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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1) :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교회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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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1) :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교회 (고전 3:10~11)

기초가 튼튼해야

지금 서울에서는 광화문 복원공사가 한창입니다. 광화문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의 정문인데 최근까지 세워져있던 광화문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든 이 구조물로 실은 '광화문'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을 빼면 온통 콘크리트였습니다. 1927년 일제가 "조선의 민족정기를 막는다"며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정면을 떡하니 막아서 지었는데 이 때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헐어 없애려다 마지못해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북쪽(현재 민속박물관 정문자리)에 옮겨놓았고 그나마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폭격으로 불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은 이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기둥과 천정은 물론 서까래까지도 콘크리트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정부가 녹화를 위해 벌채를 금지하면서 시범케이스로 목재를 전혀 쓰지 않고 온통 콘크리트 덩어리로 광화문을 복구한 것입니다. 그나마도 광화문의 옛 자리에 그대로 만들지 않고 위치도 틀리고 방향도 삐딱하게 세워져 그동안 이 볼썽사나운 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고 제 자리에 제대로 다시 만들자는 여론이 제기되어 오다가 이번에 광화문을 철거하고 다시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콘크리트 광화문 철거공사를 하면서 기초를 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파들어 가면 파들어 갈수록 옛날에 만든 광화문의 기초가 자꾸 발견되는 것입니다. 우선 1867년 고종 4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든 광화문(본디 이름은 홍예문) 기단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 밑 70cm 아래서 태조 이성계 때인 1395년 처음 세운 광화문 기단부 층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처음 만든 광화문 아래를 더 파보니 처음 광화문을 만들 때 기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선 잡돌과 사질토를 시루떡처럼 여섯 켜로 쌓은 지층이 드러났고 또 그 아래에는 굵기 10cm, 길이 80~140cm 말뚝을 30~50cm 간격으로 촘촘히 박은 뻘흙층이 드러난 것입니다. 기초를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본디 경복궁 자리가 북악산 양쪽 계곡에서 발원해 청계천과 합류하는 개천의 중간 지점이라서 퇴적토가 쌓이고 습지처럼 축축한 땅이었기 때문이 이 뻘층을 단단하게 만들어 궁궐을 짓기 위해서는 뻘흙에 나무기둥을 촘촘히 박아서 그 나무기둥이 빨대가 되어 습기를 위쪽 시루떡 흙층으로 뽑아 올리면 뻘흙층이 단단히 굳어 완벽한 기초구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포스코 역사관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포스코가 광양에 제철공장을 지을 때 바다를 메우고 연약한 지반을 강화하기 위해 직경 40cm의 모래말뚝 110만개를 박아 그 터 위에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기술은 포스코가 처음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이미 600여 년 전 우리 조상이 이미 사용한 기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날림공사니 뭐니 문제가 많지만 우리 민족은 이리 이렇게 오래 전부터 최신공법으로 건물의 터를 다지는 건축 1류 국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건축에 있어 기초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입니다. 제아무리 멋진 건물을 짓더라도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부실공사가 될 수밖에 없고 그 건물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4부터 보면 우리 예수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공생애 이전에 목수 일을 하면서 집을 지어보신 모양입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주님은 집을 반석 위에 짓느냐 모래 위에 짓느냐에 따라 얼마나 결과가 다른지 설명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새 성전을 건축할 때도 기초를 얼마나 튼튼하게 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성전의 기초

구약에도 보면 이 건물의 기초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아버지인 다윗 왕이 성전을 지으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건축자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성전을 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전의 기초를 아주 튼튼하게 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5:17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에 왕이 명령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성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

