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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기도하는 사람의 겸손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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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의 겸손 (행 3:1-10)
   
    ‘영어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합니다. 그 말은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냥 말하는 영어가 아니고 학술적인 차원에서 구사하는 영어를 원한다면 많이 외워야 되고, 또 책을 많이 읽어야 되고, 글을 써봐야 되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라고 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왕도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남들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갈 때 자기도 올라가서 함께 기도합니다. 남들이 기도할 때 베드로도 기도하고 남들이 예배드릴 때 베드로도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베드로라고 해서,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해서 이런 면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특별히 여기고자 하는 시험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게 바로 광야에서 마귀에게 받으신 시험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 이것은 예수님의 특별한 정체성,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미끼로 뭔가 기적을 행할 것을 요구하는 시험이었는데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시험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당신의 위치가 어떤 편법이라든가 하나님 앞에서의 특권을 누리려는 그런 것을 유혹이라고 간파하시고 그것을 물리쳤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가셨을 때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어찌하여 당신이 나에게 오시나이까.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됩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해야 되는 것이면 예수님이라고 제외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세례를 받는다면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인간을 대속하기 위하여 사람과 같이 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사람이 거쳐야 되는 것을 예수님도 거치고 사람이 시험을 받는다면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시고 다만 죄는 없으셨지만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사람과 같아지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의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사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어부들과 같이 생활하시고 남의 나귀 새끼를 빌려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위 특권층이 지탄을 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 특권이라는 것을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권층이라고 해서 국민의 의무에 있어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특권을 누리는 만큼 더 충실해야 되고 앞서야 되고 본을 보여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럽의 왕실을 보면 전쟁이 일어날 때 왕자들, 왕실의 남자들이 제일 먼저 전쟁터에 나가서 싸웁니다. 오늘날도 영국의 황태자든 왕자들이 공식적인 자리에 보면 그들이 군복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찰스 황태자가 결혼식을 올릴 때 군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이유는 현역 장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래된 유럽 왕실의 전통인데 국가를 위하는 일에서 백성들을 인도하고 솔선수범한다,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영적인 귀족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지요. 누가 세상적인 명예를 얻기 위해서, 세상적인 어떤 부귀영화를 위해서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세상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은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차라리 사업가가 되든지 정치가가 되든지 다른 것을 해야지 누가 지위를 얻기 위해서 돈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세상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한 다음에도 VIP가 되려는 유혹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영적인 VIP, 또 교회에서의 VIP, 제자로서의 VIP가 되려고 하는 유혹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국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가장 작은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고 섬기기 위해서 왔다 내가 너희의 랍비요 주이나 내가 너희의 발을 씻긴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발을 씻고 섬기라’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치신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귀족이 되려는, 특권층이 되려는 유혹이 가장 교묘하고 또 물리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가깝기 때문에 VIP가 되고 영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VIP가 되고 공로를 많이 세웠기 때문에 VIP가 되고 또 은사가 있기 때문에 VIP가 되려는 그런 유혹입니다. 이런 유혹은 버리기도 힘들고 깨우치기도 힘듭니다. 예수님이 제일 힘들어하셨던 대상이 바로 바리새인들인데 그들은 자기들이 의롭기 때문에 남들보다도 더 낫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죄인들을 멸시하고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주신 선물을 받지 못하게 하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회개하지 않고 은혜를 받지 못하고 천국이 가까웠는데도 천국에 들어가지도 않고 남들이 들어가는 것조차 방해하는 그런 실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한 나머지 예수님마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비판하고 예수님이 죄인들을 환영하는 것을 보고 비판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을 까먹는 것을 보고 비판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주신 가장 큰 선물인데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이지 않고 자기들의 마음의 어두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영적인 교만은 가장 힘들고 고치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교만은 게으름을 낳습니다. 그래서 은사가 있으면 열매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열매는 우리의 인격의 성장으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애써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은사가 있으면 열매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있고 또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의무를 소홀히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용서, 구원, 사랑을 말하는데 그것을 받으면 어차피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테니까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어차피 하나님이 사랑해 주실 테니까 봐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바로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의무를 소홀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예절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나는 죄인이고 하나님의 종이고 흙에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자녀가 부모와 가깝다고 부모와 친구가 될 수 없지요. 부모님은 여전히 부모님이신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더라도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긍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내가 가깝다고 해서 마치 내가 내 멋대로 살아도 어떤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께서 ‘그 날에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할 때 내가 너를 모른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이 그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교만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힘듭니다. 제가 교육 전도사 시절에 담임목사님이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부흥회를 준비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부흥회를 하면 제일 은혜를 잘 받는 사람이 새신자이고, 제일 은혜를 못 받는 사람은 담임 목사다. 그래서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 순서대로 은혜를 못 받는다.’ 이런 지적을 하셨는데 맞는 얘기입니다.

