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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동방 박사들의 경배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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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박사들의 경배 (마 2:1-12)

오늘 우리는 인류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기쁨을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성탄절은 전 세계적인 축일(祝日)로서 기독교인들을 비롯해서 온 인류가 명절로 지킵니다. 교회마다 신자들이 모여 축하 예배를 드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합니다. 사람들은 카드를 주고받으며, 거리마다 상가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캐롤송을 틀어 놓아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탄절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단지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휴일로 여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의 사자가 목자들에게 말씀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그 날, 천군과 천사들이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한 사람은 천사들의 현현을 본 목자들과 별의 인도를 받고 온 동방박사 세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그 외에는  그 누구도 아기 예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요 인류의 구세주가 오셨으나 변변한 방 한 칸 제공하는 자가 없어서 마리아는 누추한 마구간에서 아기를 해산해야 했습니다.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싸서 뉘인 곳은 포근한 요가 깔린 요람이 아니라 소나 말에게 여물을 담아주는 구유였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요 1:11) 하신 성경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당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구세주께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첫 번째로,  아기 예수를 적대한 헤롯왕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당시 유대 나라를 다스리던 헤롯왕은 에돔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 유대인으로서 로마에 공을 세워서 유대의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수완이 대단하였고 큰 치적을 남겨서 대왕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심이 없는 자였으므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를 이방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유대인들의 호감을 살 목적으로 무려 46년에 걸쳐서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축했습니다.

헤롯은 자기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면 누구든지 죽였습니다. 의심이 많고 잔혹해서 자기 장모와 아내와 세 아들을 죽였습니다. 이 같은 헤롯왕이 다스리던 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비극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비극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적에 멀리 페르시아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헤롯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자기인데 또 다른 왕이 태어나다니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뇌가 명석한 헤롯은 박사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야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관해서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헤롯은 즉시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소집하고는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일을 기다려도 동방 박사들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자 속은 줄을 알고는 심히 노하여 군사들을 풀어서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 유아들은 예수님 때문에 죽임 당한 최초의 희생자들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세상의 구주로 오신 아기 예수를 결코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가 손을 쓰기 전에 이미 요셉이 천사의 지시를 받아 그 아내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어찌 헤롯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인류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나 헤롯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으로써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심지어는 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면서 철저하게 말살했습니다. 교회를 헐고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공산주의가 망했으며, 기독교 신앙은 더욱 흥왕해 나가고 있습니다.

헤롯은 자기의 보좌를 메시야보다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면 몸소 메시야를 찾아가 그 앞에서 자기의 왕관을 벗어서 바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불신앙의 사람이었으므로 감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고 하셨습니다. ‘이 돌’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것입니다. 구세주를 죽이려 했던 헤롯은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그의 왕국과 함께 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이려 했던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무수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며 만왕의 왕으로서 경배를 받고 계십니다.


두 번째로, 메시야의 나실 곳을 말해 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동방 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였을 때에 헤롯은 즉시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소집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에 박식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체함이 없이 미가서 5장 2절을 인용해서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박사들인지라 어디에 무슨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으므로 무엇이든지 묻기만 하면 척척 답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연구했으나 메시야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메시야를 만나러 나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는 메시야가 필요치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메시야가 없이도 그들은 종교지도자로서 모든 것을 잘 처리하고 신앙을 이용해서 세속적인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당에 메시야가 오신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방해가 될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인들은 자칫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종교인으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수십년 기독교인 행세를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경 지식을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관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더라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지식이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불신 이웃 중에는 “나도 성경을 읽어보았기 때문에 알 만큼 압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 속의 난로 불을 쬐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림 속의 난로 불은 따뜻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 몸을 따습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성경 지식도 이와 같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도리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합니다.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성경의 예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나 그 예언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보인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날 것이냐고요? 그야 유대 베들레헴이지요. 미가 선지자가 그렇게 예언했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은 유대교를 대표하는 성직자이고, 서기관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랍비들입니다. 성경에 관해서 라면 그들만큼 박식한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니 그 해박한 성경 지식이 종교적인 특권을 누리는 방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기독교인 가운데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색은 기독교인이고 또 직분을 받아서 목사, 장로, 집사 노릇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인으로서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습니다. 여러 종교가 있는 중에서 기독교가 좋아서 기독교인이 된 것일 뿐, 예수 믿고 구원받는 데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마음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다닌 것으로 구원받지 못하며,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한 것 가지고 구원받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세 번째로,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했던 예루살렘 거민들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본문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였을 적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셨다”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도 있듯이 소문은 신속하게 퍼져나갔습니다. 더구나 다른 소문도 아니고 유대인들이 조상 적부터 수천년 동안 고대해왔던 메시야가 오셨다는 소문이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에게 메시야가 나셨다는 소식처럼 놀랍고 반가운 소식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숨이 넘어가다가도 힘을 얻고 소생할 만큼 소망 찬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거민들이 놀라 흥분하고 소동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메시야가 나셨다는 소문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치 심장이 멈출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면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소동은 메시야의 오심을 대망하던 사람들이 감격해서 나타낸 반응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한 데서 표출된 혼란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가서 동방박사들의 말을 믿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에 관해서 알아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런 담화문을 발표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산헤드린은 이번에 이방인들의 방문으로 인해 일어난 메시야 탄생과 관련된 소동이 아무 근거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니 마음을 진정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 이는 동방박사들 때문에 일어난 예루살렘 거민들의 소동이 그냥 한번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끝난 것을 볼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말입니다.

