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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일의 주인 (막 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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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주인 (막 2:23-28)

지난 주일 시편 1편의 말씀을 통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철 따라 열매를 맺는 것처럼, 늘 푸른 삶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 복은 기본이 잘 된 사람이 누리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 믿음의 기초가 세워지고 그 기초 위에 건강한 삶이 든든히 세워집니다.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든든히 세워가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지면 그 다음 관계들 역시 그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부부관계도 그렇고 부모자녀 관계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주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세워져 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생활은 복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진정한 복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그렇게 살아왔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2008년 새해를 이 말씀과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기초를 말씀과 기도로 세워가자고 말씀 드리면서 그 기초 가운데 우리가 꼭 주의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할 일들 중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주일성수를 언급했었습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더위와 가뭄에도 변함이 없이 늘 푸른 잎을 내고 풍성한 열매를 내는 것처럼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명 강가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그 생명을 공급받아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많은 시련과 고난의 환경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변함이 없이 늘 푸른 신앙인으로 열매를 맺어갑니다. 

그런데 변함이 없는 신앙인으로 산다는 그 외적 증거들 중의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자세로 섬기는가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바르게 대우해드리며 섬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건강한 신앙의 증거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주일성수’ 등과 같은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통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함께 읽은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주일성수의 기준을 잘 알려주는 ‘안식일’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잘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의 의미와 그 목적 그리고 어떤 자세로 지키는 것이 옳은가를 살핌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리고 주일을 지켜야 할까 그 기본을 점검하도록 합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 2:23-28 본문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함께 가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었다.  제자들이 대단히 시장하였던 모양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께 “어찌하여 저 사람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는가?’ 항의를 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사장 아비아달 때에 다윗이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삼상21장).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과 그 일행들이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 먹을 것을 구하였지만 제사장은 그들에게 줄 떡이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집에서 제사용으로 드린 거룩한 떡 진설병이 있는데 다윗과 그의 일행이 정결하다면 줄 수 있다고 하여 그들에게 진설병을 먹여 배고픔을 면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배고픔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떡을 그들에게 줌으로써 율법의 참 의미인 사랑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건을 예로 들어 말씀하시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하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을 따라 그 날에는 노동을 금하던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따먹는 행위를 노동으로 간주하여 예수께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며 안식일에 선하고 악한 일에 대해 판단할 권리는 주인에게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안식일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는 편안하게 쉬는 날이 됩니다.  언제부터 이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까?  성경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이후에 제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하시며, 이 날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셨다(창2:2, 3)고 증거합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복된 날입니다.  그리고 이 안식일의 의미는 나중에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거둘 때 모세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출16:23-30).  매일 아침마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라고 하였지만 제 칠일은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니 그날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아 너희가 아침에 만나를 거두지 못할 것이니 제 육일에 미리 이틀 분을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 아침에도 집 밖으로 나가 만나를 얻으려 했다가 얻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행동을 보시고 모세를 불러 백성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언제까지 내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심으로 육일에는 이틀 양식을 주신 것이니 칠일에는 각기 자기 처소에 있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말라’ 하시니 백성들이 이 말씀에 순종하여 제 칠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않고 안식하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을 때 제 4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심으로 법으로 성문화하셨으며, 이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지 아니하고 더럽히면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엄히 명하셨습니다(출31:12-17).  그리고 모세가 광야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강론할 때 신명기 5장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시면서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에서 종이 되었는데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15절) 하심으로 안식일을 출애굽의 구원 역사와 연관 지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런 안식일 법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계속 엄격하게 지켜졌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를 하다가 적발되어 돌에 맞아 죽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엄히 명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안식일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런 엄한 처벌을 내리신 것인지 살펴보기로 합니다.

