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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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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8)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2008년 새해에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 주신 말씀이 “어떤 순간에도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지 주님 아닌 그 어떤 것으로도 결정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다른 어떤 마음으로도 결정하고 또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감동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오늘 신년 첫 주일 설교를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에 일본 선교사 수련회를 갔다가, 식사 중에 옆에 앉으셨던 한 사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에 와서 사역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주일마다 힘이 듭니다!” 

교회 역사를 통하여 보면 많은 주의 종들도 어려움을 당하여 허둥지둥대고, 낙심에 빠져, 다 때려 치우고 도망가고 싶은 유혹을 받았던 때가 많았습니다.

사무엘상 20-21장에서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 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사울 왕의 마음을 확인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숨어서 결과를 기다리던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 때 요나단으로부터 신호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너를 죽이려는 것이 사실이니 빨리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다윗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사울 왕이 너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1장에 보면 놉까지 도망간 다윗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먹을 떡이 있으면 달라고 구합니다. 보통 떡은 없고 성전에 바쳐진 거룩한 떡 밖에 없다고 하자, 다윗은 거짓으로 왕의 이름을 빌어 제사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결국 그 떡을 얻어냅니다. 그리고 무기가 있느냐고 무기를 구합니다. 아히멜렉이 골리앗이 쓰던 칼을 내어 줍니다. 왕의 충직한 신하요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하는 부탁이니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두려움에 휩싸여 먹을 것과 무기 밖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는 음식과 무기 두 가지가 자기를 살려줄 줄 알고 가드로 도망갑니다. 이 일로 인해서 놉의 제사장 85명과 어린 아이까지 학살을 당합니다. 역적에게 떡과 칼을 주었다고 어린 아이들까지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지 않고 두려움 때문에 죽을 것 같아 한 행동으로 인한 대가는 너무 무서운 것이었고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다윗 자신도 골리앗의 고향 가드에서 미친 짓을 하고 도망 나와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2008년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꼭 명심할 것은 항상 주님의 마음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이끌어가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결정하면 이렇게 됩니다. 더 나쁜 상태가 됩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않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새해는 분초마다 계속해서 물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인가?”
ꡒ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ꡓ했습니다. 이것이 복된 삶, 간증이 있는 삶을 사는 열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됩니까? 기쁩니다!
빌립보서는 4장으로 이루어진 길지 않은 편지 중에 매 장마다 크리스천이 누릴 기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ꡓ(2장 7.8절)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ꡓ( 3장 1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ꡓ(4장 4절)
그가 쓴 짤막한 편지에는 기쁨 혹은 기뻐한다는 단어가 17번나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옥살이가 고달프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중에서 자신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옥 안에 갇혀 있는 내가 기뻐하니. 옥 밖에 있는 너희들은 더욱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기쁠 수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이것이 답입니다.
2008년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김우현 PD가 간증하였습니다. 고백하기를 자신은 후기 인상파였다고 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었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음침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최춘선할아버지 영상 후 처음 간증오셨을 때 약간 그런 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송구영신 예배 간증할 때 너무나 밝고 평안하고 당당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이기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6절에서 8절까지 예수님의 마음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첫째는 ‘자신을 비웠다ꡑ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을 낮추었다ꡑ입니다. 셋째는 ‘죽기까지 복종했다ꡑ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정말 기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대로 되어야 하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져야 하고 사람들 앞에 높아져야 하고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을 부리며 살아야 기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한 열등감과 욕구 불만에 사로잡혀 살게 됩니다. 나보다 더 잘난 사람, 더 많이 가진 자가 주위에 한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교 2등하고 야단맞는 아이를, 98점 받고도 핍박받는 아이가 이해 되십니까? 1등이 존재하는 한 2등은 기쁠 수가 없습니다. 100점이 있는 한 98점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 믿음으로 붙드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셨습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마굿간에서 짐승들과 그 배설물 사이에서 겨우 누울 자리를 만들고 그 냄새나는 짐승 우리에서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까이 다가오려는 짐승들을 물리치고 마리아를 누이고 아기가 태어납니다. 더럽고 고통스러운 것 뿐 아니라 마음도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아름답기보다는 서글프고 춥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마음은 기쁘셨습니다. “하늘에는 큰 기쁨이라”고 천사들이 찬송하였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주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구유에 나시고도 십자가에 달리시고도 기쁘신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예수님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고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기독교인의 고백입니다. 자기 부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 때 기쁨이 오는 것을 아십니까? 자신의 허물과 죄, 욕심과 두려움, 염려가 모두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여기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모르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웃으면서 제게 다가오는 그 사람을 저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용서하라니요 사랑하라니요.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난 못해요.” 자아가 안 죽으면 이렇게 평생을 사는 것입니다. 잘못은 그 사람이 했는데. 고통 당하고 죽어가는 것은 내가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답을 얻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할 때 미움도 섭섭함도 억울함도 나의 죽음을 받아들일 때 사라지고  그 때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평생 후회할 뻔 했던 시험이 일어났다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교인들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자기를 부인하셨던 예수님 그 속에 진짜 기쁨이 있습니다. 왜 괴로워하며 살고 두려워하며 살고 염려하며 삽니까? 왜 주님의 마음을 품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 자신이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오히려 기뻤습니다. 무슨 기쁨이었을까요? 죄를 지어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고난 당하는 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여러분이 진짜 기쁨을 소유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만날 날이 기쁘십니까? 주님 다시 만날 날이 준비되었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dskgd으면 결코 주님 다시 만날 날이 기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예배당 건축 중에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는데 교인들의 반대가 너무 심했답니다. 사모님 조차 이런 형편인데도 떠나야 하겠느냐고 했지만, 기다리는 현지인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교회 사임을 각오하고 떠난 비행기 안에서 가슴에 통증이 오더랍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쁨이 왔습니다. ‘내가 주의 일하다가 심장이 죄어오는 아픔을 겪은 것이 주님 만날 때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주님 만날 자격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너무 기쁘더랍니다.