기이한 사실은, 메시야의 탄생 소문을 듣고 그토록 소동했던 예루살렘 거민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박사들을 따라서 아니면 나름대로라도 메시야를 찾아 베들레헴으로 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1992년도에 우리사회는 휴거 소동으로 시끌시끌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해 10월 28일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에 사람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사업을 정리하고 그 집단에 들어갔으며, 파탄된 가정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정부 당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나섰습니다. 티비 방송에 이단 전문가를 초빙해서 시한부종말론의 잘못된 점을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습니다.

당시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입만 열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해서 열렬하게 말했습니다. 이번 10월 28일에 반드시 오신다고, 틀림없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열심은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데서 비롯된 불안감의 표출에 불과합니다. 평소에 신실하게 믿는 성도들은 주님께서 언제 재림하시더라도 동요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강림의 일시는 아들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으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키면서 살면 되는 것이지,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불안해하며 소동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천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장차 하늘 구름을 타시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계시록 1장 7절에는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예언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당황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단과 사이비한 자들의 선동에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를 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 동방박사들의 믿음에 관해서 알아봅시다.

동방박사들에 관한 언급은 마태복음 2장의 내용이 전부이고 더 이상의 설명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박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마고스”는 본디 고대 페르시아 종교의 제사장을 의미했다는 점에서 동방박사들이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대에는 별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술이 성행하였는데, 주로 사제들이 이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점성술에는 천문학적인 지식과 미신이 섞여 있었습니다. 특히, 고대에는 새로운 별의 출현과 왕의 탄생을 관련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동방박사들이 새로운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동방박사들이 유대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말한 것을 보면, 구약 성경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로부터 수천 리나 떨어진 페르시아인들이 어떻게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었느냐고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아시는 대로 유대인들은 주전 6세기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적이 있었고, 고레스 왕 때에 그 중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으나 여전히 많은 유대인이 페르시아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히 유대교를 좋게 여겨서 개종하는 이방인들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들은 새 별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메시야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지체하지 않고 유대인으로 나신 아기를 찾아서 길을 떠났습니다. 현대는 도로와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몇 시간 또는 하루 이틀이면 페르시아에서 유대까지 갈 수 있지만, 2천 년 전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낙타를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오려면 여러 달이 걸렸을 것입니다. 또한 여행 경비가 막대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행 중에 무슨 일이 생길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볼 때,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으러 온 것은 대단히 희생을 각오한 결단력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박사들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실천할 때 그 믿음은 참된 믿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기는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실천이 너무 부족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축복을 받아 누리고 싶지만 말씀대로 살려 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갑니다. 그 결과,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했습니다. 마태는 그들의 행적을 이 같이 증언합니다.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0)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께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과 같이 우리는 왕이신 주 예수께 경배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현세적인 축복을 받는 것이 예수 믿는 일차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병 고침 받고 부자가 되는 것이 예수 믿는 일차적인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 것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째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귀한 예물을 준비해서 아기 예수께 바쳤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은 하나같이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황금은 모든 귀금속 중의 왕으로서 만왕의 왕께 합당한 예물입니다. 유향은 제사장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분향할 때 사용하던 향품 가운데 하나로서 이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한 예물입니다. 몰약은 시체를 썩지 않게 바르는 약재입니다. 몰약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볼 때, 동방박사들은 메시야에게 가장 합당하고 귀한 예물을 바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을 본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되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해야 합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예물 중에서 가장 귀한 예물은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함으로써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던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준행하기 위해 왕의 부탁을 무시하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그 같은 행동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헤롯왕의 말보다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헤롯 왕을 비롯해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다 놀라고 소동했으나, 일시적인 소동으로 그쳤을 뿐 곧 일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 동방박사들을 따라 메시야를 찾아 나선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의 어느 여관의 마구간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뵙고 경배했습니다.

메시야를 대면하였을 때 그들의 감격과 환희가 얼마나 컸을까요?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구주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감사하기 위해 이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의 심령에도 구세주를 만남으로 인한 감격과 환희가 넘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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