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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영광과 평화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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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평화 (눅 2:8-14) 

  케네스 O. 갱글의 글입니다.
  아주 추운 겨울날, 한 농부가 부엌 창문을 계속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가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창밖에는 작은 참새들이 추위에 떨면서 집 안의 온기에 이끌려 머리로 유리 창문을 부질없이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옷을 껴입고 발자국도 하나 없는 눈을 헤치며 농장의 헛간 문을 열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는 불을 켜고 지푸라기를 펼쳐 놓은 채 그 위에 과자 부스러기를 뿌려 놓았습니다. 과자 부스러기를 따라 따뜻한 헛간으로 인도하려는 농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참새들은 그저 두려운 마음에 어둠 속으로 자꾸만 숨어들었습니다. 농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봤습니다. 참새들의 뒤로 가서 헛간 쪽으로 몰아 보기도 하고, 참새들 스스로 헛간으로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숨어서 지켜보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참새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농부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농부는 곧 얼어 죽게 될 참새들을 바라보며 문득 한 가지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내가 잠시 동안이라도 참새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을 따뜻하고 안전한 곳으로 안내할 수 있을 텐데.’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바로 성육신의 의미가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이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영원한 참된 평화를 가져옵니다. 인간 사회에는 갈등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온갖 근심, 걱정, 불안, 공포를 야기시키는 사건들이 계속 됩니다. 평화를 바라는 인간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도처에서 싸움과 전쟁의 소문만 들려올 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서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첨단 과학을 도리어 가공할 핵무기의 위협을 고조시켰고 세계 평화를 내세운 각종 협상과 회담은 자국의 실리를 앞세운 나머지 평화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된 영광과 평화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섬길 때에 이루어집니다. 영광과 평화는 인간의 노력이나 작품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늘 성탄절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영광과 평화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심을 믿고 경배하는 것은 최고의 기적이고 행복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영광과 평화의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영광과 평화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본문 8절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들 중에서 목자라고 하는 직업은 아주 천시되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목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이 하는 일이란 유대인의 규례에 의하면 부정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목자들은 밖에서 여러 명이 교대로 밤을 새워 도둑이나 다른 짐승들로부터 양떼를 지키며 보호하는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술이나 마시고 잠이나 자는 나태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무시 받는 작은 일이지만 자신의 힘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양떼를 지키는 소명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도 짐 속에든 떡을 꺼내기 귀찮아서 안 먹고 그냥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갓을 비딱하게 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서 부탁을 했습니다. “내 짐 속에 든 떡 좀 꺼내 주시오.” 그랬더니 갓 쓴 사람이 말합니다. “여보시오. 나도 귀찮아서 갓도 바로 쓰지 않고 그냥 가는데 떡을 꺼내 달란 말입니까?” 게으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도 꺼내 먹기 싫어하다가 마침내 굶어 죽습니다. 잠언 19장 24절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가난이 강도같이 들이닥칩니다. 게으른 사람이 잘사는 법은 없습니다.

  교인들의 특징은 부지런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부지런히 믿고 일해야 합니다. 밤을 새워서 일하는 목자들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도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더욱 열심을 품고 믿고 일해야 합니다. 자기 분야와 책임 맡은 부서에서 땀 흘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목자들처럼 열심히 일함으로 영광과 평화의 주님과 더불어 사시는 축복을 기원합니다.

2. 영광과 평화는 믿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본문 10-11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좋은 소식’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행복한 뉴스입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예언되었습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기억나게 하고 그와 관련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께서 죄악으로 지옥갈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실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체상으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을 때 영광과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믿는 마음과 가정과 사람과 나라에 충만케 됩니다.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태우어’ 또는 ‘피스티스’입니다. 이 말에는 ‘맡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신뢰한다’, ‘아멘’, ‘진실’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맡긴다’는 말은 신뢰함으로 모든 짐을 던진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자기 힘으로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며 굴려 버린다는 뜻입니다. 다른 종교나 인간의 지식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짐을 자기가 짊어지고 합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종교적으로, 과학적으로 노력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께 내 영혼을, 생명을, 인생을, 건강을 자녀를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아멘’은 ‘기둥에 기댄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돈에 기대고, 권력에 기대고, 자식에 기대고, 사람에게 기댑니다. 그러나 그 기둥은 약하고 변합니다. 현대인의 불안이 어디에서 옵니까? 내가 기대고 있는 기둥이 안전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주변의 모든 것이 내가 기대려고 할 때 지켜 주지 못하기에 불안한 것입니다. 인간은 더 안전하고 완벽한 것을 찾지만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안전한 반석이시고 요새시고 구원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는 삶에 참 평안이 있습니다.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너 자신을 믿으라. 그러면 실망할 때가 온다. 친구를 믿으면 죽거나 이별할 때가 올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믿으면 사라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메시야임을 믿는 것은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광과 평화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영광과 평화는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본문 12-14절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늘 불화와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 근본적인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화를 선물로 소유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영광과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믿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성도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합니다. 나가서 전파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를 발견하고 그리고 가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는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자기 생각과 경험과 편리와 고집대로 하는 사람들은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됩니다. 영광과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옮기고 입을 열어 찬양하고 전해야 합니다. 어떤 고난과 고통이 있어도 생명을 바쳐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유명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작곡한 하이든(Franz J. Haydn 1732~1809)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여러 학자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또 피곤은 어떻게 푸십니까?”
  하이든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습니다. 일에 지치고 피곤할 때 나는 그곳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해서 해결하지 못한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순종하기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만큼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영광과 평화의 도구가 되기 위해 더욱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광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함께 축하합시다. 일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들에게 영광과 평화는 임하게 됩니다. 오늘 예배와 찬양대의 특별한 찬양을 통해서 영광과 평화의 예수님을 만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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