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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을 이루자 (행 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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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을 이루자 (행 2:42-47)

  2008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여 변함없이 하나님께 나와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풍성한 축복이 가정과 일터에 크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12월, 2008년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경제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전망을 내어 놓았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장미 빛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고, 잘될 것이라는 분위기입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한 2008년은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수출은 둔화될 것이고 내수 회복이 그나마 경제성장률을 지탱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가의 고공행진 등으로 세계 경제의 하락세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올림픽이후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한마디로 올 한해도 우리경제의 적신호를 대부분 예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어려울 때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기적을 베푸셨고,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환경을 뛰어넘고, 예상을 뒤덮는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걸음씩 나아갑니다. 우리 앞에 어떤 난관, 어떤 여리고와 홍해가 있더라도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개인의 신앙과 공동체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금년 교회의 표어를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을 이루자’고 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목표를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역사 속에 그런 능력이 나타난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초대예루살렘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말씀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내적성숙이 무엇일까요? 42절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교제, 기도를 말합니다. 43절에 사도들로 인한 기사와 표적이 있고, 44절에 함께 있어 물건을 통용한 것이고, 45절에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눠준 것이고, 46절에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47절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것입니다. 이 모두가 바로 내적성숙입니다. 그렇다면 외적성장은 무엇일까요? 47절에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41절에도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다고 강조합니다. 4장 4절에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고 말합니다. 5장 14절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고 말하고, 6장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놀라운 외적성장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을 이룬 교회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 특히 2008년 성전입당의 해를 맞아 힘 있게 출발하는 우리 교회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이런 꿈과 비전을 바라보고 시작합니다. 꼭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의 관한 중요한 교훈을 말씀을 통해 받아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초대교회를 통해 이루어진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균형입니다.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는 균형을 잡아야 할 요소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는 내적성숙만 이루지 않았고, 외적성장만 이루지도 않았습니다. 두 가지가 함께 출발했고, 함께 과정을 이루었으며, 함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적성숙만 추구해서는 안 되고, 외적성장만을 위해 달려가서도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는 언제나 같이 가는 것입니다. 치우치지 말아야 할 균형의 요소입니다. 이것을 늘 잊지 마십시오.

  우리 삶에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균형이 깨지면 언제나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의 몸도, 사회의 구조도, 인간 삶의 방향도, 심지어는 줄타기의 묘기도, 모든 것이 다 균형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균형이 깨지면서부터 인간 삶의 비극과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균형이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세계의 가장 중요한 삶의 원리요, 역사의 흐름이요, 순리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균형입니다. 모든 것의 균형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고,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하게 새워갑니다. 말씀과 기도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믿음생활하면서 이 두 가지는 치우쳐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비행기의 두 날개처럼,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말씀에만 치우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리만 크고 몸은 작은 비정상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만약 기도에만 치우치고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몸은 비대하고 머리는 작은 기형신앙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상적인 신앙은 말씀과 기도의 균형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늘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성경에서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고 성숙해져 갑니다.

  말과 행동의 균형도 잡아야 합니다. 말은 많이 하는데 실천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반대로 행동은 있으나 말이 없으면 오해를 받기 십상이고 충동적인 행동이 될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고 행동하고, 행동하는 만큼 말도 필요합니다. 이 균형이 잘 있어야 합니다.

