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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나의 믿음 (눅 2: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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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눅2:36-39
제목 : 안나의 믿음

  지난주간 이 나라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복지를 위해, 잘 사는 나라를 위해 새로운 정부가 잘 해줄 것을 기대해 봅니다. 매번 선거 때마다 그랬지만 선거는 많은 부분에서 여론조사가 좌우하는 것을 봅니다. 이번에도 1년 전부터 시작된 여론조사가 한몫을 했습니다. 특히 선거 당일 날 출구조사를 통해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당락이 결정되는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출구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맞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차 범위 내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에도 어느 방송사는 출구조사의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왜 출구조사가 정확하지 않을까요? 거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협조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투표를 하고 나오는데 물어보면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식으로 그냥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사에 응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이유는 조사의 과정에 있습니다. 조사는 모든 투표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에 맞춰 진행합니다. 그래서 조사원의 정확성이 필요한대 한번 꼬이면 힘들기에 규칙에 맞게 설문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구조사는 윤각은 맞춰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통계요,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모두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이 100% 정확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예수님의 생애와 탄생에 초점을 맞추어 메시야로 오신 주님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주변에서 우리처럼 신앙을 고백하며 귀한 본을 보였던 믿음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직후 아기 예수님을 가슴에 안고 믿음을 고백한 ‘안나’라는 사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안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녀는 어떤 믿음의 소유자일까요?

  첫째는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이후 할례를 받고 결례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있었던 사건입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두 사람의 귀한 축하를 받습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안나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안나는 여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안나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축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38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이란 말은 바꾸어 기다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당시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경건한 신앙인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시므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25절에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강조합니다. 시므온과 함께 메시야를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바로 안나입니다. 안나도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는 평생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애에 메시야이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축복인 것을 알고 본문에서 그는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주님을 만난 것에 대한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믿음입니다. 안나는 어떤 사람인가, 기다리는 자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바로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이고, 기다림은 곧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귀한 믿음입니다.

  성경과 기독교역사는 모두 기다림의 소중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대강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사순절도 느리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처럼 기다림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로 끝을 맺습니다. 믿음이 가장 돈독했던 1세기 시대의 성도들은 ‘마라나타’로 인사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곧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기다림이 교회역사와 신앙의 삶에 중심이었던 것을 봅니다. 성경도 기다림을 가장 중요한 신앙으로 강조합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입니다. 숫한 역경과 고난과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믿음으로 우뚝 서게 되었던 다윗의 생애는 한마디로 기다리며 살던 생애입니다. 그가 많은 시련과 고난의 때에 기다리다가 은혜를 누린 삶을 시편에서 많이 감사함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이것이 기다림의 귀한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모든 삶은 한결 같이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물론 즉각적으로 응답되고 축복되는 경우도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내와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응답을 기다리고, 축복을 기다리고, 문제해결을 기다리고, 회복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종종 조급합니다. 빨리 결말을 보려고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모든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내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도 참고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축복, 은혜, 응답은 모두 기다림 속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조급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조급하지 말고,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조금 더 기다리고, 인내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지금 힘드십니까?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하고 괴로우십니까? 기도하고 또 간구하는데 아직까지 응답이 없습니까? 이렇게 한해가 또 저물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우십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모든 것을 역전시키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이 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기 바랍니다.

  둘째는 성전을 떠나지 않는 믿음입니다. 계속되는 37절의 말씀에 의하면 안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과 함께 그가 성전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그가 얼마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았는가를 숫자적으로 자세히 소개합니다. 출가한 후 7년 동안 살고, 과부된 84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몇 살에 결혼을 했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15세로만 보아도 100년이 넘습니다. 매우 오래 산 사람입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그는 메시를 기다렸고, 아울러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평생 성전과 함께 했고, 성전을 떠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것이 그녀의 믿음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은 것보다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 큰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성전을 사모하고, 성전이 중심이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성전을 사모했는지 시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이처럼 그들을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사랑했고, 성전이 중심이었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꿈과 소망이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져 포로가 되던 시대에도 성전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은 성전을 떠나지 않는 믿음의 그들의 삶에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는 것이 귀한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점점 성전, 교회에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합니다. 사탄이 그렇게 마지막 때에 사람을 유혹하고 이끌어 갑니다. 교회에 가도 재미가 없게 하고, 편안하지 않게 합니다. 교회에 정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자꾸 안 좋은 것을 보게 합니다. 교회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탄의 계략이 우리에게 도사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신앙에 본질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어떤 것보다도 신앙의 우선순위가 되는 문제입니다. 사실 교회를 재미로 가는 것이 아니고, 좋지 않은 것이 자꾸 보여도 가야 합니다. 교회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교회에 가는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재미가 아니라 신앙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신앙, 나의 삶의 근거와 뿌리가 되고, 중심이 되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중심은 굳게 잡고 있어야 합니다. 중심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수 없습니다. 이번 서해안 기름유출로 많은 물고기가 죽었습니다. 물고기가 기름을 피해 모래사장으로 잠시 나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물고기는 물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듯이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영적생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저는 세례자 학생들에게 이것을 강조합니다. 교회를 떠나지 않는 믿음으로 교회를 통해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할 일을 다 하는 믿음입니다. 안나의 귀한 믿음은 기다리는 것과 성전을 떠나지 않는 것에서 머문 것이 아닙니다. 그는 기다리면서도 할 일을 했고, 성전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맡긴 모든 일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녀가 한 것에 대해 이렇게 강조합니다.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그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주야에 금식했고, 늘 기도에 힘썼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섬긴 사람입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요? 그것은 곧 그는 그녀에게 맡긴 모든 일을 성실히 잘 감당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경건과 삶에 있어서 그가 할 일을 모든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한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는 것도 귀하지만 오랜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기의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할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신앙을 위해 말씀과 기도와 예배에 치중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직분자로서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런 할 일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할 일을 잘 감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약해질 때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신 말씀 가운데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예수님 당시 충성스런 종이 주인에게 고백하는 말로 널리 쓰인 말입니다. 당시 종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모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합니다. 그리고 다 끝나면 주인에게 달려와 ‘테텔레스타이’라고 고백합니다. ‘주인님, 다 끝냈습니다, 다 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주님도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끝까지 충성을 다하셨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마쳤을 때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은 먼 나라를 떠나면서 다섯달란트와 두달란트, 그리고 한달란트를 각각 종에게 맡겼습니다. 두 종은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맡긴 달란트를 잘 사용하여 주인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가 책망을 받은 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칭찬받은 종들이 칭찬받은 이유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가 할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는 늘 뒤를 돌아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뒤를 돌아보면서, 지난 한해를 더듬어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입니까? 아니 나도 못하고 남도 못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까?

  누가복음 17장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시중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17:7-10)

  우리 삶에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할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오실 때까지 이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주인이신 주님께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해야 하고, ‘주님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다 했습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못 다한 모든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새해 새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할 일을 잘 감당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안나의 믿음은 기다리는 믿음, 성전을 떠나지 않는 믿음, 그리고 할 일을 다 하는 믿음입니다. 성탄이 임박한 때에, 한해가 얼마 남지 않은 때에, 우리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한주간도 변함없이 믿음의 길, 승리의 길을 향해 힘 있게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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