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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근심하지 마라 (요 14:1, 빌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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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지 마라 (요 14:1, 빌 4:6-7)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빌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교보 생명에서 수도권 성인 남녀 9백 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2%가 불안과 염려를 느끼고 살고 있는 것으로 응답했습니다. 염려하는 문제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문제가 48%로 가장 컸으며 일상의 경제 생활은 36%, 불의의 사고 27%, 노후문제는 18%를 차지했습니다. 사람은 일평생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순기능으로 작용하면 방어와 준비가 되어 좋지만 역기능으로 작용하면 지나친 염려로 발전하여 염려의 늪 속에 빠져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잃게 하고 영적 건강도 상실하게 만듭니다.

어떤 여자가 남편과 두번째 사별하고 한 믿음직한 남자와 세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새로 맞은 남편은 아내를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에 겨워야 할 부인은 날로 몸이 약해지고 얼굴마저 날이 갈수록 핼쓱 해져만 갔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물었습니다.
“어디 불편한 일이라도 있는거요” 그러자 부인은 단지 마음의 병이라고만 대답 했습니다.
이에 진실한 남편은 자신이 잘못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어떻게 더 사랑해주면 되겠느냐며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하자 부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당신이 또 죽으면 어떻게 하나요”
즉 걱정 때문에 몸이 말라간다는 뜻이었습니다.

인간이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시달리며 살아갈 때, 끝없는 고민과 근심이 찾아오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그 어려운 현실을 믿음으로 극복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이라고 하여도 주저앉아서 근심하고 절망하는 것은 주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본문은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무슨 이유로 근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① 근심은 결코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연 근심과 걱정, 실망과 좌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줍니까? 사람들은 열심히 근심하고 고민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신 건강을 해치고 영적 파멸로 몰아넣는 것이 근심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합동으로 모여 인간의 근심에 대하여 조사해 보았더니 모두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지고 근심하더라는 발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었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22%는 아주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그리고 4%는 결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오직 나머지 4%만이 우리가 고민하여 해결할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지고 걱정하고 근심하며 때로는 실의와 좌절에 빠져 스스로 불행한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염려하므로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더냐” (마6:27)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염려와 근심은 주님께 맡기는 현명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중국 고사에 있는 기인우천(杞人憂天)이라는 성어가 있습니다.
기(杞) 나라 사람 하나가 나무 밑에 앉아서 큰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자네,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나?"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쓸데없는 걱정을 가리키는 기인우천이라는 말이 생겼고 줄여서 기우(杞憂)라고 합니다.

요즘도 보면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꼭 실패할 방향으로, 안 될 방향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괴롭히고, 모처럼 누린 남의 행복에도 재를 뿌리고 맙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병입니다. 그래서 자기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좌절시키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더 랭크’ 라는 영국의 실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습니다.
'자금 사정이 안 좋은데 이러다가 부도가 나면 어떻게 하나?' '매출액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해야 늘릴 수 있을까?' 이렇듯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들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날 그 쪽지들을 꺼내 보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에 그는 상자 속의 메모지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자신은 암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40년 동안이나 걱정을 했습니다. 그녀는 70세에 마침내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그녀는 33년을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느라고 낭비했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때 대부분이 이런 것들입니다. 쓸데없는 염려와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한 이유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 많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벗어버리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② 우리에겐 믿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 하신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유명한 전도자 죠지 뮬러는 말하기를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서 염려는 끝나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서 신앙은 끝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는 바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고민이 무엇인지, 근심이 무엇인지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몸소 당하시고 체험하셨습니다. 히4:15에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연약함이란 고난을 의미하고 체휼한다는 말은 헬라어 “쉼파데오” 라는 말로 마음이 친절한 사람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구원해 주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인간은 죄 지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고민하고 근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친히 연약함을 맛보셨기 때문에 우리가 왜 우는지, 왜 슬퍼하며 고민하고 잠 못 이루는지를 아시고 도와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의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체휼하시는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립시다. (벧전5:7)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근심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일찍이 이런일을 체험했던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2:5) 우리의 고통을 체휼하시는 주님을 믿읍시다. 그리고 염려를 맡깁시다.

