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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출 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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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출 14 : 10 - 14
제 목 :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제가 언젠가 개미하고 논 일이 있습니다.  개미가 줄을 서서 죽 가지 않습니까? 거기에다가 제가 밥 알 한 톨을 떨어뜨려 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개미는  그 밥알을 물고 신나게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개미 한 마리가 그 밥알을 보고서는 달려듭니다.  그래서 이 개미 두 마리가 밥 알 하나를 놓고 싸움이  벌어진 겁니다.  처음 밥알을 발견한 개미가 쉽게 뺏기려고 하겠습니까?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밥알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역부족이에요.  그래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제가 중간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했을까요?  뒤에 온 개미 녀석을 제가 손가락으로 튕겨 버렸습니다.  그 길로 개미의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싸움이 끝나자 이 처음 개미는 마치 지가 싸워서 이긴 줄 알고, 아주 의기양양하게 밥알을 끌고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 개미가 싸움에서 이긴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까?  여러분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모르지요.  당연히 모르지요.  지각이 있는 개미라면 모를까, 무지한 개미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개미는 몰랐겠지만, 실제 그 싸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내가 가진  이 손가락의 힘이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설교 서두에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오늘 우리 성도들의 인생이, 마치 이 무지한 개미와 같다는 겁니다. 
신앙이 없는 불신자들과 같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열심만 있으면 되는 줄  압니다.  뭐든지 부지런하면 되는 줄 압니다.  그래서 열심히 수고하지요?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결과를 얻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마치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인 양, 의기양양하며 살아간다는 거지요. 
그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시겠습니까?  어리석다 하지 않겠습니까?  무지한 백성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야, 그것이 어찌 네 힘으로 이룬 것이냐?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그런 결과 얻을 수 있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열 사람이 문둥병을 고쳤지만, 단 한 사람만이 주님 앞에 돌아와 사례하며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눅 17장에 보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돌아와 감사한 한 사람만이, 주님으로부터 그 신앙을 인정받고, 육신의 질병만 아니라, 영혼의 죄 사함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오류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잘 해서 이룬 것인 양,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잘 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듯이, 인생이 잘 되면 자기가 잘 나서이고, 못 되면 그제 서야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신앙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질 않습니다. 
이런 신앙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이 돕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맨날 옛날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기억밖에는 없는 겁니다.  지금 현재에도 나를 도우시고, 지금 현재에 나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체험하질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중, 아홉 명의 문둥병자는, 자신의 병 고친 것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의 문둥병자는 어떻습니까?  영혼의 죄 사함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인생에 계속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의 신앙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기억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인생, 어찌 되었겠습니까? 
영혼이 잘 됨 같이, 그의 범사가 잘 되고 강건케 되어진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 되어져야겠습니까?  이 사마리아인과 같은 신앙이, 되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번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의 도우심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이후로도 지속적인 은혜가 필요하고, 계속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 우리의 인생입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의 삶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나를 도와주옵소서.” 
끊임없이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나와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아홉 명의 문둥병자와 같이, 그저 한 번의 은혜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아홉 명의 문둥병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의 자기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끝이라는 겁니다.  그 길로 주님을 잊어버렸다는 거지요.  속된 말로 하면, 먹고 떨어진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인생은, 결코 그리 되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쓴 책 제목이 이렇습니다. “하나님 저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세상만사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또 여러분의 가정과 산업에,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정말 내 인생에 이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며, 또 구체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입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로  이끄는 줄로 믿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을, 능력으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줄 믿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고백하지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할렐루야!!!! 이런 신앙의 고백이 항상 그의 입술에 있었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그를 지켜 주셨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결국 위대한 다윗이 되게 만들어 주셨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430년 종살이 하던 애굽 땅을 떠나 의기양양하게 나왔지만, 얼마 후 홍해 앞에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편에는, 바로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 오는 상황입니다.

14 : 5 - 7절 말씀에 보세요. “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 새,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보내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모세에게 굴복하여 보내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금방 마음이 변하여 그 백성들을 쫓아오고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하나님만을 나의 힘이라고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좋았다가도, 내일이면 나빠질 수 있습니다.  내일이 뭡니까?  바로 몇 시간 뒤에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다고 안심하고서는,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내 힘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신앙 등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보면, 이런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결코 이런 어리석은 인생 살아가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금방 보내 주었던 바로가, 다시금 마음이 바뀌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옵니다. 그 애굽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애굽에 다시금 포로로 잡히든지, 아니면 홍해에 빠져 죽든지 진퇴양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상황 속에서 모세를 원망하며 탄식하지요?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바로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도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운명은,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하나님이 간섭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리 군대가 많아도 전쟁에 이기는 법이 없고, 아무리 잘 뛴다고 해서 반드시 일등하는 법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33 : 16절에 보세요.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 
모든 인생의 운명은,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좌우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 14절에서도, 모세가 말하지 않습니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이 나의 능력되시고, 나의 방패가 되심을,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쉽게 불평하지 말고,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좋은 때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며, 구체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번째로는, 날마다 기도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도우시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이 도우심이 무엇을 통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배후에 계신 그 위대한 하나님의 그 손길을, 무엇으로 움직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그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의 용맹스러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인함입니까? 사실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모든 백성들이, 아말렉의 장수들과 비교가 되질 아니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 입니까?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아멘!!!! 

