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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 9: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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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 9:14~17)

새 술은 새 부대에?

지난번 대통령 선거를 할 때나 또는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면 늘 이런 표어가 내걸려 있는 것을 봅니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 또 이런 문구도 늘 나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사실 이 두 말은 똑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이 너무 못하니까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참신하고 새로운 얼굴이니 이번에 한 번 나로 바꾸어 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조금 거친 표현으로 하면 "못 살겠다 바꿔보자"가 되는 것이고, 조금 고상한 표현으로 하면 "새 술은 새 부대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어를 내건 사람 자신이 이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과연 알고 쓰는지 아니면 남들이 다 쓰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아시지요? 이 말이 성경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쓰자면 오늘 본문 17절에 나온 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입니다.

사실 이 말 말고도 세상에서 쓰는 기독교적 용어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제가 다 책임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신문에는 "아무개가 이번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다 성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잔소리를 좀 하면 "엄마, 아빠 제발 설교하지 마!"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설교가 '아주 길고 지루한 잔소리'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기에 설교자의 한 사람인 저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널리 쓸 정도로 잘 알려진 말이 되었습니다만 정작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정확한 배경이나 의미를 이해하고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우리 신앙인들 중에서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금식을 해야 하나요?

하루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다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안 합니까?" 여러분, 금식기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떨 때 금식기도를 합니까?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하지는 않지요. 우리는 대개 아주 절실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만 금식을 합니다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에서는 이 금식을 매우 장려했습니다. 특히 경건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월요일과 목요일에 늘 금식을 했고(눅 18:12), 이밖에도 연중 정해진 금식일도 있었고 틈만 나면 수시로 금식하는 것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생각이 같았는데 요한도 제자들에게 금식을 가르친 것 같고 특히 이때는 스승인 세례 요한이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혀있을 때이므로 제자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금식기도를 한 모양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이나 바리새인들은 꼭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중요한 금식을 안 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 같은 분이 있습니다. 사실 신앙에는 기준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든지, 교회를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라든지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경도 다양한 믿음의 모습과 기준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긴 것 따라, 성격 따라, 환경 따라 조금씩 다르게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쉽게 말하면 저 사람하고 나하고 신앙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믿냐? 잘못 됐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는 새벽기도회 때 사람들이 아주 조용히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를 30년 가까이 목회하던 담임목사님이 장로교는 기도를 조용히 묵상하며 하는 것이 전통이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하면 안 된다고 30년 동안 가르친 영향이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옆에 순복음교회 다니는 성도 하나가 이사를 와서 가까운 그 교회에 새벽기도회를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순복음교회에서는 기도를 거의 통성으로 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분은 자기가 배운 대로 열심히 새벽기도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를 했고 옆에서 기도하던 분들이 불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왜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냐? 무슨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냐? 시끄러워서 도무지 기도를 못 하겠다." 그래서 자꾸 그 성도에게 조용하라고 압력을 넣었고 급기야 그 분은 새벽기도회를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새벽기도 때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맞나요? 이분처럼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조용히 묵상으로 하는 것이 맞나요? 아니면 소리를 내되 옆 사람 방해 안 되게 나 혼자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맞나요? 정답은 "다 맞는다"입니다. 성경은 아주 다양한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괜히 자기가 기도하는 방법만 옳은 줄 알고, 자기가 배운 방법만 맞는 줄 알고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금식을 무조건 강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에도 금식기도가 나오고 간절한 기도를 할 때나 아주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도 이 금식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단 한 번도 "이럴 때 반드시 금식기도를 해라, 금식기도 안 하면 안 된다"고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도 금식을 하고 바리새인들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 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앞서 통성기도냐 묵상기도냐 하는 이야기처럼 이들은 자기 신앙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 잘못된 태도지요. 오늘 예수님은 바로 이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잘못된 신앙태도를 바로잡고자 세 가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세 개의 비유

