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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 (삼상 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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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 (삼상 7:12-14)

어느 날 몇 사람의 과학자들이 하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하나님, 이젠 하나님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복제도 가능하고 심장이식도 성공했고 더 이상 기적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도전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다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시합을 하자. 인간을 만드는 시합인데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반드시 흙으로 만들어야만 한다."그 말에 과학자들이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흙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과학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네가 쓸 흙은 네가 만들어야지."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다해도 하나님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파스칼]은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없이 사는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감사란 없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살아서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불행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알긴 알되 수시로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기는 압니다. 그러나 너무나 자주 자기 즐거움에 빠져서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다가 급할 때는 늘 하나님을 찾으며 사는 참으로 피곤한 인생입니다.

셋째는 늘 하나님을 만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해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아가 파스칼은 네 번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나의 행복을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여기는 귀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큰 것도 주십니다. 감사를 드리면 더 큰 감사의 제목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들도 한 해를 결산하는 마지막 주일에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입니다.

러시아의 문호[솔제니친]은 1983년 미국의<템플턴 대학>강연에서 그 끔찍한 공산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난 이유에 대해 러시아인들이 하나님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유명한 강의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은 불행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은 죄악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가정도 불행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나라도 분쟁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감사치 못합니다.

[빅토르 위고]는"영국을 세계의 제일가는 나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책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셰익스피어 전집>이고 또 하나는<성경책>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그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그런데 셰익스피어 전집은 영국인이 썼으나 성경책은 영국인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성경 속에 있습니다. 특히 오늘은 한해를 지나오면서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의 은혜가 무엇인지 돌아보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스라엘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보며 그 속에 있는 곧 우리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손길을 몇 가지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는 보호하심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종교적, 영적 해이로 인하여 블레셋에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빼앗겼다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으로 도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 후에 승리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민족 대 각성집회를 사무엘이 중심이 되어[미스바]에서 가집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또 물리쳐 주십니다. 철저히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본문12절-13절을 보면"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라고 하였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이켜 보면 한 해 동안에 얼마나 많은 블레셋의 공격이 우리를 괴롭혔습니까? 몇 번이고 넘어질 수밖에 없었고 좌초될 수밖에 없었던 위기 속에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가 아니었다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서 있음을 안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본문 14절 상반절을 보면"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블레셋 족속들이 얼마나 힘이 강했던지 이스라엘은 많은 땅을 빼앗겨 버리고 사람들은 거기서 비참하게 종살이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워낙 강한 블레셋이라서 감히 찾을 엄두도 못 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빼앗겼던 모든 성읍들을 전부 되찾게 했고 종살이하던 자기 백성들을 전부 구출해 내게 하는 회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회복이라고 하는 말은"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친구를 잃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하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마음 아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아픈 것은 가장 귀중하고 꼭 필요로 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되찾으려고 하지만 내 힘으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될 때 이런 것들도 회복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아파할 때 끝까지 붙잡아 주신 하나님이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즉 그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리지 않았나 되돌아보는 지혜를 주셔서 더욱 믿음을 붙들게 하시고 결국 믿음으로 일어서게 하셔서 오늘까지 오게 하신 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 해 동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적으로 잘못 되어 있었어요, 무의식중에 아주 교만해졌어요, 하나님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던 가운데 많은 것을 잃었는데 돌아보니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난 때가 언제입니까? 평생에 이런 실패가 있나 할 정도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실의에 빠졌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라."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경험에 의하면 이것은 밥은 고사하고 죽도 못 먹을 소리입니다. 망하고 거지가 될 소리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았고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체험한 베드로가 주님 앞에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한 첫 마디를 기억하십니까?"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십시오"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실패를 회복시키시는 주님 앞에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자기 모습이었습니다. 즉 영적 통찰력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베드로의 신앙 출발이었고 베드로가 베드로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려운 한 해를 살면서도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잃어 버렸던 것을 찾게 하는 은혜, 그리고 꼭 있어야 될 것을 되찾아 주시고 회복해 주시는 회복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 때 이제부터 더 나은 믿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평화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본문 14절 하반절을 보면"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경내에는 아모리 족속이 살았습니다. 이 족속은 한때 이스라엘의 단 지파를 산골로 밀어붙일 만큼 강력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늘 긴장관계에서 싸우고 다투던 이 두 족속사이에 화해를 이루어 주시고 평화를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수가 이웃 관계로 변하고 얼마나 그 지역이 살기 좋은 지역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조지 헐버트]라고 하는 사람이"평화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 놓으면"불화가 있는 곳에는 마귀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 가정에 평화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 평화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 교회 안에 불화가 일어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평화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기 싫고 미운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 곳이 곧 지옥입니다. 우리는 미운 사람이 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일상용어 가운데<위기일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태로운 순간, 순간을 뜻합니다. 지나온 한해 가운데 이러한 날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은 보호의 은혜 가운데 오늘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심으로 오늘이 있게 하셨습니다. 가끔은 깨어진 관계 속에서도 평화의 은혜로 이끄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사는 날 동안에 여러분 개인에게, 가정에, 교회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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