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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과 하나님의 역사 섭리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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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하나님의 역사 섭리 (눅 2:1~7)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 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인간의 삶이 우연의 연속이라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인간은 우연 속에서 태어나고 우연 속에서 살다가 우연 속에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을 믿는 우리 성도는 그 수준에서는 완전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일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필연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검색해보니 “우연”이라는 단어가 7번 나오는데 실상 그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요 계획입니다. 
롯이 보리 이삭을 주우러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줍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정말 우연입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아합왕이 어떤 군사가 쏜 화살에 우연히 맞아 죽게 됩니다. 그것도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엄청난 계획과 섭리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인간사 매사를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믿으면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적어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성도라면 우리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나타남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사건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류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역사 섭리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무렵 로마 황제는 가이사 아구스도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전국에 영을 내렸습니다. 로마에 속한 나라 모든 백성은 다 고향땅에 돌아가 호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은 세금을 잘 징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 명령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사렛 동네에 살고 있던 요셉과 정혼녀 마리아도 호적을 하러 고향땅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입니다.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갈 때 마리아는 이미 잉태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만삭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약 145km 되는 먼 여행길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임신을 핑계로 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황제의 명령이기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에 메시야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5장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근본이 “상고에 태초”이신 분, 곧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성경이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냐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황제 명령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요셉의 고향땅 나사렛에서 태어날 뻔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 황제의 마음을 움직여 전 국민에게 호적명령을 내리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이사 황제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호적명령을 내렸겠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 성탄의 역사가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잠언 29:26절 말씀처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했습니다. 

세상 역사와 우리 삶의 배후에는 만유의 머리요 주재 되신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또 그 핸들을 쥐고 계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장 보기에 불편하고 힘든 일이 생길지라도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이 좋게 될 것을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혹시 힘들고 불편하고 어렵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럴지라도 그 일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선한 역사를 이루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성탄 사건 속에서 어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담겨 있는가를 살펴보시면서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떤 시각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살펴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1. 세상 역사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대를 말할 때 BC는 기원전, AD는 기원후를 말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읽으려면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이고 AD는 Anno Domino의 약자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그 때를 0으로 잡고 태어난 후로 1년 2년 3년..이렇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태어나기 이전은 -1년 -2년..이렇게 계산하죠. 숫자가 거꾸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마이너스라고 하지 않고 BC라고 합니다. 즉 BC100년이란 주님 오시기 전 100년이란 말이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예수가 태어나기 469년 전에 태어나서 예수가 태어나기 399년 전에 죽었습니다. 이것을 약자로 표시하면 BC 469~BC 399로 표기합니다. 
그러기에 세계 역사의 전환점은 예수님의 탄생 시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서기 2007년이 아니라 주후 2007년입니다.

주님이 오신 후 2007년인 오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의 초점은 주님에게 맞추어져 운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들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 중에 베들레헴 탄생 사건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 하나하나가 전부 약속을 먼저 하시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것 중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 재림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으신다면 그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그 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인류 역사에 그보다 큰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의 초점으로 여기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절로 3절을 보세요.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러기에 주님이 탄생할 때가 되어 로마황제 마음을 움직이시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한 약속된 메시야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이 역사의 주관자이고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의 주관자라고 믿지만 그러나 실상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고 그 초점은 예수님에게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세상의 만물을 주관하심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은 세계역사를 주관하실 때 큰 흐름만 주관하시고 작은 것은 인간에게 맡겼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고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십니다. 인간에게 맡긴 것처럼 보일뿐이지 실상은 운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마 10:29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값어치 없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이 없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참새까지도 모든 생명체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또 마 5:18에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다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운행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로마서11:36에 보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역사뿐 아니라 각국의 역사도 심지어 각 개인의 역사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주관하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지난주 우리나라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나름대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의 기초를 세워놓았고
윤보선 대통령은 독재에 항거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발전시켰고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를 안정시키며 올림픽 등 세계적인 행사를 치렀고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정책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등과 손을 잡게 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세워 군사정권을 종식시켰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위기를 극복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타파 했습니다.
이제 새 대통령은 대한민국 경쟁력을 세계 강대국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할 중차대한 사명을 갖고 세워졌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의 손에 선출된 대통령들이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님이 각자 사명을 주셔서 할일이 있기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사랑하셔서 순서와 절차를 밟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의 주관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도 아닙니다. 만약 사람이 역사의 주관자라면 불안해서 하루도 못 살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리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관자라면 왜 불의의 사고가 터지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때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역사를 짧게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있으나 그러나 길게 보면 다 이유가 있고 뜻이 있습니다.

저 북쪽에 저렇게 악독한 정권이 국민들은 굶어 죽는데도 핵을 만드는 짓을 하는데도 그냥 두시는 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 애굽의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하나님, 세계역사도 당신의 뜻과 섭리 가운데 운행하시고 개인의 역사도 당신의 뜻과 섭리 속에 인도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과거를 돌아보아도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 때 교육전도사로 봉천동에 봉일 교회라는 곳에서 봉사를 했는데 사실은 그 교회 이력서를 낸 적도 없고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권사님과 식사를 하게 되어 대화중에 우연히 제게 사역할 교회 하나 소개할까요? 하시기에 그러지죠 했는데 그 사건으로 그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저희 집사람을 성도님들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여 25년을 살았습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으나 만약에 내가 그날 그 권사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교회를 가지 않았다면 제가 집사람과 결혼을 했을 런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우리 자식들은 없었던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 권사님과 식사가 우리 보기에 우연이고 그 교회에 가서 섬기게 된 것이 이우연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인도하심이었단 말입니다.

시편 127편을 아시나요?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가정도 개인도 국가도 다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하루  하루를 기대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든 원치 않는 것이든 하나님의 섭리 시각에서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탄 사건은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와 계획이었습니다.

성탄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인류 구원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성탄의 최초의 암시는 창세기에 출애굽기에 여러 곳에서 예언되어 있으나 가장 구체적으로 예언된 것은 이사야 7장 14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것이 마태복음 1장 23절에 성취되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의 생일은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기쁨이고, 왕정국가의 왕의 생일은 그 나라 국민들의 축제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 세계 만민이 다함께 기뻐하는 세계인들의 명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은 온 세계인들의 명절이 되고 예수께서 태어나신 해가 세계역사의 기점이 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나 인위적으로는 되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창3:15에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기로 했고, 창12:3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시기로 했으며, 민24:17에서는 야곱의 후손으로,
창49:10에서는 유다지파로, 사9:7에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미가5:2에서는 구체적으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사야 53장에서는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모든 예언들이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존재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태어나시기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그가 때가 차매 구원자로서 마리아의 태를 빌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6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오신 그 사건이고 세계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분이 우리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성탄은 일류역사의 최고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사건이 누구나 다 기뻐할 사건은 아닙니다. 왜요?
눅2:14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 했습니다.
성탄의 사건이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임하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정말 무섭고 중요한 말은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라는 말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누굴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은혜를 임은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왜 세상 사람이라 하지 않았을까요? 왜 세상 만백성이라 하지 않았을까요?
이 말속에는 무서운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기뻐하심을 입지 못한 사람들, 즉 예스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백성들에게는 성탄의 소식은 평화의 소식이 아니란 말입니다. 무서운 심판의 소식이요 사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탄을 맞아 그냥 마냥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계시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할지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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