그러면 이 세 개의 비유를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첫 번째가 혼인집 손님 비유입니다. 15절을 보세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혼인집 손님'이란 신랑의 결혼예식을 돕기 위해 온 신랑 친구들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할 때 보통 7일 동안이나 잔치를 벌였는데 맨 마지막 날 신랑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장인 집에 갈 때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동행해서 들러리가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랑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마치 저 자신이 장가가는 양 다 웃으며 즐거워하고 축하하는 것이 당연하지 친구가 장가가는데 혼인집에 와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면 참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당시 혼인잔치를 하는 일주일 동안 금식일이 끼어있어도 금식을 하지 않았고 혼인잔치가 끝나고 신랑이 떠난 후에야 금식을 했다고 합니다. 이 비유에서 혼인집 신랑은 물론 예수님이고 손님들은 제자들을 뜻합니다.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마치 혼인집에서 신랑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은데 슬퍼하며 금식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차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날 말입니다. 그 때는 얼마든지 슬퍼하며 금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금식도 다 때가 있는데 바리새인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것을 무슨 자랑거리인 양 생각하는 형식적인 금식, 남들에게 내세우기 위한 금식은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가 생베 조각 비유입니다. 16절을 보세요.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베 조각'이란 한 번도 세탁을 한 적이 없는 새 천 조각을 뜻합니다. 그런데 옷감이라는 것이 세탁을 하고 말리면 줄어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 여러 번 세탁하고 낡은 옷이 헤어졌다고 해서 거기에 이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새 천 조각을 대고 기우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생베 조각은 신축성이 있어서 헌 옷을 잡아당기게 되기 때문에 결국 기운 것이 효과가 없게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생베 조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르침을 뜻하고 낡은 옷은 옛 종교인 유대교의 낡은 의식을 뜻합니다. 즉 바리새인들이나 유대교에서 그토록 금식을 강조하고 여러 가지 금욕적인 의식을 요구하지만 이런 낡은 요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과 어울리지 않기에 결국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은 새로운 틀을 필요로 한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가 새 포도주 비유입니다. 17절에 나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내용상으로 앞서 나온 생베 조각 비유와 똑같습니다. 여기서 가죽부대란 아마 영화에서 보셨을 텐데 저는 성지순례 갔을 때 사막에서 보았고 지금도 사막에 사는 유목민 같은 사람들은 이런 가죽부대를 많이 사용합니다. 양이나 염소 등의 가죽을 통째로 벗겨낸 다음에 목 부분만 제외하고 꿰매서 물을 담거나 포도주 같은 것을 담는 부대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런 가죽부대가 오래 되어 낡으면 신축성이 떨어져 뻣뻣해지고 바느질 한 부분도 느슨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 발효되지 않은 새 포도주를 담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포도주가 부글부글 발효되면서 부풀어 올라 결국 터지게 되고 가죽부대는 물론이요 담았던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발효되지 않은 새 포도주는 반드시 튼튼한 새 가죽부대에 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새 포도주는 앞서 생베 조각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르침이요, 낡은 가죽부대는 낡은 유대교의 틀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을 왜 안 하냐는 것은 마치 전혀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낡은 유대교의 틀에 억지로 쑤셔 넣으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반드시 새로운 가르침은 새로운 틀에 넣어야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여러분, 오늘 2007년의 마지막 주일인 송년주일을 보내면서 왜 제가 이 말씀을 설교주제로 선택한 것일까요? 왜 송년주일 설교제목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일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내년 2008년에 새 포도주를 담그려고 합니다. 어떤 새 포도주일까요? 다함께 오늘 주보 간지로 나간 내용을 펴보십시오. "새해부터 이렇게 바뀝니다"라는 제목으로 꽤 많은 내용이 쓰여 있는데 꼭 집에 가서 꼼꼼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아, 이하준목사가 내년부터 이렇게 목회하려고 하는구나, 내년부터 우리 교회가 이렇게 새롭게 바뀌는구나." 하고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지금 다 볼 수는 없고 그 중에서 아주 새로운 것 몇 가지만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제일 먼저 2008년 표어와 주제가 정해졌는데 표어는 "교회여 생명을 잉태하라!"이고 주제는 "다음 세대를 품는 교회"(요 10:10)입니다. 그런데 이 2008년 표어와 주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우리교회 목적과 비전입니다. 저는 새해부터 우리 교회가 목적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입니다. 즉 우리교회는 모든 목회와 모든 활동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해서 말씀 위에 세워지는 그런 말씀중심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도 한 마디로 '말씀목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말씀이 좋은 교회다." 소리 듣기 위해 저는 더 설교준비를 철저히 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선포할 것이요, 우리 교회의 온 성도들은 다른 무엇보다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듣고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내년 2008년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꿈꾸는 다섯 가지 장기적인 비전도 정했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1) 예배 : 감격이 넘치는 예배 공동체