모두들 높아지지 못하여 안달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기쁨은 낮은 곳을 볼 수 있을 때 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미움 그리고 비교 의식 열등감 송게서 속으로 말할 수 없이 괴로워하고 사는 것이 높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 나를 세워주실 수 있지만 높은 곳에 마음을 두는 것은 고통 속에 사는 것입니다.

  미국 미네소타에 한 루터 교회 존칼슨목사님이 ‘파트너가 없는 졸업생을 위한 파티를 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학교 졸업 시즌이 되면 졸업 파티를 하는데 파트너가 있는 파티입니다. 그런데 이 파티가 수많은 고등학교 졸업생들 마음에 상처가 됩니다. 우울하고 파트너가 없으면 이성에게 채인 사람, 거절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것 몇 명의 잘난 사람 인기있는 사람을 위한 파티인 셈입니다. 학창 시절 내내 거부감과 열등감에 시달렸답니다. 졸업 파티는 확인 사살의 날인 것입니다.
  세상 기쁨의 실체가 이런 것입니다. 파티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존칼슨목사은 예수님이 생각하신 파티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파트너가 없는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졸업생 무도회가 열리는 날 동시에 너무나 재미있게 성대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언론에 보도되고 후원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나중에는 파트너가 있는 사람도 파트너가 없다고 하면서 그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기쁨입니다. 이런 파티를 열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그 목사님이 아셨기때문입니다. 

(고전 1:26-28)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자꾸 높은 곳에 마음을 두니 사람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낮은 곳에 마음을 두어보면 우리 주변에 기쁨을 주고 받을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교회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유럽에 '램버린의 천사'라는 별명을 가진 메리안프레민저(Marian Preminger) 여사는 헝가리 귀족의 딸로 태어나서 배우로 사교계의 꽃으로 정말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의사와 영화 감독과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골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던 슈바이쳐박사를 만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사모하던 슈바이처의 연주를 들으면서 그를 위해서 악보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녀의 마음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 그녀는 슈바이처 박사를 따라 아프리카 램버린(Lambarene) 병원으로 갑니다. 렘버린에서 메리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성에서 태어나 공주처럼 자라났고 사교계의 여왕처럼 살았던 과거의 삶을 버리고 그녀는 완전히 흑인들의 종이 되어 살았습니다. 매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아기들을 목욕 시켜주었고, 문둥병자들에게 밥을 먹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었다(All I Ever Wanted Was Everything) 나는 여기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자서전에서 썼습니다.

