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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 (눅 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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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준비하는 사람 (눅 2:36-38)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설렙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 흥분됩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다리고자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며칠 전부터 기분이 들뜨고 잠을 못 이루고 기다립니다. 이런 준비와 이런 감정으로 만났을 때 그 기쁨의 감동이란 배가가 될 것입니다. 즉 얼마나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리느냐에 따라 그 기쁨이 크다는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 한 분만 기다리고 주님 한 분으로 만족했던 안나라는 여자 선지자가 아기 예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나라는 여인은 결혼 한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84년을 과부로 살았으니 지금 몇 살이나 되었겠습니까? 적어도 100살은 족히 넘은 듯합니다. 그런데 그런 안나가 태어나신 예수님을 보고 메시야임을 알아차린 안목과 은혜가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성탄하신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 준비하며 살아야 할 몇 가지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성전 중심적인 마음입니다. 본문 37절 말씀을 보십시오."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그랬습니다. 84년 동안 성전 중심적으로 살았다는 말은 정말 존경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보면 자나 깨나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를 위해 전심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단지 자기만 복을 받기 위한 계산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을 받겠다는 것 이전에 교회 중심적인 생활 자체가 큰 행복임을 알고 하시는 것입니다. 칭찬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교회가 늘 깨끗하게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는 것에 참 희한하다 생각했습니다. 각 방마다 휴지통이 찰만하다 싶으면 비워져 있고 그래요.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봤더니 김재석 장로님이 아무도 없는 새벽에 교회 곳곳의 쓰레기통을 다 비우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주방봉사가 끝나면 음식찌꺼기가 나오는데 봉자사자들이 이것은 안 가져갑니다. 물이 흐르니까 못 가져가지요. 이것까지 다 치우시더라고요. 가만히 지켜봤더니 그 다음 주도...그 다음 주도...그 일을 무려 6년째 해오고 계시더라고요. 괜히 이 말씀 드려가지고 공식적으로 발도 못 빼겠구나 하지 마시고 장로님 이제 언제든지 힘드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하십니다. 늘 성전 중심적인 마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주일 아침 일찍 교회학교부터 어른예배까지 차량 봉사하는 김상현 집사님이 있습니다. 혹시 어떤 분 중에 당연한 일을 가지고 뭐 그러나 하실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한 게 아닙니다. 성전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를 백년 믿고 아무리 대단한 직분을 가져도 못하는 일입니다. 이거 쉽지 않거든요. 여러분, 이거 그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나면 하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행복은 물질적인 것이나 다른 어떤 것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은 나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곳이 있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 중에서 교회에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래서 언뜻 보면 안나는 일찍 과부가 되어서 84년이나 혼자 살았으니 불행한 여인인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고 아마 그녀 자신은 성전을 떠나지 않으면서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84년 동안 교회 중심적으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안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안나의 신앙과 인격과 삶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그녀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마음이 되었을까요? 그런 겸손한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정말 불행한 사람은 자기에 매여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과거에 한번 잘한 것을 가지고 남을 비웃고 삽니다. 그 잘못된 자존심 때문에 머리를 숙일 줄 몰라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불행해지고야 후회합니다. 오늘날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 잘못된 자부심입니다.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별 것 없으면서 남을 한 수 아래로 봅니다. 가슴이 큰 자부심은 좋은 것입니다. 믿음은 그러한 자부심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남을 우습게 아는 편협한 자부심은 자기의 마음을 병들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자기의 삶의 중심으로 놓고자 하는 믿음 중심적인 마음, 교회 중심적인 마음은 행복과 은혜의 원천입니다. 올 성탄은 믿음 중심적인 삶을 다짐하는 성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믿음이 중심 되는 마음입니다. 안나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메시야를 만나겠다는 간절한 소원 때문입니다. 84년의 기다림은 결코 짧은 기다림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며 어떤 경우에도 선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을 보십시오. 공통적으로 무엇이 있습니까? 거의 모두 예외 없이 그들에게는 기다림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 빨리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실패란 없습니다. 다만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실패일 뿐입니다.

37절 하반부를 보십시오."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여기에서 안나의 오랜 기다림의 원천이 기도하는 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명한 에디슨이 천 개의 발명품을 발명하기까지 만 번 실험을 하는 땀을 흘렸고, 만 번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을 압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참을 수 있고, 그 인내의 열매는 정말 달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가끔 안타까운 하소연을 하며 기도를 의심합니다."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기도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몇 년 동안 기도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들어주지 않을 수 있습니까?"그러나 기도응답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나의 현재와 장래와 사후의 진선미를 위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 기도응답이지 내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는 것이 기도응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도하되 응답이 오는 모양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드려진 기도는 어느 한 기도라도 헛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수고와 땀이 수반된 기도를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 중심적인 삶입니다. 오늘 안나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도 기도하며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탄은 믿음이 중심 되는 성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성탄의 주님을 만나는 준비의 마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38절 말씀을 보십시오."마침 이 때에 나아 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안나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메시야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나이에 그처럼 살아서 메시야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녀는 감사합니다. 이 감사는 84년 동안의 기다림이 아름답게 보상받는 순간의 감사입니다. 이처럼 조건 없이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는 환경이나 조건이나 처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와 인격에 좌우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성탄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정말 감사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습관에 의해서 와 있습니까? 황금 같은 휴일을 보낼 수 있었는데 직분 때문에, 명예 때문에 와 앉아있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 성탄하신 주님을 만남이 기쁨이어야합니다. 84년을 기다려 만난 안나와 같은 심정이 우리 속에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감사가 나옵니다.

여러분! 감사거리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복이고,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주어질 놀라운 복을 예비하는 그릇이 됩니다. 그런데 대개 거의 모든 자연적인 사람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행복한 일은 행복하고 편하니까 쉽게 잊어버리고, 불행한 일은 마음속에 맺히니까 오래 기억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성령의 감동 가운데 살면 불행했던 일보다는 행복했던 일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신비롭게도 주님을 생각하면 감사할 제목들이 생각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신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래서 오늘 성탄하신 주님은 우리의 힘과 소망이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희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보고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며 살기로 작정하고, 삶을 감사하시고, 인생을 감사하시고,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사시고, 예수님을 더욱 사모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그러한 삶 속에 하나님은 더욱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성탄하신 주님을 만나러 성전에 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 주님을 만나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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