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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생명을 살리는 교회 (요 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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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교회 (요 10:7-10)

  2008년 무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 주님의 은혜와 복이 여러분과 가정, 직장 가운데 충만하길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생명을 살리는 교회”입니다.
오늘은 이 비전의 내용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10장에서 주님은 당신 자신을 목자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양이라고 하십니다.
양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연약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강력한 이빨이나 뿔 혹은 발톱도 없어 남을 잘 공격할 줄 모르고,
발이 빠르지 못해 빨리 도망을 칠 줄도 모릅니다.
시력이 나쁘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어디서 맹수가 오는지도 빨리 알아채지 못하고,
어디에 맑은 물과 푸른 풀밭이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반드시 목자가 돌봐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선 우리는 육신적으로도 약합니다.
오늘 건강한 것 같아도 질병이 찾아오면 금방 드러누울 수밖에 없습니다.
멀쩡하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쉽습니다.
어느 누가 한마디 한 것이 밤새도록 괴롭히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듭니다.
영적으로도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사단이라는 맹수가 공격해 오면 너무 쉽게 당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목자는 양을 푸른 풀밭으로, 맑은 시냇가로 인도합니다.
때로 맹수가 공격해 올 때에는, 목숨을 걸고 그의 지팡이로 막아줍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만 있으면 안심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의 목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심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이러한 목자 없이 혼자 광야 길을 가는 수많은 양들은 위험합니다.
그들은 얼른 목자의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님은 스스로 7절에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주님은 양의 문이 되십니다.
우리는 그 문을 통해서 드나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들어가면서도 꼴을 얻고 나오면서도 꼴을 얻게 해 주신답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우리의 고픈 배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적인 양식도 필요하고, 정신적인 위안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에 배가 고프고,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아침, 저녁으로 풍성한 꼴을 얻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10절의 말씀을 보면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할렐루야!

  주님은 결코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생명이란 죽음과 반대되는 개념일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목숨이 붙어 있다고 해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꼽고, 거의 식물인간 상태에서
10년을 살고, 20년을 더 산다고 그걸 진정한 의미에서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남에게 죄 짓고서 감옥에 갇혀서 30년을 더 산들
그렇게 사는 건 우리가 정말로 바라는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거룩한 성전인 우리의 몸을 매일 술독에 빠뜨리고,
담배에 찌들어 살게 하는 것은 사는 게 아닙니다.
성욕에 빠져 가정을 파괴하며, 순간적 쾌락을 추구하며 사는 것도 생명이 아닙니다. 

  건강한 삶을 살아야 진정으로 사는 거죠.
몸만 건강하다고 건강은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하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야죠.
그러나 비록 육신적으로는 질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주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오히려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은 건강한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되는 대로 산다면
그건 영적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기도할 줄도 모르고, 예배도 모르고 사는 건
영적으로 볼 때 사는 게 아닌 겁니다.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눈물로 회개할 줄 알고, 또 용서할 줄 아는 게 사는 거죠. 

  부부가 신뢰하지 못한 채 매일 싸우면서 산다면 50년을 살아도 산 게 아니죠.
부부의 가정생활이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신뢰하며 살아야 사는 거지요.
가난에 찌들려 근근이 살아간다면 풍성한 생명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한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만 부유하게 산다고 모두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함께 더불어 살 줄 알아야 사는 거지요.
좋은 차 굴리고,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산다고 잘 사는 게 아닙니다.
따뜻한 정이 있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랑이 있는 삶을 살아야 사는 겁니다.
저 혼자 배부르고 등 따스하다고 남 몰라라 사는 건, 사는 게 아닙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해서 직장이 아닙니다.
그 직장이 뭔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위해서 기여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해 갈 때 살아있는 직장인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돈만 벌어온다고 직장생활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자신의 비전을 펼쳐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는 삶이어야 하죠.
이제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해 졌나요?

  우리는 단순히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Survive)
보다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진정한 삶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Life)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가지고 때로는 바람과 물결을 거슬러서라도
올바른 방향을 향해서 의욕을 가지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진정한 생명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진정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만드신 세상은 우리가 이러한 삶을 누리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생명을 잃어버렸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죽음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생명을 잃어버린 죽은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깨어져버린 세상을 치료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치러주셨습니다.
너무나 비싼 값을 치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고,
진정한 생명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의 생명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며, 하나님의 비전인 줄로 믿습니다.
이 비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셨으며, 육신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고,
모든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질병이나 가난으로 고통당하는 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를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회복함으로써
가정을 살리고, 직장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교회”의 비전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이 지역의 교회들이 함께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역에 범죄가 사라져서 수원구치소에 수감자가 한 사람도 없게 되길 바랍니다.
이 지역의 청소년들이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가고,
소년 소녀 가장들과 노숙자들이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게 되는 날을 꿈꿉니다.
노인들이 존경을 받고, 삶에 기쁨이 있는 그런 날이 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온 교우가 헌신하며 충성하는 사명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어떤 대가도 마땅히 치러가는 희생적인 제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라고 불려지게 될 것이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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