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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요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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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 예수 그리스도 (요 1:9-14)

오늘 저는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온 인류와 우리 각 사람에게 어떠한 축복을 가져다주었는지 말씀해 드림으로 피차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증언합니다(창 1:27). 이는 사람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까?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동방의 에덴에 낙원을 창설하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도 좋은 나무들이 자라게 하셨는데 그 중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도 있었으며, 강이 에덴에서 발원해서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개의 큰 강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지상 낙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맡겨주시면서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가 지켜야 할 한 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절 이하에 보니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많은 조건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단 한 가지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한국인들이 황금시대라고 생각하는 고조선 시대에는 단지 8개의 법조항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그 중 3개 법조항만 전하고 있는데, 1)살인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 2)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해야 한다 3)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데려다 노비로 삼으며, 자속(自贖)하려는 사람은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 비하면, 오늘날 우리는 법이 너무 많아서 이루 다 셀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이는 그만큼 현대 사회가 복잡하고 악해서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하였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맛있는 과실을 마음껏 따먹을 수 있었으므로 땀 흘려 수고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사랑스런 배려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아담을 위한 배필로서 하와를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보고 말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선으로 두 사람은 가정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두 사람은 벌거벗고 살았으나 부끄러워 아니했습니다. 이는 그 두 사람이 죄가 없는 천진무구한 상태였음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에게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하루는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우리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이 사건을 대하면서 ‘어떻게 뱀이 말을 한단 말이냐?’ 하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계시록 20장 2절에 보면,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와를 꾄 뱀의 정체는 마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뱀의 말에 하와가 대답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뱀이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하와는 이미 뱀의 꾐에 미혹된 상태였으므로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만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선악과가 아니더라도 에덴동산에는 아름답고 향기롭고 맛난 과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것은 뱀의 말을 듣고 그 마음이 교만해진 데 원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이 싹텄던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뱀의 말은 거짓임이 판명되었습니다.

금단의 과일을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죄로 인한 수치감을 느끼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마귀의 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 대하여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고 하셨습니다.

인류의 어머니를 거짓말로 속였던 마귀는 지금도 거짓말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거짓말에 넘어가면 아담과 하와처럼 비참한 상태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의 벌거벗은 것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하였을 뿐 아니라,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처럼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피하게 됩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피해서 어둠속에 숨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영적 생명의 단절을 의미하며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뱀은 이빨이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먹이를 물면 놓치는 법이 없이 기어코 삼키고 맙니다. 마귀도 마찬가지로 한번 종으로 삼으면 끝까지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도적에 비유하시면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가 한량없으셔서 범죄한 인간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동산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들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담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에 빠져 죽게 된 아담에게 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벌을 내리셨지만 동시에 구원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으므로 인간은 땀 흘려 수고하는 삶을 살다가 죽어야 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징벌과 함께 구원의 약속을 주셨는데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면서 하신 것인데 그 속에는 구세주에 대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곧 ‘여자의 후손’이 와서 하와를 꾄 뱀의 머리를 밟아 으깰 것이라는 말씀은 메시야가 오셔서 뱀 곧 마귀를 멸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패배의 장소가 아니요 승리의 장소입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2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인류의 철천지원수인 마귀를 멸하고 인생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생들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생들을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에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4장 9절로 10절에 보니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된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며, 드디어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시고 탄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시나 죄가 없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기 때문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 귀한 목적을 마음 깊이 새기고 이번 성탄절을 맞이해야 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대로 이 세상에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시절에 저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범죄한 사람은 아담인데 어찌하여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아담이 개인 차원에서 범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는 곧 그의 후손인 우리 모두의 범죄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5장 12절에 이르기를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백인은 백인을 낳고, 흑인은 흑인을 낳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은 죄인을 낳습니다. 타락한 본성이 조상에게서 후손에게로 유전됩니다. 그 결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하신 말씀과 같이, 모든 사람이 사망의 그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인간의 영이 죽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영적 무지에 빠져서 우주만물을 보면서도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음 받은 해와 달과 별들과 산과 바다와 강, 짐승이나 초목과 벌레와 바람과 천둥과 같은 것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우상숭배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하신 대로,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기 마련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잘난 자도 못난 자도 죽음 앞에서는 차별이 없이 평등합니다. 현대 의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할지라도 죽음을 정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각종 질병에 고통 받는 것은 인간들이 죽음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의 씨앗을 품고 태어나서 그것을 키우면서 살아간다고 한 독일의 시인 릴케의 말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인류가 이룩한 문명도 죽음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길이 남아 있는 유적들은 무덤이 대부분입니다.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물인 피라미드들은 왕들의 무덤입니다. 중국이 자랑하는 병마용갱은 길이가 230m, 너비가 62m나 되고, 구워서 만든 병사의 인형이 8,000여개, 말 500여 필, 전차 130대가 열을 지어 서 있는데, 이 유물은 진시황제의 무덤의 일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주에 가면 신라시대의 왕들의 거대한 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제사상을 차리고 분향하며, 조상들의 무덤을 새롭게 단장하는데 힘씁니다. 그리고 산 자들을 위해 죽은 자들에게 묻습니다. 세상 종교들은 죽은 자들을 빙자해서 신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은 문화 또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퇴폐적인 것을 즐기며, 세계 곳곳에 썩은 냄새가 나는 추악한 악습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들의 이 같은 비참한 실상에 대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이 사망의 그늘 아래 앉은 인류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2장에는 이 같이 말씀합니다. “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사슬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의 세력을 파하시고 우리를 생명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6장 23절에 이르기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고 하시고, 무덤의 돌을 옮겨 놓게 하신 후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살아나왔던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병자들을 고쳐주신 일이 수없이 나옵니다. 어떤 병자라도 주님께 나오기만 하면 다 고침을 받았으며,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귀신들이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마다 그 심령이 치료받아서 타락한 생활을 청산하고 바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와 막달라 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신생을 경험합니다. 타락한 삶을 청산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 믿는 자들이 많아짐에 따라서 타락한 문화가 점점 건강한 문화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심령에 임하면 병든 심령이 치유되고, 아울러 우리 몸도 건강을 회복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믿는 자들에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고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승리를 삶 속에서 누리면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태양빛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듯이, 영혼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죄의 어두운 그늘에 있던 자들을 의의 밝은 빛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사망의 그늘에 놓여 있던 자들을 생명의 빛 가운데로 영생으로 인도하십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고 하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의로운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제 예수 믿는 우리는 구세주께서 발하시는 치료의 광선을 받아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셨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예수 믿어 구원받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단지, 명목상으로만 자녀의 지위를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에 이르기를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육신의 죽음이 저주가 아니라 영생에 들어가는 관문이요 부활에 참예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가리켜 잠시 자는 것에 비유합니다. 아무쪼록 성도님들께서는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되 풍성히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에 이렇게 증거합니다.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말씀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이십니다. 이 말씀은 곧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사역에 동참하신 성자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 성자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자들은 영적 소경이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본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의 눈을 뜬 자들입니다. 소경은 밝은 대낮에도 캄캄한 밤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신 예수님이 오셨으나 그 빛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자들은 죄와 사망의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빛 가운데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버리고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곧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아직도 죄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사망의 그늘 아래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저들의 마음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고 말씀하신 대로, 구원의 문은 온 인류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습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내일 모레로 다가온 성탄절에는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을 교회로 초대해서 구주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그리할 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저들에게도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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