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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 (사 30:15-18, 히 13:8-9, 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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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 (사 30:15-18, 히 13:8-9,  눅 12:35- 40)

오늘은 금년의 마지막 주일이다. 이사야서 30장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 이스라엘의 패망을 목전에 두고서 이렇게 읊었다. “너희는 이제 회개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민족의 비참과 고통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적군 한 명을 보고도 이스라엘 군대는 천 명씩이나 도망가니, 적군 다섯 명이 나타나면 너희는 모두 도망갈 것이다. 너희가 도망가고 나면 산꼭대기에는 깃대만 남고 언덕 위에는 깃발만이 외롭게 펄럭일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수많은 질곡이 있었다지만,

오늘 이사야가 그리는 이 상황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깃대만 외롭게 펄럭이고, 군대가 모두 도망가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이 민족의 마지막 장면! 이사야서는 말을 잇는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도망간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며, 너희를 불쌍히 여기시려고 일어나신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선택받은 민족인 너희는 다 도망갔으나 하나님은 그래도 참고 기다리신다.” 인간의 도망간 역사와 은혜를 베푸시려고 여전히 기다리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역사! 이스라엘 역사가 기원전 587년에 운명이 갈릴 때, 이사야가 나와서 자기 민족을 향해 외친 탄식과 희망의 메시지를 오늘 우리는 읽은 것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2007년 지난 한 해 동안 혹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도 무엇엔가 쫓겨서 도망치듯 산 것은 아닙니까?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품을 떠났고 그 자리엔 깃대만 남고 깃발만이 외롭게 펄럭였던 것은 아닙니까? 우리 모두 일 년을 반성해보는 주간이 되시기 바란다. 그 하나님께서는 옛날 이스라엘에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당신의 은혜를 버리고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 “나는 기다리겠다. 내년이 있지 않느냐. 나는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려고 한다. 너희의 배신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를 기다리며 맞아들일 것이다.” 오래전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던 그 공의로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여셨다. 그리고 생명의 주가 되셨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며 회개하고 돌아와 새 역사를 이루도록 맞아주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영원무궁하게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 연말에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제가 전기를 한 권 읽은 것이 있는데, 에베레스트 산을 최초로 등반해서 정복한 사람이 영국사람 에드몬드 힐러리라고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이 쓴 전기에 이런 게 있다.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계속해서 실패하고 좌절을 겪다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이렇게 자기의 결단을 일기에 적었다. “에베레스트 산이여, 너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자랄 것이다. 나의 힘도, 능력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내가 갖춘 등산장비도 계속해서 더 나아질 것이다. 기다려라. 내가 다시 가마. 그리고 너를 정복하마.” 이렇게 강한 의지를 세우고서 10년을 준비한 끝에, 1953년 5월 29일 드디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다. 도전의 역사이다. 도전은 언제나 실패와 좌절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노력이다. 우리 삶에는 실패와 좌절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그 실패와 좌절을 넘어서 한 해 한 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 또 다른 얘기를 하나 하겠다. 인생의 길은 마라톤과 같다고들 한다. 그리고 마라톤과 인생살이에는 공통점이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마라톤에서 승리하려고 처음부터 빨리 달리면 오래지 않아 지치게 되고 만다. 힘을 비축해 가면서 달려야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너무 과욕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마라톤 코스에는 반드시 언덕길이 있게 마련이다. 그 언덕을 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완주할 수 있다. 인생에도 힘든 고뇌와 시련의 언덕이 있다. 거기서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는 마라토너는 달리는 중에 물도 적당히 마시며 일정하게 자기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마구 달리면 지치고 만다. 인간에게도 때로는 잠시 쉬면서 여유를 갖고 재충전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자기 인생의 길을 살펴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현대인들은 너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넷째는 선두그룹에서 멀리 처지고 나면 다시 따라잡기가 어렵다. 서서히 가되, 선두그룹에서는 크게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인생살이에도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 긴장을 풀고 그냥 놔두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마지막으로, 마라토너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고된 훈련이 있어야 하고, 시합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인생도 항상 훈련하면서, 늘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힐러리의 등산 이야기나 마라톤의 이야기나 다 같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이런 마라토너로서의 인생을 살아왔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혹 뭐가 부족했는지 옷깃을 여미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란다. 오늘 서신서 본문인 히브리서의 말씀은 이렇다. 이사야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셨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때도 공의로우셨고 오늘도 공의로우시고 내일도 공의로우실 것이다. 그 하나님은 한결같으신 하나님이다. 사람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그 하나님은 항상 문을 열어놓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적군이 한 명이 왔는데도 무서워서 천 명이나 도망가는 비겁한 이스라엘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는 과거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미래가 올 것이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지나간 우리의 삶이, 과거가 현실로서는 재현될 수 없지만, 그 과거는 오늘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그 과거는 오늘의 귀중한 지침이 된다. 과거에 대한 해석은 오늘을 살찌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난 세월 동안 살아온 우리의 모든 역사적 과거를 그냥 묻어두지 마시고, 회상을 통해서 다시 끌어다가 오늘의 거름이 되게 해보자. 잘못된 역사는 회개하고, 희망찬 결단의 역사는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다시금 발전시켜 보자. 먼저 가신 가족들이 있다면, 그분들의 귀한 신앙의 삶을 우리의 귀감으로 삼아 우리의 새로운 신앙 역사를 만들어 보자. 그러기에 죽은 자와 산 자가 하나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더불어 살고 있다. 그 역사 속에서 조상의 얼은 우리와 함께 있다. 음악이나 미술로 불후의 명작을 남긴 사람들, 훌륭한 사상의 체계를 세운 사람들, 문화적 재산을 남겨준 사람들은 사라져갔지만, 그들의 음악과 미술, 그리고 사상과 문화적 업적들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감동으로 살아 있다.

