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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여전히 어두움이 유혹이 되는가? (요 12: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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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두움이 유혹이 되는가? (요 12:44~50)

“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

성탄 절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성탄절 장식을 통하여 성탄절 분위기를 느낍니다. 우리 교회도 밤이면 환상적인 세계가 됩니다. 정말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어두움 속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성탄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것을 가장 분위기있게 느끼는 시간이 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46절 “내가 세상에 빛으로 왔나니” 이것은 요한복음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장, 3장, 8장, 11장, 12장에서 계속 반복되다가 여기서 다시 한번 예수님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다는 의미는 성탄절 트리 장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빛이라는 말씀은 어둠 속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는 숨길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없이 다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자신의 실체가 다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빛은 엑스레이보다 더 강합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모든 죄, 과거의 숨은 죄 자신도 잊어버린 죄까지 다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죄 그 자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것이 대단히 싫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완벽하게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고 가장 경건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빛되신 예수님 앞에서 서니 그들이 가장 경멸하던 세리보다도 못한 죄인이었습니다. 세리는 자기가 죄인인 것은 알지요.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모르니 더 큰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특히 분노했던 말씀은 죄의 종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라구?” 그래서 예수님을 그렇게 무섭게 배척한 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것인데,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는 사람에게는 이 말처럼 황당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직접 대놓고 “회개하세요!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하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거부감이 드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굉장히 기분 나빠하실 것입니다. “아니 왜 나한테 그래?” 이렇게 반응하실 분들이 아마 많으실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실상을 모릅니다. 어둠 속에 우리가 갇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시라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달려 죽으셨지만, 실제로는 십자가 위에 비참하게 죽어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당황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 말은 내가 십자가에서 못박혀야 할 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보면 충격을 받습니다. ‘내가 그렇게 죄인인가?’ 우리는 십자가에서 비로서 우리가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 상태에서 살았는지 알게 됩니다.

전에는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나쁜 사람도 많고 정말 무서운 죄를 지은 죄인도 많고 세상 살기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그 모든 사람들보다 더 죄인이라는 것은 모르고 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예수님은 바로 그런 빛이십니다.

  간음한 남편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도 남자시지만 남자들끼리 솔직히 이야기해 봅시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잖습니까?” 기가 막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그 실상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부인이 남편 꿈을 꾸었는데, 옆자리에서 자는 남편이 신음을 하기에 보니 뱀이 칭칭 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깨어 잠을 못자고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얼마 뒤에 남편이 간음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서운 음란의 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자신이 그것을 알면 도무지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와 달라’고 발버둥을 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지내는 실상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왜? 다시는 우리가 더 이상 어둠 속에 거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자신의 실상을 알게 되면 통곡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의 일을 정리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서 예수님 만나고 3일 밤낮을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가장 의롭고 완전한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부심이 대단히 강했고 자기만큼 의로운 사람이 누가 있느냐? 이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강력한 빛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아는 눈이 뜨이고 난 다음에 그는 예수님에게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하고 고백하고 주님이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반응을 보입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췰 때 “와” 하고 빛으로 나아갈 사람은 없습니다. “악!” 하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악!”하고 숨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 도망을 갑니다. 그가 아직도 마음에 어두움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반응은 어떨 것 같습니까?

(요 3:19-20)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자꾸 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말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심판하려 하신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를 그대로 다 드러내는 것이 심판을 받는 느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심판하려고 우리의 어둠을 드러내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리라" 자신의 죄를 바로 깨닫고 회개하게 하여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47절)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라”

죄를 깨달아야 회개하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가 실제로는 어떤 삶을 사는지를 모르고 죄 속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더욱 빛으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해야만 됩니다. 왜? 그래야 자기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구원받은 자의 반열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레인즈파크 한인교회 장로인 의류업으르 크게 하시며 유학생 수련회 강사로 섬기는 권재민장로님이 간증을 했습니다. 이 분이 예수님을 믿고도 한동안 포르노 영화에 빠져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자기 생각에는 그게 큰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다른 여자가 생긴 것도 아니고 세상 재미 그런 것들은 다 즐기면서 사는 것이 아니냐? 그것 때문에 큰 죄를 안 짓는다면 별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유럽 각국을 출장 다닐 때, 반드시 포르노 영화관을 누비며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난 뒤에 출장만 갔다 오면.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답니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픈 것입니다. 그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답니다. ‘하나님이 내 죄를 책망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정말 내가 포르노 영화를 보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이라면 3번 더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도 그러면 제가 하나님의 역사인 줄 알겠습니다.‘하고 3번 실험을 해 보았답니다. 사람이 죄인 줄 알아도 그것을 끊기가 그렇게 힘이 듭니다. 그것도 미련이라고 세 번 씩 시험해 볼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출장가서 집에 전화를 걸어 아무 일이 없음을 확인하고 마지막 날에 포르노 영화를 보고 집에 도착해 보니 식구 중 누군가가 정말 아픈 것입니다. 세 번 씩이나. 그 순간 음란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아픔을 깨달아지는데, 말할 수 없이 회개하였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들도 똑같은 유혹 속에 있으니까. 믿음이 좋다는 크리스찬 청년들도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은 그런 것들을 구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때였지만 유럽 여러 나라는 개방되어 있었어요. 유학생들 중 거기에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학생이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둠 속에 거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로 하여금 어두움에 거하지 아니하게 하시려 함이라” (46절)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지만 심판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48절에서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은 나의 말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놓고 갑자기 48절에서 내 말이 그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복음 메시지를 짧게 전하려다 보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하는데 불신자들이 가장 거부감을 갖는 메시지라고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은 천당가게 하고 안 믿는 사람은 지옥가게 하시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사실은 이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지옥가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하는 것입니까?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을 안 믿어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지옥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본래 지옥에 가게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지옥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전도 집회 때 천국과 지옥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후, 결신 초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기 원하시는 분은 일어서시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일어서고 앉는 것이 지옥과 천국의 운명을 바꾸는 순간입니다. 그저 일어서기만 하면 지옥 갈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여러 번 반복하여 초청하여도 일어서지 않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계신 것입니다. 그 분들은 그렇게 가만히 있었기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밧줄을 던졌을 때, 그가 죽으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밧줄을 붙잡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 줄 밧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이 심판한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고 빛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여전히 어둠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둠의 일들이 내게 유혹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지난 날을 돌아보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 .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나갔을 때 첫 목회지 교인들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또 목사로서 살았지만 깜깜한 어둠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빛 가운데 삽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빛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어둠의 유혹에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알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어둠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더 이상 쾌락이 아니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시 51:11-12)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성령님의 친밀한 교제를 경험하고 난 다음에 그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끊어지는 일은 그 때가서 경험해 보면 죽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성령님이 더 이상 내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성령님과 교제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통곡을 하면서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게 다시 성령의 감동을 회복시켜 주십시오.” 다윗이 했던 기도가 저의 기도였습니다. 이제 결코 돌아가서도 안되고, 또 돌아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꾸 빛 가운데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어둠의 유혹을 받으시는 분은 영적인 싸움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이 그냥 어두운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 사람을 영적으로 미혹을 해서 자기 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성도는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영이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우리는 빛 가운데 계속 살 수가 없습니다.