  2) 교육 : 말씀의 기초 위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교회

  3) 선교 :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선교⋅전도 중심의 교회

  4) 봉사 : 지역사회를 섬기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

  5) 교회건축 : 새 성전 건축으로 새로운 부흥을 열어가는 교회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중요합니다. "저는 담임목사로서 위와 같은 목적과 비전을 품고 교회의 앞날을 위해 5개년 단위로 목회 패러다임을 변화, 발전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제1기(제가 우리교회에 처음 부임한 2003년부터 올해 2007년까지는 '안정의 시기' 즉 교회의 분위기를 갱신하고 목회의 저변을 만들어가는 시기였다고 한다면 이제 제2기(내년 2008년부터 5년간 2012년까지는 '제2의 부흥기'로 새 성전을 건축하고(하드웨어 구축) 양육시스템 정착과 제자 만들기, 문화교실 등 지역을 변화시킬 본격적인 생명 살리기 프로젝트를 실시(소프트웨어 구축)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의 틀과 형식이 많이 바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초인 예배순서와 내용도 일부 바뀌고 간지 뒷면 중간부터 나오는 내용처럼 2008년 한 해 동안 연구를 거쳐 2009년도에는 교회조직을 파격적으로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교회 제직부서가 지금 15개인데 이를 팀별 구성으로 바꿀 것입니다. 앞서 말한 교회 5대 비전에 따라 2009년부터 예배, 교육, 선교, 봉사, 친교 5개로 과감하게 통폐합합니다. 그래서 부장도 다섯 명으로 줍니다. 장로님들부터 제직회 부장이라는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개 부서 아래 가칭 차량관리팀, 장식팀, 사회봉사팀, 환자 돌보기 팀, 그리고 각종 친교모임과 클럽(소모임 강화)등의 팀을 두어 현장중심, 활동중심으로 일하도록 할 것입니다. 팀장은 누구든지 능력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합니다. 팀에 따라 장로님도 팀장이 될 수 있고, 안수집사나 권사님이 될 수도 있고 서리집사님이나 심지어 성도라도 능력과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팀장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 제직회처럼 제직들만 팀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성도도 섬기려는 마음, 봉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나는 지난달에 우리교회에 새로 등록했는데 평상시 장식을 하는 데 아주 관심도 많고 재능도 있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장식팀에 들어갈 수도 있고 팀장도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여러 팀에 중복해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제직 부서처럼 인원을 팀별로 균등하게 배치할 필요 없이(인원의 낭비현상이 일어남) 팀의 필요에 따라 숫자를 배치할 수 있습니다. 즉 이제 교회조직을 형식적인 조직이 아니라 정말 현장에서 뛰고 봉사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조직뿐 아니라 새해에는 정말 목회의 모든 틀들과 교회의 모습을 새로운 목회, 새로운 교회의 모습에 걸맞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듯"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갈 것입니다. 2008년은 새로운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해입니다. 물론 한꺼번에 싹 바꾸기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장기적으로 바꾸어가겠지만 정말 우리 교회가 새 시대에 맞는 새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수십 년 묵은 생각과 전통만 붙잡고 있으면 새 시대를 이끌기는커녕 따라갈 수조차 없게 됩니다. 물론 좋은 전통까지 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전통은 잘 살려갈 것입니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생각과 방법, 고집에 얽매어 시대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교회가 된다면 우리 교회는 조금도 부흥 발전하지 못하는 뒤처진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 몇 년 후에는 새로운 교회 건물도 건축이 되어서 이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뿐 아니라 주중에도 우리 성도들과 이 지역주민들,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수없이 찾아와서 붐비고 살아있는 그런 교회를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새로워져야 발전과 부흥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제 얘기를 들어보니 제 꿈이 너무 커 보입니까? 아니요. 제 꿈이 아닙니다. 우리의 꿈입니다. 정말 우리교회 교인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내가 바로 그 교회 성도요." 하고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꿈은 저 혼자 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 온 성도가 함께 꾸고 함께 이루어나가야 할 꿈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어주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고 힘차게 나아갑시다. 이제 2007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교회, 능력 있는 교회를 위한 힘찬 첫 발걸음을 2008년 새해에 함께 디뎌봅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겠다는 우리의 꿈을 하나님이 친히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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