  안과 밖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밖에서는 잘 하는데 안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면 답답한 일입니다. 반대로 안에서는 잘 하는데 밖에서는 잘 못하면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안과 밖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은 함께 가야 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이런 균형 있는 신앙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 개인과 공동체가 균형을 잘 잡아 갈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우선순위입니다. 내적성장과 외적성숙이 함께 가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우선순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어떤 것이 먼저이어야 할까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내적성숙이 우선입니다. 본문으로 읽은 42절부터 47절까지를 시간의 순서상으로 분류하면 내적성숙을 추구하고 이룬 말씀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외적성장은 마지막에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그래서 47절의 말씀을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그래서 구원받는 사람이 더하였다” 42절부터 시작된 교회 안에 내적성숙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외적성장의 결과를 얻어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언제나 함께 가지만 분명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내적성숙이 먼저이고, 외적성장이 나중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어지러움이 하나님이 아니라 순서를 따라 가십니다. 천지를 창조할 때에도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창조를 순서를 따라 질서 있게 하셨습니다. 자연도,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은 질서를 따라 돌아갑니다. 계절의 순환도 질서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자연의 질서가 파괴될 때 인류에게 큰 재앙과 어려움이 생깁니다. 지금 그 자연 질서의 파괴 때문에 점점 마지막이 오고 있음을 예견하는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 창조의 세계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구조와 형태도 질서를 따라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 몸의 질서가 잘 잡혀야 건강합니다. 그러나 질서가 파괴될 때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과 어려움은 질서의 파괴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따라가야 천지도, 자연도, 우주도, 인간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치밀하고 계획적인 순서와 절차와 질서를 따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운행하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건의 충돌 없이 모든 것은 질서를 따라 순차적으로 운행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분명 균형이면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에 할 것이 있습니다. 내적성숙과 외적성장가운데 내적성숙이 먼저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튼튼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살려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면 안전교육을 하는데 산소마스크를 쓸 때 먼저 부모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도와줘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도 자기가 힘이 없으면 자기도 죽고 아이도 죽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호흡하고 힘이 있을 때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것입니다. 나부터 살아야 남을 살립니다.

  우리 속담에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에도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Empty vessels make the most sound.) 깡통은 오래 보관하기 위한 통조림의 용도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깡통이 통조림으로 속이 가득할 때 어떤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속이 든든할 때 무게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속이 비어 있으면 얼마나 요란한 소리가 나는지 모릅니다. 우리 신앙이 소리만 요란해서는 안 됩니다. 무게감이 떨어져서도 더욱 안 됩니다. 우리가 속이 차고, 속이 든든할 때 소리가 없는 것입니다. 속부터 채워야 잡음이 없습니다. 내적성숙을 우선순위로 한해를 출발하십시오.

  셋째는 주의 도우심입니다.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은 균형과 우선순위를 진리를 가르쳐주지만, 결정적으로 주의 도우심이 빼놓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다시 보시면 47절이 중요합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하고 있는 성경저자는 이 모든 것의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주어가 무엇입니까? 성장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교인이 아니고, 심지어는 베드로나 사도들도 아니고, ‘주께서’ 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하신 일이요, 주께서 도우신 역사요, 주께서 주도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서 역사해야 합니다.

  외적성장의 부흥만이 주께서 도우신 일이 아닙니다. 내적성숙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성도들의 내적으로 성숙한 행동의 모습은 그 근본출발이 ‘성령’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 변화는 없었습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 오히려 이들은 배신자, 비겁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능력이 없었고, 행할 의지도 없었고, 살아갈 용기도 없었고, 어려움을 헤치고 나갈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였을 때, 성령이 오셨을 때, 달라졌습니다. 내적성숙의 아름다운 모습이 강력한 탄력을 받은 계기는 성령입니다. 성령의 도우심, 주의 도우심속에 생각도, 말도, 의지도 모두 큰 힘을 얻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두로 미쳐야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이 필요하고, 은혜의 물결이 있어야 하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날개를 달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이요, 역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나님은 그의 강력한 힘과 능력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주도하고, 하나님이 이끄시고, 하나님이 능력을 행하셔야 모든 것이 가능하고 되는 것입니다. 한나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세우기도 하시고 허물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안 되는 것도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 삶에 한 축을 이루며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하게 세워집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전혀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절대적인 주권이 있기에 우리의 수고나 의지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따라 뜻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힘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수고는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적성숙을 위해 힘을 다해야 합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의지를 굳게 세워야 합니다. 다윗처럼 마음을 정하고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해야 합니다. 분명 우리의 강력한 의지를 통해 내적성숙의 열매를 맺습니다.

  외적성장을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열심히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천사들도 흠모할 아름다운 일에 우리의 헌신과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빛을 냅니다. 이 한 해 동안 우리가 부흥을 위해 할 일이 있습니다. 외적성장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의 도우심이면 큰 부흥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내적성숙과 외적성장이 금년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것은 균형과 우선순위와 주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균형을 잡으시고, 우선순위를 잊지 마시고, 나의 최선을 다한 뒤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개인과 교회 공동체의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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