바빠서 피곤해서 기도 못한다는 말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쁜 것도 피곤한 것도 아닙니다. 단 영적으로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구원받은 자도 넘어뜨리려고 우리 주위를 으르렁거리고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집 방안에 미친 개 한 마리가 들어와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쁘고 피곤하면 그대로 두고 잠잘 수 있습니까? 아이들이 학교 가는데, 미친 개 한 마리가 따라가면 “잘 갔다 오너라.” 하고 보내고 태연히 집 안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는 사자처럼 우리 아이들을 삼키려고 마귀가 역사한다는 것을 진짜 알고 나면 바쁘다 피곤하다는 것이 기도를 하지 못하는 핑계가 안됩니다.

  목회 잡지에서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성적인 문제로 스캔들이 생겨 교회를 사임하고 가정이 깨어진 비참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음란한 생각에 사로잡혔느냐 하면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는 것입니다. 이웃 친구가 놀러 와서 부모의 허락을 받고 함께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아버지가 보던 포르노 잡지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날 그 아이는 그 포르노 물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부모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종이 아니라 음란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둠의 세상입니다. 부부가 서로 어둠의 권세의 유혹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지금 곳곳에서 어둠의 유혹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 12:35-36)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명심해야 할 말씀입니다. 실제로 어두움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빛 가운데 살지 않으면 어둠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롬 13:11-14) “ ...너희가 ...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엡 5:8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숨기고 감추고 누르고 사는 복음은 없습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해결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운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빛을 경험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들의 죄를 감추려고 하고 숨기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드러나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절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마굿간에 태어나셨지만 영적으로는 우리 마음에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성탄절에 다시 한번 우리 안에 빛으로 역사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어둠에 묶여 있는 것이 있다면 드러나야 합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외면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밝혀집니다. 이것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지금, 우리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숨김없이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십시오. 기생 라합이 나옵니다. 또 며느리 다말과 시아버지 유다가 관계를 맺은 일, 다윗과 밧세바 간음 사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다 드러내셨습니다. 왜 그리하셨을까요? 누구도 과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 여러분,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밝은 사람입니다. 결코 “내 죄! 내 죄!” 하며 살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서 죄를 깨닫는 동시에 죄인인 자신에게 부어주시는 폭포수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밝은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워도 정도를 걷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빛으로 이끌어내시려고 하는 것은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어두움 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세계적인 전도자요 설교자인 무디의 과거는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습니다. 친구들에게도 놀림을 받았습니다. “너처럼 희망이 없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네가 우리 친구라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무디는 늘 고독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경도 제대로 찾지 못했고, 교회학교 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려고 찾은 성경학교 입학도 거절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 교육이 미흡하고 학교 생활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열등감에 살지 않았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누가 그를 흉보면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실상을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빛으로 사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무디를 들어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19세기 미국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성탄절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인생을 완전히 뜯어바꾸신 분입니다. 여전히 어둠이 유혹이 됩니까? 오늘 다시 한번 빛이신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성도 여러분, 여전히 어두운 것이 여러분의 유혹으로 옵니까? 그렇다면 성탄절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나가십시오. 성탄절의 기적이 여러분의 마음에 다시 뜨겁게 일어나야 합니다.
이 시간 빛으로 오신 주님을 향하여 서시기 바랍니다. 빛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기도하겠습니다.

“성탄절에 제 마음 안에 빛으로 오신 주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내가 더 이상 어둠 속에 묶여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 내가 정말 부끄러운 사람들 앞에 나를 드러내는 일이 너무 두렵습니다. 주님 제가 빛 가운데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에서 처리해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예수님으로 정말 다시 시는 그 놀라운 은혜로 제가 살기를 원합니다.
올 성탄절 때 내게 정말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는 성탄절 되게 해 주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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