그러므로 회상하고 현재로 끌어들일 수 있는 과거는 오늘도 살아 있다. 이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분은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재 속에 탄생하신다.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이천 년 전의 사건이 아니고, 오늘 2007년 12월 30일에도 다시 재현되고 체험하는 구원의 사건임을 깨닫는 사람은 복되다. 그런데 과거만 오늘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도 살아 있다. 제가 오늘 여러 사람의 말을 인용합니다만, 여성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미국의 방송계에는 유명한 토크쇼 사회자가 많다. 그중에, 저도 자주 보지만, 흑인 여성이 한 사람 있다. 오프라 윈프리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사회자로서 인기 절정이다. 이 사람이 매일 사회를 보는 토크쇼의 시청자가 총 1,400만 명에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평균 132개국에 중계된다고 한다. 이 여성의 말을 듣고 있으면, 참 기발하고 훌륭하구나, 사회를 저렇게 잘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그 여성의 과거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흑인으로서 사생아 출신이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9살 때부터 수많은 사람에게 강간을 당해서 얼마나 당했는지 기억도 못한다.

드디어 14살 되던 해에 자기도 사생아를 낳았다. 20대를 끝낼 때까지, 자기 자신 인생의 최대 화두는 남자와 마약이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갱신하여 새사람이 되었고, 오늘날 타임지가 발표한 금세기 최고의 영향을 끼치는 100명 중에 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기구한 인생이 내일을 품으면서 오늘 그 100명 가운데 하나로 송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분이 쓴 글에서 인생에 성공하는 법 중에 한두 개만 인용하겠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차피 앞을 향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의 외적인 조건에 의존하면 실패합니다. 안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생의 희열과 기쁨을 가지고 살지 않고, 주변의 여건만을 보면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또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을 험담하는 사람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십시오. 진실한 친구를 두어야 하는데, 최소한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당신보다는 훨씬 더 위대하고 똑똑한 사람을 친구로 두어야 성공합니다. 못난 사람을 친구로 두면 망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미래는 계속됩니다.” 그의 이런 충고에는 아마 힘들고 불행했던 과거의 경험이 담겨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과거가 있다. 그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현실을 발견하여 오늘에 살려내자.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미래,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올 것이고 오고 있다. 우리가 나누는 성만찬 역시 이를 상징한다. 성만찬이란 2000년 전에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피를 흘리고 몸을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떡과 포도주를 떼고 마심으로서 오늘에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실을 재현한다. 십자가 속에 달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약속하셨던 부활의 영광이 떡과 포도주 속에 현실적으로 임한다. 과거가 되살아나고 하나님의 미래가 생명의 역사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매일은 이 성만찬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옛날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미래에도 계실 것이다.

그 하나님은 이전에도 구원의 주님이셨고 내일에도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 이상한 이야기 하나 하겠다. 우리가 외국 나갈 때 달러를 가지고 나가게 되는데, 달러화의 뒷면을 보면 이상한 문구가 하나 박혀 있다. In God We trust.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돈에다 왜 하나님을 믿는다고 썼을까요? 그 뜻은 제가 잘 모르겠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돈을 쓰자는 말일 것이다.

돈에도 하나님 신앙을 인쇄하는데, 어찌 우리 마음속에 인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하나님은 내년, 새로 맞는 해에도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도망가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내년의 하나님을 오늘 미리 만나보자. 아멘.......

사랑의 주님!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아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인내와 용기를 주시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면면히 돌보시는 주님의 손길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미흡했던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더 겸손해야 했었고 더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무심한 말 한 마디로 이웃을 가슴 아프게 한 적도 있습니다.
좌절된 욕심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내어 놓으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새해에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인정이 메마른 사람들이 모여
이웃이 없는 나 홀로의 이기주의로 쌓아놓은 바벨탑이 있으면 허물어 주옵소서.
저희가 받은 은혜는 서로 나누어야 기쁨이 있음을 압니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옵소서.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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