다. 기뻐서 감격해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세상에는 비천한자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강한 자, 존귀한 자에게만 관심을 둔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돌보셨다. 억눌린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죄인들을 돌보셨다.

예수님께서 비천한 우리를 존귀한 자로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 이하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여러분! 제가 어디서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저보다 인생의 연륜이 많으시고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그 여인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여러분! 우리에게 약한 것이,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때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강점이 되는 것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함으로 은혜를 받는다. 병들었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은혜를 체험한다. 어떤 분은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 한번을 읽지 못하였는데 사업이 망하고 부도를 내고 그래서 감옥에 갔는데 거기서 성경을 읽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입은 분도 있다.

이번에 성탄절에 비천한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란다.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찬양하여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보셨는지 그의 찬양을 내용을 보겠다.
(눅1:68-71)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사가랴는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내용을 찬양하는가? -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epeskeqato) -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속량’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몸값을 받고 종을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적으로 ‘속죄’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다.

마가복은 10장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장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된 이수정은 성탄절날 구원받는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압력으로 인해 소망을 잃고 사는 이 땅의 조선인들에게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성탄절은 반상의 신분과 오래된 악습으로 몸살을 앓고 사는 조선 땅을 영적으로 해방시키는 첫 걸음이 되는 날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돌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그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성탄 시즌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체, 술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TV이나 시청하고 있지 않겠는가?’ 이번에 성탄절에는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

또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세상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사탄이 우리를 위협한다. 때로는 ‘성공’을 통해서,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때로는 모순된 사회구조를 통해 우리를 위협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신다.

번지점프를 해보셨는가?- 저도 안 해보았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강을 향하여, 때로는 절벽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의 발목이 생명줄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그 생명줄때문에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그 생명줄이 모든 위협으로 지켜주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줄이시다. 

롬8장 35절에서 39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해야 한다. 나의 영적인 생명만이 아니라 나의 육신의 모든 것들을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의 부끄러움을 자랑으로 바꾸시고, 비천한 우리를 존귀한 자로 돌보시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구원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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