더 중요한 본문은 역대하 8:16인데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의 기초를 쌓던 날부터 준공하기까지 모든 것을 완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전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나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임금이 성전을 지을 때 기초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이 지은 제1성전은 바벨론이 유대를 멸망시킬 때 불타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에스라서에 보면 바벨론 포로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 총독을 중심으로 두 번째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스라 3:10부터 보면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레위인 중에 아삽 자손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찬송하는데 전문 건축용어로 이렇게 터를 다지고 기초공사를 마칠 때 하는 예식을 정초식(定礎式)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2성전 정초식을 할 때 참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 한쪽에서는 통곡을 하고 한쪽에서는 기뻐 함성을 지르는 아주 묘한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새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으니 한쪽에서 함성을 지르며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고 그러면 왜 한편에서는 그렇게 슬퍼하고 통곡한 것일까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솔로몬 성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이 주전 587년 경이요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의 완공이 주전 516년이니까 약 7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따라서 나이가 70~80이 넘은 사람들은 옛 성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터를 닦은 것을 보니 옛 성전의 크기에 못 미치는 적은 규모이기에 한 편으로는 서럽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70년 만에 우여곡절 끝에 성전을 다시 짓게 되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통곡하고 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을 지을 때 기초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뜻입니까? 다른 세상의 건물을 하나 지을 때도 기초가 그토록 중요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집인 그 소중한 성전을 지을 때 기초를 얼마나 튼튼하게 잘 쌓고 다져야 하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도 교회를 새로 지을 터인데 그 때 기초를 다 닦고 나면 정초식, 아니 정초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아마 그 때도 한 편에서는 울고 한 편에서는 웃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준비해온 새로운 성전을 더 크고 아름답게 짓게 되었으니 너무 기뻐서 함성 지르며 좋아하는 성도들도 계실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우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저는 아마 그 때 너무 좋아서 웃다가 또 너무 감격해서 울다가, 그렇게 웃다가 울다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회의 참된 터는

그런데 물론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전 건물을 지을 때도 기초가 중요하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는 건물 기초보다 더 중요한 기초가 있습니다. 바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교회가 어떤 기초 위에 세워졌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고린도전서 3:10~11에 보면 이 교회의 터, 참된 기초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본문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건축자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목수였기에 집 짓는 것을 알고 반석위에 지은 집, 모래 위에 지은 집 비유를 말씀하신 것처럼 사도 바울도 아마 천막 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어느 정도 건축에 대해 알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 이렇게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고린도에 처음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처음 세운 사람이 사도 바울 자신이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았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무엇보다 건축을 할 때 기초를 잘 닦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은 고린도교회의 터를 정말 잘 닦아놓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울이 지혜로운 건축자(원어에는 '숙련된 건축가'라는 뜻)처럼 닦아 놓은 터 위에 다른 이, 즉 아볼로나 다른 사람들이 건물을 세워 교회를 건축하게 될 터인데 문제는 그 터가 바른가? 바른 터 위에 건물을 세우는가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지혜롭고 숙련된 건축자는 건물의 기초와 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 때문에 아주 신경을 써서 터를 택하고 기초를 단단히 하게 됩니다. 필요하다면 지반을 다지기 위해 말뚝을 박을 수도 있고 정말 그 위에 세워질 교회건물이 천년만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건물이 되게 하기 위해 정말 정성과 노력을 다해 터를 닦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숙련된 건축가는 애써 많은 돈을 들여 그럴듯하게 멋지게 지어놓았는데 지반이 약해서 며칠 못가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주저앉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과연 지혜롭고 숙련된 건축자답게 터를 잘 골라 정말 잘 다져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볼로나 다른 사람들은 그 위에 건물을 잘 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이렇게 잘 닦아놓은 터 위에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엉뚱한 터 위에 건물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자들이지요.

그래서 바울이 11절에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힘써 강조한 것입니다. 모든 다른 건물을 짓는 것처럼 교회도 터가 가장 중요한데 교회의 터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교회는 무조건 예수님이라는 터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멋지게 건물을 짓더라고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달고 교회 간판을 붙여도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얼마 못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시며 교회의 진정한 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 위에 고린도교회의 터를 닦았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참된 말씀과 오직 복음에만 의지하여 교회의 터를 닦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이어 고린도교회를 이끌어간 사람들 중에 바울이 닦은 터인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아닌 엉뚱한 다른 기초 위에 교회를 세우려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

