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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지혜로운 성도가 되라 (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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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성도가 되라 (엡 5:15-21)

오늘 2008년도 첫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성도님들의 심령에 보혜사 성령의 감화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저는 새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지혜로운 성도가 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금년 한 해를 은혜롭고 보람되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는 흔히 세인들이 말하는 종류의 지혜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땅에도 지혜로운 자가 많지만, 그들이 가진 지혜는 세상의 지혜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데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성경은 믿는 우리에게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고 말씀합니다(롬 16:19).

반면에, 세상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선한데 미련하고 악한데 지혜롭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름대로 지혜롭게 행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세상의 지혜는 미련한 것에 불과합니다(고전 1:20). 성도들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여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데 방해꾼 노릇을 합니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주님의 강림이 가까운 때인 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데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흐름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같이 말씀하십니다.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이나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 것이 죄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 같은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성도들도 먹고 마셔야 살 수 있습니다.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직장 생활도 하고, 사업도 하고,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집이 있어야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똑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 목적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는 것입니다(고전 10:31).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려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이 세상은 완전히 세속화되어서 우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이 다 육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일 뿐이므로 자세히 주의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영화와 드라마, 노래, 잡지, 소설, P.C. 게임, 옷차림, 유행하는 언어 등을 보면 세속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매우 개성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옷을 예로 들면, 매년 계절마다 패션 곧 유행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해서 의상뿐 아니라 음식이나 생활상도 유행을 따라가려고 애씁니다. 어떻게 하면 현재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고 따라갈 것인지가 사람들의 시급한 관심사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렇게 유행을 따라서 사는 것을 매우 지혜로운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능력과 물질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삶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는 사도의 권면과 같이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서 세속을 버리고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16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시간의 소중함도 돈벌이와 관련시켜서 설명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시간은 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들 우리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한 부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큰 부자로서 밭에서 많은 곡식을 거두게 되었을 때,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르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밤에 이 부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는, 시간이 돈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돈이 시간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간은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이 땅에서 사용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각 사람의 수명이 그것입니다.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세월(歲月)이라고 합니다. 강물처럼 시간도 흘러가는데, 한번 흘러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헛된 일에 세월을 낭비하는 것은 돈을 낭비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낭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하여 바른 답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는데 사용한 시간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열심히 일한 시간도 보람되게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보낸 시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그렇게 보낸 시간이라고 해서 세월을 아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한 일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우리 보기에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사용했더라도 그것은 세월을 낭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성공 출세만을 위해서 보낸 세월은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세월을 낭비한 것입니다.

영어 성경(KJV)을 보면, “시간을 구속하라”(Redeeming the time)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내셨듯이, 우리는 시간을 구속해 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시간을 구속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일에 낭비할 뻔 했던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한다면 헛되이 보낼 시간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공부 할 때 주를 위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이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주를 위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여 성도님들이 가사를 돌볼 때도 주를 위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세월을 아끼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 세월을 아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가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악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과 별 다름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주를 위해 살아감으로써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주의 뜻을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못하느냐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나누는 기준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큰일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서 칭찬은 고사하고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야말로 열심히 훌륭한 일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큰일을 많이 행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인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일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룩한 업적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평가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달성한 업적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을 더 귀한 것으로 인정하십니다. 일생동안 이룩한 일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솔로몬을 능가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탁월한 지혜와 열정을 가지고 여러 분야에 걸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한 말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이 헛된 것이 된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지요.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거든 내 뜻과 맞지 않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반대로 먼저 내 뜻을 정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억지 부리면 안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우긴다고 해서 사람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행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취하기 위함입니다. 취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술을 찾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단지 취한 기분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쾌락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술의 노예가 되거나 방탕한 생활에 빠집니다.

잠언서 23장 31절 이하에 이르기를 “31)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34)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노아와 같이 위대한 인물도 포도주에 취하자 장막에서 벌거벗고 잠자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런가하면, 이 말씀은 단지 술에만 취하지 말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취하게 만드는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박에 빠지면 술에 취하는 것처럼 결국 방탕에 떨어집니다. 요즘은 피시 게임 또는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은데, 이 역시 술 취하는 것과 같이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만듭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 많습니다.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술이든 도박이든 쾌락이든 그것에 취하게 되면 결국은 방탕하게 되어 믿음의 길에서 파선하고 타락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속적인 즐거움을 맛보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은혜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항상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한 삶이란 어떠한 것일까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반면에 성령에 충만하지 못하면 인간적인 고집에 사로잡혀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성령께서 내주하십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몸을 성전 삼아 거하십니다. 그렇더라도 성령의 내주와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성령의 내주는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시와 같지만,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온전히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선한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9절에 보니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시는 구약성경에 수록되어 있는 시편을 가리키며,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은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때 입술로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 곧 진심으로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찬송 중에 거하시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때 열납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에 구원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우리에게 예배 중심의 삶을 살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에 대하여 이사야서 43장 21절에 이르기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생활에 힘쓰는 것은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본분을 다하면서 사는 사람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달리 없습니다.

반면에, 예배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고 예배로 말미암아 받는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생활에 더욱 힘쓰기 위해서 주일 예배 뿐 아니라 수요예배와 구역예배, 금요기도회에도 참석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자녀들과 함께 매일 시간을 내서 가정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동시에 우리 심령에 은혜가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므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 위해 예배생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여섯째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감사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감사생활은 성도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도 감사를 빼먹으면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보니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기쁜 일, 좋은 일, 신나는 일이 생길 때만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슬픈 일, 나쁜 일, 낙심할 일이 생겼을 때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슬픈 일이 변하여 기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낙심할 일이 소망 찬 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도 마음에 감사가 충만한 가운데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에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에도 감사함으로 구할 때 위대한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근심할 일이 생겼을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면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응답을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감사할 때 우리 마음을 덮었던 근심의 구름이 걷히고 우리 영혼의 태양이신 주님의 밝은 빛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 오경을 읽어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 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원망 때문이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험한 길로 인해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저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그제야 백성들이 모세에게 와서 호소하기를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리석게 원망하지 말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다양한 구원을 경험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곱째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서로 간에 존중히 여기고 섬길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을 귀하게 알고 서로 먼저 섬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먼저 형제들을 섬길 때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서 사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러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12)…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면 우리가 믿음의 형제들의 발을 씻겨주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서로 섬길 때 우리 교회는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서로 섬기기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다툼을 일으키고 교회의 덕을 깨뜨립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우리의 교만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더구나 직분자들은 각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한층 더 섬기는 데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23:11)고 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섬길 때 나도 섬김을 받게 되고 내가 먼저 상대방을 높일 때 그도 나를 높여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섬김의 본을 보이신 주님을 본받아서 서로 섬기는 데 힘씀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또 한 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금년에는 작년보다 더 하나님을 잘 섬기고, 더 큰 은혜를 받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더 봉사하고, 더 풍성한 사랑을 나누는 한 해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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