새해에는 매 순간 주님의 마음에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에게 계속해서 복종하면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새 해에는 “주님 어떻게 할까요?” “이것이 주님의 마음인가요?” 끊임없이 물으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일본에 갔다가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미국 어느 목사님이 아침에 식당에 갔는데, 웨이트리스가 대단히 불친절하더랍니다. 불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말을 한 마디하려고 하는데 그 때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기를 ‘그런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 넘어가 지더랍니다. 식사를 한 다음에 팁을 주려하니 약간 갈등이 생겼습니다. 한 3달러를 놓아두려고 하니 너무 적다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러면 얼마를 놓아야 하나요?’ 10달러를 놓고 나왔습니다. 뒤에서 웨이트리스가 부르더랍니다. “손님, 이것 팁이 아니지요?” 돌아보니까 그 분이 10달러를 들고 서있었습니다. “자매님, 무슨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더랍니다. “어제 남편이 집을 나갔습니다. 이혼했어요.” “기도해 드릴까요?”하며 전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계속 품으려고 하지 않으면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싸우고 끝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같이 가셨던 이동원목사님이 추천해 준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는 사회학 교수인 토니캠폴로가 쓴 [하나님의 나라는 파티입니다]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하와이에 강의가 있어서 갔다가 시차 때문에 새벽 3시30분에 깨어났답니다. 자기 집에서는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어서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을 찾다가 밤늦은 시간 허름한 식당을 발견했답니다. 그런데 거리의 여인들 한 무리가 시끄럽게 들어오는데, 어느 한 여인이 “내일이 내 생일인데...”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다른 여인이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우리 보고 생일 파티를 해달라는 거야? 네 주제에 생일 파티가 가당해!”하면서 싸우고 나갔습니다. 그 때 캠폴로교수에게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식당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저 분들이 늘 이 식당에 오는 분들입니까?” “그렇지요. 매일 이 시간만 되면 옵니다.” “ 그 중 한 여인이 내일 생일이라고 하던데요.” “아, 그녀가 아그네스이죠. 사람의 심성을 착한데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 제가 그녀의 생일 파티를 좀 해주고 싶은데요.” 식당 주인도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그네스 생일 파티를 캠폴로교수가 돈을 지불하여 준비를 했습니다. 다음 날 그 시간에 그 녀들이 들어왔습니다. “해피버스데이 아그네스!” 아그네스는 눈물을 흘리며 “이 케익을 자르지 않고 케익을 간직하고 싶어요. 제 방에 갖다 놓고 와도 될까요.” 모두 그렇게 하라고 하자, 아그네스가 그 케익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식당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때 토니캠폴로 교수가 그 침묵을 깨고 말했습니다. “기도를 해 드려도 되나요?” “기도해 주세요. 당신은 목사에요? 어느 교회 목사인가요?” “새벽 3시 반에 창녀들을 위하여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교회에 목사입니다.” 식당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유! 그런 말 마세요. 그런 교회가 있다면 내가 진작 나갔지! 정말이지 그런 교회가 있다면 나도 나가고 싶소!“ 예수님이야말로 그렇게 하시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 날이 1월 2일이었는데 그 1년내내 기뻤답니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교회 주변에 있는 미자립 교회를 섬겼습니다. 교인들이 얼마 되지 않는 여섯 교회를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주변의 어려운 교회를 섬기라.’는 마음을 주셨지만, 처음에는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두려움도 염려도 귀찮은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희 교회 부흥보다 더 기쁜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작년에는 스무 분을 파송해 1부 예배를 마치고 미 자립교회를 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삶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2008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환경은 우리를 변화무쌍하게 만듭니다. 기뻐하다가 슬퍼하다가. 종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일관된 마음상태를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기쁨입니다.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하여 다시 한번 그것을 확인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제 성찬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마음을 품으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와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 일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주님, 제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계속해서 제게 말씀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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