우선 고린도교회 내에 여러 파당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에 보면 1대 목사인 바울을 따르는 바울 파, 2대 목사인 아볼로를 따르는 아볼로 파, 예수님의 직제자인 베드로를 추종하는 게바 파, 그리스도 파까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여러 파당이 있어 서로 견제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로목사를 추종하여 파당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항해 신임목사를 추종하는 파당을 만듭니다. 그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을 중심으로 패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패거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결론은 이런 사람들 모두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지 않고 사람 위에 세우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사람을 추종하고, 사람을 내세우고, 사람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끌어가고 주도권을 가지려는 것은 예수님 아닌 다른 터 위에 교회를 세우려는 크나큰 죄가 됩니다. 심지어 가끔 교회를 매매한다는 광고를 교계신문에서 보게 되는데 내가 세운 교회고 내가 투자해서 만든 교회니 팔더라도 제값을 받아야겠다는 뜻입니다. 이 교회를 사려면 나에게 얼마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사람은 사람이로되 나 자신이 교회의 주인이 되고 교회의 터가 되는 경우입니다. 어떤 교회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예수님 아닌 전통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다. 특히 역사가 오래 된 교회일수록 전통을 따지는데 물론 아름다운 전통도 있지만 교회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교회를 이끌어가는 데 무조건 전통만 따진다면 이 역시 예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 위에 교회를 세우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또 어떤 교회는 예산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다. 예산 만능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2007년에도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예산보다 10% 이상을 초과하도록 도와주셨지만 예산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지 결코 교회의 목적이 되거나 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예산이, 물질이 교회의 목적이 되고 예산만능주의가 교회를 지배한다면 예수님 아닌 다른 터 위에 교회를 세운 셈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또 이런 말이 유행합니다. 교회도 세상의 기업처럼 경영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담임목사도 CEO(최고경영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예수님이 아닌 세속적인 가치관, 세속적인 경영정신이 기초가 되고 맙니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교회입니다. 결코 어떤 경영마인드나 가치관이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무도 강하게 교회의 참된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터 위에 세워진 교회도 교회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교회

저는 2007년을 마무리하고 2008년 새해를 맞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서의 목회도 5년째를 넘어서서 6년째로 접어드는데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우리 교회를 지배하는 정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교회의 목적 "말씀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입니다. 이 목적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부분에 나온 "말씀 위에 든든히 선"은 우리 교회의 터, 기초가 무엇이 되어야 할까라는 문제입니다. 뒤에 나오는 "건강한 교회"는 우리 교회의 건물이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가, 즉 체질의 문제입니다. 오늘은 앞에 나오는 교회의 터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교회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대신해 교회의 터가 될 수 없습니다. 담임목사인 저도, 장로님들도, 성도들도 그 누구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 위에 든든히 선"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 교회의 머리가, 또한  터와 기초가 오직 예수님이시라는 고백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인 복음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선 교회란 어떤 교회겠습니까?

첫째, 말씀의 정신이 지배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방향을 결정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결정할 때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지하여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말씀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교회입니다. 목사는 설교를 더 열심히 준비하고 전해서 "우리교회는 말씀이 참 좋은 교회다" 소리를 들어야 하고, 성도들은 말씀 열심히 듣고, 열심히 스스로 읽고 공부해서 말씀 사랑의 정신이 넘쳐흐르는 교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셋째, 말씀대로 사는 교회입니다. 또한 설교 듣고 말씀 공부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목회자와 모든 성도가 오직 말씀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교회를 뜻합니다.

넷째, 말씀에 뿌리 내리는 교회입니다. 예레미야 17:8에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했는데 우리 교회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말씀에 깊이 뿌리 내리고 든든히 서서 그 어떤 시련이나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사철 잎이 푸르고 열매가 많이 맺어서 우리 성도들뿐 아니라 교회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도 넉넉히 나누어 주어서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널리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이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우리 교회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마다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어려운 교회도 많고 심지어 교회가 쪼개지거나 문을 닫거나 없어지는 일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태복음 24:35에서 말씀하시길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하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인간적이거나 세상적인 것이 아닌 이 영원한 말씀의 기초위에 선다면 그 교회는 영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말씀 위에 서서 영원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는,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교회가 다른 무엇으로 유명하거나 이름난 교회가 아니라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교회로 유명해지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사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말씀이 지배하고 모든 교회의 방향을 말씀에 맞추니 저렇게 발전하고 부흥한다는 소리 들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참된 터이신 주님께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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