목회자가 걸리기 쉬운 병이 바로 그것입니다. 목회자는 늘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 보니까 남에게 배우려고 하지를 않아요. 성경을 읽어도 설교준비를 찾기 위해서지,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서 성경을 보려고 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기도는 할지언정 남에게 기도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남을 가르치지만 나도 배워야 되고 나도 양이고 나도 죄인이고 나도 영적으로 연약하고 목마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지요.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배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에 설교도 하고 권면도 하는 것이지 예배는 교인들이 드리고 목회자는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도 예배자입니다. 자신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은혜 받고 그러는 중에 설교도 하고 섬기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다 하는 것이지 그게 아니고 나는 이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남에게 은혜를 끼칠지언정 내가 은혜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적인 미련함이고 또 교만함입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본문 첫 절에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기도를 했는데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가 기도시간이었습니다. 제 구시라 하면 오후 3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갈 때 베드로와 요한도 같이 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에게 더 용한 장소라든가 더 용한 시간이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그 시간이 용한 시간이고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그 장소가 용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영적으로 은혜가 많고 효험이 많은 그런 장소나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모이는 이 시간이 효험이 있는 시간이고 지금 모이는 이 모임이 은혜로운 모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베드로가 사십일 금식하러 올라가다가 나면서 앉은뱅이를 고친 게 아니고 평소대로 일상적으로 기도시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기적을 행한 것입니다. 진짜 영적인 능력은 어떤 특별한 기도, 특별한 기도원, 특별한 경건의 습관을 통해서가 아니고 한결같은, 일상적인, 어떻게 보면 평범한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에서 특별히 다른 비결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도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다니엘의 신앙의 능력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가 사자굴속에 던져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사자굴 속에 던져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평소의 기도시간을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평소의 기도시간을 귀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귀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약속하는 시간이고 만나기로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주일성수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주일성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일이 많아도 우선순위 0순위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너무 바빠서 주일예배를 못가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주일 예배를 나오는 분들은 안 바쁜 사람들이라는 얘기입니까.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얘기입니까. 대통령 당선자도 주일성수를 하고 인수위원회장도 주일성수를 한다면 세상의 누가 너무 바빠서 교회에 못나온다는 얘기입니까.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은 헛 바쁜 것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열심히 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다 이유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번은 안식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열심히 일만 한다고 지혜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쉬고 또 즐거운 일을 하고 또 묵상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설교를 듣고 성도들끼리 서로 어울리고 교회에 오고 그러면서 지혜가 떠오르고 용기를 얻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역량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여유도 없이 이십 사 시간 계속 일만 한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쉬면서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거기에서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 없는 그런 지혜를 얻는 것, 그것이 진짜 지혜로운 것입니다.

  이런 모든 원칙은 이미 믿는 사람뿐만이 아니고 안 믿는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안 믿는 사람, 불신자들도 남들이 주일에 예배드리러 교회에 가면 자기도 가야지요.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나는 안가도 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적어도 호기심은 가져야 될 게 아닙니까. ‘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보면 뭔가 있는 것 같다. 그게 뭘까?’ 이런 호기심이라도 있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남들이 성전에 기도하러 갈 때 같이 가지 않습니까. 사도라고 해서 특별한 게 아니에요. 남들이 기도하러 가면 자기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가족들이 교회에 가고 친구가 교회에 가고 직장 상사가 교회를 갈 때 나는 안 가도된다,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적어도 겸손한 생각은 아닙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취미 생활을 하던 교양을 배우든 음악을 배우든 무엇을 하든 유학을 가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든 늘 레이더가 있어서 아, 여기에 뭔가 좋은 것이 있나보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게 아니고 ‘나는 알 것 다 알고 볼 것 다 봤고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이런 사람은 아무런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이 교회에 가는데 내가 왜 안갑니까? 내가 그렇게 특별합니까? 내가 그만큼 위대합니까? 그만큼 의롭습니까? 그만큼 지혜롭습니까? 아니에요!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에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특별한 사람 없습니다. 예수님도 특별한 대접받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잘못됐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고 외로운 것이고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고 배우지 못하는 것이고 내 마음이 흡족하지 못하는 것이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부터 알아야 됩니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내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감사할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지금까지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특별한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니까.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새로운 모임에 갔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먼저 인사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인사하면 됩니다. 내가 뭐가 특별하다고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해 줘야 됩니까. 안 그렇습니까? 대상이 나보다 나이가 젊든 지위가 낮든 남자든 여자든 애든 상관이 없습니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거기에서 고독함을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저쪽이 인사하나 한번 보자, 그러고 있으면 저쪽도 거북하고 나도 거북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그 사람 만났을 때 인사 못합니다. 왜냐하면 첫 단추를 잘못 채웠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못 채웠기 때문에 그 때부터는 마주치면 불편합니다. 그런 분들 있잖아요? 그게 아니고 처음에 내가 좀 계면쩍더라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아무개입니다.’ 하면 저쪽에서도 계면쩍더라도 ‘아, 예 안녕하세요.’ 하고 그때부터는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가 가능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너에게 문안하는 사람에게만 문안하면 네가 바리새인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베드로가 만약 이십일 세기인 오늘날 우리 교회에 왔다면 설교를 맡지 않았더라도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기도회 인도를 맡지 않았더라도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겸손합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겸손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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