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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멜리데 섬에서의 역사 (행 2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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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데 섬에서의 역사 (행 28:1~15)

‘신화는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당을 창당한 정주영 회장을 따라가지 않고 결별하고 나서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3년째 되던 해인 1995년 펴낸 자서전입니다. 현재까지 117쇄에 60만 부가 팔려나간 이 책엔 이명박의 모든 것이 녹아있습니다. 그의 인생관, 철학, 배고픔과 가난에 대한 생각, 그와 현대건설, 그와 정주영, 대학생활, 어머니에 대한 생각 등이 담겨있습니다. 이 당선자는 말합니다. “신화는 없다”고.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물이 신화처럼 보일 뿐이라고…. “현대에서의 27년,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사람들은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화는 신화를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만 신화일 뿐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나는 나를 가로막던 위기와 도전 앞에서 우회하지 않고 정면에서 돌파했다.”

그렇다면 과연 기적과 역사는 누구에게 나타납니까?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증거가 따라올 것이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배우지 않은 새로운 말을 하고,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을 것이며, 환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라고 해서 믿는 자들에게 기적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바로 그 역사의 산 증인이 바로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난의 산 증인이요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였던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의 손을 통해서 많은 역사를 나타내신 것은 바로 그가 주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기를 오히려 기뻐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때로는 기적을 바랍니다. 하지만 기적은 그저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믿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기에 고난도 각오하는 것이요 오히려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었기에 그 약속을 따라 숱한 죽음의 길을 헤치고 로마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는 바다의 폭풍 가운데서 약 2주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극적으로 몰타 섬에 상륙을 하게 됩니다. 비록 배는 다 깨져버렸지만 그러나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무사히 섬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들에 대해 함께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있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약속 가운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먼저 생각해 봅니다.

바울과 함께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무사히 육지에 오릅니다. 그 섬은 몰타 섬이었는데 비가 오고 날씨도 추워서 사람들은 다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분에 넘치는 친절을 베풀며 불을 피워 놓고 바울 일행을 맞아 줍니다. 그런데 바울이 장작을 한 무더기 모아다가 불에 넣었는데, 뜨거운 불 때문에 독사가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날씨도 다 추워서 떨 수밖에 없는 때 장작더미 속에 독사가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당연히 날씨가 추워지면 독사는 굴속으로 들어가 동면하게 될 텐데 이 지역 날씨가 아직 뱀이 동면하기에는 이른 날씨였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분명한 것은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섬사람들은 독사가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틀림없이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살아 나왔는지 모르지만 정의의 신이 그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라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렸고,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뱀에게 물리는 것을 본 섬사람들은 당연히 바울의 몸이 부어오르거나 그가 갑자기 땅바닥에 쓰러져 죽으리라고 예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바울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들은 바울을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며 바울을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이 무슨 해독약을 쓴 것도 아닙니다. 섬사람들이 바울의 몸이 부어오르거나 갑자기 땅바닥에 쓰러져 죽으리라고 예상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독사가 맹독을 지닌 독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그들 생각처럼 당연히 바울의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겨야 마땅합니다. 한데 바울은 태연하게 독사를 불에 떨어 버렸고 그리고 나서 한참을 지나도 여전히 멀쩡합니다. 아니 독사에게 물리면 당연히 이상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독사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말씀대로 독사에게 물려 당연히 독이 그 몸에 들어갔지만 바울은 아무런 해도 당하지를 않고 멀쩡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은 단지 바울만을 위한 약속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뱀에게 집어 들어 물려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우리들도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독사와 같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당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흥분할 이유도 없습니다. 마주쳐 싸우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변명할 필요도 없구요. 왜냐하면 믿음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할 때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언제든지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변자요 우리의 변호사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나를 돕는 자가 되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할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내가 네 산성이요 네 방패가 되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모든 믿는 자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이 믿는 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고 해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속상한 일이 있습니까?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만 간구하십시오. 그럴 때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이 바로 저와 우리들 가운데서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는 생각할 것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낫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나타나는 신기한 역사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심지어는 바울을 신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 근처에 땅을 소유하고 있던 그 섬의 추장인 보블리오는 너무도 신기한 것을 본 나머지 바울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삼 일 동안, 친절하게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때마침 보불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치료의 방법이 전혀 없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입장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를 찾아가 기도하고 그 사람의 몸에 손은 얹었더니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자 그 섬에서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바울을 찾아와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바울 일행을 잘 대접해 주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어는 바울이 떠나려 할 때 필요한 물건을 배에 실어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물론 바울이 요구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고마운 마음에 자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약속은 또 다시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믿음 안에 있는 우리들이 병든 자를 볼 때 믿음으로 그에게 손을 얹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면 역시 동일한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 믿음으로 약속을 의지해서 손을 얹고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낫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누구는 빼놓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조건은 단 하나 믿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 믿기만 하면 이런 표적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병에만 적용되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아픔에 다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상하고 우리의 삶이 엉망이 될 때도 역시 우리가 믿는 마음으로 손을 얹듯 주님 앞에 간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힘을 잃어버리고 낙심하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 희망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사람에게는 그 삶이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항상 나타날 수 있도록 흔들림이 없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마침내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게 됩니다.