③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생길 때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마음의 걱정을 쌓아두면 마음의 병이 되고 육체의 병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걱정 근심이 생길 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빌립보서 4:6-7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을 그치고 기도하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생깁니다.

a. 심령이 열립니다.
즉 마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에는 언제나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막히고 닫혔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자신의 닫힌 마음이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만 하면 심령이 열려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주님을 바라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통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b.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응어리 졌던 것들이 쌓이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생긴 상채기와 가라앉은 감정의 찌꺼기 그리고 돌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온갖 스트레스들이 기도할 때 치유되고 씼어지고 응어리들이 풀어집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울고 통곡하며 부르짖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이것을 감정의 빨래 즉 카타리시스라고 합니다. 성도는 마음을 풀어내는 일을 기도로 해야 합니다. 술이나 세상의 쾌락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순간적인 해소는 될지 몰라도 그 다음에는 더 큰 후회와 절망이 찾아옵니다.

c.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입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몇 년 전 중국 여행 중에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장춘애라고 하는 조선족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흑룡강성에서 한의대를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족 노인 연합회를 갔다고 돌아오는 2시간 동안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27년 동안 공산당의 유물주의 교육을 받은 그가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2 시간 동안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육신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하늘의 영원한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주인으로 섬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가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첫째 질문이 바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그분에게 기도하면 병도 안 들고 어려운 일도 다 없게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어도 병들 수 있고 고난을 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좀 의아한 듯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후에는 다른 점을 설명했습니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병들고 어려운 일 당해도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줄 주님이 함께 계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도 병들 수 있고 어려움 당할 수 있지만 이제는 홀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아저지가 그리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근심을 주님께 맡깁시다.
근심은 두려움을 주고 용기를 꺾고 사람을 실의와 좌절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실망하지 아니합니다. 출14:10-2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는 홍해 바다가 막혀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병들이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근심하며 두려워했으나 기도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 14:16) 기도할 때 근심하던 문제들이 풀려지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7:7>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강보조 의약품 맨소래담을 만들어 미국의 유명한 재벌이 된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 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통해 성공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서점을 경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1887년에 밀어닥친 경제공황으로 그의 사업은 부도가 나 10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신 믿음의 확신에 서서 아무 걱정 하지 않고 그는 하나님께 서원한 헌금을 드리기 위해 집을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지만 하이드는 “하나님께 진 빚을 먼저 갚고 시작하겠다”며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그는 생산 공장에서부터 판매, 영업에 이르기까지 직접 뛰어 다니며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매 달 하나님께 십일조를 정확히 드렸습니다. 십일조 액수가 늘어나 첫 달의 두 배가 되었을 때는 10의 2조를 드렸고, 사업이 번창하면서 10의 3조, 4조, 9조까지 늘어났습니다.

그에게는 어려울 때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넘치도록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축복해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확신 있는 기도와 십일조 생활을 멈추지 않았던 ‘하이드’ 는 결국 사업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난 1889년에 맨소래담 회사를 창립하였고 ‘맨소래담’은 150여 개국에서 필수 의약품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회, 기도하는 국가는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입에서는 복된 말이 나오지만 기도하지 않는 입에서는 저주와 멸시와 비판과 시기질투, 그리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제창한 노먼 빈센트 필 목사가 후두염에 걸려서 잘 아는 친구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그를 가만히 진찰하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가” 그는 솔직하게 답변했다. “목사가 무슨 다른 걱정이 있겠는가.그저 늘 설교 준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지. 다음 주일이면 내가 무슨 말을 성도들에게 전해야 할까, 또 심방 가서는 무슨 말씀을 전해야 될까, 이런 걱정이 늘 나를 괴롭힌다네” 그러자 친구 의사는 뜻밖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착 하게나.그것이 우리의 신앙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합시다. 내가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착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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