첫째는,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완성을 선언하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루시고 칠일에는 안식을 하심으로 창조의 완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일에 자신을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은 육일의 노동으로도 부족하여 칠일까지 일함으로 부족함을 채우려는 의미가 되어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불신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나를 거두러 안식일 아침에도 나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고 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땔감을 구하러 나간 사람을 엄하게 벌하셨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노동을 금한 안식일에도 일하러 나갔을까요?  게으름 아니면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역하는 행위였습니다.  육일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게으름을 피운 사람은 안식일에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안식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한 선물입니다.  그런가 하면, 안식일에 만나를 구하러 나간 사람은 안식일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지 못하여 혹시라도 안식일에 굶을까 의심되어 나갔으니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아니한 불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불신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민 중에 택하여 부르시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니 내가 거룩한 하나님인 것처럼 너희도 내 앞에서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거룩하라는 말은 다른 사람, 다른 민족들과는 구별이 되어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내가 너의 삶을 책임질 터이니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거룩함의 본을 보여 하나님의 창조주이심과 구원자이심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것이 택함 받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의 능력을 의심할 때 엄한 벌을 내려 백성들을 경계하셨습니다.

특히, 애굽에서 해방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의 의미는 자유와 평안이었습니다.  노예로 살던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신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구원과 자유의 의미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과거에 종으로 살던 때를 기억하고 자유와 안식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노동이 없이 휴식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도우심을 감사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 되었던 때를 잊지 말고 안식일에는 자기 집에서 부리는 종들과 나그네들까지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연약한 이웃들에게도 나누라는 사랑의 법이었습니다.

이 안식일의 법은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계속하여 지켜져 왔습니다.  때로는 철저하게 그러나 때로는 불경건하게 하나님의 안식일을 형식으로 지켜왔던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구약이 명한 이 안식일을 지금도 우리가 지키고 있습니까?  오늘날 성도들은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 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구별된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관계하여 모든 일을 완성한 후 쉼을 누리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5)는 말씀처럼 히브리인들의 시간 개념은 해가 지는 시간에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지금으로 말하면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이후로 교회는 주의 부활의 날을 사망과 죄의 권세를 깨뜨린 승리의 날로 정하여 모일 때마다 사랑의 떡을 떼고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날을 주의 날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주일을 예배의 날로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16-17에서 구약의 모든 절기와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그 본체는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곧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모형이라는 해석입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안식은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위하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참 안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불러 그들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중에는 안식일의 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해석하고 또 거기에 주석을 달아 본래 주신 명령보다 더 구체적이고 엄격한 규칙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이 만든 안식일 준수법 가운데는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도 제한되었고, 운반할 수 있는 짐의 무게나 심지어 그날에 사용할 수 있는 잉크의 양까지도 정해놓았습니다.  만일 히브리어 알파벳을 두 글자 이상 쓸 수 있는 양의 잉크를 가지고 있으면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규정까지 만들어 사람들에게 짐을 지웠습니다.  이런 세세한 규칙을 지켜야만 하는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안식이 아니라 도리어 부담과 짐이 될 뿐이었습니다.  안식일에조차 사람이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안식일의 규정에 매여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던 가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규정에 따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서 먹은 것은 추수와 타작, 도정을 한 노동으로 간주되어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을 예수께 고소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먹은 제자들을 비난했던 바리새인에게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며 기다리면서 안식일을 지킨 셈입니다.  그들은 이 본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그림자인 안식일을 율법에 따라 지켜왔지만 이제 안식의 본체이시며 안식일의 주인공이신 주께서 안식일의 참 뜻을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이라는 특정한 날이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식일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안식을 선물로 주셨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참 안식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부르심은 바로 이런 안식의 선언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매여 사는 분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셨습니다.

사도들이 부활의 날을 예배의 날로 정하고 모인 것은 바로 이런 뜻에 있습니다.  안식일은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고 이제부터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며 장차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완전한 안식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의 날, 주일을 예배의 날, 안식의 날로 정하여 모입니다.  안식일이 거룩한 날이며 복을 약속하신 날이라면 그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께서 그 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은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성수에 대한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고 말씀은 다음 시간에 더 말씀을 나누기로 합니다.  영혼의 안식, 육신의 안식을 주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던 구약의 성도들처럼 우리도 자유함을 주신 주님 앞에서 감사로 예배하며 휴식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신뢰하고 그를 공경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이 오늘날 주일을 잘 지키는 성도의 기본 자세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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