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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복의 근원이 되자 (창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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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이 되자 (창 12:1~4)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뀐다. 그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워진다. 아브라함은 무명의 사람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1. 창12:2上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보라. 열방을 뒤덮고 있다. 유대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모슬림교도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가톨릭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기독교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창15:5의 말씀대로 셀 수 없이 많은, 하늘의 뭇별처럼 자손의 수가 번성하였다. 이 땅에서 가장 큰 민족이 이루어졌다. 40억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큰 민족이 이루어졌다.
 

2. 창12:2中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아브라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을 말씀하실 때 언제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셨다.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나사로를 언급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은 아브라함의 이름이 제일 먼저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바울 서신의 꽃이라고 하는 로마서에도 4장 전체는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도배를 하였다. 더군다나 서양 사람들의 이름 속에도 아브라함을 사용한다. 그 중 대표자는 미국의 노예 해방을 이룩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다. 이보다 더 창대케 된 이름이 어디 있는가? 정말 창대케 된 이름이다.
 

3. 창12:2下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복을 받을 때 그는 복의 중심이 되었다. 복을 발하는 통로가 되었다. 창12:3에도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하셨는데 아브라함 때문에 영적인 복을 얻었다.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브라함으로 시작되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 그 예수를 통해서 얻은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영적, 신령한 축복과 땅의 기름진 축복을 생각하면 정말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제시한 말씀의 예언들이 4,000년이 지난 오늘날 확실히 이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고 위대하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을 얻고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 어떤 숙제가 요구되었는가? 내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 꼭 들어야 할 말씀이다.

첫째,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들로부터 떠나라. (창12:1中)

창12:1中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여기서 “떠나라.”고 하니까 잘못된 음성을 듣는 이들이 많다. 집에서 살기 싫어서 가출을 하고 이혼을 하고자 하는데 “떠나라”고 하니깐 “아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떠나라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다. 떠나라는 이 말은 더러운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본토 친척 아비집이 정들고 익숙하고 편하고 혈연 관계로 얽혀 있어서 떠나기 어려워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도록 한다면 거기서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끊어버리는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왜,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가?

수24:2을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기록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아비집은 철저히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될 자가 우상 신을 섬기는 곳에 섞여서 뒹굴고 살면서 복을 나누어주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떠나라고 하신다.

우리는 빠져 나와야 할 것과 머물러야 할 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은혜의 자리는 머물러야 하고 불신의 자리는 떠나야 한다. 말씀의 떡을 떼는 자리는 머물러야 하고 세상의 악을 보는 자리는 떠나야 한다. 구원의 자리는 머물러야 하고 오만한 죄의 자리는 떠나야 한다. 방탕하고 악을 흉내내는 자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교회는 머물러야 할 곳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라. 시냇가에 나무가 심기어지면 사시사철 열매를 맺듯이 말씀을 먹고 배우며 묵상하는 거룩한 자리엔 아예 뿌리를 내려라. 깊게 뿌리를 내려라. 떠나서는 안된다.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는 목적을 향해 움직여라. (창12:1下)

창12:1下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복을 받을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방향없는 몸부림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시할 땅, 즉 하나님이 정해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의 움직임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데 하나님이 기뻐하는 목적을 향한 목적 지향적 움직임이라면 그 삶은 성공하는 삶이 된다. 내가 먼저 움직이고 목적을 세우는 것은 화살을 활시위에서 놓아버린 후 과녘을 세우는 것과 같다. 그런 인생은 실패한다. 내가 움직이기 전에 목표를 먼저 세우는 것은 과녘을 향해 활을 쏜 것과도 같다.

우리는 이런 의미로 항상 목적이 정해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우리의 목적은 비웃음 거리가 될 수 있다. 마치 아브라함의 주변 사람들이 75세에 하란을 떠나고자 할 때 비웃듯 손가락질 할 수 있다. 약속을 모르고 예언을 모르고 사명을 모르는 자들에게 영적 목적을 세운 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목적을 세우고 산다.

이 아침에 목적을 세우자.

① 전도의 목적을 세우고 움직이자.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영혼을 전도하려는 목적은 시간의 우선 순위를 정립할 목적이다.

② 물질의 목적을 세우고 움직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십일조를 철저히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려는 목적은 물질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정립한 목적이다.

③ 경건의 목적을 세우고 움직이자.

세속의 화려함의 유혹 속에서도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려는 목적은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의 목적이다.

성령의 감화로 이런 목적을 세우는데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수준으로 자녀답게 살고자 하는 신앙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 2008년은 CM의 부흥을 세워나가는 해이다. 이 거룩한 일을 목표 없이 움직이면 안된다.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지 않도록 철저히 목표를 세우고 모임을 시작하라.

셋째, 꿈을 주신 하나님이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하라. (창12:3)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복의 근원이 되도록 가야할 땅을 지시하신 하나님은 꿈만 주시고 나를 움직이려는 분이 아니다. 나를 철저히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나그네같은 인생을 사노라면 축복하는 사람만 만나지 않는다. 나의 삶을 오해하고 나의 삶을 무너뜨리려는 반대자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책임져 주심이 분명하다.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어떤 뒤틀린 만남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우리 성도들과의 만남이 축복의 만남이 된 것을 감사한다. 나는 가끔 이런 문자 메시지를 듣는다.

“우리 교회에 목사님이 계신 것이 감사해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믿음 생활하는 성도가 된 것이 행복해요.”

나도 행복하다. 이런 성도를 주신 하나님, 복을 받고 복을 부으시는 하나님을 확신할 때 너무도 즐겁다. 그런데 상황이 반대일 때도 확신하라. 나를 비난하고 나를 저주하는 문제 앞에 있을 때도 확신하라. 체면이 깍이고 비방을 받아도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약속의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나의 뺨을 치면 하나님이 그의 뺨을 치고 나의 신앙의 길을 넘어뜨리면 하나님이 그의 길을 넘어뜨릴 것이다. 나의 삶을 책임져 주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자. 이 확신을 가지면 참을 수 있다. 시험을 이긴다. 마귀가 건드릴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낼 필요가 없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으로 따르라. (창12:4)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지시하심을 받았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순종이었다. 나의 나이와 나의 건강과 나의 가족 관계를 보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 그 마지막은 실천이다. 말씀 앞에 겸손히, 오직 순종으로 따르는 것이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헌금을 드리면서도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다면 제사는 종교 행위에 불과하다. 순종은 복을 심고 거두는 축복의 종자다. 종자가 심겨져야 복의 사람이 된다. 순종은 기적을 체험케 하는 열쇠다. 말씀을 좇아 행하는 순종없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말씀을 철저히 따르자.

여러분과 나도 아브라함처럼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한 이름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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