모세가 전쟁터가 내려다보이는 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겼고, 또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떻게 합니까?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그 손을 받쳐주지 않습니까?  종일토록 그 기도하는 손이 내려오질 않자, 끝내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손을 든다는 것은 곧 기도를 상징하는 줄 믿습니다. 
아말렉이나 이스라엘은 대리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말렉은 마귀의 군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배후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마귀가 아말렉 군대에게 힘을 주어서 이스라엘을 쳐서 이기게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기도를 하면,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천사들이 와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심으로, 아말렉을 쳐서 물리쳤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에는, 늘 이런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이기는 꼴을 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세상에 힘을 실어주어 우리를 괴롭히려고 합니다. 

인간관계가 틀어지게 만들고, 갑자가 환경이 불리하게 만들어서 낙담하게 하고, 실망하게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 평안이 깨어지게 하고, 사업에 물질의 손해가 나게 만듭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지금도 이러한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왜 이런 일이 여러분의 인생에 일어나고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되, 지속적으로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손이 내려오면 지는 겁니다.  손을 계속 들고 기도하기란 힘이 들지요.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마귀의 백성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똑같이 힘이 들어 손이 내려오면,  무조건 이기는 쪽은 마귀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힘을 내어 끝까지  손을 올리면, 무조건 이기는 쪽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믿습니까? 
기도하는 성도들을 세상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이 기도하지를 않는 것일까?  아니 진득하게 오래 기도하지를 못하는 것일까?  다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요,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방패시라는 것을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다가 안 되면, 금방 그만 두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 간만 못하니라.” 

오늘 우리에게는, 모세와 같은 확신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13절에 보세요.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할렐루야!!!!
얼마나 멋진 신앙고백입니까?  얼마나 담대한 믿음의 외침입니까? 

렘 33 :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것은 기도에 있습니다. 아멘!!!!  기도하지 아니하면  나의 등 뒤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라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손이, 1년 열 두 달 다 가도록, 내려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남은 한해를 기도로 마감하시고, 또 다시 시작되는 한해를 기도로 시작하면서, 신기하고 기이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며, 구체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 번째로는,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길에 두려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모세가 홍해를 갈랐습니다.  좌우에 물이 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가는 길은 젖은 길이 아니라 마른 길이었다고 했습니다. 완벽하게 하나님이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이 그 길을 가기를 주저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그냥 잡히는 겁니다.  포로로 다시 끌려가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잡혀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인도하는 대로 그 길을 담대하게 따라 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성도들만이 홍해를 건너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오늘날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이끄셨던 것처럼, 오늘날은 세워주신 주의 종들을 통해 성도들의 인생을 이끄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설교 말씀에 순종해야 되고, 그들의 권면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이 복을 받는 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940년 2차대전 당시의 일입니다.  영국군 33만 5천명이 독일 군에게 쫓겨서  프랑스의 조그만 어촌 마을에 포위되었습니다.
독일 전차와 기갑부대에 포위되고, 공중에는 독일의 전투기들이 계속해서  폭탄을 투항하고 기총소사를 하고 바다에는 잠수함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는 영국의 33만 5천명 대군이 그곳에서 몰살되든지 포로로 잡힐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 유럽은, 독일에 의해 점령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영국 수상 처칠은, 온 교회와 온 교역자와 성도 심지어 믿지 않는 백성들도 33만 5천명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수상의 명을 따라, 군인들도 다 기도하고, 영국의 국민들도 다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루 종일 기도했습니다.
영국의 처칠 수상 자신도 웨스트민스터성당 성가대 좌석에 앉아서 종일토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역사가 나타난 겁니다. 

갑자기 악천후가 다가와서 거대한 파도가 치고, 소낙비가 쏟아져서 모든 독일 전차들이 진흙 창에 바퀴가 빠져서 한 대도 구를 수가 없었습니다.
또 비행기도 뜨지 못했습니다. 또 파도가 너무 세니까 모든 독일의 잠수함들이 철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데는 아직까지도 비바람이 치는데 영국군이 갇힌 그 어촌의 한 마을만 조용했다는 겁니다.
영국은 그때를 이용해서 전 상선과 개인보트까지 다 동원해서 33만 5천명을  다 철수시켰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수상의 명을 따라 온 백성들이 동참했던 기도가, 이처럼 멸망에 처한 영국을  구출하고 전 유럽을 구출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올 한 해는, 주의 종들이 전하는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자 하면, 기도하고, 전도하자 하면 전도하고, 봉사하자 하면 봉사하면서 주의 종들의 말씀을 따를 때,  교회도 부흥케 되겠지만,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늘 형통케 되어지고, 축복 받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됨을 고백하시고, 날마다 기도의 손을 올려 기도하시고, 날마다 하나님 말씀 따로 순종하며 살아가면서, 올 한해 예비 되어진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누리시고, 더 나아가 오병이어의 기적도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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