석 달이 지난 후, 바울 일행은 그 섬에서 겨울을 보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뱃길에 올랐는데 그 배의 앞에는 쌍둥이 신 표시가 있었습니다. 배는 수라구사에 도착해 삼 일을 지내고 다시 그곳을 떠나 레기온에 도착하였는데 그 이튿날 남풍이 불어와서 그곳을 쉽게 벗어나 이틀 만에 보디올에 닿았는데 거기서 신자들을 만나 그들의 초청을 받고 일주일 동안, 그들과 함께 지냈고 난 뒤에 마침내 로마에 도착을 하게 되는데 로마에 있는 형제들은 바울 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세 여관까지 마중하러 나옵니다. 바울은 그들을 보자, 용기를 얻었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의 길에는 바울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비록 바다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했지만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따랐던 바울의 길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가기도 전에 곳곳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어 바울을 환영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움도 있지만 하나님의 위로도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바울이 마음으로는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었던가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몰타 섬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 보여주심으로 그곳의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고 로마 문턱의 보디올이라는 곳에서는 그곳에 있는 성도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게 하시더니 로마에 도착할 때는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마중하러 나오는 모습을 통해서 다시 용기를 얻도록 만들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바울을 이렇게 격려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고비 고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오늘 우리들 가운데도 함께 하심을 우리 역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 당할 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이 바울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는 계속되는 어려움 가운데서 정신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흔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그런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모저모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의 터널을 뚫고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던가요? 그렇지 않다면 오늘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는 잊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를 잊으신 적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앞으로도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 하시 줄로 믿으십시오. 그 믿음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지금 이 아주 깊은 수렁 속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을 항상 생각하십시오. 아니 그 표적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날마다 이기고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표적이 날마다 우리 가운데 따르는 귀한 삶이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바울 그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반드시 나는 로마에까지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순간순간 바울을 위로하시며 용기를 잃지 않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 바울은 지금 로마에 있습니다. 꿈만 같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는지 생각만 해도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의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하지만 그 고난이 있기에 드디어 많은 고관들까지도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던 것이요. 그로인해 온 로마가 점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네로 황제가 로마에 대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기회로 모함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단지 한두 명이었다면 그랬겠습니까?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네로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그리스도인들을 없애려고 했겠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졌던 가요? 아니죠.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지하 무덤으로 숨어들면서까지 예수님을 믿고 섬겼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며 죽음의 늪으로 뛰어들었던 한 믿음의 사람이 있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습니다. 이제 그 한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사회는 그리스도인들을 냉대합니다. 못살게 굽니다. 괴롭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 앞에 많은 표적이 따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로 믿음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흔들림 없이 항상 표적이 따르는 믿음의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가시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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